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다시 한 번 기도의 힘을 통하여

(피델리스 스퇴클 신부) 필리핀 : 두 번째로 부패한 대통령을 몰아냈다.
 

   부패한 대통령이 기도의 힘으로 15년만에 두 번째로 실각했다. TV로 생중계된 필리핀 상원의 소란스런 의회에서, 여러 명의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고 여러 가지 검은 사건에 연루된 전 영화배우이며 건달이었던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헌법에 의해서는 실각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그가 매수했다고 짐작되는 상원의원들의 과반수가 대통령의 탄핵 소송 과정에서 결국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위한 투표를 한 것이다. 민중은 대통령의 비도덕성을 편들었던 상원에서의 이 투표에 대해 실망했고 동시에 격분했다.

   이에 마닐라 대주교인 씬(Sin)추기경은, 같은 날 저녁 2001년 1월 16일 화요일 밤 11시에 대통령이 사임할 때까지 철야기도를 가지기 위해 평화의 모후 성당으로 신자들을 소집했다. 그는 즉시 그곳으로 가서, 그의 고령과 좋지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자정이 지나 첫 장엄미사를 거행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평화의 모후 성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성당은 1986년 필리핀 국민들이 손에 묵주를 들고 마르코스가 보낸 장갑차들을 멈추게 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었다.

   매일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금요일 저녁에는 그 숫자가 이백만에 달했다. 나 역시 수많은 성직자들, 신학생들, 수도자들, 4000명의 젊은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성 토마스 대학의 많은 학생들과 함께 우리가 사랑하는 로사리오의 모후의 기적의 성상을 들고, 1월 19일 금요일 엣싸(EDSA) 광장까지 행진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기도를 하고 성가를 불렀다. 그 동안 사람들은 계속 목청껏 "에스트라다는 물러가라" "에스트라다는 유죄" 를 외쳤다. 그 분위기는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에스트라다는 비밀리에 무력으로 사람들을 해산하도록 군대에 명령했다. 군대의 헬리콥터가 머리 위에서 날아다녔으나 사람들은 더 크게 외치고 기도를 했다.

   금요일 오후, 우리 주님의 돌아가신 시간에 성지와 같은 엣싸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헬리콥터가 하강했고 10분후, 대부분의 군장성들이 에스트라다를 떠나 민중의 편에 섰다는 아주 놀라운 발표가 있었다. 그 후 군 총사령관이 휘하 장성들과 함께 약 20미터 높이의 커다란 평화의 모후이신 마리아상이 있는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은 대통령에의 충성을 취소했으며 이제 국민의 뜻을 존중할 것을 공표했다.

   이제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이 물러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이 명백했음으로 사람들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었다. 5시에 씬 추기경은 수많은 신자들과 다시 장엄미사를 드렸다. 모두가 성모님의 보호의 망토아래서 하나의 큰 가족처럼 손을 모아 주님의 기도를 드렸고, 특히 평화의 인사는 감동적이었다.

   나는 먹고 마실 것을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육신의 안녕을 돌보셨다. 씬 추기경은 그것을 빵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먹을 작은 빵과 오렌지 쥬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까지 봉투에 담아 왔던 것이다.

   코리 아퀴노, 1986년 첫 로사리오 혁명 때 독재자 마르코스의 자리를 이어 받았던 전 대통령은 장엄미사 후의 짧은 감사 연설에서, 씬 추기경이 1월 초 정세가 희망이 없어 보이던 때 정부 개혁을 위해 계속 노력해 온 또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이러한 말을 했다고 말했다. "당신들은 주님께서 1월 셋째주에 기적을 일이키실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기적은 이루어졌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기도와 당신 어머니의 중재를 제때에 들어 주신다는 것을 다시금 보이셨다. 씬 추기경은 이 기적을 특히 아기 예수께 돌렸다. 왜냐하면 필리핀에서 1월 셋째 주일, 아기 예수의 축일을 위한 9일기도 동안에 두 번째 엣싸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001년 1월 24일자 사목교서에서 씬추기경은 최근에 일어난 필리핀에서의 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어떻게 두 번째 자유의 혁명이 성취되었습니까? 나는 거기에 단 하나의 답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필리핀 주교들이 특별히 로마에 청한 마리아의 성년인 1985년은 회심과 헌신과 속죄의 해였고, 그 다음 해인 1986년에는 로사리오 혁명이 일어났다. 완전한 은총의 해인 위대한 2000년 대희년은 2001년의 두 번째 로사리오 혁명을 준비했다. 필리핀에서 마르코스가 실각한 날인 1986년 2월 25일은 우리의 사랑하는 모후께서 로사리오를 통해 승리한 축일이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은 엣싸 2001년을 아기예수가 승리한 날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승리의 혁명이 1월 21일 아기예수의 축일에 끝났기 때문이다. 엣싸성당에는 또한 프라그의 아기예수상이 세워질 것인데, 그 상은 체코의 하벨 대통령과 비크 추기경이 그들의 방문 선물로써 가져와 필리핀과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의 혁명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증정한 것이다. 우리 필리핀 사람들은 하느님의 어머니와 그분의 아드님 덕분으로 이 두 번의 은총을 입었음이 명백하다.

   이 두 번의 자유의 혁명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가 기도와 참회로써 하느님께로 회심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 인간의 품위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나라를 고쳐 주신다. 깊은 신뢰의 기도는 더욱 강력한 무기이다. 단식과 희생은 더욱 효과적인 전략이다. 철야기도를 하는 민중의 조용한 힘은 더욱 강한 군사력이다. 참으로 우리가 주님께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그분께 맡긴다면 그분의 대답은 지체함이 없을 것이다.(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산도밍고의 스위츠랜드 잡지에서)- 마리아 2001년 110호(11~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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