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아미 ; 질의응답 2
화이트 아미(하얀군대)의 창립자인 안드레아 아스카니오 신부와
메히틸드 수녀의 대담 내용을 지난호에 이어 싣습니다.ㅇ 3살, 4살, 5살 된 어린이들이 신앙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어린이드레게 지나친 요구가 아닐까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하지요. 어느 성모 축일에 한 성당에서 강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약 열다섯 명의 어린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상대로 말하는 대신에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내 말을 이해했고 어른들 또한 내 말을 잘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 각자에게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유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께 ‘예’ 라고 대답하면 여러분은 그분 손의 연장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은 여러분을 가지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만듭니다. 여러분 이해합니까?"
“예! 예!” “좋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이 여러분께 주실 모든 괴로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겠습니까?” “예”
본당 신부와 점심 식사를 할 때 나는 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그는 나를 들볶았습니다. ‘좋다, 초대받는 곳에서만 얘기하겠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조금 낙심해서 그는 성당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홉 살 짜리 사내 아이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이기노,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니?” “제가 오늘 진심으로 ‘예’라고 대답했다는 것을 말하려구요 그리고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나는 내 심중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은 한 아이가 울면서 나를 찾아왔습니다. “안드레아 신부님, 어제 저녁 집에 갔을 때 우리 집 강아지가 내가 전화하는 동안 집을 나갔어요” 개는 그 아이에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니?” “나는 ‘예’ 주님, 그 개를 당신께 드리겠어요. 세상의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주님께 그 개를 드리겠어요. 하지만 예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요!‘ 라고 말했어요”ㅇ 하지만 아이들이 진실로 ‘예’라고 대답합니까? 그 나이의 아이들이 스스로 진정한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해 주는 대신 그냥 따라하는 것이 아닐까요?
=> 처음에는 아이들이 ‘예’라는 대답을 공동으로 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그들에게 이 결정을 증명할 것을 정식으로 요구합니다. 나는 언제나 똑같은 경험을 합니다. “하느님께 진심으로 자신을 봉헌하려는 사람은 성모상께 꽃을 드리고 ‘어머니, 저는 어머니께 저를 드립니다.’라며 큰 소리로 말하세요”라고 요구하고는 아이들을 지켜봅니다. 그러면 어떤 아이들은 한 걸음 물러서고 어떤 아이들은 한 걸음 다가갑니다. 뒤로 물러서는 아이들은 대개 꽃을 던져 버리거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꽃을 드리고 크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께 저를 드립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도 나는 똑같이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순서로 앞으로 나가서 하느님의 어머니께 입맞추고 “어머니, 어머니께 저를 드립니다.” 라고 말하도록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자신을 봉헌하지 않는 아이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너는 그 말을 하고싶지 않은 거니, 아니면 말할 수가 없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는 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를 위해다른 아이가 해야 할까?” “나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너는 다른 말은 아주 쉽게 잘 하잖니?” “아니, 난 할 수 없어요!” 그 아이 옆에 있던 세 살 짜리 여자 아이는 하느님의 어머니께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안드레아 신부님, 어제 태어난 제 여동생을 위해 봉헌해도 되나요?” “물론이지.” “어머니, 나는 어머니께 어제 태어난 내 여동생을 위해 나 자신을 봉헌합니다.”
비신자이지만 내 어릴 적 친구인 교사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너무 어려! 너는 그 아이들이 우리들이 그들에게 말해 주는 것을 단순히 그냥 따라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한 아이가 봉헌서약을 하지 않을 때 나는 그 친구에게 요구했습니다.
“지금 저 아이에게 가서 이문장을 따라 하거나 아니면 그냥 ‘예’라고만이라도 대답하도록 말해보렴.” 그래서 그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더군요. “너는 그 말을 하지 않겠니?” 하고 묻자 아이는 “하지 않을래요” 라고 냉정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구석에 서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알게 됐지요. “믿을 수가 없군. 세살 짜리가 네가 설명하는 것을 그렇게 깊이 깨닫고 있다니! 이 아이는 신앙이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나쁜 말만 집에서 들었구만.”ㅇ 신부님은 아이들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나는 많은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아이들이 악마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4살, 5살 짜리 아이들이 악마의 유혹을 너무나 심하게 겪고 있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에게 보내집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TV에서 보는 영화들을,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많은 장난감과 인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의 모든 것이 지나친 근육질의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을 한 것들입니다. 죽음의 신, 원숭이, 개, 쥐... 그런 것들은 동물의 잔인성을 부추깁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전쟁 상황입니다. 이런 것들을 나는 오랫동안 주시해왔습니다.
내가 교리를 가르칠 때 자주 소동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한 아이가 그런 인형을 손에 들고 있을 때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예수님을 사랑하니?” 그 얘는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예, 하지만 이것도 사랑해요(손에 들고 있는 괴물을 가리키면서).” 그 아이는 더 이상 ‘결단’을 내리는 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냉담을 가르쳐 주는 작은 친구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빛과 어둠 사이에 내려야 할 결단입니다. 사탄이 득세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그들의 마음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세 살, 네 살 된 아이들에게 첫영성체를 줍니다. 그 나이의 아아들은 아주 정확히 이해합니다. 학교에 그러한 ‘괴물 장난감’을 가져 와서 온 교실에 소란을 피운 세 살 짜리 아이가 있었습니다. 내가 성체를 들고 다가가자 그 아이는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리 가, 저리 가, 나는 예수 싫어!” 그때 나는 조용히 대천사 성미카엘에게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를 안고 있던 아버지가 아이를 바닥에 내려 놓자 그 얘는 내게 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기 아버지 품에 안겨 5분 후 다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구마 행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일주일 후에 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아이를 성찬식에 참례시킨 그 다음 일요일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훨씬 수그러졌습니다. 세 번째 성찬식 다음 월요일에 놀랄 만한 일이 일어았습니다. 그 부모가 로마에서 내게 전화를 했습니다. “안드레아 신부님, 어제 식사 중에 우리 애가 갑자기 일어나 자기 방에 가더니 모든 장난감들을 가지고 나와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어요. 그리고 돌아와 말하기를, 다시는 TV를 보지 않겠대요!” 그때까지 아이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다녔고 잠을 자지 못했으며 그 엄마는 그 아이때문에2년 동안 성당에 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사랑스럽고 원만한 아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수많은 아이들이 변화게 되고 그런 장난감에 집착하게 됩니다.
장난감은 판매되기 전부터 이미 “쌓여”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 해도 없을 것 같은 바비 인형을 봅시다. 그 인형의 다리는 정상보다 1/3쯤 길고 가슴은 지나치게 크며 손은 지나치게 작고 목은 정상보다 세 배는 깁니다. 거기에다 긴 머리에 푸른 눈... 이 모든 것이 비현실의 전형이며 존재하지 않는 미의 전형입니다. 이 바비 인형을 품에 안고 옷을 입히고 벗기며 놀던 아이는 거울을 보고 소리칩니다. “나는 바비와 너무 달라. 좀더 말라야 해. 나는 더 이상 먹으면 안돼.” 정신과 의사들은 거식증의 주된 책임을 장난감 바비 인형에게 돌립니다.ㅇ 그러나 선교활동에 따라 아이들이 예전의 환경에 다시금 맡겨지게 되면 모든 문제는 사라집니까? 그리고 이 선교활동은 그 노선을 계속 진행합니까?
=> 성 비오 신부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의 보금자리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일은 어른들이 어떻게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기도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묵주기도를 합니다. 하느님은 아이들의 긍정적인 응답을 전적으로 수용하십니다. 또한 아이들이 하느님을 외면할 때는 이 응답이 다시 한 번 예기치 않던 효과를 낼 것입니다.ㅇ 신부님은 파티마의 정신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려는 부모들에게 어떤 충고를 하시겠습니까?
=>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자신입니다. 어린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행하는지 아니면 단지 말뿐인지를 아주 정확히 느끼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엄마와 아빠가 “진심으로” 하느님을 믿고 기도하고 희생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느낍니다. 가정에서 매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쳐야 하고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서 삶의 원동력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숨결이 가정에 내리고 그 안에서 아이들의 영혼은 자라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ㅇ 신부님은 아퀼라에 낙태된 태아들의 비를 세우셨지요? 왜 그러셨습니까?
=> 낙태가 살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통계를 볼 때 10억의 태아가 지난 15년 동안 살해되었습니다. 이것은 지옥의 승리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십니다! 이 아기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베들레헴의 어린이들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것처럼 아버지의 길을 준비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안에서 죽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리고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분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루가 23,34). 그러므로 그들, 우리 시대의 죄없는 순교자인 그 아기들은 위대한 구원자들입니다. - 마리아 2002년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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