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쟁력 평가와 새로운 대안 목색

1. 문제의 제기

  국가단위의 기술경쟁력 평가는 일반적으로 국가의 순위를 매기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의 국가경쟁력 평가는 49개국을 대상으로 국가경쟁력을 구성하는 주요 부문과 전체에 대한 순위를 부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0을 향한 과학기술발전장기계획』등 각종의 과학기술부문 계획에서 핵심지표로 활용된 종합과학기술력 지수도 그 목적은 한국 기술경쟁력의 세계 순위를 매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술경쟁력 평가의 의의가 국가 간 순위를 부여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경쟁력을 평가하는 목적은 경쟁상대국과 한국의 기술경쟁력의 현 위치와 잠재력을 비교하여 미래의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력 평가에서 순위를 매기는 일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경쟁상대국과 비교를 통하여 한국 기술경쟁력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과학기술의 미래 진로와 정책의 선택과 관련한 유익한 교훈을 도출할 수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기존의 기술경쟁력 평가의 한계와  문제점을 논의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의 기술수준 보다는 미래의 발전가능성 측면을 중시하는 경쟁력 평가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이러한 방법론의 응용을 논의한다. 제2절에서는 기존의 기술경쟁력 평가 방법을 정리하고, 제3절에서는 국가단위의 기술경쟁력평가에 준거가 될 수 있는 기업단위의 경쟁력 평가 방법을 요약한다. 제4절에서는 새로운 평가방법론을 제안하며, 제5절에서는 이러한 평가방법론의 응용을 논의한다.

 

2. 기존의 기술경쟁력 평가 방법

  IMD의 평가

   IMD는 스위스의 비영리 민간기구로 국가경쟁력의 순위를 1996년이래 연례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IMD의 평가에서는 국가경쟁력을 ①국내경제 ②세계화 ③정부 ④금융 ⑤인프라 ⑥경영 ⑦과학기술 ⑧인력의 8개 분야로 구분하고 이와 관련한 223개 항목을 평가한다. 이들 항목 중 계량지표는 통계지표를 사용하여 산출하고, 비계량 지표는 전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223개 항목 가운데 계량지표는 136개이며 비계량 지표는 87개이다.

  IMD 평가에서 과학기술부문의 평가는 다섯 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연구개발투자부문에서는 국내총생산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율, 국가 연구개발투자의 절대 규모 등이 평가 요소이다. 둘째, 연구개발인력 부문에서는 과학기술인력의 숫자, 유자격 엔지니어의 충분성 등이 감안된다. 셋째, 기술관리 부문에서는 기업간 기술협력의 정도, 기술개발에 대한 재정지원 여부 등이 포함된다. 넷째, 과학적 환경 부문에서는 노벨상 수상자의 수, 의무교육에서 과학기술교육의 질 등이 고려된다. 다섯째, 지적재산권 부문에서는 특허등록 건수, 지적재산권에 보호에 대한 정부의 의지 등이 반영된다.

  IMD 국가경쟁력 평가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연구는 Porter(1990) 이다. 그는 기업의 경영전략에 대한 이론적 틀을 국가 단위의 경쟁전략에 적용하여, 경쟁력 관련 논의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인력의 양과 질, 자본축적 등 전통적 경제변수에 주로 근거한 경쟁력 논의에서 간과되었던 구조적 요인들을 추가하였다. 전후방관련산업의 병행발전, 기업간 네트워크 등 경제의 구조적 효율성을 나타내는 변수들이 국가 경쟁력의 결정요인으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주장하였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IMD 에 의한 한국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표 1>에 수록하였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IMF 경제 위기 직후에 하락하였다가 최근에 회복되는 추세이다. 한국의 과학기술 부문의 순위는 국가경쟁력 순위보다는 높다. 즉 과학기술부문이 다른 부문보다는 상대적인 경쟁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 1> 한국의 국가경쟁력 평가

(세계49개국 중 순위)

구 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종합 순위

27

30

35

38

28

국내경제

 4

13

34

43

19

세계화

43

45

46

40

30

정 부

33

32

34

37

26

금 융

40

43

45

41

34

인프라

34

34

31

30

31

경 영

28

26

34

42

33

과학기술

25

22

28

28

22

인 력

21

22

22

31

26

자료: IMD, The World Competitiveness Report 1996-2000

  

  IMD의 2001년 평가 결과는 <표 2>에 수록되었다. 평가의 구성이 전년도와는 바뀌었기 때문에 전년도 결과와 1대1 비교는 하지 못하였지만, 주요부문에 대한 비교는 가능하다. 경제운영성과와 정부행정효율부문의 순위는 높아졌지만, 기업경영효율과 발전인프라 구축 부문의 순위는 낮아졌다. 2001 년 기술인프라와 과학인프라는 각각 25위와 21위로 전년도와 유사한 수준이다.

 

 

<표 2> 한국의 국제경쟁력 순위

(세계 49개국 중 순위)

 경제운영 성과

19위

정부행정 효율

 31위

기업경영 효율

31위

발전인프라 구축

34위

국내경제 활력

38위

 제정구조

9위

생산성 향상

30위

경제 인프라

35위

 국제무역

33위

 재정정책

15위

 노동시장 여건

35위

 기술인프라

25위

 국제투자

37위

경제제도 기구

34위

 자금시장 효율

35위

 과학인프라

21위

고용 및 실업

9위

 기업경영 환경

44위

 기업경영 관행

39위

 보건 및 환경

30위

물가 및 생계비

30위

교육품질, 인적자원

32위

 세계화 적응

23위

가치체계문화

40위

출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2001년도 세계경쟁력연감」, 2001. 4. 25.

 

  과학기술부문의 평가내역을 보면 연구개발투자는 2000년 10위에서 2001년 8위로 상승한 반면 국내총생산대비 연구비는 5위에서 7위로 하락하였다. 기술관리부문의 경우 기술개발자금지원의 충분성은 28위였으며, 과학기술교육의 적절성부문은 34위였다. 지적재산권보호 정도는 32위였으며, 젊은이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는 34위였다.

 

  종합 과학기술력 지수

 

  IMD의 기술경쟁력 평가가 1990년 중반 이후부터는 폭 넓게 인용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투입산출 지표를 활용한 종합과학기술수준 평가방법이 많이 활용되었다. 그 대표적 예가 홍사균(1994,1995)인데, 투입지표와 산출지표를 활용해 산출한 국가 과학기술력 종합지수가 제시되었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투입지표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연구개발투자의 규모, 국민총생산 대비 연구개발투자의 비율, 연구인력의 총수, 인구비례당 연구원 수 등을 가중 평균하여 산출되었다. 이 지표를 기술개발력으로 정의하였으며, 기술개발력의 세계 순위는 한국이 12위(1990)로 평가되었다.

  산출지표는 과학기술의 성과로 나타나는 기술무역액, 특허출원수, 인구만명당 특허출원수, 논문발표수, 기술집약제품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근거로 하여 계산된다. 이를 기술개발성과지수라고 정의하였으며, 기술개발성과지수의 국제 순위는 20위(1990)로 평가되었다.

  기술개발력 지수와 기술개발성과지수를 종합하면, 종합 기술개발력 지수가 산출되는데 이 지수의 세계 순위는 미국, 일본, 독일, 소련, 스위스, 영국의 순이며, 한국은 18위에 해당된다.

  이 연구의 결과는 과학기술정책의 수립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2010년을 향한 과학기술발전장기계획에는 이 순위를 어떻게 단계적으로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010 계획에서는 한국의 종합 과학기술력 선진 7개국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연구는 한국과학기술투자의 효율성과 관련한 논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의 기술개발력 지수는 12위인 반면 기술개발성과지수는 20위로 투입지표와 산출지표간에 괴리가 크다. 다시말하면, 투입은 많은데 비해서 상대적으로 성과는 낮다는 것이다. 경제기획원 등에서는 이 연구를 과학기술투자의 확대보다는 효율화가 더욱 시급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이원영(1995)에서는 이러한 투입지표와 산출지표 간의 괴리를 투자의 효율성보다는 투자의 시차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였다. 기술혁신의 투입지표의 순위에 비해서 산출지표의 순위가 낮은 것은 우리의 기술혁신 활동의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혁신의 투입과 산출간에 상당한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산출지표에 의한 순위가 낮은 것은 과거에 투입이 적었던 것이 표출된 결과이다. 즉 투입산출간의 효율성은 당해 년도 수치를 비교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입의 과거 누적량과 현재의 산출을 비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계와 문제점

 

  IMD의 평가나 종합과학기술력 평가는 궁극적으로는 국가간 순위를 매기기 위한 평가이다. 즉 기술경쟁력을 대표할 수 있는 요소들을 지수화하고, 이러한 지수를 종합하여 하나의 단일 지수를 창출하여 이를 국가간에 비교를 한다.

  종합과학기술력 평가는 연구개발투자액, 기술무역액 등과 같이 가용할 수 있는 통계 수치에 전적으로 의존하였지만, IMD 평가는 기술경영과 같은 정성적 부문에 대한 지표도 포함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IMD의 평가 방법이 종합과학기술력의 평가보다는 우월한 것으로 판단된다. IMD의 평가는 정량적으로 나타낼 수 없지만, 기술경쟁력을 좌우하는 정성적 요인들을 포함한 것이 장점이다. 물론 이러한 전문가 평가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IMD의 평가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IMD의 평가 방법이 종합과학기술력 평가방법보다는 우월하지만, 이 평가가 국가간 기술혁신시스템의 우월성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100%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국가간 기술경쟁력을 비교한다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 기술혁신시스템을 비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IMD에서 다루고 있는 요소들만으로는 국가간 기술혁신시스템의 차이를 충분히 비교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IMD의 평가는 국가경쟁력 평가가 목적이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기술경쟁력 평가는 하나의 부문으로 포함되었다. 따라서 IMD의 기술경쟁력에 대한 평가가 완결성이 부족한 것은 불가피한 결과라 하겠다. 즉 기술경쟁력 평가로 전문화되지 않는 평가이기 때문에 평가의 완결성면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3. 기업경쟁력 평가의 방법론과 시사점

  국가 기술경쟁력 평가의 방법론 논의에서 핵심적인 과제는 현 시점에서의 역량 뿐 아니라 미래의 잠재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수준을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 발전의 잠재력에 대한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 지식정보화시대에는 축적된 지식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학습 능력이 중요하다. 즉 기술경쟁력의 평가는 동태적 경쟁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Teece(2000)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이 연구는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방법론을 논의하고 있지만, 그 접근방법은 국가의 기술경쟁력을 평가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치를 중요시하는 평가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중시하는 평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의 평가나 국가의 평가에서 공히 중요한 요소이다.

 

  PPP framework

 

  Teece의 기업경쟁력 평가의 틀은 PPP로 요약된다. 여기서 PPP는 과정(Process), 현위치(Position), 및 경로(Path)를 의미한다.

  과정이란 기업이 일을 처리하는 행태를 의미하는데 네 가지의 핵심 기능을 포괄한다. 여기서 네 가지 핵심 기능이라 함은 종합/조정(coordination /integration), 관행화(routinization), 학습(learning), 재구성과 전환(reconfiguration and transformation)을 의미한다.

  종합/조정은 조직이 원활히 운영되기 위한 필수적 기능이다. 기업 내부 부서간의 종합조정 기능이 잘 작동해야 하며, 시장 등 외적인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관행화를 통하여 기업은 성과를 거둔다. 좋은 관행을 정착시킨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의 경쟁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학습은 새로운 관행을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학습은 개인만이 아니라 조직 단위에서도 이루어진다. 학습은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과정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다. 재구성과 전환은 외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할 때 필요로 하는 기능이다. 시장과 기술의 변화에 부응하여 조직이 재구성되고 조직의 경영방식이 전환되어야 한다.

  현위치는 기업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의미하는데, 자산은 기술자산(technological assets), 보완적 자산 (complementary assets), 금융자산(financial assets), 지리적 자산(locational assets)으로 분류된다.

  기술자산은 항상 시장을 통해서 거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에 체화된 기술은 기업의 중요한 자산이다. 기업의 기술자산은 특허 등을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기술의 보유, 보호, 활용 능력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보완적자산은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한 경험으로부터 축적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한 경험은 자동차부품의 생산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금융자산은 내부 자금조달 능력이다. 외부로부터의 차입이 항상 늘 가능한 것은 아니며, 외부 차입을 위해서는 기업의 핵심기술이나 노하우가 누출될 염려도 있다. 지리적 자산이 중요한 이유는 기업의 위치에 따라 기업에 대한 법적, 제도적 환경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로는 현재는 과거에서 진화된 것이고, 미래는 현재로부터 진화된다는 관점에서 중요하다. 과거와 독립된 현재는 있을 수 없으며, 현재와 독립된 미래도 없다. 이는 학습이 전혀 새로운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친숙해진 지식과 여건의 주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과거에 어떤 경로를 따라 왔으며, 앞으로 어떤 경로를 택할 것인가는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경로의존성은 기업의 기술기회(technological opportunities) 선택에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기술기회의 폭은 넓고 다양한데, 기업이 어떤 경로를 선택할 것인가는 기업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경로를 어떻게 현명하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능력은 많은 경우 기업의 과거 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시사점

 

  PPP framework 은 기존의 기업경쟁력에 대한 평가 방법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기존의 이론들은 현위치를 주로 대상으로 하는데 반하여, 이 이론은 과정 및 경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기업의 정태적 경쟁력보다는 동태적 경쟁력을 중시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국가 단위의 경쟁력 평가에서도 활용되어야 한다. 현위치에 근거한 평가보다는 미래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든지 또는 국가차원에서든지 기술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지식을 흡수하고 창출하는 능력이다. 시장이나, 기술수준 측면에서 불리한 면은 극복이 가능하지만, 동태적 역량이 부족한 것은 극복이 불가능하다. 한국 기업발전의 역사를 보더라도, 현재의 시장 점유율이나 기득권에 안주했던 기업은 쇠퇴의 길로 갔으며, 반면에 혁신형 기업은 초기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성장했다. 산업혁명 후 세계 경제의 주도국은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신기술 패러다임에 대한 국가 적응능력의 차이가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4. 새로운 평가 방법론

  기본전제

 

  앞에서의 논의로부터 기술경쟁력의 평가를 위해서는 정태적 측면 뿐 아니라 동태적 측면이 고려되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다시 표현하면, 현위치 뿐 아니라 과정과 경로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 평가 방법론을 국가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국가의 기술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인들은 기업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기술경쟁력 평가를 여러 각도에서 시도할 수 있지만, 평가방법론의 모색에서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론은 국가기술혁신시스템(National Innovation System)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한나라 기술혁신의 성과는 국가의 특성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인적자원, 금융자본 등 기술혁신을 위한 투입요소, 산학연의 협력 관계, 전후방관련 산업간의 상호작용, 지적재산권보호 등 기술혁신의 방향과 성과를 결정짓는 요소들이 복합된 종합적인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밝힌다. 따라서 국가 기술경쟁력에 대한 평가에서 고려해야 할 요인들은 국가기술혁신시스템의 핵심 요소들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기술경쟁력의 평가라는 관점에서 국가기술혁신시스템 이론의 한계는 이 이론이 국가 단위의 기술혁신시스템의 시스템간의 우월성이나 장단점을 판단할 수 있는 준거를 많이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이론은 국가기술혁신시스템의 작동원리나 국별 차이 등에 대한 설명과 분석에 주력한다. 예를들어 산학연 협력 패턴이 국가간에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에 대한 연구는 있지만, 어떤 유형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연구는 별로 없다.

  국가기술혁신시스템이론은 기술경쟁력 평가에 밑바탕이 되지만, 역으로 기술경쟁력 평가가 이러한 국가기술혁신시스템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기술경쟁력 평가는 본질적으로 각국의 시스템을 평가해서 우열을 판단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결국 최적 국가기술혁신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유발한다.

 

  평가의 구성요소

 

  앞에서의 논의를 종합하여 기술경쟁력 평가의 구성요소를 <표 3>에 정리하였다. 현위치 부문은 연구개발투자, 연구인력, 과학기술성과, 산업구조 등을 포함하여 현재의 기술수준을 나타내주는 양적 지표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위치에 포함된 구성요소는 종합과학기술력 평가의 구성요소와 유사하지만, 산업구조에 관한 부문은 종합과학기술력 평가에는 포함하지 않은 내역이다.

  과정 부문은 주로 동태적 경쟁력과 관련된 요소를 포함한다. 기업경영, 산학연협력, 교육과 훈련체제, 세계화, 정부의 행정효율 등 기술혁신시스템의 효율성을 나타낼 수 있는 영역으로 구성된다. IMD의 평가와 비교하면, IMD는 기업경영과 정부의 기술관리만을 포함한데 반하여, 여기서는 산학연협력, 교육과 훈련체계, 세계화 등을 포함시킨 것이 차이이다.

  경로 부문은 미래 기술패러다임에 대한 준비태세와 기술적 기회의 선택 능력을 주로 평가한다.

<표 3> 기술경쟁력 평가의 구성요소

구분

 평가분야

 현위치

(position)

 - 연구개발투자 : GDP 대비 비율, 절대액, 정부부담비율

 - 연구인력: 과학기술인력 공급, 연구원 수, 연구인력의 질적 수준,

 - 과학기술 성과: 특허, 논문발표, 기술무역  

 - 산업구조: 전후방관련산업의 집적, 첨단기술산업비중, 벤처

과정

(process)

 - 기업경영: 조직학습, 기획능력, 유연성, 분권화, 소유지배구조

 - 산학연협력: 공동연구, 인력유동성, 실용화        

 - 교육과 훈련 체제: 정규교육, 직업훈련, 평생교육

 - 세계화: outsourcing, 전략적 제휴, 외국인투자, 국제공동연구

 - 정부행정효율: 기획, 종합조정, 전문화

경로

(paths)

  - 미래 신기술 패러다임에 대한 준비

  - 기술적 기회의 선택 능력: 분권화, 다양화

 

  <표 3>에서 제시한 새로운 평가 방법론의 장점은 경로와 과정을 중요하게 취급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경쟁력의 평가에서 Teece의 접근 방법과 맥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하면, 이 평가의 특징은 미래의 가능성을 더욱 중시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5. 새로운 평가 방법론의 응용

  앞에서 제시된 평가방법론을 적용하여 한국의 기술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위치에 포함된 평가분야는 대부분 계량화가 가능하고 이를 활용하여 비교가 용이하지만, 과정과 경로에 해당하는 평가분야는 계량화가 불가능하다. 계량화가 불가능한 부문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평가의 대상이 되는 모든 국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요구한다. 나아가 이러한 지식을 종합하여 시스템의 장단점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분석적이고 실증적인 경쟁력평가는 향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 이 글에서는 한국의 기술경쟁력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제시하여 앞으로의 이 분야 연구에 가설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표 3>에서 제시된 평가분야 들에 대해서 한국의 강점과 약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여기서 강점과 약점이라 함은 기술선진국에 비교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술경쟁력의 평균수준에 대한 비교임을 밝혀 둔다.

 

  한국 기술경쟁력의 강점과 약점

 

  현위치와 관련된 평가부문은 IMD 평가에서나 종합과학기술력의 평가에서도 포함된 부문으로 그 내역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연구개발투자, 연구개발인력 등 기술혁신을 위한 자원투입의 양적 측면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 또한 특허등록건수 등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현위치 부문에서 취약한 점은 과학기반과 관련산업의 집적 부문을 들 수 있다. 학술논문 발표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기초과학수준은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구조면에서 보면 조립가공형 산업으로부터 산업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재, 부품, 자본재 등 상방산업의 기반이 약하며 이는 상방산업과 하방산업의 상호작용에 의한 기술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과정에 속하는 평가부문은 대체로 한국이 취약하다. IMD 평가에 포함되었던 기술관리부문을 보면 한국의 순위는 평균 32위(기술개발자금지원의 충분성 28위, 과학기술교육의 적절성부문은 34위, 지적재산권보호 정도는 32위, 젊은이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 34위)로 과학기술부문의 종합순위보다 낮다.

  기업경영, 산학연 협력, 교육과 훈련, 세계화, 정부의 행정효율 그 어느 부문도 한국의 경쟁력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경영 측면을 보면 산업사회에서 형성되었던 중앙집중형, 획일적 문화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연공서열제에 의한 인사제도는 창의력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기업의 연구관리 면에서 연구부문과 생산부문간의 연계가 취약하고, 조직 구조가 경직적이다.

  산학연 협력은 선진국 수준은 물론 대만, 이스라엘 등 경쟁상대국 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산학연간의 공동연구나 협력연구가 부진하고 인적 교류도 매우 저조하다. 1970년대의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설계되었던 공공연구기관이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변신하지 못하여, 공공연구기관의 새로운 역할 정립이 시급하다.

  교육 부문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 때문에 그동안 한국의 강점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가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평준화를 근간으로 하는 초, 중, 고 교육은 창의적이고 차별화된 교육을 방해하는 요인이며, 학생들이 학업에 투입하는 노력이나 시간에 비하여 이루어 내는 성취도는 낮은 실정이다. 대학 교육과 연구는 점차로 개선되는 추세이나 아직도 세계 일류라 할 수 있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 학과 정원의 고착화 등 인력 공급의 경직성 때문에 인력 수급상의 불균형이 크다.

  세계화는 불가피한 추세이며 민간부문에서는 세계화가 불가피한 경쟁전략으로 인식되어 그동안 많은 진전이 있었다. 기술의 outsourcing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첨단기술분야에서 외국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도 활발해지는 추세이다. 그러나 출연연구기관 및 대학의 세계화는 부진하다. 해외의 우수 대학 또는 연구기관과의 연구협력이나 인적교류가 별로 없으며, 국제 공동연구도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

  행정의 효율성 부문과 관련한 IMD의 평가는 높지 않다. 물론 IMD의 평가는 과학기술행정만이 아닌 행정 전반의 효율성이기는 하지만, 과학기술행정부문의 경쟁력이 다른 행정부문의 경쟁력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행정의 공통적인 문제는 전문화가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시 위주의 인력 채용은 과학기술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부문에는 부적절하다. 기술고시의 경우에도 초임 기준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에 상당한 경험이 축적된 중견의 전문가가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또한 과도한 순환보직 인사 관행 때문에 공무원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발전하기 어렵다.

  경로와 관련된 부문은 장점과 단점이 혼재한다. 한국의 장점은 21세기 주도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IT 부문에서 상당한 산업기반과 기술축적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관련 정보통신이나 이동통신부문의 기술수준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미래에 적절한 경로 선택 능력과 관련해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로는 기술기획이 지나치게 중앙집중형인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출연연구기관이 등 공공연구기관이 위탁과제 수행기관으로 전락하여, 공공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기술의 미분화와 융합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기획의 분권화가 필요하다.

 

  종합

 

  개괄적으로 살펴본 한국기술경쟁력의 강점과 약점을 종합적으로 요약하면, 강점은 주로 현위치(position) 측면에 있는 반면 약점은 과정(process)에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기술경쟁력의 미래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 장기적인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현위치이기보다는 과정 즉 역동성이기 때문이다.

  Krugman(1994)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선진국보다 기술진보의 속도가 빨랐었기보다는 자본, 노동 등의 투입량을 급속히 증대시켜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기술경쟁력의 약점이 과정부문에 있다는 시각과 맥을 같이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 기술경쟁력의 미래에 대해 큰 우려를 하게 된다.

  앞으로 기술경쟁력에 대한 평가가 좀더 활발하게 이루어져 이러한 우려가 사실이 아님이 입증될 수 있기를 바란다. Nelson 과 Pack(1999)은 한국 등 신흥공업국의 경제성장은 단순히 자원의 축적(accumulation)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국기술의 창조적 소화개량(assimilation)이 있었기 점을 강조하였다. 즉 한국 기술경쟁력의 역동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Krugman의 주장처럼 실증적인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은 가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가설들의 검증을 위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6. 맺음말

  이 글에서는 제안한 기술경쟁력 평가 방법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재의 경쟁력보다는 미래의 경쟁력을 평가하도록 평가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쟁력 평가가 현위치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대안은 과정과 경로를 중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가진 것이란 허망한 것이다. 현재의 기술수준이 높더라고, 이를 끊임없이 개량하고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미래의 전망은 어둡다. 기술이나 정보는 실물 자산보다 진부화율이 매우 높다.

  둘째, 기술경쟁력 평가를 순위를 매기는 작업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는 과정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순위는 대중적인 흥미는 끌 수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교훈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경쟁력의 평가를 통해서 외국시스템의 장점을 배우고, 한국 시스템의 단점을 교정하는 대안이 발견될 수 있다.

  경쟁이란 남과 비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아무리 잘 하더라도 남이 나보다 더 잘 한다면 경쟁에서 진다. 그래서 경쟁은 각박하지만, 과학기술은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경쟁 상대국을 연구하고, 경쟁 상대국을 앞설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 기술경쟁력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