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있어서 산만함과 무미건조함
성녀 아빌라의 대 데레사는 뛰어난 기도의 스승이었다. 기도와 갈멜수도원의 개혁은 성녀가 교회에 남겨준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성녀가 쓴 "완덕의 길" 속에는 구송기도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 있다. 성녀는 그 책에서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있고 무엇을 읽고 있는지에 대해 의식하는 것, 우리가 말하고 있는 하느님께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우리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기도를 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중얼거릴 뿐이다.
이것은 특히 기도의 실천에 있어 잠심의 습관을 아직 기르지 못한 초심자에게는 어려운 도전이 된다. 성녀는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야생마와 같다고 말한다. 그들은 얼마간의 시간도 어떤 것에 마음을 고정시킬 수 없다. 영성작가들은 이 문제를 "기도에 있어서의 어려움들" 이란 제목으로 다룬다. 그리고 그들은 두 가지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즉 산만함과 무미건조함이다.
산만함은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 두 가지가 있다. 각각의 경우가 모든 기도에 장애가 되고 마음으로부터 기도에 필요한 집중을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고정된 한 가지에 우리의 주의력을 계속 집중시키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오랜시간 동안 그렇게 할 수 없다. 1초 동안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해도 마음은 방황한다. 더구나 집중력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각 사람의 기질과 노력에 따라 다르다.
만일 비자발적인 산만함이 외부의 감각중 하나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다해도 자기가 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는 여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시끄러운 외부 환경 속에서 공부하거나 명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반면, 우리가 자발적으로 자기 마음을 산만케 한다면 이전의 목적에 대한 주의력은 완전히 무너진다. 이것은 어떤 학생이 학교 수업시간 동안 백일몽르 꿈꾸기 시작하는 경우일 것이다. 걷는 것, 먹는 것, 다림질하는 것,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손으로 하는 작업들과 같은 그런 활동들에 있어서는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도 있고 그 작업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고도의 기능이 수반되어져야 할 때만이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떻게 산만함을 막거나 없앨 수 있는가?
우선 우리는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를 택해야 한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둘째로, 모든 다른 생각들과 근심들, 하느님께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앞서 전심했던 것들은 모두 옆으로 제쳐두고 잠심상태에서 기도에 접근해야 한다. 기도를 하기 위한 먼 준비로써 침묵과 잠심의 상태를 길러야 하고 감각들을 잘 관리하며 삶의 자리에서 의무에 충실하고 극도의 자기 만족과 나태함을 피해야 한다.
기도의 실천에 있어 메마름과 무미건조는 기도에 요구되는 꼭 필요한 지능적이고 감정적인 활동들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데에서 생긴다. 그것이 치유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기도를 할 때 실제로 일어나는 싫증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그것은 여러 등급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그것이 기도의 높은 단계에서 발행할 때에는 마치 하느님이 그 영혼을 포기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산만한 묵상과 같은 기도의 낮은 단계에서는 그 개인에게 기도의 더 높은 단계로 이동할 때라는 표지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무미건조함을 경험할 때 우리는 아주 겸손되이 스스로에게 메마름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원인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좋지 않은 건강, 육체적 피로, 지나친 활동, 하느님 일에 미지근함,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경미한 죄, 호색의 악덕 등등... 어쨌든 그것은 섬세하고 정직한 양심의 고찰을 요구한다.
다른 한편, 만일 나태함이 하느님의 정화 또는 수동적 밤으로 들어가는 표시일 수도 있다. 이때는 그런 괴로움을 당하는 그 사람에게 유능한 영성 지도자로부터의 지도가 필요한 시기이다.
우리는 성인들의 삶에서 이 시련의 많은 순간들을 발견한다. -마리아 2000년 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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