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변천과 흡연의 확산>

 

            

                                                                                                        옛날 담배들

 

조선, 일제시대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들어와 양반의 사랑을 받으며 양반의 전유물이 되었던 담배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및 일제 강점기에 이를 때까지 양반층이 붕괴됨으로써 흡연의 풍속은 신분의 귀천에 구별 없이 중 하류층으로 더욱 더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나 담뱃값이 비싼 편이었기에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었던 남자인 가장은 담배를 피울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와 미성년층은 담배를 피울 엄두도 내지 못하였고 기생을 포함한 하류 직업의 여인들이나 피우게 됨에 따라 당연히 양가집 여자와 미성년자의 금연은 미풍 양속(?)으로 남게 되었다.

양담배는 출세의 상징(?)

 해방 이후 미군 군정이 시작되어 사회의 상위 계층에 미군의 관리들이 앉게되고 그들과 사교생활을 통해 우리의 많은 생활에 변화를 가져 왔다. 양주, 양옥, 양복, 사교댄스, 그리고  껌 등 당시의 이러한 문물들은 서민 생활의 그림의 떡이었지만 그나마  가장 손쉽게 모방할 수 있는 욕구달성의 수단은 껌과 양담배였다.  담배는 그 휴대성과 단독성 및 저가성으로 어디서나 애용될 수 있었기에 종래 담뱃대에 넣어서 피우는 조선 양반의 장죽 담배보다 훨씬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6.25 전쟁을 통한 한국사회의 격변은 피난민을 통한 인구의 이동과 사회 구조의 변동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러한 격변기를 거치면서 양담배의 범람은 자연히 사회적으로  흡연의 풍습을 좋은 것으로 보이게 하면서 확산되었다. 껌팔이 소년을 통해 껌과 양담배의 판매는 도시 영세민의 호구지책이 되기도 했었다.  이 후 한국 전매청의 권련 생산이 본격화되고 전후 안정을 되찾으면서 양담배 판매가 금지되고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럴수록 소위 자신을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잘난 사람들일수록 양담배를 선호하는 이중적 의식 구조 속에서 양담배를 피우는 자체가 출세한 사람의 표상으로까지 사회의 관념으로 정착하였다.

담배는 남자의 권위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은 사회적 활동이 성인 남성에게만 제한되었던 산업화 이전의 시대라 할 수 있는 1960년대까지는 흡연은 남성의 권위와 상징으로 여겨져 왔었고  반면에 여성과 미성년자들에게는 금지의 대상이 되어 이때까지 만해도 여성의 흡연은 술집 여인이나 노파, 불량 청소년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담배는 원산지에서는 돌려 피우는 습관의 물건으로 서양에서는 어른 앞에서도 피울 수 있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귀한 물건으로서 전통적으로 어른 앞에서의 흡연은 금기시 되고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성인 남성이라 하더라도 연장자 앞에서는 함부로 피우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여자와 어린이 앞에서는 상관하지고 피우는 것으로 되어있어 흡연은 남자로서 권위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관계로 어머니는 미성년인 아들의 흡연을 알아도 곧 성인이 될 아들의 비행을 제재하기가 어려웠던 까닭에 어머니만 알고 있었고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하는 가정이 많았었다. (남존여비의 전통사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았다.)

담배는 국고수입의 원천

 60년대에 경제 발전의 자금을 외국의 차관으로 충당하는 과정에서 담배의 판매 수입은 국가 재정의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에 착안한 정부는 유럽의 여러 왕들이 그러하였듯이 우리 정부는 담배 판매에 집중했고 전매청은 담배 판매청으로 인식되었다.(전매청 취급품목-->소금, 인삼 담배 등 ) 더 나아가 담배를 더욱 많이 판매하기 위해 포장과 품질을 개선했고 담배 생산을 늘리는 반면 양담배 판매를 적극적으로 단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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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군대생활

 흡연이 성인 남자의 당연한 기호로 사회적 인식이 굳어지고 담배 생산이 늘면서 미군의 체제를 본받아 군에서도 담배가 정기적으로 공급되고 그 양도 점차 늘어갔다. 1970년대들어서면서 권련 제조가 국제적 수준에 들어서고 고급화가 되어갔고 군 납품 담배에도 필터 달린 담배가 등장하면서 사회의 고급 담배와 동등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군에 입대하여 담배를 배우는 병사가 늘기 시작했고 당시 군 제대병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며 반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젊은이는 군에 갔다오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할 정도이었다.  군에서의 담배는 극한 상황에서 잠시의 휴식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소일거리이며 서로 주고 받는 담배와 담뱃불은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수단이었던 까닭에 담배의 맛보다는 담배 피우던 그 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지금의 어른들의 가슴 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군을 회상하는 유행가에는 반드시 담배 연기의 가사가 흘러나오고 담배는 남자들의 귀중한 정신적 고향이 되기도 하였다.

 70년대에 이러한 현상은 더욱 더 깊어지면서 흡연은 군 생활을 나아가 사회 생활을 성실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끄는 남자의 필수적 요구 사항이었고 강인한 남자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깊이 들여 마셨다가 내 뿜는 담배 연기는 지난 날의 고생했던 군대 생활을 회상하며 지금의 처지를 격려하고 피곤한 몸을 위로하는 위안제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