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를 향한 목소리 (제 1회)
심은하씨가 연기를 해야 하는 이유 :
모든 동전은 양면을 가진다
방문객 씀. 2002년 2월 28일
내가 좋아하는 말중의 하나는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500원짜리 동전이 하나 있습니다. 앞면에 날아가는 학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 500 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동전의 그림은 동전의 값어치를 나타내지 않는다며, 50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는 면만을 동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만약 동전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면이 없어진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만족할 겁니다. 하지만 500 이라는 숫자 대신 날아가는 학이 보인다고 해서, 500원 동전의 값어치가 100원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림이 싫다고 해서 그림이 그려진 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림이 그려진 면을 부정해버리면, 그 동전의 값어치 역시 부정돼 버립니다. 왜냐하면 모든 동전은 양면을 갖고 있고, 한 면만을 갖는 동전은 없기 때문입니다. 학이건 500 이건 어느 쪽이던 500원의 값어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500원의 가치가 있는 모든 동전은 학과 500 이라는 숫자를 양면에 갖고 있다는 것은 부정될수 없는 사실입니다.
심은하씨는 유난히 일찍 성공을 한 편입니다. 덕분에 반감도 많이 샀지요. 스캔들에 비해서 고통받은 시간이 길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심은하씨는 배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career)를 지속하면서도, 큐레이터(curator, 박물관 등의 관장, 관리자, 감독)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림을 배우고 있지요.
배우(이면서 동시에 스타)라는 직업을 동전에 비유한다면, 그 한 면은 화려함과 직업적 성취감이고 다른 한 면은 사생활 결핍이라고 말할수 있을 겁니다. 심은하씨는 현명하게도, 동전이라는 것은 어느 한 면만으로는 이루어질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을 포기하는 대가로 심은하씨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살고 싶어했지요. 하지만, 심은하씨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심은하씨는 연예계를 떠나 있었습니다. 같은 기간동안 한석규도 연예계를 자천타천으로 등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중 신문이나 방송에 언급된 횟수는 심은하씨가 월등히 높습니다. 물론 정호영과의 스캔들이 있긴 했지만, 연예계를 등지고 있는 동안에도 심은하씨는 연예계의 관심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런 스캔들이 기사화될 수 있었다는 점이 한석규와는 다른 점이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심은하씨는 대중의 관심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위 스타성(性) 또는 screen presence라 부르는 것이죠.
캐서린 햅번은 Sour Apple Award( (맛이) 신 사과 상)을 기자들로부터 받을만큼 인터뷰하기가 힘든 배우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넓은 땅이고, 햅번은 자기 사생활을 유지할수 있을 만큼 언론과 거리를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심은하씨에게는 그런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심은하씨가 이 곳에서 자기만의 사생활을 갖자면, 이 곳 나름대로의 상황에 어울리는 전술을 썼어야 했습니다.
사실 정호영과의 스캔들은 정호영이 지나치게 부풀려나간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심은하씨가 자신의 대변인이나 매니저를 두어서 스캔들이 기사화되는 초기에 진화작업을 했더라면, 심은하씨가 정호영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양새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김순희(기자)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서 알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데일리 심은하의 적지 않은 심은하씨의 팬은 이런 표현을 싫어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심은하씨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그 대가를 치룬 것 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나서도,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로 몸져 누웠고, 은퇴라는 초강수를 스스로 두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은퇴라는 결정은 심은하씨가 냉정하게 상황정리를 해볼 여유도 없이 내린 거라는 걸 심은하씨의 팬뿐만 아니라 충무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상황정리가 아니라 현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었다는 심은하씨의 의지의 발로가 은퇴로 표출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은하씨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은퇴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여론의 감시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 지금의 심은하씨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에서 수녀원으로 도망간 마리아 수녀와 비슷합니다. 대령의 집에서 파티가 있던 날, 파티 드레스로 갈아입으려 하는 마리아 수녀에게 대령의 약혼녀가 다가가, 대령이 마리아를 사랑한다고 말하죠. 그 말에 놀란 마리아는 그 날 밤으로 수녀원으로 도망갑니다. 대령의 자제들이 수녀원으로 찾아가 마리아 수녀를 보기를 간청하지만, 그녀는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 때 그 수녀원의 원장수녀가 마리아 수녀한테 뭐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수녀원은 도피처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스타의 인생이라 불리는 동전의 양면 중, 심은하씨가 싫어하는 그 일면에 대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게 있는 사람이 나훈아입니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볼까요.
욕을 먹어야지요. 미국서 제가 신문을 보니까, 일반대중 가운데 30%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슈퍼스타가 된답니다. 너나 나나 다 좋아하는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그냥 스타라는 겁니다. 싫어하는 사람 30%가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안티 세력을 없애는 것은 요원한 일일지 모르나, 나훈아처럼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면 스트레스는 확실히 줄어들지 않을까요. 헤밍웨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맞서오는 고난에 덤벼들어 싸우지 말고, 고난이 달려들면 같이 한데 어울려 눈덩이 굴러가듯이 구르라는 것처럼 말이죠.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가리켜 제자들이 예수에게,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이 자의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신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고난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기 보다는 고난이 있음으로서 신의 아들, 딸로서의 자각을 하게 되고 고난을 헤쳐나가게 되니, 그 과정에서 오히려 신의 권능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심은하씨가 지금껏 힘들어 해왔던 것은, 실은 심은하씨가 그 골치거리를 쥐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심은하씨는 스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너무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반면에는 심은하씨가 스타였기 때문에 남들은 구할수 없었던 것을 남들보다 쉽게 구할수 있었던 것도 있을 것입니다. 용접을 하는 사람이 평생 쇳가루를 먹고, grocery(구멍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은 신경통과 관절염을 앓게 되듯이, 스타로서 사는 것 또한 직업병으로서의 부정적인 면을 내포하기 마련입니다. 그 부정적인 면에 심은하씨가 질려버렸다는 것 또한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은하씨가 스타의 인생 또는 유별난 인생이라 불리는 동전을 내던져버리는 것을 방관할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라흐마니노프가 전구를 발명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에디슨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할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습니다. 라흐마니노프와 에디슨은 각자 자신이 잘 할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내왔기 때문에 인류역사에 공헌한 바가 컸던 것입니다. 나는 심은하씨를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배우가 아닌 심은하씨가 해낼수 있는 일들은, 배우인 심은하씨가 해낼수 있는 일보다, 상대적으로 그 값어치가 낮은 일들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해내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감히 그렇게 말할수 있는 이유는, 심은하씨가 제일 잘 할수 있는 일은 바로 연기이기 때문입니다. 심은하씨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심은하씨가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위해 베풀어야할 보시이기 때문입니다.
동전을 던져 그림이 보이는 쪽으로 떨어지던지 숫자가 보이는 쪽으로 떨어지던지간에, 심은하씨는 지는 게 아닙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어느 한쪽만의 가치를 따지고 있을 때뿐입니다. 사실은 어느 쪽이나 다 한 가지-그 동전의 값어치를 나타내는 서로 다른 모습임을 알고 있는 심은하씨에게는 더 이상 지는 게임은 없습니다. 오직 이기는 게임만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손바닥위에 놓여있는 동전의 한 면엔, 정호영에게서 심은하씨를 빼앗아오라는 계시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한 면에는 심은하씨의
배우로서의 복귀가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거, 사실은 심은하씨도 알고 계셨던 거죠?
오효진, [오효진의 인간탐험] 가장
비싼 가수 나훈아
월간조선 2002년 0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