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노크의 성모 발현

 

   복되신 동정녀를 직접 가까이에서 본 열네 사람은 모두 동정녀께서 흰 옷을 입었으며 머리에는 크고 번쩍이는 관을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동정녀의 두 손은 마치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위로 합장하고 있었으며, 두 눈은 하늘을 향해 치켜뜨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편에는 성 요셉이 서 있었다. 그의 머리는 마치 존경의 표시인양 복되신 동정녀 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재색 수염과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고 있었고 다소 나이가 든 사람처럼 보였다. 성모 마리아의 왼편에는 주교의 복장을 하고 있는 요한 사도가 서 있었는데, 그의 왼손은 책을 들고 있었으며, 오른손은 마치 강론이라도 하고 있는 양 올리고 있었다. 요한 사도의 왼편에는 제대가 있었으며 제대 위에는 십자가와 어린양이 있었다. 한 목격자는 천사들의 날개가 그 제대 위를 맴돌고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형상들은 성당 문간의 벽에서 약간 밖으로, 그리고 지상에 1, 2척 위에 보였다. 성당 문간은 온통 빛으로 덮였다.
   그 날 밤의 발현은 약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발현한 형상들과 그들이 서 있는 지상에는 빗방울이 조금도 닿지 않았다.

14세의 소년인 패트릭 힐은 그 날의 목격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타난 형상들은 모두 살아 있는 사람처럼 몸과 목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가까이 가면 문간 쪽으로 뒷걸음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분별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만한 키에 흰 부인복을 입은 성모님의 손은 기도하는 자세로 합장을 한 채 어깨 높이만큼 오려 있었으며 약간 얼굴 쪽으로 굽혀 있었다. 두 눈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번쩍이는 왕관을 쓰고 있었고 그 왕관의 앞쪽에는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가 달려 있었다. 왕관의 윗부분에는 한 무더기의 섬광과도 같고 반짝반짝하는 십자가와도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나는 그 눈과 눈동자와 홍채까지도 낱낱이 보았다. 나는 성모님의 손과 발도 보았다. 소맷자락은 손목끝에까지 닿아 있었다. 오른발은 약간 앞으로 내딛고 있어서 발목까지 보였다.

때때로 성모님과 그 외의 형상들은 혹은 앞으로 혹은 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 가까이까지 가 보았다. 한 할머니가 앞으로 나가면서 동정녀의 발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손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들이 뒷걸음을 쳤다고 말했다."
   패트릭은 또 말하기를 자기는 요한 사도의 앞으로 얼마나 바짝 다가갔던지 "나는 그가 들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 책 위에 쓰여진 글씨도 모두 읽을 수 었었다." 라고 말한다.
   마리아 맥로그린은 본당 신부인 바르톨로메오 카바나 부주교에게 달려가 자기들이 본 형상에 대해서 말했다. 부주교는 맥로그린이 그 형상은 이미 없어졌다고 말하는 줄로 알고 나가 보지 않았다. 그는 후에 "나는 그 때 나가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아니 일생동안 후회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의 복되신 어머니의 발현을 신부가 아닌 순박한 신도들의 입으로 증언하기를 바라셨는지 모른다." 고 말했다.

성모 마리아의 무언의 계시는?

   그러면 성모님의 노크에 발현하신 참뜻은 무엇일까? 파리와 라살레트 그리고 루르드에 발현하셨을 때 성모님은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지금 현재까지 기록으로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노크에서는 단 한마디 말도 하시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히 어떤 중대한 목적을 가지고 오신 것만은 사실이다.

당신의 유럽을 돌아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느님을 모르는 체 외면하고 있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같은 천주교 국가에서까지 사람들은 하느님 대신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숭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사람들은 3세기 반에 걸친 혹심한 박해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에 충실했다. 미사 성제의 봉헌도 물론 불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사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복되신 어머니께 대한 신심도 굳게 간직했다. 매일 밤 아일랜드 섬의 수많은 오막살이집에서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때묻은 마루 위에 꿇어앉아 열심히 묵주의 기도를 바쳤다.
   이와 같은 일을 생각해 볼 때 성모 마리아가 아일랜드에 발현하신 뜻은 시련 속에 살면서도 신앙을 굳게 지킨 이 국민에게 보상과 위로를 주기 위하심이었던 것 같다. 노크의 성모님은 왕관을 쓰고 계셨다. 노크의 사람들은 이 왕관을 성모님이 천국의 여왕, 아일랜드의 여왕 그리고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알라트 로얀느 신부는 노크의 발현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성모님은 라살레트와 루르드에서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신앙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던 여러 가지 죄악에 대해 불평과 꾸중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노크의 성모님의 사명은 그러한 불평이나 꾸중이나 회개하라는 권고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충실한 아일랜드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위로였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위험과 그에 따르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한 무언의 권고였다."

성모 마리아와 같이 발현한 두 성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성모님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던 분들이다. 성 요셉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부터 성모님을 돌봐 왔으며 성탄 후에도 오랫동안 성모님과 예수님을 지켜 보았다.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는 가장 모범적인 아버지요, 남편이었다. 그는 또한 공교회의 주보다. 발현 당시 그는 존경하는 모습으로 성모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가정과 공교회를 대표해서 그와 같은 존경을 하늘의 여왕에게 표시한 듯하다.
성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줄곧 성모님의 보호자였다. 그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상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순간 성모님을 부축하면서 같이 그 밑에 서 있던 분이다. "보라, 너의 어머니." 를 하고 십자가 위에서 꺼져 가는 목소리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도 바로 요한 사도였다. 그 날 그는 우리 모두의 대표자였다.
   성 요한 사도가 같이 발현한 것은 성모님이 우리의 영신적 어머니이심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 날 밤 그의 역할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주교의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미사 경본을 읽고 있었다. 그는 제물인 어린양이 올려져 있는 제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성모님의 사제였다. 예수 부활 후 그는 성모님을 위해서 갈바리아 산의 희생을 새롭게 하며 예수님을 제대 위에 왕림하시게 하는 미사 성제를 올렸다. 그의 묵시록을 보면 그는 스물일곱 번이나 예수님을 어린양이라 부른다.

   사실상 모든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노크의 발현의 핵심적인 특징은 미사라는 점에 동의한다. 성모님 자신도 이 점을 암시하는 것같다. 그곳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기적은 미사 중에 일어났다. 루르드에서는 성체 성사가, 그리고 노크에서는 미사 성제가 중점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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