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내리는 날, 심은하씨에게
오늘 아침에는 가는 비가 뿌리더군요. 가랑비라 우산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오랫동안 비를 맞으면 옷이 꽤 젖을 것 같더군요. 가랑비도 비는 비니까요. 그래서 우산을 집어들고 나섰습니다. 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뒤로 처음 한 두시간 동안에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때는 하늘에서 자유낙하하는 빗방울이 땅속으로 무한진입하기 시작하는 무렵이고, 하늘과 땅의 전초전이 빗방울을 매개로 시작되는 무렵이라, 흙먼지가 일어나지요. 그 흙먼지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 걷곤 합니다. 물론 그리 좋은 냄새는 아니죠, 약간 쾌쾌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 냄새가 사라질 무렵이면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이 원래의 제 색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 순간을 특별히, “인간에게 방해받지 않는 순간의 자연이 보여주는 자연과 인간세상의 아름다움”이라고 부릅니다. 그 아름다움속에 묻힌 조그마한 인간군상들은 비를 안 맞으려고 이리저리 부산히 움직이죠. 그래봤자, 비를 내리는 하늘 아래서 우왕좌왕하는 것뿐인데 말입니다.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그 비를 받아주는 행위는, 자연이 인간의 세계에 평소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노골적이지 않게 드러내는 자연의 고급스런 제스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고보면 나는 미취(美臭)를 맡기보다는 미색(美色)을 볼려고 비 내리는 처음 두 시간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처음 두 시간 이후의 순간을 위해서 기꺼이 처음 두 시간동안 기다리는 셈이군요. 기다림의 미학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정호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로 정말 많은 갈등과 고민과 억측과 그로 인한 상처가 여기저기에 생겼습니다. 불행했던 시간은 심은하씨뿐만 아니라, 심은하씨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심은하씨가 볼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있었죠. 왜냐하면 기껏해야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비를 맞고 있는 조그만 존재에 불과했으니까요. 처음 스캔들이 기사화된 게 작년 11월이었으니까, 자연이 인간에게 종종 보여주는 고급스런 제스추어로 비유하면, 이제 비 내리기 시작한 지 두 시간가량 되었군요. 오늘은 유난히 흙먼지 냄새가 지독하군요, 안 그런가요, 심은하씨? 그렇지만, 더 이상 그 곤란한 냄새는 나지 않을 겁니다. 이젠 땅 위에서 일어날 먼지도 비에 흠뻑 젖어있거든요. 그리고 이미 씻겨나가기 시작했어요. 주변의 건물들과 화단의 꽃들을 보세요. 이미 제 색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지요? 이제 인간은 건드릴수 없는 자연만이 할수 있는 거대한 쇼가 시작한 거랍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리고 나에게 말해보세요-뭐가 보이는지. 평소에 무심히 지나쳤던 모든 것들에게 눈길을 돌려 보세요. 그리고 나에게 말해보세요-그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세상은 참 아름답지요, 그렇지요 은하씨.
인간에게 방해받지 않는 순간의 자연이 보여주는 자연과 인간세상의 아름다움-이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콱 막힌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버리거든요.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지도 않고, 인간의 욕망으로 끓어오르지도 않을 뿐더러, 거대한 컴퓨터로 계산해 가면서 만들어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이 아름다움은 하늘과 땅을 있게 한 위대한 힘이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잠시 서로를 느껴보라고 시간을 내준 사이에,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래서 이 아름다움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후 처음 두 시간동안 지상의 흙먼지를 즐길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방해받지 않는 순간의 자연이 보여주는 자연과 인간세상의 아름다움은 바로 지상의 흙먼지 냄새가 가실 무렵에 시작하거든요.
참, 은하씨는 지금 우산을 쓰고 있나요? 설마 비를 맞고 서 있는 건 아니겠죠?
마츠시다 전기의 창업자 마츠시다 고노스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우주의 법칙이라던가 진리라던가 하면 대단히 어렵게 들리지만, 그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가 내리면 비에 젖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그 진리에 따라서 젖지 않도록 하려면 우산을 쓰면 됩니다. 이른 바 그러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 과학이며 종교입니다.
왜 은하씨는 우산을 안 쓰고 있지요? 비를 맞고 추워서 덜덜 떨고 있잖아요! 깨끗해진 세상을 보려면 우산을 쓰고 옷이 젖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 볼 여유가 생기죠.
은하씨, 연예계에 복귀한다고 본인의 입으로 발표하세요. 그래서 모든 의심과 불신을 해소하세요. 그리고 매니저를 고용하세요. 더 이상 우산 없이 비 맞아가며 부들부들 떨면서 걸어다닐수는 없다구요.
그 짖궂은 흙먼지 냄새가 가시고 있네요, 그렇죠 은하씨. 이제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낄할 순간이랍니다. 우산을 집어들고 나가봐아죠. 나가서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2001년 9월 27일,
방문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