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술(技術)과 사회변동과의 관계
: 여기서의 기술이란 단순히 자연과학적 기술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과학기술, 즉 사회나 조직관리에 관한 기술 등도 포함되는 넓은 의미의 기술(technology)을 말한다.
테크놀로지는 어떤 방식으로 변동을 낳는가?
1)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선택가능성을 증대시킨다. : 기술적 혁신은 한 사회가 보다 커다란 범위의 대안들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
2) 상호작용 유형들의 변경을 통해서
예) 자동차 제조공장의 자동화
: 상호작용의 유형과 빈도에 영향
예) 보험회사들의 컴퓨터 도입
조직에 있어서 자동화난 컴퓨터 자동조절화가 상호작용 유형에 대해 가지는 결과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증가시키고 인간간의 상호작용을 감소시킨다.
생산공정에서의 자동화 기술의 등장으로 작업공간이 확대되며 공동작업의 필요성이 줄어듦 : 개인의 고립화 현상 초래
3) 기술적 발전들이 새로운 사회문제들을 창출하는 경향
산업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존의 문제를 해결, 그런데 환경오염이라는 문제를 가져옴
2. 기술의 영향을 살펴보는 방식
1) 특정한 변화에 한정하여 그 변화의 원인이 되는 기술변화를 추적하여 보는 방식
예) 현대가정 : 친척간의 유대감의 붕괴
: 지역간 이동이 친척간의 심리적, 사회문화적 분리현상을 낳는다.
: 지역간의 이동은 운송수단의 발달( 증기기관의 발명 등)의 결과이다.
2) 특정한 기술변화의 결과를 살핀다.
예 ) TV의 등장: 사회의 구성원들은 집안에서도 오락물을 즐길 수 있게 됨으로써 사회의 고립화 현상을 가져왔다.
3. 현대사회의 변동이 갖는 특징
1) 어떠한 특정 사회나 문화에 있어서나 급격한 변동이 빈번하게 혹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2) 사회변동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고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즉 현대의 위기는 평온한 재편성기 직후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잇달아 일어난 연쇄적 진행 현상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체 영역, 혹은 실질적으로 전세계에 파급된다.
3) 현재의 사회변동은 어는 곳에서난 발견될 수 있고 어느 부분에 대해서나 중대한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이중적인 기반을 갖고 있다.
4) 미리 계획된 변동이거나 혹은 신중하게 고려된 개혁의 이차적 결과이거나를 막론하고 현대사회에 있어서 그 변동의 폭은 지난 어느 시대에 있어서 보다 크다.
5) 몇 가지 진행과정이 상대적으로 급속하게 퇴화되는 데도 불구하고 특질적 기술의 영향과 사회 전략의 영향은 그 범위가 급속히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또 그 순효과가 부가되고 누적되어 가고 있다.
6) 변동의 정상적인 발생은 보다 광범하게 개인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현존하는 여러 사회의 기능적 측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사회가 모든 점에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고 어떠한 인간생활도 변화에 대한 기대, 혹은 그 정상성(nomality)에서 면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 속에서도 불변하는 요소가 있으며 변화 그 자체 속에서도 질서를 찾을 수 있다: 변동의 법칙
왜 특정한 변동이 일어나며 그 변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설명하여야 할 것. : 변동이론
<기술결정론적 이해>
기존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는 소위 기술결정론적 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과학기술은 창조적 천재의 개인적 업적에 의해 발현되고 그 결과 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변 화하게 된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증기동력기를 발명한 와트슨이나 에디슨이라는 개인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는 오늘날 대량생산이나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그들의 발명에 의해 현대사회는 형성된 것인가?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사과가 떨어짐을 보고 뉴턴이 우연히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식의 논리로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에는 개인의 능력이나 우연성보다는 사회의 환경적 요소가 그러한 발전을 유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위 기술결정론적 주장에 대칭되는 사회결정론적 관점Social shaping of Technology이 바로 이러한 주장이다. 사회결정론적 관점에 의하면 과학기술의 진보는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 된다. 바꿔 말하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 ]로서 사회의 수요에 의해 과학 기술은 진보한다. 사라 장의 예로 보면 그의 재능이 타고났다는 부분도 있으나 사회적 환경 및 교육이 그를 천재적 연주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업내의 기술개발만 보더라도 조셉 슘페터에 의해 대표되는 기술경제학적 관점에서는 기술개발이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의 산물이라고 본다. 즉 기업내의 기술의 발 전은 기업이 추가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 대해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사회의 필요에 의해 기술 진보가 촉진되고 기술진보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과학의 원리가 발견되는 경우도 많으며,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가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효율의 사 회적 필요성이 초전도체 기술에 관심을 모으게 되고 초전도체개발을 위한 실험과정을 통해 과학 적인 현상에 대한 이론적 진보가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환경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회결정론적 논리에 서 면 정부의 역할은 매우 크게 된다. 온 세계가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과학기술개발에 적극적인 것 도 이러한 논리에 기인한다. 즉 과학기술 개발을 통한 산업의 발전은 한 국가로 하여금 독점적 이익을 향유하게 하고,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한 제품의 개발은 고도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 에 국가경쟁력에 절대적이다. 특히 포디즘적 대량생산 체제만으로 더 이상 부가가치의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전도상국으로 생산설비가 이전되고 있으며, 선진국간에는 기술개발을 통 한 경쟁이 치열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개발을 개인이나 기업에 맡겨 두게 되면 소위「시장실패 현상」이 나타나 게 된다. 기업의 경우는 불확실성이 높은 기술개발에 대해 투자하기를 꺼린다. 따라서 슘페터의 기술개발에 대한 기업가 정신의 기대는 지나친 이상론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은 다른 기업이 개발 한 기술을 모방하거나 기술사용료를 지불하고 제품생산을 하거나, 아니면 기술개발 이외의 산업 에 종사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의 단기적 이익추구 행위 는 국가전체적 측면이나 장기적인 면에서 기술의 종속화, 기술의 국제분업, 무역수지의 악화를 초 래하는 역기능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정부의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효율적 정책개입 의 필요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
그러면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무조건적인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정책 이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과학기술 정책의 경우에도 우리는 많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단순히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돕는다하여 무조건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것만으로 모든 과학기술정책이 정당화되 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지원이 과학기술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자산업의 경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오히려 민간기업의 자생적인 기술개 발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정책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정부가 과학기술의 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기술창출Technology push 정책활용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과학기술개발을 촉진하는 기술수요유도Demand pull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기초과학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가, 아니면 산업기술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산업기술육성은 대기업중심이 바람직 한가, 아니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한 일련의 질문에 대해 과학 기술정책론은 답을 구해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정책론에서는 과학기술 육성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정책적 논의에 관심을 기울인다. 과학기술체계와 과학기술정책수단의 효율성, 과학기술정책을 둘러싼 행정부처간의 갈등, 기술도입 과 자체 기술개발의 정책 효율성, 상징적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 과학기술 육성계획과 정책집행의 괴리, 불확실성과 과학기술 투자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의, 검증되지 않은 과학기술에 대한 무모한 정책지원의 문제, 과학기술정책의 정치화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논의가 분석의 대상이 된다. 이 와 함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초래된 사회적 효과 및 환경적 영향에 대한 분석을 다루는 기술평 가Technology assessment,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회의 견제기능과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 산학 협동 등과 같은 사회 제집단의 공동연구 개발체제에 대한 국제적 조정 및 협상에 대한 전망도 과 학기술정책론의 주요한 연구대상이 된다.
<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과 인류학적 접근의 만남>
1.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들: 배경
'새로운 기술사회학' - 이것이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의 주창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이다 - 의 문제설정 배경은 도널드 맥켄지(Donald MacKenzie)와 주디 와크만(Judy Wajcman)이 편집한 The Social Shaping of Technology의 편자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은 기존의 사회과학자들의 연구가 "기술의 '영향', 혹은 기술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충격에"만 관심을 집중해 왔으며, 따라서 "무엇이 사회적 영향을 가지는 기술을 형성해 왔는가?"와 같은 "더욱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는 두 가지의 답변이 주로 제시되어 왔다고 말하는데, 그 첫번째는 '과학이 기술을 형성한다'라는 관념(기술=응용과학 테제)이고, 두번째는 '기술이 기술을 형성한다'라는 관념(인공물의 연쇄 테제)이다. 이들은 이러한 두 가지의 답변이 모두 기술에 대한 단순한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먼저 '기술이 과학의 응용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에 대해 이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과 기술은 줄곧 독자적인 실체였으며 이들간에 긴밀한 상호영향이 생겨나게 된 것은 최근 - 특히 20세기에 들어선 이후에 - 야 가능해진 일이었다고 비판한다. 이어 이들은 '기술은 이전의 기술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개량한 결과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이러한 사고가 영웅적인 발명가에 대한 통념을 불식시키는 것에는 분명 도움이 되지만, 기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관계들을 간과함으로써 기술을 '자기진화하는 유기적 실체'로 신비화시키는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이들은 기술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두 가지 기존 답변들의 불완전성을 공격하여 기각한 후, '사회가 기술을 형성한다'라는 주장을 옹호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바로 이 문제의식이 정식화되고 정교화되어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들: 개관
1) 기술의 사회적 구성론 (SCOT)
SCOT는 핀치와 바이커가 1984년에 Social Studies of Science에 발표한 논문(주10)에서 정식화된 연구 프로그램이다. SCOT는 과학지식사회학, 그 중에서도 특히 콜린즈의 경험적 상대주의 프로그램(Empirical Program of Relativism, EPOR)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EPOR의 연구 프로그램은 크게 다음과 같은 3단계로 구성되는데, 1) 과학적 발견이 자연세계에 의해 과소결정(underdetermined)되기때문에 이를 둘러싼 해석적 유연성(interpretative flexibility)이 생겨난다. 2) 해석적 유연성을 제한하고 과학적 논쟁의 종결(closure)을 허용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설명된다. 3) 이러한 종결 메커니즘을 광범한 사회적·문화적 배경과 관련시키려는 시도가 전개된다. 이러한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보임으로써, EPOR은 '과학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라는 과학지식사회학의 핵심적인 주장을 입증하려 한다.(주11) SCOT는 이러한 3단계의 연구 프로그램을 거의 그대로 기술사회학적 연구에 적용시킨다. 먼저 SCOT의 첫번째 단계에서는 특정한 기술적 인공물을 둘러싸고 관련된 사회집단(relevant social group) 사이에 해석적 유연성이 발생한다. 즉 서로 다른 사회집단은 특정한 인공물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상이한 의미부여는 특정한 인공물에 내재한 문제점들을 서로 다르게 파악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상이한 해결책의 제시로 이어진다. 이어 두번째 단계에서는 인공물의 의미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종결되면서 특정한 인공물이 안정화되는 단계이며, 세번째는 이러한 종결 및 안정화의 과정에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을 부여하는 단계이다.
SCOT의 이러한 연구 프로그램은 자전거, 베이클라이트(Bakelite) 합성수지, 형광등의 개발 등의 사례연구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SCOT의 주창자들은 과학과 기술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다고 믿으며, 이들간의 경계는 지속적인 타협의 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과학지식사회학의 방법론을 기술사회학에 끌어들이는 자신들의 방법론을 정당화한다.(주14) SCOT가 이전의 기술사회학과 근본적으로 차별적인 점이 있다면, 이것이 인공물의 '내용(content)'이 사회적으로 구성됨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과학사회학자 멀케이(Michael Mulkay)의 말을 빌자면, 예컨대 "텔레비전의 사회적 의미가 맥락의존적이라는 것을 보이기는 쉽다. 그러나 무엇이 제대로 작동하는 텔레비전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가 맥락의존적이라는 것을 보이기는 어렵다." 이들은 이 중 후자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래에서 엿볼 수 있겠지만, 다른 논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기술과 사회를 어느 정도 서로 구분되는 실체(entity)로 보고 있으며, '사회'가 마치 기술의 배후에서 기술을 구성하는 요소인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2) 시스템적 접근 (System Approach)
미국의 기술사학자 토머스 휴즈는 '시스템'의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대규모 기술체계의 진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사회과학적인 시스템 이론의 영향을 받아 기술을 하나의 기술시스템(technological system)으로 파악한다.(주17) 그가 파악하는 기술시스템은 우리가 통상 '기술적인(technical)' 것이라고 부르는 것만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기술시스템은 인공물을 포함한 유형·무형의 기술적 요소들뿐만 아니라 생산공장, 설비회사, 투자은행 등의 조직(organization)들, 과학적인 요소들(지식, 인력 등등), 자연자원, 발명가·기업가·시스템 운전자(operator) 등을 그 속에 모두 포함한다.(주18) 휴즈는 기술시스템이 대체로 다음과 같은 5단계의 과정을 거쳐 진화해 나간다고 보았다: 발명(invention) 단계→개발(development) 단계→혁신(innovation) 단계→[기술이전(technology transfer) 단계]→성장·경쟁·공고화(growth, conpetetion, and consolidation) 단계→모멘텀(momentum)의 획득 단계. 이러한 기술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을 고안하고 그것들간의 상호연계를 고려하여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을 그는 시스템 건설자(system builder)라고 불렀는데, 에디슨 같은 발명가 겸 기업가(inventor-entrepreneur)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용어를 써서 표현하자면, 시스템 건설자는 기술적인 프로젝트의 진행을 가로막는 '역돌출부(reverse salient)'들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에 노력을 집중함으로써 시스템을 구성해 나간다.
휴즈가 내놓은 시스템적 접근의 장점은 그가 시스템이라는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통상적인 이분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시스템 건설자의 관점에서 보면 과학·기술·경제·정치·사회와 관련된 문제들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이음새 없는 그물(seamless web)'이라고 불렀다. 즉, 성공적인 시스템 구성을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 기술과 사회, 기술과 그것이 도입되는 환경 등은 서로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요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역사가답게 자신의 개념틀을 대단히 느슨하게, 실용적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는 사회학적인 개념틀을 강하게 정초하는 것보다는 개별적인 사례 - 특히 전기조명 및 전력공급 시스템(electric light and power system)의 경우 - 들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내놓은 기술시스템의 진화과정이 대체적인 윤곽을 그린 것일 뿐이며, 결코 절대적으로 관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사회학자들이 종종 노출되기 쉬운 비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에서 소개한 SCOT에 대해서 그는 다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그는 관련 사회집단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SCOT의 주장이 분명히 의미를 지니지만, 이러한 주장이 일종의 '사회결정론'으로 귀결될 위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내놓은 기술적 모멘텀 개념을 통해 기술결정론과 사회결정론의 함정을 모두 피하면서 기술변화에 대한 유연한 설명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약한(soft) 기술결정론으로 종종 비판받기도 한다.
3) 행위자 그물망 이론 (Actor-network theory, ANT)
앞서 설명했듯이 행위자 그물망 이론의 주창자들은 미셸 깔롱, 브루노 라투르, 존 로 등 주로 프랑스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기술과 사회간의 근본적인 구분을 제거하려는 휴즈 등의 시도를 보다 상위의 추상화인 '행위자(actor)' 개념을 이용하여 정식화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것이 아닌 요소들간의 대칭성(human-nonhuman symmetry)를 받아들여, 인간이나 인간들이 구성한 조직뿐만 아니라 전자(electron)나 축전지 같은 자연현상·인공물들까지도 사회학적인 행위자(actor)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기술적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그 프로젝트를 담당한 엔지니어-사회학자(engineer-sociologist)들이 어떻게 서로 성질이 다른(heterogeneous) 것들을 단순화시키고 결합하여 이들을 엮는 행위자 그물망(actor-network)을 성공적으로 구성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행위자 그물망은 전통적인 사회학에서의 행위자들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닌 구성요소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되며, 그 속에서 존재자들은 서로를 규정하고 규정받음과 동시에, 그물망을 구성하고 그물망에 의해 구성된다. 이러한 이들의 주장은 1970년대 프랑스의 전기자동차 논쟁, 19세기 파스퇴르의 예방접종법 도입을 둘러싼 논쟁,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친 영국의 군용기 개발 작업 등의 사례연구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행위자 그물망 이론은 과학/기술, 기술/사회, 기술/정치 등등의 이분법들을 모두 거부하고 이 모든 요소들을 '행위자 그물망' 속에 집어넣어 버림으로써 하나의 거대이론체계를 구축한다. 이러한 이들의 구도는 바이커가 최근 주장한 '사회-기술적 전체(sociotechnical ensemble)' 개념과 유사하다.(주23) 이들의 주장은 이제 기술이 사회에 의해 형성되거나 구성된다는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기술과 사회는 행위자 그물망 속에서 서로 구분되는 실체가 아니며, 이들은 그 속에서 서로 구성하고 구성받는다. 즉, 이들은 동시구성(co-construction)되는 것이다.
이들 3가지 이론틀들은 상이한 몇 가지 지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요한 방법론들을 공유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술결정론적 사고를 공격하며, 과학적·기술적·경제적·정치적 요소들간의 본질적인 구분 역시 거부한다. 즉 이들은 '순수하게 기술적(purely technical)'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거부하고, 기술의 불균질성(heterogeneity)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방법론적으로 이들은 기술개발의 구체적인 사례연구에서 치밀한 세부묘사(thick description)를 선호하고 있다.
3.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들: 비판
소위 '새로운 기술사회학'에 대한 비판은 지금까지 철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STS학자들에 의해서 여러 가지 각도에서 이루어져 왔다. 비판자들은 우선,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들이 암흑상자(black box) - 즉, 대체로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기술의 '내용'을 가리킨다 - 를 열고 기술의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치밀한 사례연구를 통해 분석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새로운 기술사회학'이 이론적인 문제틀에는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반면 과학기술의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규범적·윤리적인 문제틀은 결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술을 '구성하는' 데 참여하는 행위자들 각각을 자유로운 주체로 과도하게 파악하여 구조(structure)의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점 등을 공통적으로 지적하였다. 이 글에서는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들'에 내포된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판단되는 랭든 위너(Langdon Winner)의 비판을 중점적으로 다루겠다.
위너는 '새로운 기술사회학'이 갖고 있는 의의나 장점들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접근법이 크게 4가지 요소를 치명적으로 결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은 먼저, 선택된(혹은 구성된)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심을 대체로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새로운 기술사회학'이 기술의 사회적 영향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등장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다소 아이러니컬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위너는 기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 역시 아직까지 충분하게 이루어져 있지 못하며 여전히 미비한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둘째로, 그는 새로운 기술사회학이 기술적인 논쟁에 아예 끼어들지도 못하고 이로부터 구조적으로 배제된 "관련되지 못한 사회집단(irrelevant social group)"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바꾸어 말하자면, 새로운 기술사회학의 주창자들은 기술의 역사를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휘그적(Whiggish) 역사관에서는 탈피했지만, 엘리트주의적 역사관 - '승리자의 관점(the winner's point of view)'(주27) - 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세째로, '새로운 기술사회학'에는 행위자들의 행위를 거시적인 차원에서 규정하는 구조(structure)와 문화(culture)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위너는 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새로운 기술사회학'에 현대의 기술체계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전망과 입장이 전혀 제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들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실천적인 점에서는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새로운 기술사회학'이 내놓은 그 모든 정교한 세부묘사들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결국 위너는 '새로운 기술사회학'의 주창자들이 사회학적 성찰성(sociological reflexibility)이나 해석적 유연성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쓸데없고 무익해지는 논제들에 집착하면서 스스로를 아카데믹한 하부분야로 정립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위너의 비판은 비록 단순화된 일반화 - 예컨대 "'새로운 기술사회학'은 기술의 사회적 영향에는 아예 무관심하다"라는 식의 - 에 근거하고 있긴 하지만 많은 부분 타당하다. 실제로 바이커와 같은 사회구성주의자들도 이러한 비판이 정당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연구를 실천적인 문제들과의 연관 속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사회학'의 주창자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진 모든 비판들에 수긍하는 것은 아니며, 많은 경우에 이들은 이러한 비판들이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관련된 사회집단"이라는 용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핀치와 바이커는 하나의 사례연구에서 모든 사회집단들을 동등하게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일정한 정도의 '선택'은 불가피하다고 반박하고 있으며, 사회성원들의 행위를 조건짓는 거시적인 '구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시스템적 접근이나 행위자 그물망 이론은 이러한 측면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일축한다.
이제 이러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의 개관과 그에 대한 비판에 근거하여 아래에서 몇 가지 함의들을 도출해 보도록 하겠다.
4. 성찰
먼저 '새로운 기술사회학', 즉 기술에 대한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을 바라보는 이러한 상반된 관점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접근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접근법의 주창자들과 비판자들은 '새로운 기술사회학'이 기존에 간과되어 왔던 기술의 '미시적' 구성의 측면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그 의의를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가'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에 따라 수행된 사례연구들이 기술의 구성과정을 상세하게 보임으로써 기술의 신화화를 제거하는 데 공헌하고 있으며, 기술결정론을 공박하는 것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사회학'을 비판하는 논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기술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이는 것만으로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못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새로운 기술사회학'이 스스로의 학문적인 엄밀함이나 내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갖는 사회적인 함의를 강조하려 한다면 이들은 의당 그렇게 구성된 기술이 사회성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까지 분석을 확장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 지점에서 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과 인류학적 접근의 '행복한' 접점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술에 대한 기존의 인류학적 접근의 한계를 언급했던 학자들은 인류학적 접근이 갖는 특수성이 기술에 대한 연구에서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는 점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예컨대 파펜버거는 인류학에 고유한 현장조사 연구방법(field method)과 전체론적 지향(holistic orientation)이 기술 연구에서 대단히 유의미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인류학에서 '시스템적인 사고'과 '구조의 규정성'을 강조하는 것이나, 기술의 도입이 특정한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민속지적 연구를 많이 수행하는 것 등은 앞서 위너 등이 주장한 '새로운 기술사회학'의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보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앞절에서 지적했던 인류학적 접근법의 한계는 오히려 사회학적 접근의 한계를 보완하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결국 기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와 인류학적 연구는 기술에 대한 신화화를 제거하고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서로 훌륭하게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이 두 분야간의 협동은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