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 중국인을 말한다

  

  

  

  ◇ 해외 중국인들의 특징


- 동남아 거주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

 

 

  

 중국인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

 

 2. 중국인은 무엇인가

오늘날 본토중국인들에게 중국은 하나의 단일한 국가라는 소속감이 강하지만 동남아의 중국
인들은 이런 의식이 약하다. 이들에게 중국이란 '중화'라는 다소 관념적인 것에 다름 아니다.
다소 평준화된 본토중국인들도 곧 이해관계에 따라 변화를 할텐데 우리 한국인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의 자본주의적인 의식만으로 캐치업에 한계를 느껴 서구적인 것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다른 힘'을 찾아 정보화사회에 곧바로 진입함으로써 여전히 '서구 캐치업'을 추구
한 일본보다 앞선 분야를 개척한 것처럼 본토 중국인들도 곧 서구자본주의 지향에서 한계를
느껴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서구 캐치업'을 맹목적으로 추구한 결과는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장기침체와 탈출
구를 찾지못한 사회시스템의 문제야기이다. 일본인은 서구인보다 더 서구적인 사고방식과
제도를 갖고 있다. 일본의 문제는 그들이 만든 것이 아니 그들 눈에 비친 서구화의 추구였
다는데 있다. 때문에 서구가 자신의 한계에 다다르자 재빨리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 파멸에
서 탈출한 것과는 달리 그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싱가폴 역시 일본과는 달리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내부역량이나 문화적, 역사적 특성을 제쳐
두고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이 추구하는 제도를 만들어 달려온 결과 오늘날의 한계에 이르렀
다. 탈출구를 위한 제스쳐가 바로 일전에 이광요가 주장한 대학교수, 공무원 등의 인재들의
'기업활동 권장'이다

과거 이광요는 '우리는 우리 것을 두고 앞으로 달려 왔기 때문에 혹시 잃어버린 것이 없는
가하는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이 이제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박대통형의 위대함이 국민이 나아가야할 길인 비젼을 제시하고 국민을 결집시켜 이를 바탕
으로 경제적 부를 이루는 초석을 마련했다가 '먹고 살만큼의 부를 이루자' 이를 이룬 후의
국민이 공감할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데 몰락의 원인이 있듯이 이광요가 이끄는 싱가폴호 역
시 지금가지 유용했던 이광요식 비젼은 시류에서 멀리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싱가폴호의 영광은 이광요가 준 것이라면 앞으로 닥칠 싱가폴의 위기 역시 이광요가 이미
준비한 것이다.

이광요식 경제개발의 약발은 지금까지였고 앞으로 중국과 동남아에서는 인구 270만명에 불
과한 싱가폴 비슷한 인구와 저력을 갖춘 국가와 도시는 쏟아져 나올 것이며 싱가폴은 더 이
상 국제사회에서 지금의 영광과 지위를 갖기 힘들 것이다. 현재 중국의 인구 중 싱가폴만큼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구만 해도 싱가폴 전체 인구보다 더 많으며 앞으로 이
수치의 차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싱가폴인 전체가 영어구사력이 좋은 것도 아님을 고려
하면 이 차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한국을 움직이는 것은 서구적이거나 동양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 디지털 사회에
쉽게 안착하게 된 것은 오히려 우리가 가진 잠재적 역량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우리가 가진 역량은 유목민적인 사고와 중국적인 사고 그리고 서구화된
사고의 혼합에 있다.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스피드'와 통이 크다고 할 정도로 '넓은 시야'
절대권위나 복종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한 자유주의는 분명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에서
파생한 '평등의식'과 누구나 만나면 형님 동생 등으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도 유목민적인
'인정'에 근거한다. 위기 시의 힘의 '결집' 역시 주로 유목민적인 것이며 아엠에프사태 때 '금
모으기'를 보고 세계가 깜짝 놀란 것도 대부분 이런 정서에 기반한 것이다

오늘날 몽고와 같이 유목민생활을 계속하는 국가에서는 이 특징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들이 보는 한국인들은 서구와 중국, 유목인의 정서가 용해된 한국만의 특질적인 것이다. 언
급된 부분은 세계인이 놀랄 일이지만 몽골인들의 시각에서는 낯선 것이 아니다. 자유스러우
나 위기시에 나타나는 '결집력'은 역사적으로도 징기즈칸의 출현때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중국적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이와같이 '유목민''중국'
'서구'의 복합된 정서이다. 세계경제학자들은 디지털시대가 한국인의 정서에 우연히 들어맞
은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디지털시대가 아니라 다른 변화가 있었다해도 서구인보다는 더
유연하게 적응했을 것이다. 이제 사회격변에 적응하는 방법을 막 익히기 시작한 한국인들은
아마 미래에도 여전히 세계무대에서 저력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은 한국인들이 열대동남아나 추운 러시아나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적응할 환경을 제공하는 바탕이 되엇듯이 한국인의 복합적인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역량은
세계 어디에서도 낯설지 않게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동인이 될 것이다. 동남아인이 한국에
관광을 오면  가을날씨만으로도 추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세계 어디
서든 '덥다''춥다'고 말하면서도 활동하는데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듯이.  
  
'중국인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자신들의 과거의 그림자에 기대선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와 문화혁명으로 인한 의식의 통일화로 인한 신중국인들은 분
명 과거의 중국인도 아니며 서구인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와 혈연, 지연, 역사적, 문화적으로 얽혀 세계에서 유일하게 '형님''동생'이라고 불러도
서로 탓하지 않을 정도로 친근한 중국이지만 '나라가 크니 중국이 형님나라'라고 불러도 한
국인에게 별로 거부감을 주지 않지만 앞으로 세계의 전망과는 달리 한국이 중국에게 형님나
라로 불릴 수도 있다

한국인은 디지털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정체성을 이미 확립했고 중국
인은 오늘날에 맞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계기조차 아직 갖지 못하였다. 사회의 분열
이나 계급간, 계층간 차이도 한국인에게는 멸망으로 가는 문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
적으로 증명이 될 정도로 안정적이지만 중국은 정치체제도 아직 과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
으며 지역간 정서차이나 앞으로 빚어질 계층간 갈등문제 등 모든 것이 문제 투성이지만 이
를 극복할 정책이나 국민의 컨센서스확립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인이 중국을 말할 때 '그 유구한 역사에 대해 제가 뭘 알겠습니까마는...'이라고 지레 겁
부터 먹지만 그것은 오늘날의 중국이나 미래의 중국을 보고하는 평가가 아니라 과거 유구한
역사와 광대한 영토와 문화에 경외감에서 나온 찬탄인 것일 뿐이다

일본이 형식만의 서구 '캐치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지 못하거나 중국이
세상의 변화에 따른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한 앞으로의 영광은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구세대들이 정치나 경제, 행정에서 아직 중국적인 사고로 자리를 차지
하고는 있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껴 오래지 않아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그 자리를 떠나
게 되고 서구와 중국, 유목민의 특성을 고루 갖춘 무장한 신한국들에 의해 신한국호는 항해
하게 될 것이다
  
동남아에 진출한 중국인 역시 보다 전통적인 특징들은 많이 가지고 있지만 자신들의 정체성
찾기에는 실패하고 무늬만 중국인인채 현지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들이 그렇듯이...... 어쩌면 자신의 나라를 떠나 사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공통적인 핸디캡
이 '과거에의 상실'이자 '과거로부터의 단절'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면 그 나라의 관리들이 이민자들에게 충고하는 것이 '과
거를 잊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달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다소 역설적인 부탁일 것이다.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 찾기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에게도 단순한 뿌리찾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강력한 도구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