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 중국인을 말한다

  

  

 

 중국문화

  

 

  

 2. 중국인은 중국인이 아니다

 

 현대 중국인들은 우리를 일컬어 '까오리(高麗人)'라고 부르죠. 이 말은 동남아에도 그대로 쓰
여 태국에서도 우리를 '까오리'라고 해요. 다른 외국인들도 말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인 코리아(高麗)라고 부르죠. 아프가니스탄을 잠시 여행했던 한국 분이 그러시더군요. 그곳에서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고요. 근데 놀라운 건 아프가니스탄은 '까오리'나 '코리아'가 아니라 우
리 발음과 똑같이 '고려(高麗)'라고 부른다고 해요. 아프기나스탄에는 우리의 정서와 고대 우
리 언어가 많이 살아있다고 해요.

 우리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건 고려시대라는 이야기죠. 이 말을 듣다보면 몇 가지 의아한 것이 있군요. 첫째로 우리가 국제무역시대에 동참한 건 사실 고려시대가 아니라 통일신라시대거든요.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흥덕왕이 교서를 내려 『 백성은 앞다투어 사치를 일삼고 다른 나라의 진귀한 물건만 숭상하며 도리어 질박한 토산물을 싫어한다…』라고 지적하면서 신라인들로 하여금 사치를 금하고 옛법을 따를 것을 강력히 어명하고 있죠

  그에 따른 금수품목(?)을 보면 우리가 아는 이슬람의 향료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산 보석>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에메랄드>와 향기나는 약초, <남태평양의 바다거북 껍질>, <동남아시아산 목재>등등이거든요. 완죤 자유주의 무역이 이루어졌군요?


두 번째 의문은 중국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우리를 '고려인'이라고 불렀는가 하는 점이에요. 이성계가 나라를 세워 자신의 고향이름과 조선이라는 이름 두 개를 중국황제에게 보내 나라 이름을 택일하게 하자 당시 중국황제가 '조선이라는 이름은 과거 한국의 이름이었으니 이로 하라'고 했으니 '조선'이라는 이름은 중국인에게 고대부터 잘 알던 명칭인데요...??

물론 '고려'가 고려시대를 말하지는 않을 거에요. 일본에도 '고려군'이라는 곳이 아직 있는데
'고려시대' 의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라는 이름을 고대에는 '고려'라 불렀거든요. 중국에서도 '고구려'를 '고려'라 불렀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죠. 오늘날 중국인을 한족(漢族)이라 하는데 이는 중국인이 한( 漢 ) 나라 때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는 유력한 증거죠.

 이에 반해 중국인이 동이(東夷  )족이라 부르는 우리나라는 오늘날 중국인이 자신들을 일컫는 한나라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조선(朝鮮)이 있었고 그 후 삼한(三韓: 마한, 진한, 변한 )이라 불리는 오늘날 우리의 한국(韓國)이 있고 가야와 삼한의 연장선인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이 생겼죠

그리고 중국의 고대 3대 국가로 말하는  은허의 갑골문자로 유명한 '은나라'는 한국인이 세운 나라거든요. 중국기록에도 '은나라는 동이족(東夷族)이 세웠다'고 나오죠. 역시 중국고대국가 중 하나인 주나라에 의해 멸망했죠. 이런 고대의 밀접한 관계들이 쌓여 아마 오늘날 중국과 우리가 서로 '형님의 나라' '아우의 나라'라고 불러도 서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요?   한나라 이후로 따지면 '형님의 나라' '아우의 나라' 라고 불릴 정도로까지 밀접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럼 중국인이 자신들을 일컬어 '한족(漢族)'이라 불리는 종족은 오늘날 정말 존재하느냐?


하면 진정한 의미의 한족은 이미 멸종(?)되고 남아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중국인이 말하는
삼황오제를 시조로 하는 '한족'의 원향은 중원이라 부르는 중국의 북부지방을 말하는 거에요

흔히들 중국고대소설인  '삼국지(三國志)'의 '위'촉''오'는 당시에는 서로 말도 다르고 풍습도
달랐을 뿐 아니라 외모도 서로 다른 나라이자 종족들이었어요. 그들도 '우리는 오랑캐'라고
스스로를 지칭해서 말했잖아요. 이들 지역은 당시에는 중국인의 원향인 중원땅에서 발흥한
세력들이 아니었고 중원의 언어, 문화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거든요


중원이 한족의 땅이었을 때 이때는 동서의 문화차이만이 문제가 됐는데 유목민들의 거침없는 이동이 계속되자 중원의 주인들은 벼슬아치와 문화인들만을 대동해서 당시 아주 다른 나라였던 남방으로 이동하게 되었죠. 이래서 야만의 땅이었던 남방은 문화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죠. 이 왕조가 바로 '남북조' 시대 남조와 북조 중 남조에요

북조가 차지한 중원땅에는 그 후 유목민의 잔치판이 되어 한족과 혼혈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도 후의 일이고 당시 유목민들은 한족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가축으로 취급했어요. 오늘날 우리도 자주 쓰는 예의없는 사람을 일컫는 '무뢰한(無賴漢)'이라는 말이 있죠? 여기서 말하는 무뢰한(漢)이 바로 정복당한 한(漢)나라 사람을 유목민이 일컫던 말이에요

남조 역시 마찬가지에요. 당시에는 한족과 전혀 관계없던 다른 지역이었던 오랑캐의 땅에 이미 살던 현지인들은 소수의 지배계급과 문화인만을 대동한 한족들과 혼혈이 이루어졌죠. 결국 이때부터 동서로 배척하던 중국인들은 남북으로 서로 배척하고 괄세하기 시작했죠. 유목민의 침입이 중국인과 중국문화의 확산의 기폭제가 된 셈이죠


북쪽에서도 소수, 남쪽에서 소수였던 오리지널 중국인들은 이후 오랑캐들과 혼혈이 이루어져서 사라져 버렸죠. 결국 오늘날 자신들이 자랑하는 92%의 순수한족이란 가공의 이야기에요. 순수한족이란 오늘날 0%로 그 존재가 남아 있지 않아요

단지 이들과 혼혈하여 중국땅에 살게됐으니 자신들을 중국인이라 말하는 고대한족과 다른 신중국인(新中國人), 신한족(新漢族)이 오늘날 중국을 차지하게 된 거죠. 중국의 문화와 풍습, 기질이 서로 다른 이유도 바로 중국의 이런 역사에 기인하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