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그라우)
참사랑은 기다린다
"참사랑은 기다린다" 는 서약의 의미
"참사랑은 기다린다" 는 일종의 생활방식이며 동시에 운동이다. 이것은 모든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다룬 것이다. "사랑" 과 "기다린다" 는 것은 과연 어울리는 주제일까? 물론 그렇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요즈음 더욱 잘 어울리는 주제이다.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하느님 앞에서 오늘부터 저 ㅇㅇㅇ 는 제 자신과 가정, 저의 친구들과 장래의 혼인 대상자에게 맹세하는 바 결혼하는 그날까지 혼전순결을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제 자신과 가정, 저의 친구들과 장래의 혼인 대상자에게 맹세하는 바," 이 말은 윤리적, 도덕적,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고수하고자 하는 자신의 입장을 모두에게 밝히며 모범이 되고자 하는 결심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제 자신과" 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적인 결정이라는 말이다. 즉 그것이 자신의 길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속합니다." 는 말을 "하려 한다" 또는 "하고 싶다" 라는 표현으로 대체시킬 수는없는가?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순간적인 감정상태만 묘사할 뿐 자신의 감정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얘기할 때에, 즉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이 길을 가겠다는 결심이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신의 생애를 위해 이러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이지 우연히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게 될 때까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오늘부터" 라고 한 것은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결정적인 것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아니고 장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새로 시작할 기회가 있듯이 우리 자시에게도 새로 출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라는 말은 우리가 혼자 힘으로 노력하고 애쓰더라도 언젠가는 좌절될 가능성은 늘 존재하기 때문에 우선 우리는 어떤한 경우라도 혼자 힘으로는 시도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또 하느님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라고 약속하면서 모든 것의 시작은 하느님이요 그 끝도 하느님이심을 인정하고,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것이며 그분 앞에 서 있어야 제대로 고백하고 약속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결혼하는 그 날까지 혼전순결을 지키기로" 라는 말은 우리의 고백과 약속의 핵심이다. 이 말로써 그는 결혼할 때까지 성적인 금욕을 지킬 것을 증거하고 약속하는 것이다.설득력 있는 성서내용
사상들이 자주 단기간에 변화할 때에는 인류 역사의 모든 세대에 걸쳐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는 것이 상책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얻는다. 혼전순결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성서는 끝까지 침묵하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혼전의 성관계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내용이 도대체 성서의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몇몇 생활담을 살펴보면 이 영역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다.야곱(창세기 29장) 이야기
이 이야기는 혼인을 한 뒤에야 성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다.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은 순간적인 감정이 어니었다. 그는 라헬을 부인으로 맞이하기 위해 7년, 그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14년 동안이나 일을 했을 정도로 라헬을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변덕스럽지 않았고 정결했다. 야곱은 자신의 미래의 부인과 아주 가까이 살았지만 부부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참사랑은 기다리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혼인식이 끝난 후에야 "야곱은 그와 한 자리에 들었다" (창세 29, 23).성서는 또 다른 예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있다. 그 청년은 요셉이었다.
요셉(창세기 39장) 이야기
요셉에 관한 흥미로운 설화에서 그의 형제들은 그를 노예로 외국에 팔아 넘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요셉은 충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다. 창세기 39장 7절에서 우리는 주인의 아내가 갑자기 그에게 눈길을 보내더니 그를 유혹하려고 매일 같이 그를 몹시 졸라대는 것을 읽는다. 이런 경우 어떤 사람들은 아무도 '나의 가족은 멀리 있고,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르니 좋은 기회야'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양심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깨어 있었고, 그는 하느님의 계획에 의하면 성관계는 부부생활을 위해 간직해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뻔뻔스러운 부인에게 아주 분명히 대답했다. "이렇게 엄청난 짓을 제가 어떻게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느님께 죄가 됩니다" (창세 39, 9). 비록 하느님께 대한 이 충실한 행동이 당장에는 외적인 불이익을 가져오고 또 그 일에 대해 거짓된 뒷얘기를 듣는다 할지라도 그는 죄를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께 복종하는 길을 택했다.신약성서에서
그렇다면 신약성서에서는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가?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신약성서의 바로 첫 부분에서 젊은 한 쌍의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데 그들은 바로 마리아와 요셉이다.
마리아와 요셉(마태오 1장 18~19)
마리아와 요셉이 약혼 중일 때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잉태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약혼자 요셉은 신앙심이 깊었고 또 그렇기때문에 그녀가 수치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몰래 그녀를 떠나려고 생각했다. 그 두 사람의 결혼식은 그래서 아직 치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단계에서 서로 성교를 갖는 것은 불륜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리아는 자신이 잉태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루가 1, 34)
그 두 사람은 성서적인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 설교에서 보다 더 깊이 혼전순결에 대한 이해를 도와 주신다.산상설교(마태오 5장)
산상설교를 시작하실 때 그분은 당신이 구약의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마태 5,17~20). 이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문자화된 하느님의 말씀에 다시금 최상의 권위를 부여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해석하는 데 만족하고 그 속에 들어있는 정신은 무시해버리는 데 능숙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율법의 근원과 그 뜻을 다루신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 5장 27절과 28절에서도 " '간음하지 말라' 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법규를 절대로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복음은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성을 용서를 통해 의식하게 하고, 새로운 인간의 생활방식을 묘사해 주고 있다. 하느님의 법은 외적인 형식 속에서 유지될 뿐만 아니라 생각과 소망과 통찰력 속에 채워져야 한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하느님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한 것이다.결론
"참사랑은 기다린다" 는 서약을 몇 살 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현시대의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교적인 가치관을 제대로 살고 실천하고자 하는 결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서약에서 말해 주듯 하느님의 은총이 도울 것이라고 믿는다. - 마리아 2002년 1~2월 1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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