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

"나는 여러분의 첫번째 단원입니다."
(1984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푸른군대의 역사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이란 이름은 평신도 평의회 의장, 로씨 추기경의 제안으로 1985년 10월, 국제회의 모임에서 채택된 것이다.
   국제 평의회가 명칭을 바꾸려고 제안했을 때 대다수가 결정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이의 없이 동의하려고 했다. 그리고 파티마에서 국제 회의를 열고 수 년 동안 제시된 다른 많은 명칭들을 논의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명칭들이 부결되고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성모님의 푸른군대"라는 명칭이 마지막으로 만장일치의 가결을 보았다.
   "푸른" 색은 두가지 상징. 즉 성모님과 일상생활의 임무를 나타내고 있다.
   성서에서는 계명준수의 각성제로 푸른 표시를 착용토록 명했었다.(민수기 15, 37-39 참조) . "군대"란 서약을 한 사람들이 사탄의 세력에 대항하여 성모님편에 자신을 위탁함을 상징한다. 이 명칭은 서약자들이 거대한 실질적, 영신적 전쟁에서 싸우고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회원들은 성모님이 친히 약속하신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 파티마에서 약속해 주신(푸른군대 서약서 안에 명시되어 있음) 영신적 무기를 사용하도록 선택된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사도이다.

푸른군대의 기원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의 기원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오묘하게 시작되었다. 미국 뉴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플래인 필드의 성모 마리아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던 해롤드 콜갠 신부가 장례미사를 집전하던 도중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콜갠 신부는 12월 8일 성모상을 침대 곁에 모셔놓고는 "사랑하올 어머니여, 저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저는 앞으로 당신을 위하여 남은 생애를 바치고 봉사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했는데, 그 후 거의 기적적으로 건강이 빨리 회복되었다. 콜갠 신부는 이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어떻게 봉사해야 할지 모르다가 어느날 파티마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전에도 파티마에 대해서 듣기는 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이 메시지가 마음속 깊이 와 닿았고 특히 성모 마리아의 요청을 채워드리면 소련이 회개하고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는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메시지를 깊이 연구한 뒤에 계속해서 본당 신자들에게 이에 대한 강론을 했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 따라 마리아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가오는 주일에 가슴에 성모님을 상징하는 푸른색 리본을 달고 성당에 오고 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치겠다는 서약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다음 주일이 오자 의외로 많은 신자들이 푸른 리본을 달고 서약서를 가지고 성당에 왔는데, 이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제 우리 본당은 푸른군대가 되겠구나"하고 외쳤다 또 본당 교우들은 다른 본당 신자들에게 이 서약서를 전해주어 많은 사람들이 이에 응답하게 되었다. 교구 주교는 이 운동을 칭찮면서 앞으로 더욱더 널리 전파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현재 전세계에서 약 2천만이 넘는 서약서를 파티마로 보내게 되었다.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콜갠 신부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은 이제 무신론 공산주의와 싸우는 총지휘자가 되셨군요. 나는 그런 의미에서 신부님과 모든 푸른군대 회원들에게 교황으로서의 장엄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한편 1946년 미국의 유명한 기자 존 해퍼트는 파티마 성모 발현을 목격한 가르멜 수녀원에 있는 루치아 수녀를 찾아 가게 되었다. 그는 약4시간 동안 다음과 같은 오직 한가지 질문만 했다.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가 회개하고 민족들의 멸망을 막고 세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때 존 해퍼트는 루치아 수녀와 같이 다음과 같은 하나의 서약문을 공식적으로 작성하였다.
   1.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며
   2. 일상 생활에서 오는 어떤 고통도 희생과 보석으로 참아 받으며
   3. 성모 마리아께 제 자신을 봉헌하며 그 봉헌을 실천하기 위해 스카풀라를 착용할 것을 엄숙히 약속하나이다.
존 해퍼트는 그 당시 16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스카풀라의 사도직'이란 잡지의 편집장이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 서약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기 위하여 캠페안을 벌리기 시작했고, 그 해 말경 125만 명의 신자들이 서약서에 서명하게 되었다.
   1948년 존 해퍼트는 콜갠 신부의 본당에서 강론한 다음 콜갠 신부와 손을 잡고 푸른군대 공동 창설자가 되었다.

한국에서의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의 시작

   1953녀 군종 신부인 마태오 스트롬스키 신부가 38선 가까운 일선에서 근무할 때, 그는 푸른군대 사도직을 전파하겠다는 열망을 갖게 되어 파티마 성모상을 요청했다.
   폴란드에서 뉴욕으로 이민해 왔던 마태오의 어머니에게 의사들은 "이 갓난아기는 소아마비로 인해 결국 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어머니는 본당 성모상 앞에 가서 마태오를 안고 성모님께 바치며 "만일 이 아기가 살아난다면 하느님의 유능한 일꾼으로 자라나도록 성모님의 모든 능력을 다 써 주십시어"하고 기도하였다. 마침내 마태오 스트롬스키는 사제가 되어 전쟁 중인 한국에 왔고 전방에 파견 되어 미 해병 제2 사단에 근무하였다. 마태오 신부는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는 한국에 파티마의 성모님과 그의 메시지를 전파해 보겠다는 결심을 갖고 푸른군대 본부에 파티마의 성모상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문산과 판문점 주변에서 전투하고 있는 가톨릭 군인들을 위한 "묵주 9일기도 운동"을 일으키려고 계획하였다.
   마침내 파티마의 실바 주교는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바로 그 장소에서 축성한 순례 성모상을 보내 주었다. 1953년 3월 26일 전국 주교 회의에 초대된 마태오 신부는 파티마 성모상의 순례 운동의 의의와 자신의 세부적인 계획을 보고하였다.
   참석한 주교들은 마태오 신부의 제안에 찬성하고 교구의 전 신자들이 참여할 것을 결의하고 스스로 평화의 투사로서 정식 서명하였다.
   바로 이날 이 시간 판문점에서는 휴전협정 후 전쟁 포로에 대한 교환 협정이 진지하게 논의 되고 있었던 것이다.

파티마 순례 성모상의 긴 여정

   1953년 4월 5일 부활 주일 순례 성모상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막되는 역사적인 날이 왔다. 이 축성식은 판문점 근처 미군 제1 사단 본부 광장에서 교구장이신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거행되었다. 파티마 순례 성모상 축성식 직후 20여 명의 장병들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미사 후에 많은 가톨릭 장병들은 정식으로 푸른군대에 가입하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서약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한국 최초로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는 푸른군대 제1 회원으로 입회하였다. 이와 같은 서약과 함께 파티마 순례 성모상을 최전선의 벙커 안에서 성모님의 사도로 서약한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밤을 세우기도 하였다.
   1953년 4월 19일 파티마 순례 성모상은 마태오 신부의 안내로 역사적인 남한 순례의 긴 여정의 길을 떠났다. 최전방 휴전선을 출발한 파티마 순례 성모상은 서울, 춘천, 부산, 마산 등 피난민이 많이 사는 남한 주요 도시를 다니면서 열렬한 영접을 받았으며, 파티마 순례 성모상을 맞이한 수많은 신자들이 푸른군대 사도가 되기로 서약하게 되었다. 이것은 곧 사랑의 십자군이며 평화를 갈망하는 한국인들의 정성이 표현된 승리의 깃발로써 선구자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푸른군대 운동이 한창 고조되었던 4월 30일, 마태오 스트롬스키 신부의 본국 귀국으로 푸른군대 운동은 계속되지 못하고, 다만 열심한 신자들의 개인 신심에 머물고 말았다. 그런데 성모님의 도우심인지 1953년 7월 26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푸른군대 운동의 새로운 출발

   마태오 신부가 귀국하자 아무도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부산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한 독일인 신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지금의 푸른군대 한국 본부장인 안톤 트라우너, 하 신부이다. 처음에는 그는 신학교 시절에 파티마 메시지를 듣고 감동하여 성모 마리아의 사도가 되고 싶어했고 그래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의 가르침을 따라 성모 마리아에게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 후에 그에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건강이 안 좋아서 신부가 되기가 어려웠기에 신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차츰 건강이 회복되어 학교 선생을 하다가 북한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독일에 돌아와 본당에 강론하러 온 왜관 분도 수도회 선교사 신부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1958년 새로 설립된 한국의 부산 교구로 발령을 받고 부산 교구의 이름으로 독일에서 서품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즉시 한국으로 떠났고 1년 후에 동항 성당 본당 신부를 맡게 되었다. 그는 5년 동안 부산에서 활동하다가 1963년에 고향인 독일을 방문했다.
   그는 푸른군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푸른군대 전국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 회의에서 푸른군대 독일 지도 신부인 후스(Fuhs) 신부와 세쯔 떼겐(국제푸른군대 총무)씨를 만나 푸른군대에 대한 모든 내용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그때 분도 수도원 본원인 성 오틸렌을 방문했을 때 원장 신부님은 "하 신부가 한국에서 오셨군요. 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아프리카로 가는게 낫겠는데요" 하고 말했다. 그는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고, 그 신부는 대답하기를 "한국은 멀지 않아서 중공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하 신부는 "그래요? 그렇다면 난 한국에 빨리 들어가서 파티마의 메시지를 전해야 되겠군요. 왜냐하면 성모님께서 소련이 호개할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했다.
   하 신부는 한국으로 돌아가 푸른군대에 대한 팜플렛을 만들었고, 파티마에서 순례 성모상을 구해와서 1964년 7월부터 순례상을 모시고 여러 본당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푸른군대는 한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파티마 메시지는 한국 전역에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약 15만명의 서약자를 파티마로 보내게 되었고, 전국 각 교구 푸른군대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조직화되어 각 교구에서 지도신부도 임명되고 회장단도 생기게 되었다.

푸른군대의 성격

   파티마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는 전 세계를 통하여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의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요청에 응답하려고 하는 운동이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세 명의 어린 목동들을 통하여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희생하고 기도하고 봉헌하여라" 라고 온 세상을 향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파티마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는 교회 내의 강력한 쇄신 운동이다.

파티마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의 목적

첫째, 가톨릭 교회의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전파와 복음서의 진리를 완전히 따르고 지키는 것,
둘째, 파티마 메시지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구성원 개인이 성화되는 것,
셋째, 파티마 메시지를 널리 전파함으로써 선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들 세 가지 보편적 목적들에 대하여 파티마 세계 사도직은 "푸른군대 서약"을 널리 전파하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다. 또한 거욱함(성화)은 피티마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의 심장이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 회원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조건은 다음 사항을 서약하고 실천을 약속하는 것이다.
첫째,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매일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것.
둘째, 각자가 일상생활의 의무에서 요구되는 희생들과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위해 요구되는 희생들을 매일 봉헌하는 것.
셋째,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봉헌의 표지와 그 봉헌을 늘 상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르멜산 성모의 갈색 스카풀라를 입는 것.
넷째, 특별히 첫토요일 신심을 지키되, 푸른 군대 서약자는 적어도 한 번 티없으신 성모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모든 죄에 대한 배상으로 다섯 달 동안 계속해서 첫토요일에 고해성사, 영성체, 묵주기도 5단, 그리고 성모님과 함께 15분간의 묵주기도 신비묵상을 하도록 권장한다.

파티마 세계 사도직 푸른군대 회원

1. 성모님의 기본적 요청을 따르기로 약속하는 서약서에 서명한 회원들. 이들은 서약의 이행 이상의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서명하여 서약서를 그 지역 본부에 보내어 등록이 되면 그 국가의 본부를 거쳐서 파티마에 송부된다.
   서약자들은 아무런 회비도 내지 않으며 회합을 가져야 할 의무가 없다. 오직 의무가 있다면 서약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것 뿐이다.
2. 서약하지 않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 정신으로 생활하려고 하는 모든 이들.
3. 푸른군대의 첫 번째 목적대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서약서에 서명하고 또 그 서약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는 봉사자 회원들.
   봉사자들은 파티마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파할 개인적 책임을 져야 하고 많은 서약자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며, 서약자들이 서약한 목적에 따라서 살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또한 봉사자들은 그 조직이 성모 마리아의 '피앗'(Fiat,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정신으로 살아있는 조직이 되도록 봉사한다.
   봉사자들은 서약을 약속하는 것 이상으로 파티마 메시지를 전파하도록 힘쓰고 교회의 지도하에 조직화되고 파티마 세계 사도직의 활발한 조직을 통하여 쎌 모임과 평의회를 발전시키고 생활화해야 한다. (한국푸른군대본부) - 마리아 2001년 108호 -

[HOME] Copyright 2000-2003 Agnes L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