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파하는 심은하씨께,

요즘 동양화를 배우고 계시다구요. 화선지에 먹물이 잔잔히 젖어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데 좋은 방법은 없을 겁니다. 특히 까만 색 하나 가지고 환한 하늘부터 마루 밑의 컴컴함까지 묘사해내는 그 농담(濃淡)은 동양화만의 아름다움이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색만을 유지하며 확실한 색의 경계를 드러내는 서양의 물감과는 달리, 종이에 흡수되어 가는 먹물은, 자기가 지나간 곳을 지나가지 않은 곳 옆에 두면서 스스로의 색로(色路)를 느긋하게 퍼뜨려나가지요. 거기에는 자기만의 색의 고집이라던가 남과 다르게 보여야 하는 색이라는 강박관념 같은 것은 없습니다. 먹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먹물인 자기와 자기 아닌 종이와의 어울림이 있을 뿐이죠.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이기지 않아도 되는 공존의 영역을 동양화는 그려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동양화를 보면서 나는 당신의 삶과 직업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합니다.

먹물이 묻어나지 않은 곳은 허연 공백으로 남지만, 동양화는 그 공백을 색으로 메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 여백은 그 자리에서 먹물의 흔적을 뚜렷이 해주고 먹물이 이루고자 하는 형태를 같이 만들어줍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먹물이 그려낸 그림 전체의 일부가 되지요. 아니 실은 먹물과 먹물이 묻어나지 않은 공백이 같이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당신과 당신의 팬이 같이 당신 영화의 존재성을 영속시켜줄수 있는 것처럼.

동양화에는 원근감(遠近感)이 없습니다. 앞산과 뒷산이 나란히 그려져 있고, 평지에 그려진 청구(靑狗 푸른 개)는 산에 비하면 너무 크게 그려진 감이 있지요. 그래서 동양화는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그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산이 개보다 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산과 산이 모인 산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 구지 산과 산의 지정학적 위치와 그 크기를 제대로 묘사하는데 시간을 허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화가는 자기가 의미를 주고자 하는 그것들만 묘사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동양화의 압축되고 간결한 그림은 사실 더 많은 것을 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숨겨져야 할 것도 숨길 곳도 없는 그림속에서 우리는 전체를 읽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마치 당신이 만들어내는 인간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공감되고 융해되어 버릴수 있는 것처럼.

나는 방금 전 당신이 졸도를 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당신은 아프군요. 아주 많이 아플 겁니다. 그리고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할수 없을 겁니다. 더 휴식이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내일이면 나아질까요? 아뇨, 별 차도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먹물을 묻힌 붓을 들고 가만히 있는 화가와 같기 때문입니다. 붓에서 떨어지는 먹물은 화선지를 적시지만, 그 먹물은, 그리고 그 종이는 아무 것도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화가가 붓을 움직일 때에만 먹물은 선을 만들 것이고, 종이는 먹물을 자신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며, 그런 와중에 선과 공백은 하나의 형태를 완성시킬 것입니다. 화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그 무엇은 오직 화가가 붓을 움직이고 난 후부터 그 모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단지 화선지 위에 붓을 들고만 있으면, 붓에서 떨어지는 먹물로 애꿎은 화선지만을 적실 뿐입니다. 당신은 휴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당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목표가 필요한 겁니다. 앞산과 뒷산을 한 호흡에 그려내고 굵게 찍어내는 붓놀림으로 마당의 강아지의 움직임을 묘사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안 그리고 있으면 아무 것도 형태를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당신처럼.

당신은 당신앞에 언제나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 종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앞에 놓여있고, 당신의 생일날에도, 당신이 그와 결별을 하던 날에도, 작년 11월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이는 먹물과 같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지,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지난 8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해냈기 때문입니다. 종이가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심은하씨?

우리는 당신의 먹물을 흠뻑 빨아들일 바로 그 종이입니다.





심 은 하 F O R E V E R

2001년 9월 25일

방문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