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참 사랑은 기다린다 ; 순결을 지킨다는 것

(니콜 타일러)

"참 사랑은 기다린다" 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특히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이 실천하고 전파해야 하는
우리 시대를 위한 긴급한 요청입니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에서 전개하는 이 생명 운동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니콜 타일러(Nicole Taylor)가 소녀시절에 했던 낙태와
그 상처에서 치유되기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에 관한 그녀의 고백이다.
그녀는 열심하지 못한 가톨릭 집안 출신으로서, 스물 다섯 살에 이르도록
“순결에의 유혹”(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서는 아무런 가르침도 받지 못했었다.

   “나는 열심하지 않은 신자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신앙적으로 키우지 않았다. 나의 가족은 규칙적으로 성당에 가지도 않았고 함께 모여 기도하지도 않았다. 나는 결국 남자들과 아주 좋지 못한 관계를 가졌고 이미 열다섯 살 때 낙태 시술을 받아야 했다. 그후 여러 해 동안 그것에 대한 고통과 그에 따른 상실감, 수치심, 자기비하, 불신과 같은 느낌들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점을 하나 찾는다면,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를, 그리고 그분의 끝없는 은총과 용서를 구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 없이는 오늘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이 세상에서의 순례에는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와 죄애 대한 우리의 승리만이 문제가 된다. 이것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과 은총을 체험한다.
   나는 사랑과 성을 같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열다섯 살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신성한 결혼, 즉 혼인성사 안에서의 성적 결합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우리 집에서는 순결과 정절이 미덕으로 생각되기는 했지만 성에 대한 계율과 금지는 전혀 화제가 되지 않았다. 금욕은 암암리에 전제되었지만 확고하게 주장되지는 않았다.
   남자 친구와 나는 전형적인 캠퍼스 커플이었고 우리의 “관계”가 정확히 말하면 낙태로써 우리의 “성관계”가 끝날 때까지 여러 해 동안 우리는 함께 다녔다. 우리는 그렇게 철이 없었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제에게도 낙태에 대한 어떤 분명한 말이나, 순결에 대한 어떠한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침묵은 낙태에 대한 동의를 암시했고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미사에 참석했고 성체를 영했다. 그렇게 나는 영원한 죽음의 대죄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극도의 불안 속에서 나는 낙태를 경험했다.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오로지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없었다.궁지에 몰린 나는 학교에서 운동을 비롯한 다른 활동들에 열시히 몰두했다. 나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학생이었고 훌륭한 운동 선수였다. 그런데 이 아기가 내 인생을 망친 것 같았다. 그것은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내 앞에는 미래가 있었다. 그것도 눈부신 미래가! 나는 공부하고 싶었고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대안책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이 세상의 날조된 허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원하지 않는 임신이 없어야 사회의 불행이 사라진다. 그것은 단지 “세포 덩어리”일 뿐이며 실제로는 “아기”가 아니다. 그것은 간단하게 없앨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내게 도움이 된다. 한 생명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우리가 이 아이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내가 “세포덩어리”를 “없애면” 남자 친구가 내 곁에 계속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자신들의 대처방법을 정당화하려고 이 거짓말 속으로 도망가고 있는가? 그리고 “남자”는 곁에 남아 있지도 않았다.
   남자 친구와 나는 낙태에 대해 별로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알아서” 결정하도록 했다. 어쩌면 그는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거나 아니면 어떤 비난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져야 했었다.
   낙태 시술 병원 앞에서 낙태 반대를 외치며 싸우는 기도자들 중 그 누구라도 만났더라면 아마도 내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12~16주 동안 임신해 있었다. 그 병원은 학교 근처에 있었다. 얼마나 실제적인가? 악마는 언제나 약한 자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아 낸다. 사람들은 어떤 위험도 내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죽을 위험이나, 유방암 혹은 자궁암에 걸릴 위험에 대해서도 불임, 출혈, 통증에 대해서,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올 정서적, 심리적 영향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나는 어떤 의사가 내 아이를 낙태시켰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어디에도 그의 가격증이나 면허증은 걸려 있지 않았다. 그 “과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수술 도구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오장육부가 다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중에 아무런 합병증도 발생하지 않은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른 많은 여자들이 모두 다 그렇게 괜찮지는 않기 때문이다. 감염 가능성을 막기 위해 나는 일주일 동안 항상제를 복용했다. 모든 것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추후검사는 없었다. 시술에 대한 대가를 받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후 나는 그 모든 것을 의식에서 떨쳐버리고 안도를 느꼈다. 그 일은 토요일에 있었다. 바로 그날 저녁 나는 무도회에 갔다. 어쨌든 나는 방금 내가 행했던 것을 모르는 듯 내내 그날 저녁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낙태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러울 테니까 나는 내 기분을 억눌렀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피했고 아주 깊이 묻어 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집안에만 틀어 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슬프고 우울하기만 했다. 그리고 자살의 가능성을 저울질하기도 했다. 나는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안고 다녔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는 끝나 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순결을 잃었고 나의 존엄성을 잃었으며, 아기를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어린나이에 그토록 많은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치유 과정은 오래 걸렸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대학에서 사회복지 상담을 공부했다. 그때 ‘낙태와의 관계를 끊고 올바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하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나는 진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느님은 우리의 치유 과정에서 우리가 견뎌낼 수 있도록 우리 옆에 계시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만큼 멀리까지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나는 체험했다.
   대학에서 나는, 후에 나의 남편이 된 한 청년을 만났다. 우리는 1984년 결혼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약혼 기간 동안 성관계를 가졌고 임신을 피하기 위해 피임도구를 사용했다.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는가? 게다가 우리는 혼전 동거를 했다. 얼마나 많은 교회의 가르침을 무시했는가? 우리의 결혼 생활은 ·1990년 이혼으로 끝이 났고 나중에 무효가 선언됐다.
   이혼이 진행되는 동안 낙태에 대한 생각이 다시 나를 따라다녔다. 그때까지 그 일에 대해 터 놓고 치유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극소수의 친구들에게만 이 어두운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낙태에 관한 많은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사람들이 그것을 비밀로 하려 한다는 점이고 바로 그 점이 그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악마는 이중 잣대의 도덕으로 일하면서 우리가 어떤 사실을 비밀로 하려든다는 점을 이용한다. 사탄은 진리의 밝은 빛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 역시 자신이 어둠 속에 살고 있으면 진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나의 어머니는 신심단체에 참석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하느님을 만났고 자주 미사에 참석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예수님을 알고 받아들이도록 기도모임과 치유 미사에 나갔다. 그리고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성서를 읽은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 치유 과정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나의 아기를 “피터”로 이름짓고 그를 하느님 손에 맡기고 용서를 구했다. 또한 피터에게도 용서를 구했다. 나는 이 기도를 하면서 몹시 울었다. 그러나 고해를 통해 치유 받을 수 있었으며 자유로워졌다. 주님의 용서를 받은 후 나는 “나 자신”을 용서했다. 그 일은 참으로 가장 어려웠던 일이고 여러 해가 걸린 일이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난 다음 잘못을 깨닫고 가슴치며 뉘우쳤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젊어서 잘못한 일로 우리는 수모를 받았습니다.” (예레 31,18~19). “내가 분명히 말해둔다. 그 마음에 법을 새겨 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 (예레 31,33~34). 이것이 하느님의 놀라운 용서이다!
   젊은이와 그리고 미혼남녀들에게 나는 충고하고 싶다. 순결을 지키고 자신의 성소를 알기 위해, 그리고 만약 결혼 성소를 받는다면 신심 깊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낙태의 결과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마리아 2002년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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