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술역량의 구성요소들

 

  기업, 산업, 그리고 국가의 총체적(overall) 기술역량의 발전은 그들이 가지는 생산능력, 투자능력, 혁신능력 및 네트워킹능력의 발전, 그리고 이들 능력들간의 상호작용과 더불어 발전한다. 첫째, 생산능력이란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여 생산설비를 운영하고 보수하며, 원천설계범위(original design parameters) 내에서 기존의 생산기술을 채택하고 개선하는 기술적 능력을 의미한다 (Kim, L., 1997a; Westphal et al., 1985). 즉 생산능력은 품질관리, 배치(layout), 유지보수, 재고관리와 같은 생산기능들을 포함한다 (Lall, 1993).

  둘째, 투자능력(혹은 프로젝트 수행능력)은 새로운 설비들은 설치하고 기존 설비들을 확장하는데 요구되는 능력을 의미한다 (Amsden and Hikino, 1994; Kim, L., 1997a; Lall, 1993). 투자능력은 타당성 연구로부터 공정설계, 그리고 투자일정표 작성하기, 적합한 기술들과 생산설비의 원천 찾기, 계약 협상하기, 공장 건설하기, 장비 구매하기, 인력들을 모집하고 훈련하기 등을 포함하는 프로젝트와 플랜트를 수행하는 것까지 폭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Lall, 1993).

  셋째, 네트워킹(혹은 연계)능력은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데 필요한 특정한 skill들을 의미한다 (Lall, 1993). 네트워킹 능력은 제도적 구조와 기업 내, 기업들간, 그리고 기업외부와의 연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Bell and Pavitt, 1993). 국내외의 외부기술자원들을 조달하고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한 기술추격 주자들의 기술학습 및 기술발전 관점에서 볼 때, 네트워킹 능력은 크게 다음과 같은 외부 네트워킹과 내부 네트워킹을 수행하는 능력으로 발전적으로 재 개념화될 수 있다. 즉 외부 네트워킹은 (1) 해외 네트워킹(global networking), (2) 준 해외 네트워킹(quasi-global networking), (3) 국내 네트워킹(local networking)으로, 그리고 내부 네트워킹은 (1) 부서간 네트워킹(departmental networking)과 (2) 준 내부 네트워킹(quasi-internal networking)으로 구성된다 (Cho, 2000).   외부 네트워킹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글로벌 네트워킹이란 적합한 외국 기술원천과 전문가들을 찾고 그들의 기술적 자원들의 활용을 타진하며, 또한 해외 사용자-생산자간 관계와 전략적 제휴와 같은 해외 파트너십을 조정하고 그들과 기술적 자원들을 교환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준 글로벌 네트워킹이란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교육받고 전문적인 기술경험을 쌓은 교포 전문가들 및 해외거주 자국민 전문가들을 찾고 그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국내 네트워킹이란 지원자 및 조정자인 정부와 관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정부의 능력과 자원을 활용하고, 협동연구의 파트너로서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외부의 타 기업들과 협력하며, 기술정보나 인터넷 시스템과 같은 과학기술 인프라를 활용하고, 또한 산업협회나 기술협회와 같은 연계기구들을 만들고 이러한 기구들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조정하고 정부나 대중에게 투입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내부 네트워킹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부서간 네트워킹이란 자사의 국내 연구개발조직, 해외 연구개발조직, 마케팅부서, 생산 부서간 조직적·개인적 의사소통과 이들 부서들간 협력적 팀웍을 증진시키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준 내부 네트워킹이란 친척 회사들(예컨대 재벌의 계열사들)과 필요한 관계를 만들고 그들의 기술적 자원들을 동원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넷째, 혁신능력은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들을 창출하고 실행하는 능력들로 구성된다. 혁신능력은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고 혁신하는 능력으로부터 기존기술을 개선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Kim, L., 1997a). 기술혁신은 주로 세계적인 프론티어들의 기술변화에 의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며(Kim, L., 1997a, p. 6), 창조적 기술혁신은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개발도상국들은 기술의 국제확산(international diffusion of technology)에 관여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기술혁신은 기술이 확산되는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Bell and Pavitt, 1993; Metcalf, 1988).   장기간 혁신적인 기술학습과 이에 따른 혁신능력의 발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후발 산업국의 기술추격 주자들이 국제특허를 창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과 대만과 같은 신흥공업국의 기술추격 주자들이 실제로 많은 국제특허를 만들어 내고 있다 (Bell and Pavitt, 1993; Freeman, 1991). 이러한 현상은 신흥공업국의 기술추격 주자들이 창조적인 기술학습과 이에 따른 혁신능력을 축적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 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후발 산업국의 기술추격 주자들이 발전한다는 것은 그들의 투자능력, 생산능력, 네트웍 능력이 발전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기술혁신능력을 발전시키는 혁신적인 기술학습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기술역량발전 패턴의 다양성과 요인들

  후발 산업국의 산업·기술발전은 선진국으로부터 확산되는 기술의 학습과 모방에 크게 의존한다. 전통적인 기술혁신 확산 모형은 S 형태(S-shape)의 모양을 가진다. 산업 및 경제발전에 관한 이론들도 S 형태의 모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Freeman and Soete, 1997). 예컨대, Rostow(1960)의 경제발전 단계 이론도 S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즉 산업과 경제발전은 일반적으로 도약한 후 빠르게 성장하다가 성숙상태로 진입하여 천천히 성장한다. 또한 국제무역과 국제기술이전의 성질을 이해하는데 있어 주요 이론인 Vernon(1966)의 제품수명주기 모형도 제품발달의 전형적인 S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즉 한 제품은 연구개발을 통해 만들어져 시장으로 진입하여 성공적으로 판매되다가 서서히 제품의 판매가 감소하고 궁극적으로는 신제품에 의해 대체된다(Malecki, 1997).   비록 다른 형태의 양상도 발견될 수 있지만 (Storper and Walker, 1989), 일반적으로 (서비스가 아닌) 제품 기반적 산업들은 제품수명주기와 유사하게 S 형태의 발전 양상을 따른다 (Cooper and Schendel, 1976; Utterback 1987). 이와 같이 후발 산업국들에 있어 제품 기반적 산업들과 기업들의 전반적 기술역량(overall technological capability)의 발전은 S 형태로 발전한다고 가정해 볼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술역량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들 각각(생산능력, 투자능력, 혁신능력, 네트워킹 능력)이 동일 시점에서 동일한 모양과 내용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며 국가, 산업, 기업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용자원에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제품의 제조와 신기술의 발명 관점에서 그들이 서로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식민지 및 해외시장 개척을 포함하여 국가의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산업들간 기술변화의 성격 및 원천에서도 차이가 있다 (Nelson and Rosenberg, 1993; Nelson, 1996).   더군다나 특정 산업이나 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할 때 그들이 접하고 활용할 수 있는 외부의 기술자원들, 예컨대 협력 가능한 국내 연구기관들과 친척기업들(예컨대 재벌 내 계열기업들)의 기술역량, 그리고 도입 및 습득 가능한 해외 기술들의 양과 질에 차이가 있다. 또한 기업에 따라 기업특수적(firm-specific) 자산들(assets)과 역량들(capabilities)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들이 기술역량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들의 발전패턴에 차이를 유발시킨다. 이러한 요인들을 정리한다면, 국가특수 요인들, 산업특수 요인들, 그리고 기업특수 요인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3. 국가특수 요인: 한국의 늦은 산업화와 기본적 제약조건들

  Porter(1990)는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주된 요소들이 무엇이냐는 관점에서 국가발전단계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동인들(driving forces)로 구분한 바 있다: factor-driven, investment-driven, innovation-driven, wealth-driven.  하지만 이와 같이 국가의 발전단계에 따라 발전을 견인하는 일반적인 주된 요소들(즉 부존자원 및 저임금의 노동력과 같은 생산요소, 투자, 기술혁신, 그리고 부)도 있지만 국가들간 경제·산업·기술 발전을 돕거나 제약하는 주된 요소들의 종류와 영향도가 다를 수 있다. 즉 국가들간 국가특수성에 차이가 있다. 또한 역사적 경험들이 비슷한 기술적, 경제적 발전 단계에 있는 국가들 사이에도 이러한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Vertova, 1997). 예컨대 한국과 미국은 보유하고 있는 부존자원의 종류와 양, 그리고 기술적 발전역사 등 여러 가지 점들에서 국가특수성이 다르다. 또한 한국과 대만의 경우 비슷한 산업화 기간과 유사한 경제발전단계를 거쳐왔지만 역시 산업구조, 국가의 경쟁적 강점 등에 있어 많은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국가특수적 요인과 관련하여 국가들간 기술학습 및 기술혁신시스템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국가들간 산업적 특화(industrial specialization), 구체적인 제도적 틀(specific institutional settings), 정책우선순위(policy priorities) 등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Patel and Pavitt, 1994). 그리고 이러한 국가들간 차이의 지속성은 고정자본, 연구개발 및 교육에 대한 내생적이고 스스로 강화된 투자 과정들, 특정기술들을 숙달(master)함에 있어 강점들을 구축하고 확장하는 것, 규모의 경제, 부존자원(resource endowments),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 다양한 제도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OECD, 1998).

  한국의 경우 좁은 국토 많은 인구, 빈약한 천연부존자원, 늦은 산업화, 상대적으로 적은 국내 시장, 부족한 투자자본 및 과학기술 자원, 일천한 산업·기술 발달역사, 가부장적 유교전통과 가치체계,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및 국가발전 경쟁이라는 국가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응으로 정부의 강력한 경제산업 개발정책과 높은 시장개입, 수출촉진정책, 산업투자자금의 국가적 동원을 위한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배와 통제 등 또 다른 국가특수성들을 지니고 있다 (조동성, 1990; 곽만순 외 1995;  Amsden, 1989; Kim, L., 1997a; Song, 1997).

  이러한 한국의 국가적 특수성들은 삼성과 현대라는 재벌이 형성되어 그들이 반도체산업에 진출하여, 한국정부의 전략적 선택을 받으면서, 해외반도체기술을 학습하고, 기술역량을 발전시키는 패턴을 형성함에 있어 국가수준의 배경이 되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재벌이라는 특수한 기업체제와 기업지배구조가 형성되어 왔으며, 재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재벌특수적 자산과 역량을 키워왔다.  재벌들은 다음과 같은 일반적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높은 수준의 사업·기술의 다각화 (소위 문어발 식 사업확장 및 경영), 수직 계열화와 계열사간 높은 내부거래, 총수 및 그의 가족 중심의 지배구조, 하향식 의사결정과 총수 중심의 위험감수(risk-taking), 계열사간 높은 상호출자 및 상호 지급보증, 계열사간 위험분담(risk sharing)과 이윤공유(profit sharing), 높은 부채비율과 차입경영, 동일 시장 내에서 개별 계열사들간 경쟁과 동시에 재벌 차원에서의 경쟁 심화, 경제력 집중 및 복점적 국내시장 지배, 정부의 많은 지원 수혜 등.  이러한 재벌 특수적 요인들은 삼성그룹, 현대그룹, LG그룹이 높은 위험이 수반되는 반도체제조업 진출과 투자에 관해 재벌총수를 중심으로 과감하게 의사결정하고, 어려운 반도체제조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재벌 특수적 요인들은 반도체 재벌들이 재벌 계열사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반도체제조업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Kim S. R., 1996).

  또한 재벌들간 유사점도 많지만 재벌 총수들의 경영 스타일, 기업전략, 그들의 핵심사업 영역, 사업들의 다각화 및 진화 과정 등에 있어 재벌들간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반도체산업 진출이전, 소비재 사업들(즉 제일제당의 제당사업, 제일모직의 모직사업)에서의 경험(즉, 노동집약적, 공정형 사업에서의 경험)과 성공, 그리고 전자산업의 진출(1969년 삼성전자 설립)로부터 반도체의 안정적 조달 필요성과 반도체제조업진출 필요성을 절감하는 등의 경험과 강점들이 있었다. 반면에 현대그룹과 LG그룹은 이와 다른 사업경험과 진화과정을 밟아 왔다. 이와 같은 한국재벌의 일반적 특수성들과 재벌들의 개별적 특수성들은 한국반도체산업의 기술역량발전 패턴을 결정짓는데 있어 기업차원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기술혁신연구   제6권 제2호

한국 국가혁신체제의 구조와 특성

이공래·송위진

1. 서론

  최근 기술혁신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접근에서 '국가혁신체제'(Natioanl Innovation System)론은 핵심적인 주제어가 되고 있다(OECD, 1992; 1997; Lundvall, 1992; Nelson and Rosenberg, 1993; Ediquist, 1997). 한 나라의 경쟁력이 그 나라가 지니고 있는 기술혁신 관련 제도들이 어떤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국가혁신체제론의 주장은, 왜 각국마다 경제발전 패턴의 특성과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으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제도설계를 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유용한 지침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혁신체제론은 IMF관리체제라는 위기를 맞이하여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혁신체제론에 따르면 우리가 처한 위기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의해 나타난 위기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부터 발생한 위기이며 또 순환상의 위기가 아니라 제도적 구조의 문제점 때문에 발생한 위기인 것이다. 결국 우리의 위기는 국가혁신체제의 구조적 취약점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더 나아가 국가혁신체제론은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내용을 갖는 제도적 구조를 형성해나가야 하며 그 제도적 구조의 내용은 기술혁신 친화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규범적인 방침도 제시해주고 있다.

  이 글은 바로 이 국가혁신체제론에 바탕해서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STEPI)에서 많은 연구원이 참여하여 우리나라가 갖는 취약점과 강점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가 현재 겪고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가오는 21세기에 강력한 지식기반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한 연구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한 것이다(이공래외, 1998). 이 글은 서론에 이어 국가혁신체제 논의가 갖는 주요 관점에 관하여 간단하게 서술한 다음, 한국 국가혁신체제의 분석에 사용된 모형을 제시하고 한국의 국가혁신체제 분석에서 나타난 구조적 특성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순으로 서술된다.

2. 국가혁신체제론의 주요 관점

2.1 국가혁신체제와 학습

   국가혁신체제론은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유용한 지식의 창출, 확산, 사용을 통한 기술혁신에 초점을 맞춘 논의이다(OECD, 1997; Freeman, 1997; Lundvall, 1992). 즉, 현재의 국가혁신체제가 지식의 창출, 확산, 사용 과정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규명하고, 지식의 창출, 확산, 사용에 효과적인 국가혁신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제도적 틀이 필요한가를 탐색하는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지식의 창출, 확산, 사용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국가혁신체제론은 지식의 변화를 다루는 조직학습이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조직학습론에서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조직의 반응이 달라지면서 조직내의 반응 옵션이 증대하게 되고 이로 인해 조직내의 지식이 증가하는 과정을 학습이라고 파악하고 있다(Huber, 1992, Kim, 1997). 국가혁신체제론에서 이야기하는 학습도 이러한 맥락에 서있다고 할 수 있는 데 조직뿐만 아니라 더욱 포괄적인 제도 차원의 학습까지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학습이 이루어지는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죤슨(Johnson, 1992)은 기술학습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학습의 유형을 학습의 의도성 여부에 따라, 그리고 창출되는 지식의 성격에 따라 학습을 다음의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는 생산체제에서 이루어지는 학습과 같이 생산에 목표가 두어진 생산활동의 수행 과정에서 부산물로서 이루어지는 학습이다. 이러한 학습의 유형으로는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by-doing), 사용을 통한 학습(learning-by-using),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learning-by-interacting)을 들 수 있다.

  두번째 유형은 '탐색을 통한 학습'(learning-by-searching 또는 searching)이다. 이는 생산활동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겠다는 의도 하에 이루어지는 학습이다. 기업의 연구개발 부서나 기획 부서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이 바로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세번째 유형은 '탐구를 통한 학습'(learning-by-exploring 또는 exploring)이다. 이 유형의 학습도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라는 의도 하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이다. 주로 대학이나 공공연구소에서 이루어지는 학습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학습과정은 종종 기존의 기술발전의 누적적인 궤적을 단절시키면서 새로운 궤적을 형성하기도 한다.

  한편 학습과 관련하여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개념은 '학습기각'(unlearning), 또는 '망각'(forgetting)이다(Levinthal, 1991; Johnson, 1992). 이 개념은 기존에 축적한 기술 지식들을 조직이나 제도 내에서 소거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과거에 축적된 지식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기술환경의 변화는 어떤 경우에는 기존에 축적된 기술지식을 더욱 강화(competence-enhancing)시키는 것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파괴(competence-destroying)시키는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Tushman and Anderson, 1991). 후자와 같은 기술 환경의 변화가 나타날 경우 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기술지식을 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기술 지식은 기본적으로 누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정 방향으로 기술지식의 토대가 정향화되면 계속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지식이 축적되게 된다. 기술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라고 이야기되는 이러한 현상은 다음에서 살펴보겠지만 학습과정 또는 기술지식의 창출, 확산, 사용 과정이 특정의 패턴을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강화되게 된다. 따라서 기존 기술지식을 망각하고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2.2 국가혁신체제와 생산체제

   국가혁신체제론은 지식의 생산과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국가혁신체제라는 개념은 생산체제와는 개념적으로 구분된다. 국가혁신체제가 기술지식의 창출과 사용(기술혁신)을 종속변수로 선정하고 있다면 생산체제는 특정 기술을 토대로 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를 종속변수로 채택하고 있다.1)  

  그렇지만 국가혁신체제와 생산체제는 상호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국가혁신체제의 산출물인 새로운 기술지식의 도입과 그것의 활용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 과정을 변화시킨다. 기존의 지식에 바탕해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국가혁신체제를 통해 새로운 지식이 공급되고 활용됨으로써 생산과 소비 과정이 변화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혁신체제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생산체제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혁신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생산체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없게 된다.

  반면, 생산체제는 제품과 서비스의 직접적인 생산과 소비를 통해 국가혁신체제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생산체제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가혁신체제가 필요로 하는 재화가 공급될 수 없다. 또한 국가내에 특정산업에 전문화되는 생산체제의 전문화 구조는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분야를 특정방향으로 이끈다(Anderson, 1992). 낙농업에 전문화된 덴마아크와 같은 국가는 낙농기술, 그리고 낙농업에서 사용되는 기기와 설비관련 분야에 전문화되어 있는 데, 이로 인해 덴마아크에서 이루어지는 기술혁신은 주로 낙농업과 관련된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2)  

  이와 함께 생산체제는 생산을 통한 학습, 사용을 통한 학습,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 등을 통해 지식을 창출하여 혁신체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재화의 생산과 소비활동은 부산물로서 지식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Anderson, 1992).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 부품을 공급하고 사용하는 과정은 한 측면에서 본다면 제품의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대기업의 요구에 맞추어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중소기업에서 지식창출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또 그 부품을 사용하여 서브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대기업 내에서 지식이 창출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현실에서 국가혁신체제와 생산체제를 엄밀히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생산과 소비 그 자체를 통해서 지식이 창출되고 사용되기 때문이다.

 2.3 제도화된 기술혁신 과정

   국가혁신체제론에서는 기술혁신 또는 기술지식의 창출.확산.사용이 이루어는 과정이 패턴화, 제도화되어 있다고 본다(Freeman, 1987; Lundvall, 1992; Ediquist, 1997). 즉, 기업 내에서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과정, 기업간 또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창출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그 국가에 독특하게 제도화된 패턴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혁신의 과정은 매순간마다 혁신 주체들의 합리적인 선택에 따라 행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기술혁신에 참여하는 혁신주체들이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규범이나 규칙(제도)에 따라3) 기술혁신 관련 행동을 하는 과정이라고 본다.4)

  따라서 기업 내에서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패턴, 기업간 상호작용을 통해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패턴, 기업과 대학, 공공연구소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패턴, 금융기관으로부터 기업들에게 기술혁신 관련 금융이 공급되는 패턴, 대학이나 교육훈련기구를 통해 기술혁신 관련 인력들이 공급되는 패턴, 산업협회나 업계 모임들을 통해 기술 지식이 창출되고 공유되는 패턴이 국가혁신체제론의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한편, 이러한 제도들이 합쳐져 구성된 시스템인 국가혁신체제는 각 국가마다 상이한 내용을 담게 된다. 국가혁신체제를 구성하는 각 제도들의 내용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각 제도가 전체 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이와 같은 기술혁신 관련 제도적 구성의 차이 즉, 국가혁신체제의 차이는 그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기술혁신의 방향과 속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는 결국 그 국가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혁신체제 논의는 '구조적 경쟁력'(structural competitiveness)이라는 개념과 연결되게 된다. 기술혁신 관련 제도들의 내용과 그들의 결합 구조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OECD, 1992).  

  한편, 국가혁신체제를 구성하는 제도들은 제도화가 되면 안정성을 지니면서 유지되게 된다. 혁신주체들은 그 제도를 따라 행동을 하게 되며, 또 이 행동을 통해 그 제도들은 재생산되게 된다. 이 제도들은 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도도 경로 의존성을 갖게 된다(David, 1994).

  이와 같은 제도의 경로 의존성은 국가혁신체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경로 의존성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는 특정의 내용을 갖는 제도들이 한 번 형성되면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그것을 새로운 내용을 갖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형성된 제도들이 상당 기간동안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경우 그것은 더욱 어렵다. 과거에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혁신주체들은 과거의 패턴에 따라 기술혁신을 수행하게 되며 당연히 그 활동은 앞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과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국가들은 종종 기존의 국가혁신체제를 고수함으로 해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어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혁신체제도 이러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재벌계 대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혁신체제는 과거의 발전과정에서 그 어떤 나라도 성취할 수 없었던 성과를 가져왔지만, 계속 기존의 성공을 가져왔던 제도에 고착됨으로서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였다. 성공이 곧 실패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Miller, 1990: 1993).5)

 2.4 정책적 함의

   국가혁신체제론이 갖는 정책적 함의는 효과적인 기술 지식의 창출·확산·사용을 통해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국가혁신체제의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업내부에서, 기업간 관계에서, 기업, 공공연구소, 대학의 관계에서, 기업과 금융시스템 및 교육훈련 시스템의 관계에서, 그리고 이들 전체의 결합 구조에서 기술혁신과 그것의 사용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제도들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기술혁신정책의 목표가 된다.

  이러한 관점은 인력과 자본을 기술혁신에 투입하기만 하면 기술혁신이 촉진된다는 투입 중심의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국가혁신체제론은 정부가 지원해야할 기술분야를 선택하고 거기에 자원을 투여하면 목표한 기술분야의 수준이 향상된다는 기존의 단선적인 과학기술정책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고 있다. 즉, 국가혁신체제론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분야를 제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획 관련 제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또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혁신주체들 내부 그리고 그들 사이에 기술 지식의 창출·확산·사용을 촉진하는 제도적 틀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책의 평가에서도 단순히 목표로 한 기술의 개발 및 사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통해 혁신주체들간에 기술혁신에 효과적인 제도가 형성되었는가에도 초점을 두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기술정책의 목표는 시장실패를 보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시스템 실패를 보정하는 것이다(OECD, 1997).   

3. 국가혁신체제의 분석모형

  국가혁신체제의 모형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각 혁신주체를 중심으로 지식의 생산·확산·흡수·활용 및 이들간 지식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먼저 하부시스템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하부시스템은 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중심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 고려되는 하부 시스템은 민간부문의 기술혁신체제이다. 기업은 기술을 활용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판매하는 활동의 핵심주체이다. 기업은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으로부터 원자재나 부품을 구입하고 이를 가공·조립하여 사용자 기업 혹은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동일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이 둘 이상일 경우 시장에는 경쟁이 조성된다. 시장경쟁하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통하여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한다. 사용자 기업, 생산자 기업, 부품·소재 기업, 경쟁 기업, 최종 소비자 등 모두가 기술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또 기술혁신에 영향을 미친다.

  두번째 하부시스템은 정부의 정책이다. 정부는 과학기술이 국가경제의 발전에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술혁신을 촉진 또는 제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국가의 국제경쟁력을 상정할 때 정부는 기업의 기술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의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정책은 기술수요정책, 기술공급정책, 기술확산정책, 연구개발 투자정책, 중소기업 혁신정책, 지역혁신정책 등으로 구분된다.

  세번째 하부시스템은 국제경제 및 기술환경이다. 한 국가의 기술혁신 활동은 인접 국가 혹은 경쟁국가의 경제환경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경제규모가 작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해외 요인은 더 중요하다. 따라서 국가혁신체제의 구성요소로서 외국의 기술이전, 해외 수출의 수요견인 기능, 다국적 기업의 직접투자, 국제 공동연구 및 인력 교류 등 기술혁신과 관련을 갖는 다양한 국가간 학습과정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네번째 하부시스템은 국내의 제도적 환경이다. 기업의 투자환경을 비롯하여 상거래 관행, 금융관행, 도급제도,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등 많은 요소들이 기술혁신에 영향을 미친다. 이 중에서도 기술활동에 대한 금융지원 제도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벤처기업에 관한 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가, 금융기관이 모험기업에 대해 보수적인가 혹은 진보적인가에 따라 국가의 기술혁신은 영향받게 된다. 이 외에 지적재산권 보호제도도 국가 기술혁신의 제도적 환경이다.     

  다섯번째 하부시스템은 과학기술 하부구조이다. 과학기술 하부구조는 국가의 기술혁신 활동에 자원을 투입하는 원천으로서 기능을 담당한다. 여기에는 과학기술 정보 유통망, 연구개발 시설,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 등이 포함된다. 과학기술정보 유통망은 과학기술 지식이 기술혁신 주체간에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게 하는 연구개발 정보망, 산업기술 정보망 같은 정보망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국가 기술혁신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거대과학 연구시설도 기술 하부구조이며,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임무를 갖고 있는 대학이나 출연(연)기관도 기술 하부구조에 속한다. 대학, 출연(연), 정보센터, 대형 연구시설, 협회·조합 등 연계기관 등은 그 기능으로 볼 때 유형의 기술 하부구조에 속하지만 이 외에도 무형의 형태로서 존재하는 기술 하부구조도 있다. 대학이나 출연(연) 등 공공기관이 민간기업과 맺고 있는 네트워크는 대표적인 무형의 기술 하부구조이다.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과학기술 지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민간기업에 이전할 수 있는가는 바로 이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사회·문화환경이다. 노사관계,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독특한 종교, 의식, 교육, 조직 등의 문화적인 환경이 국가의 기술혁신 활동과 관련이 있다. 노·사간에 협력적인 관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 아니면 대립적인 관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 기술혁신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아울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종교나 사상이 때로는 기술혁신에 부정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긍정적일 수도 있다. 교육에 관한 국민의 사상과 관습도 기술혁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기업을 비롯하여 공공기관 정부 등 조직체가 갖는 학습문화도 기술혁신에 영향을 미친다.

<그림 1>은 국가혁신체제의 분석모형을 단순화하여 그림으로 나타내 본 것이다. 이 그림에서 원형으로 표시된 것은 기술혁신의 주체들을 의미하고 사각형으로 표시된 것은 하부시스템을 나타낸다. 기술혁신의 관점에서의 국가라는 영역은 모호성을 갖기 때문에 국가혁신체제의 영역을 점선으로 나타냈다. 여기서의 국가라 함은 같은 문화권 안에서 지식의 흐름을 중심으로 설정한 것으로서 법적·행정적인 의미의 국가보다는 더 넓다고 하겠다.   

4. 한국 국가혁신체제의 구조와 특성

4.1 정부의 정책

   기업의 기술혁신 환경을 구성하는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그 동안의 모방을 통한 산업화의 과정에서 민간부문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기술혁신 관련 자원을 공급하고 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을 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통해 국가혁신체제의 주요 구성주체인 기업과 대학, 연구소들이 기술혁신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국가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을 기술공급정책, 기술수요정책, 기술확산정책, 연구개발투자정책, 지역혁신정책, 중소기업혁신정책 등으로 구분하고 각 정책에서 나타난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술공급정책을 과학기술지식을 체화한 인력의 공급, 기술혁신과 관련된 재무자원의 공급, 정보자원의 공급과 관련된 정책으로 구분할 때 우리나라 기술공급정책은 외국기술의 소화.모방 전략을 채택한 70년대, 80년대에는 효과적으로 기능 했으나 자체개발전략을 선택해야 하는 9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여러 문제들을 노정하고 있다. 급속한 기술변화에 조응할 수 있는 탄력적인 인력공급정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진부화된 기술인력의 재훈련도 체계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재무자원을 공급하는 정책의 경우에도 민간부문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 자원이 적절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종합적인 조정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보자원 공급정책은 공급자 중심의 정보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창출된 정보의 효과적인 활용과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임윤철, 1998).

  기술수요정책은 기업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반 요인과 관련된 정책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술수요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산업정책은 수출지향적 산업화와 전략산업의 육성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수출지향적 산업정책은 기업들을 세계시장에 노출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하였으며, 이는 세계시장에서 수용될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게 하는 강제력으로 작동해 기업이 기술개발에 투자하게 만드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김선근,   1998).

  기술확산정책은 기술공급자와 기술수요자를 연결시켜 양자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국가혁신체제의 효율성이 기술지식의 창출만이 아니라 창출된 지식의 효과적인 확산.사용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술확산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술확산정책은 다른 정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우선 정부가 추진하는 과학기술 관련 사업 중에서 기술확산 관련 사업의 비중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 자원투자 규모도 적다. 또 수행되어 왔던 사업의 경우에도 산업계의 수요와 유리된 채, 공급자 중심으로 추진됨으로 해서 확산되는 기술의 수용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사업의 추진 방식에 있어서도 혁신주체가 공동의 지식을 창출하고 상호학습을 통해 기술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이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이 일방향적인 기술의 전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기술지식의 확산에 가장 효과적인 인력의 상호교류를 통한 기술확산정책이 부진하다(이공래, 1998).

  연구개발투자정책에 있어서는 그 동안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통해 자원투입의 양적 확대는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였으나 여러 불균형적인 측면이 존재하고 있다. 전체 연구개발 투자에서 정부 연구개발 투자의 비중이 적으며(1996년 현재 약 22%), 민간부문 연구개발 투자의 경우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다(1995년 현재 상위 5개사의 연구개발 집중도는 34.6%). 또한 박사급 이상의 고급인력의 약 60%가 활동하고 있는 대학의 연구개발비 사용비율은 전체 연구개발 투자의 8.2%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연구개발 투자 배분의 불균형이 여러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도 상당히 떨어지고 있다. IMD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표상으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는 양적인 면에 비해 질적인 부분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박병무, 1998).

  지역혁신정책은 국가 경제의 기반이 일부지역에 집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별로 균형적인 과학기술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과학기술 관련 주요 연구기관은 수도권과 충남.대전권, 영남 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중앙정부의 과학기술 진흥사업에의 참여기관도 수도권 및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지방자치제도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지역혁신정책도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자치단체 내에 과학기술 전담조직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는 1997년 현재 6개에 불과하다. 또한 자치단체 전체예산에서 과학기술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77%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예산의 부족과 전담관리조직의 부재로 인해 효과적인 지역혁신정책의 추진이 어려운 상태지만 최근에 몇 몇 지방자치단체가 기술혁신을 중심으로 한 지역개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혁신정책은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정선양.이장재, 1998).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중소기업혁신정책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지원제도들이 존재하고 있다. 기술개발 관련 자금에 대한 각종 투.융자방식의 지원과 조세감면제도, 기금조성, 병역특례제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한 보조금 지급 등과 같은 투입요소 지원정책과 정부 구매제도, 장영실상, KT, NT 등과 같은 시상제도 등 기술관련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 그리고 각종 시험평가제도나 창업보육센터 등 기술관련 하부구조를 조성하는 정책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자금지원정책이 중소기업 기술혁신 지원과 관련하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광범위한 중소기업 지원시책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기술혁신과 기술능력 향상은 아직까지 그리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그 원인은 많은 지원시책들이 형식화되어 있고, 실효성이 적기 때문이다(이재억.박동현, 1998).

 4.2 기술혁신의 하부구조와 연계체제

   그 동안 정부 출연(연)이나 대학 등 혁신주체에 대한 자원 배분은 사회의 다른 부분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우선권이 두어져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70년대 이후에 형성된 각 혁신주체들은 제각기 과학기술 지식의 학습과 축적에 열성적으로 임하였고 지금까지 상당한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각 혁신주체간의 연계에 의한 시너지의 창출에 있어서는 비효율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계체제가 취약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 분야가 국가 정책 추진의 소외 영역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책 추진의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분야의 낙후성이 이제 시스템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학기술 하부구조와 연계체제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주요 이슈별로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력양성과 교육훈련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유연성이 부족하고 획일화, 서열화되어 있다. 대학 졸업자 이상의 고학력 인력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이 수요 측의 요구 수준에 도달하지 못함으로서 고급인력의 실업률이 심각하다. 이에 따라 1980년 고졸자의 2.3배에 달했던 대졸자의 임금은 1996년에 1.6배로 좁혀짐으로서 고학력자의 임금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 기술인력이나 생산직 인력은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기업은 소수 핵심 고용자의 인적자원 개발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인력에 대해서는 한계화 혹은 외부화하는 양극화전략을 취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양극화 현상은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심화되고 있는 데 그 이유는 수요에 부응하는 유연한 인력양성체제가 구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업교육에 있어서는 제조업 생산직 중심의 공공 직업훈련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공공 직업훈련은 양성훈련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직업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제고 할 수 있는 경쟁압력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공공 직업훈련은 직업훈련의 하부구조 구축이라는 공공 직업훈련의 고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인정하는 민간 직업훈련도 취업 가능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질 높은 교육훈련 서비스 제공에 소홀히 한 결과 인정훈련을 교육 서비스 수요자들이 기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설 기술계 학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상원, 1998).

  대학의 연구활동에 있어서는 대학이 우리나라 전체 연구인력의 35.3%, 박사급 연구인력의 76.0%를 보유하고 있는 높은 연구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사용 연구개발비 비중에서는 9.4%만을 차지해 잠재력에 비해 낮은 연구활동을 나타냈다. 대학의 연구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국가혁신체제에서 대학연구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대학연구비 규모의 증가율은 연간 35.7%로 국가 전체 연구개발비 증가율 21.7%를 휠씬 상회하였다. 그리고 최근 10년간 한국의 SCI 수록 논문 발표편수의 증가율이 세계 1위 수준으로 나타나는 등 점차 대학의 연구활동이 활성화되는 징조를 보이고 있다.

  산·학간 협력은 이때까지 부진했지만 대학연구의 활성화와 함께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의 연구비중 기업의 부담비율은 1989년에 6.9%였으나 1996년에는 22.2%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이공계 대학 부설연구소의 수가 1990년에 322개에서 1997년에는 817개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 밖에 산·학협동 연구단지의 설립이 확산되고 있고 기업계와 함께 공동연구를 위한 지역 컨소시엄이나 기술혁신센터와 기술보육센터 등의 설립이 확대되고 있다(이장재, 1998).

  정부 출연(연)은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연구개발 활동을 주도하고 기술발전을 선도해 왔으나 최근 산업기술의 개발이 기업의 주도로 전환되면서 그 역할, 기능, 연구활동 영역 등이 크게 변화되고 있다. 민간 산업계가 자체 기술능력을 강화하면서 산업계의 수탁연구 수행에 한계를 갖게 되었고, 출연(연)에 대한 요구도 다양해짐에 따라 그 역할도 다변화되기 시작하였다.  1992-95년 기간중 정부 출연(연)의 연구개발은 기초·응용연구(33.8%)보다 개발연구(66.2%)에 더 많이 치중함으로서 민간기업의 연구영역과 중복되는 특성을 보였다. 정부 출연(연)의 수탁 연구비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전체의 63-65%를 점유하고 있어 정부가 주 고객임을 나타냈다. 출연(연)의 논문 발표건수는 SCI 등재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수가 1996년 총 1,902건으로 우리나라 전체 실적(총 7,295편)의 약 26%에 해당한다.

  산·연간 협력연구에 있어서는 1995년도 종료과제 기준으로 31.6%가 기업화를 직·간접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ㆍ연 협력연구의 형태는 주로 공동연구이며 연구시설 및 기자재의 공동 활용, 기술지도 및 자문 등도 주요한 산·연간 기술확산의 방법이었다. 기술훈련, 핵심 기술정보 및 특허기술의 공동 활용 등에 있어서는 산·연간 협력이 미약한 것으로 조사되었다(이달환.오재건, 1998).

  한편, 생활, 교육, 증권 등 국민생활에 관련된 DB산업은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나 과학기술정보와 관련된 DB는 전체의 3.8%(일본은 32%)에 불과하고 그 증가속도가 더딘편이다. 과학기술부를 포함한 4개부처의 정보 유통기관이 구축하고 있는 DB를 모두 합해야 350만건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DB 구축건수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가 과학기술 하부구조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기구가 부재하다. 이에 따라 문헌정보, 특허정보, 연구개발정보 등의 정보가 유형별로 각기 별개로 유통되는 분산형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 전반의 과학기술정보를 포괄하는 정책이 부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의 유통시스템은 비효율적이며 자원의 낭비가 많다(김치용.황보열, 1998).  

  국방기술의 연구개발에 있어서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념형성 단계를, 방산업체가 상세설계, 시제품 생산 및 양산단계를 담당하여 수행되고 있다. 기초연구는 대부분 대학에서 위탁방식에 의하여 수행되며, 응용연구와 시험개발은 ADD, 대학, 출연(연)이 수행하고 있다. 민→군 기술지식 확산(spin-on)은 체계개발의 경우 상세설계 이후의 단계에서 방산업체가 담당하고 있으나 핵심기술의 경우 대학, 출연(연), 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민·군공동 연구개발은 1995년부터 STEPI와 ADD를 중심으로 초고주파 부품 등 9개 과제를 선정하여 추진하였으나 국방부문과 민간부문이 갖는 제도적 장벽으로 진전속도가 더디다. 1997년 '과학기술혁신 특별법'에 의거하여 민·군겸용기술 개발분과가 구성되고 '민·군겸용기술개발 활성화를 위한 종합 기본계획'이 작성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민.군겸용기술개발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토대가 형성되고 있다(홍성범, 1998).  

 4.3 기술혁신의 제도적 환경

   기술혁신 제도환경은 기술혁신에 영향을 미치는 금융제도, 사회문화, 혁신주체들의 연계조직들로 구성된다. 이들 제도들이 어떤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가에 따라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패턴과 성과가 달라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기술혁신 관련 제도적 환경은 전체적으로 횡적인 지식.정보.자원의 흐름보다는 종적인 흐름이 잘 이루어지도록 배열되어 있다. 정부의 지도에 따른 산업 및 기술관련 자금의 배분, 정부의 시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업계 단체, 질서준수와 동원이 강조되는 사회문화적 측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배열은 어느정도 기술발전의 방향이 보이는 모방의 과정에서 제한된 인력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집중할 수 있는 메카니즘으로 작동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적 특성은 과거의 모방전략하에서 기술을 소화.흡수하는데에는 상대적으로 잘 기능했다. 기술발전의 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다양한 기술의 통합을 통해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현재의 상황에서 기존의 제도적 틀은 다양성과 창의성의 부족, 그리고 수평적 상호작용을 통한 지식학습을 제약하는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술혁신의 제도적 환경을 기술금융제도, 연계조직, 사회문화 환경, 지적재산권 보호제도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의 기술금융제도는 정부주도형 신용시스템이다.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에서 증권시장을 통한 외부자금의 공급보다는 은행의 대출을 통한 자금공급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자금의 공급에서 정부의 간섭이 많았으며 전체 금융에서 정책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한편 은행이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신용대출 기능은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은행의 대출이 주로 담보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기술혁신 활동에 대한 자금조달에 근원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기술혁신 활동은 유형투자보다는 무형투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담보위주의 대출을 통해서는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

  기술개발을 위한 정책금융은 연구개발, 시제품 생산, 상업화, 기술도입 및 소화.개량 등과 같은 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을 그 지원대상으로 하고 있는 데, 지원규모가 기술혁신 관련 투자 소요액에 비해 매우 적으며(기술혁신 관련 투자의 약 4%), 신용대출이 이루어지 않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신기술 창업을 지원하는 벤처 캐피탈의 경우에는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참여하여 경영활동을 지원해주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자체가 가족경영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벤처캐피탈의 활동에 대한 규제도 매우 많아 창업활동에 대한 지원이 제약되고 있다(이원영, 1998).

  연계조직은 기업의 기술개발 노력이 보다 쉽게 연결되거나 결집되도록 지원하는 중간 매개조직이다. 연계조직의 효과적인 활동을 통하여 기업들 스스로가 기술발전을 공동으로 도모하는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수 있다. 연계조직을 통해 공동의 지식창출과 지식공유가 형성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모기업과 하청기업들이 협력하기 위한 수탁기업협의회, 사업상 경쟁상대가 아닌 다른 업종의 기업들이 교류그룹을 형성한 이업종 교류그룹, 정부.민간의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위한 수단으로 형성된 산업기술연구조합, 법인으로 설립된 한국전자공업진흥회와 같은 업계 단체 등이 연계조직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중에서 업계단체는 산업계에 설립된 가장 보편적인 조직이다. 그렇지만 이들 업계 단체의 일차적인 업무는 회원기업간의 협력보다는 산업진흥을 주관하는 정부정책의 기획과 집행에 도움을 주기위한 사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또한 조직자체가 사무국 중심을 운영되면서 지식의 창출과 상호교류가 이루어지는 연구회 성격의 활동은 거의 없다. 업계단체와 회원사와의 관계도 일대 일로 개별적으로 연결되어 일방향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로 인해 회원기업간에 교류를 형성해 주는 구심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김갑수, 1998).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중에서 교육문화는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열로 특징지워진다. 이러한 교육문화는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기술혁신체제를 지탱시킨 근간이었다. 그러나 교육문화는 학생들을 균일화하는 평준화 교육으로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선양하기 보다는 집단적 훈육과 질서교육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평준화 교육은 모방형 기술혁신에는 잘 기능하였으나 향후 전개될 창의적 기술혁신 방식에서는 부정적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조직문화는 유교적 온정주의와 가부장적 귄위주의에 기반한 가족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상명하복에 기반한 동원문화와 남성성 문화를 강화시키는 메카니즘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동원모델은 압축적 경제성장 모델의 실현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다양성과 개성이 중시되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기술혁신을 수행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불안정성과 신뢰의 결여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사갈등으로 인한 생산교란이 빈발하고 있으며 작업자 개개인의 기술능력의 형성.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아 품질관리 활동이나 제안활동이 취약하다(이영희, 1998).

  지적재산권 보호제도는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 독점적인 소유권을 보장함으로써 기술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지적재산권 제도를 통해 수집.정리되고 공표되는 정보들은 기술혁신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이 정보들의 효과적인 공급과 활용은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술개발 활동이 체계화되면서 지적재산권 보호제도를 통한 지적재산권의 권리화 정도는 상당히 진척되었다. 특허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내국인 특허등록건수는 현재 세계 7위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특허권 획득경쟁이 치열한 해외에서 출원한 특허권 건수는 세계 18위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특허의 양적 측면에서는 상위권에 올라가 있지만 그 질적인 측면에서는 중위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지적재산권의 보호되는 수준은 세계 31위(IMD평가)로서 기술의 권리화는 매우 확대되었지만 그것이 효과적으로 보호되고 있지 못하다.

  한편, 지적재산권 보호와 관련된 행정제도는 각 부처별로 관장사항이 분산되어있어 전체적인 차원에서 기획과 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적재산권의 심사 및 심판에 걸리는 시간이 외국과 비교할 때 상당기간 지체됨으로해서 지적재산권의 효과적인 보호와 권리행사가 제약되고 있다. 또한 지적재산권 제도의 활용에 있어서도 국내기업들중 지적재산권 관련부서를 설치한 기업의 수가 그리 많지 않으며 관련 인력도 적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을 통해 창출되는 정보들을 기술전략 수립과 기술지식의 획득에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권용수.송위진, 1998).

 4.4 국제 과학기술 원천과 환경

   외국기술을 도입하거나 해외 현지에서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방식은 국가혁신체제가 외부환경 즉 다른 국가혁신체제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외국으로부터의 기술획득을 매우 효과적으로 추진했다. 기술도입과 자체 기술개발 활동을 병행함으로써 양자의 활동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한 기술능력이 강화됨에 따라 그에 조응하는 새로운 해외 기술의 획득방식을 활용하였다. 해외 기술인력의 활용에서부터 자본재 및 기술 라이센싱, 현지 연구소의 설립, 전략적 제휴의 추진 등과 같이 다양한 기술도입 방식을 각 단계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렇지만 획득된 기술을 국가혁신체제에 확산시키는 활동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기술확산체제의 미비로 인해 기술도입의 중복이 이루어지며, 해외 기술획득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업간의 조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기술도입 과정에서 취약한 협상력을 노정하고 있다.

  외국기술을 도입하는 형태는 기술 라이센싱에 의한 직접적인 기술도입, 외국인 투자에 의한 간접적인 기술도입, 자본재 도입에 따른 체화된 기술의 유입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 투자에 의한 기술도입보다는 기술 라이센싱을 통한 기술도입과 자본재에 체화된 형태의 기술도입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또한 기술 라이센싱을 통해 도입된 기술은 선진국 기준으로 성숙기의 기술이 약 55%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기술도입 효과 측면에서는 기술도입이 우리나라의 기술능력의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 자체적인 연구개발 노력이 증대하게 되면서 최근에는 기술도입과 자체 연구개발 활동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도입이 성숙기의 기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새로운 기술의 원천에 대한 접근성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또한 국내기업의 기술도입의 경우 중복도입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기술확산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서중해, 1998).

  사례연구를 통해 밝혀진 우리나라 기업의 기술획득 전략은 여러 특성을 보인다. 우선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술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각기 다른 획득 양식을 취했다. 초기에는 해외 기술자를 초빙하거나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 인력의 스카우트를 통해 기술을 획득하였지만 투자능력과 생산능력이 향상되면서 기술 라이센싱이나 OEM, 자본재 구입, 기술자 해외연수, 해외 기술인력 현지 채용 등을  통해 기술을 획득하였다. 또한 자체적인 기술능력이 일정정도 확보된 후에는 현지연구소를 설립하거나 전략적 기술제휴를 통해 기술을 획득하였다.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여 신사업분야로 진출할 때 우리나라 기업은 기존의 다른 사업분야에서 축적한 능력이나 계열 기업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즉, 기존에 축적한 능력과 외국으로부터 획득한 신기술을 결합하여 새로운 사업분야로 진출하는 양태를 보였다(조현대, 1998).

  한편, 기존의 사업과 불연속적인 신규사업으로 진출하는 경우에 기업은 기술을 획득하기 위하여 연구소를 설립하거나 현지 인력을 고용하는 것과 같은 기술획득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1996년 현재 민간기업의 해외연구소 또는 기술개발 목적의 현지법인은 62개로 파악된다. 업종별로는 전자와 자동차 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지역적으로 미국, 유럽,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해외연구소의 연구 전담인력의 규모는 대부분이 30인이하로서 선진국의 해외 현지연구소와 비교해 볼 때 그 규모가 작다.

  이렇게 기업의 해외 연구개발 활동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활동 전반의 현지화 정도와 비교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연구개발 활동의 현지화가 더 진척되어 있다.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연구개발 현지화의 목적이 자체기술 능력의 부족을 메꾸기 위한 기술획득에 있기 때문이다. 

4.5 민간부문의 기술혁신체제

  우리나라의 민간기업은 전반적으로 지난 70년대와 80년대 도입한 외국기술을 소화하고 이제 도입기술의 개량, 향상을 위한 소폭적인 기술혁신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은 90년대에 들어서 국제경쟁력이 약화됨에 따라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설치한 부설연구소가 3,000개가 넘었고 민간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 투자액의 78%(1996년)를 차지하였다.     

  민간기업의 기술혁신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으나 대기업 위주의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 기술혁신이 중소기업 저변까지 확대되지 않고 있다. 1995년 상위 20개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집중도가 57.5%에 달했고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기업중 기술혁신을 실현한 기업은 기업수 기준으로 제조업 총기업수의 49.2%를 차지하였다. 기술혁신 형태별로 보면 신제품 혁신 실적이 있는 기업이 37.4%, 기존 제품의 개선을 이룩한 기업이 37.5%,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거나 기존 공정을 개선한 기업이 32.6%였다. 이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낮지 않다(독일 53%, 프랑스 49.1%, 이태리 47.7%, 캐나다 35.8%).

  기업이 기술혁신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목적은 제품의 품질 향상이며, 다음으로는 시장 점유율의 확대 및 유지와 국내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혁신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사내 연구개발이며 그 다음으로 제품의 수요자 및 수요 기업, 기업 내부의 판매부문, 기업 내부의 생산부문 순으로 나타났다. 원료 및 부품 공급자와 기계 및 장비 공급자는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달리 국내 기업들의 혁신 활동에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 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자본재산업의 취약성을 반영하였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인력의 부족을 기술혁신 활동의 가장 심각한 애로요인으로 여기고 있으며, 국내 기업과의 과도한 경쟁, 기술정보 부족, 재원의 부족 등도 주요 애로사항으로 제기하였다. 기술혁신 실적을 가진 기업이 1995년도 한 해 동안 사용한 기술혁신 비용은 약 9조 2천억원으로서 매출액의 3.65%에 상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혁신 비용에서 차지하는 주요 비목은 연구개발비가 37.5%였으며 신규 생산설비 투자비용 28.6%, 시제품 개발비 15.5%, 외부 기술획득 비용이 6.0% 등이다. 비용의 조달에 있어서는 평균 내부 자금 54.5% 외부 자금 45.5%로 나타났다.

  기술혁신 기업의 95년도의 총매출액중 기술혁신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61.5%였다. 기술혁신 제품의 40.4%가 신제품이였고, 기존제품의 품질 성능을 개선한 제품이 59.6%를 차지하여 우리나라 기술혁신 활동이 기존 제품의 품질 향상에 주안점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혁신 기업이 95년도에 이룩한 총수출액중 기술혁신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61.5%로 상당히 높았다. 기업이 혁신한 신제품의 시장은 국내가 23.6%였고 해외(수출)가 28.5%로 해외 시장이 다소 높게 나타나 해외 시장을 보다 중시하고 있음을 나타냈다(윤문섭.장진규, 1998).

  한편 1996년 현재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수는 최소 1,500업체에서 최대 2,500업체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평균 매출액은 51억 6천3백만원으로서 일반 중소기업의 평균 매출액 16억 8천1백만원보다 2-3배 이상 높다. 또한 평균 종업원수도 49명으로서 일반 중소기업의 23명보다 2배이상 고용하고 있어 높은 고용 창출효과를 가진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는 11%로서 대기업의 2.57%, 일반 중소기업의 0.42%보다 월등하게 높다. 그리고 매출성장률은 40.4%로서 일반 중소기업의 15.9%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몇몇 사례에 따르면 성공적인 벤처기업은 한 분야의 기술자산을 토대로 하여 그것을 다른 분야의 기술자산과 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연구소와 기업에서 창업한 벤처기업은 창업 당시부터 자신들이 지향해야 할 사업영역을 명확히 하고 출발했던 반면, 대학에서 창업한 벤처기업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다른 분야를 사업영역으로 설정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벤처기업은 규모가 커지게 됨에 따라 경영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으나 기업에서 창업한 창업자는 이를 상대적으로 쉽게 극복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성장단계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정부 연구개발사업이나 정책자금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정책금융 지원들은 벤처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연구개발사업과 정책자금은 창업 초기단계에 투자하기를 꺼려하는 벤처자본을 대신하여 투자된 모험자본의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조사되었다(송위진, 1998).

  민간부문의 기술혁신체제를 산업측면에서 살펴보자. 일반기계산업만을 기준으로 자본재산업의 기업체수는 1994년에는 1만 1,572개에 이르러 제조업 총업체수의 12.8%를 점유하였다. 이들 업체가 생산하는 생산액은 미국 달러貨 기준으로 1995년 현재 116억달러에 이르며 자급도는 65% 수준이다. 같은 해 자본재 수출은 82억달러에 달했으며 90년대에 들어서서 연평균 10%의 신장세를 보였다. 자본재 수입은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으나 절대규모가 1995년에는 204억달러에 달했고 국내 생산액의 53.8%에 달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 적자규모는 122억달러에 달했다.

  대표적인 자본재산업의 하나인 우리나라 공작기계산업이 1963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에서 획득한 총특허수는 52개로 대만의 319개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대만의 16%) 기술혁신 활동이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작기계산업의 경우 1990-94년 기간중 40개의 미국특허를 획득하여 외국인특허 합계중 0.61%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국내 특허등록은 1975-79년 기간중 7건에서 1990-95년 기간중에 408개로 대폭 증가하여 기술혁신이 기존기술의 개량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재 기술혁신에 있어서 중요한 사용자-생산자간 상호작용 학습이 우리나라에서는 미약하다. 사용자 기업은 제품의 품질 향상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국산 자본재의 품질과 성능을 신뢰하지 않고 외국산 자본재를 구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국산 자본재를 어렵게 개발한 전문 생산기업은 내수 시장에서 판로를 개척하기가 매우 어려워 국산 개발 의욕이 낮다. 사용자 기업이 자본재를 수입하여 조달함으로써 전문 생산기업과의 상호작용 기회가 박탈되고 이들간의 네트워크가 불안정하며 양자간의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이공래, 1998).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생명공학에 참여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현재 생명공학산업에 있어서는 성장초기에 머물러 있다. 기존 대기업이 기술도입을 통해 외국기술을 습득하고 일부 상업화에 성공을 거두기는 했으나 기술혁신의 위험이 낮고 시장규모가 작은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1994년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는 1,345억원으로 국가 총 연구개발 투자의 1.7%를 차지한다. 이중 산업계가 60%인 801억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정부나 나머지 40%인 544억원을 투자하였다.

  우리나라 생명공학산업의 과학지식 기반은 타 국가들에 비해 매우 취약하나 최근 우수한 과학자가 증가하고 있다. 창의적 연구 진흥사업에서 최종 선정된 과제중 37%인 10개 과제가 생물·의료 분야였다. 우리나라에서 생명공학 연구만을 전담하고 있는 과학기술처 산하의 생명공학연구소이며, 동연구소는 1985년에 설립된 정부출연(연)으로 현재 박사급 연구원 200명을 포함한 400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1984-97년까지 국제 학술잡지에 게재된 국내 과학자의 논문 중 약 20%정도를 생명공학연구소가 차지해 연구업적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나타냈다.

  우리나라 생명공학산업의 발전단계상 기업과 공공부문의 연계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미약한 상태에 있다. 산·학·연 정보 및 인력의 교류, 협동연구회, 산·연 또는 산·학간 연구원 파견근무 등  다양한 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공공부문과의 연계가 미약하다. 공공부문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기업도 기업과 공공부문간 연계의 실질적 성과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생물정보시스템과 같은 기술 하부구조도 취약하여 생명공학분야의 벤처기업 창업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안두현.한성구, 1998).

5. 종합평가: 한국 국가혁신체제의 약점과 강점

5.1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의 약점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는 지난 60년대 산업화와 함께 공공 연구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약 40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는 1995년 현재 9조 4,400억원의 연구개발 투자액과 13만명 이상의 연구인력을 포용하고 연 255조억원 이상의 생산액과 1,250억 달러 이상의 수출액을 달성하는 우리 경제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의 국가혁신체제가 이제 어느정도의 성숙된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자체 동력을 갖고 우리의 독창적인 과학기술 지식과 문화를 창출하는 데는 아직도 많은 취약점이 존재하고 있다.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국민경제를 떠받치고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할 국가혁신체제의 취약점은 곧 우리 경제의 약점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는 기술혁신의 제도적 환경이 취약하고 과학기술 하부구조가 미비되어 있는 등 국가 과학기술의 기반이 취약하다.

  기술혁신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의 제도적 환경은 기술혁신 친화적이지 못하다. 금융제도의 경우 벤처기업이나 기술혁신보다는 대기업과 설비투자 친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연계조직들의 경우에도 수평적인 연계를 통한 기술학습을 촉진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창의성보다는 획일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분야의 사회적 위상도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에 있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는 되고 있지만 그것은 실체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수사적인 측면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 과학기술의 문제는 부수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왔다.

  한편 정부의 적극적인 과학기술 투자로 인하여 지난 30여년 동안 공공 연구기관, 대학, 기업 등 혁신 주체들이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간의 미약한 연계로 인하여 기술지식의 확산이 원활하지 못하고 시스템 내에서의 기술확산 메카니즘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또한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경제성장을 기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는 도입한 기술지식을 시스템 내부에서 최대한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국가혁신체제의 효율을 높이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우리의 국가혁신체제는 같은 양의 자원을 투입해도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의 양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혁신체제가 갖는 또 하나의  취약점은 최대 혁신주체의 하나인 대학이 제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국가혁신체제의 구조상에서 볼 때 대학은 과학기술지식을 창출하고 가공, 생산하여 기업에게 확산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은 연구를 통한 지식의 생산보다는 다른 곳에서 생산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에 치중해 왔다. 따라서 대학이 전체 박사급 연구인력의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을 가능케 하는 연구에 있어서는 매우 부진한 실정이다.

  취약한 대학의 연구기능은 기초과학 능력의 부족을 초래하여 대학에서 양성되는 고급 기술인력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지식의 확산 메카니즘이 취약한 상황에서 인력 양성을 통한 지식의 전달은 기술확산을 보완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양성된 인력의 질이 낮았기 때문에 인력양성을 통한 지식의 확산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여 결국 국가혁신체제의 최대 목표인 기업의 기술능력 향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이상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의 취약점은 주로 공공부문과 연관된다.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의 기술경쟁력을 제고하는데 간접적이고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공부문이 국가혁신체제에서 정의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취약한 상태로 장기간 지속될 때는 민간부문의 기술경쟁력이 치명적으로 손상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동안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것도 공공부문의 역할 부진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즉, 대학의 연구기능 취약이나 공공 연구기관 등 혁신 주체간의 미약한 연계, 기술확산 메카니즘과 정책의 부족, 과학기술 하부구조의 미비, 취약한 제도적 환경 등 국가혁신체제의 약점이 민간기업의 기술능력을 배양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5.2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의 강점

  이 때까지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살펴 봤는데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가장 두드러진 강점은 우리 국민의 강한 교육열로 인하여 매년 고학력 인력이 왕성하게 공급되고 있는 점이다. 인구 10만명당 이공계 학사 이상 고급인력의 배출규모가 163명으로서 일본 84명, 미국 94명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우리나라는 바로 이 고급 인력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강력한 국가혁신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고급인력의 공급 이외에도 우리나라는 옛부터 학문을 숭상하는 전통문화가 유지되고 있다. 학문을 숭상하는 전통문화는 다가오는 지식기반사회에 대응하는데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 앞으로 과학과 기술의 통합이 가속됨에 따라 모든 산업의 지식집약화가 진전되고 과학집약산업이 상대적으로 고성장을 이룩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학문숭상 문화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는 또한 비교적 경험 있는 공공 연구조직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 국공립 시험연구기관 등 모두 178개 이르고 있다. 공공 연구조직의 역할에 관해 최근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국가의 중요한 지적 재산임에는 틀림 없다. 여기에다 257개에 달하는 대학이 약 4만 5,000명에 달하는 고급 연구인력을 고용하고 있어, 대학은 막강한 연구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잘 조직화하여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연구집단으로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는 강력한 국가혁신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우리 국가혁신체제의 강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잘 구축된 기업의 생산기반이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 경제개발을 추진한 이후로 1995년 현재 약 9만 5,000개 이상의 기업체가 제조업에 참여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낙후나 기술력 부족이라는 약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 기업은 생산활동을 왕성하게 영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또한 이들 기업은 3,000개 이상의 부설연구소를 설치하여 연구개발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

  이같이 많은 기업과 부설연구소, 대학의 높은 연구 잠재력, 많은 수의 경험 있는 공공 연구조직, 그리고 고학력 인력의 왕성한 공급, 학문을 숭상하는 사회문화 등이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의 강점이자 높은 기술혁신 잠재력의 원천이다. 이것을 달리 말한다면 우리나라는 강력한 지식집약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양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1세기에 도래할 지식기반사회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경제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가혁신체제가 갖고 있는 강점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는 우리 사회의 각종 제도와 지식학습 문화가 얼마나 기술혁신에 친화적이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경쟁력있는  국가혁신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제도의 혁신과 함께 문화까지도 변화시켜 나가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