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엘바 에디슨(애칭은 엘)은 미국 오하이오주 미란 이라는 곳에서 2월 11일 태어났다.
에디슨은 어린 나이에도 실험을 시작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의 고향인 오하이오주의 미란 이라는 곳은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였다.
19 세기 초 에는 운하가 그 당시의 고속도로 인 셈이다.
미란 과 휴런강 을 있는 휴런운하 는 에리호로 흘러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미란은 중요한 항구 이었다. 그러나 철도가 오하이오로 들어오게 되면서 미란을 지나지 않게 되자 교통중심 으로서 의 이곳의 중요성도 줄어들게 되었다.
에디슨이 7살이 되었을 때 미시간주의 휴런 항구도시로 이사를 했다. 이곳에서 에디슨의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집옆에 큰 관측 탑을 세웠다. 관광객들이 돈을 내고 탑에 올라 휴런호수의 경치를
볼 수 있었지만 큰돈은 벌 수 없었다.
가족의 막내인 에디슨은 몸이 약해서 엄마의 큰 걱정이었다. 이미 두 아이를 어릴 때 잃어 버렸고 에디슨의 첫 번째 생일 전에 세 번째 아이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공립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했다.
대신에 전직 교사 이었던 엄마가 집에서 그를 가르쳤다.
엄마는 에디슨에게 광범위한 독서를 시켰다.
에디슨은 책읽기를 좋아했고 특히 과학에 흥미가 있었고 휴런 항구 밖의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했다.
어린 에디슨은 휴런 항구에서 바쁜 생활을 했다. 많은 책을 읽고 화학 실험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여러 기계도 만들었다. 그의 소년 시절의 연구는 증기로 작동되는 소형 나무 자르는 톱, 철도 이었다.
휴런항구와 가장 가까운 큰 도시인 디트로이트를 연결하는 기차철도를 보며 12살인 에디슨은 증기 기관에 매혹되어 기차에서 신문과 사탕을 파는 일을 하게 되었다.
에디슨은 기차에서 팔고 있는 과학책, 신문, 잡지, 소설, 등을 전부 읽었다. 그는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고 말겠다고 결심했지만 10권 정도 읽다가 포기했다.
이즈음 에디슨은 귀가 잘 안 들린 다고 느꼈고 점점 악화되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아마도 어릴 적 병 때문 이거나,귀가 감염 된 것을 잘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병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페니실린이나 다른 항생제들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귀가 안 들리게 되는 것은 흔한 질병이었다.
에디슨은 그의 귀가 안들 리는 것이 큰 재산이라고 했다
귀가안들리니까 일을 하는데 덜 산만하고 외부 잡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잠도 깊게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귀는 안 들렸지만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들을 잘 활용했다.
10대의 에디슨은 아주 기업가 적이었다. 휴런 항구에서 신문과 잡지를 파는 가판대를 두 개나 운영하면서 다른 소년들을 고용했다.
1862년에 6개월간 그 자신의 신문인 위크리 헤럴드를 발행했다. 철도 직원의 도움으로 기차 짐칸에서 인쇄를 했다. 이 신문은 지역 뉴스와 철도 관련 기사를 실었는데 기차를 이용하는 많은 독자들이 읽었다.
이렇게 번 돈으로 기차 짐칸에 작은 실험실을 만들었다. 실험실에는 병, 전지, 시험관들로 가득 했는데 화학 물질인 인을 실험하다 화재가 나서 실험실과 인쇄기를 철도 직원이 모두 내려 버렸다. 그러나 에디슨은 계속 철도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예기치 않은 전환점이 일어났다.
어느 날 역장의 어린 아들이 화물기차가 오고 있는데 철도에서 놀고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에디슨은 철도로 뛰어가 아이를 안전하게 구출해 내었다.
보답으로 역장은 에디슨에게 아주 복잡한 철도 전신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16살에 전기 기사로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것이다. 이일은 전신 부호를 말로 말을 부호로 바꾸는 빠른 판단력과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월급도 많았고 유망한 일 자리였다.
기차를 타 면서부터 에디슨은 새로운 전신 기술을 배웠다.
1840년에 특허를 받은 모르스 전신기술은 19세기의 월드와이드 웹에 해당하는 것으로 에디슨은 정보 고속도로를 항해할 모든 기술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 당시의 전신 기술은 여러 나라들을 연결 해주고 있었다. 여러 면에서 전신기술이 에디슨이 성장할 세계를 만들어 주었다.
주요 신문사들은 뉴스 서버스사로부터 전신기사를 사서 기사를 실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전화도 발명되지 않았고 이 메일 ,인터넷 기술은 꿈도 꾸지 못하던 때였다.
다음 4년간 에디슨은 남부와 중서부 지역을 옮겨 다니며 순회 전신 기술자로 일을 했다.
전신기사들은 문자나 숫자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전선을 통해서 정보를 주고받고 하는데 이들은 메시지를 주고받고 하는 일뿐 아니라 전신 기계를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유지하는 일도 해야 했다.
에디슨은 실용적인 전기기술에 대해 많이 배웠고 어떻게 축전지가 작동하고 전기회로 전자기학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다. 이런 호기심이 그의 발명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
1868년 보스턴에서 주의회 에서 쓸 전기투표 기록계로 에디슨은 첫 번째 특허를 얻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투표과정이 좀 빨라진다고 뭐 달라질게 있느냐고 그의 기계를 사용하길 원하지 않았다.
에디슨은 이를 계기로 다시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원하지 않는 것은 결코 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폐기된 잘못된 시도는 한걸음 전진하는 지름길이라고 ......
2년 후에 1871년에 그는 뉴저지주의 도시인 뉴어크에서 공장과 실험실을 차렸다.
뉴어크는 그 당시 숙련된 기계 기술자들의 사회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의 전신 기계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기술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 해 에디슨은 같이 일하든 메리 스털웰과 결혼했다. 1874년에 에디슨은 첫 번째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동일 회로에 의한 4중 송신 기계장치를 개발했다.
이 것은 전선 하나로 한 방향으로 하나이상의 통신문을 보낼 수 있는 방식이 었는데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2개 통신문을 보낼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전신 회사들에 있어서 이것은 대단한 발명이었다. 왜냐하면 전선을 적게 쓰고도 많은 통신문을 보낼 수 있어 경비도 절감하고 많은 이윤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웨스턴 유니온 회사와 경제적으로 아주 유리한 계약을 맺었다. 이 돈으로 뉴저지 시골에서 "발명 공장 "이라 불려 지는 멘로파크 에 거대한 실험실을 지어 많은 발명을 하게 되었다.
1.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한다면 우리들은 우리자신에 깜짝 놀랄 것이다.
2. 나는 결코 개량 하겠다는 신념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3.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발명하지 말라.
4. 나는 세상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 그 것을 발명하려고 노력했다.
5. 나는 실망하지 않는 다. 잘못된 시도로 실패한 것은 성공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6. 용기를 잃어버리는 유일한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생각하며 시간이 모자란다고 생각 할 때이다.
7. 내 인생의 철학은 모든 것의 밝은 면을 보고 일하자는 것이다.
8. 나의 발명 중에 축음기를 제일 좋아한다.
9. 나는 아주 싸게 전기 불을 만들 어 오직 부자들만이 촛불을 사용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10. 작업실에 시계가 없었기 때문 에 성공 할 수 있었다.
11. 모든 진보나 성공은 생각으로부터 나온다.
12. 인간들이 풀잎을 복제 할 수 있을 때까지 자연은 소위 과학지식이라는 것을 비웃는다.
13. 누군가가 에디슨을 천재라고 하면 끈기 있게 하는 것이 천재가 되는 길이라고 대답하겠다.
14. 인생의 목표가 없는 사람을 동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