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 중국인을 말한다

  

  

 

 중국문화

 

 

  

  4. 이런 우정은 없다

 

중국인들에게 '협객'이라는 단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죠. 우리도 '협객(俠客)'음...조오타..훗..협객이란 서민에게 좋은 의미를 주지만 위정자에게는 그렇게 좋은 이미지의 존재는 아니죠. 편하게 정치하고 다스리기 위해 정한 룰을 파괴하는 다루기 골치 아픈 부랑자나부랭이에 다름 아니니까요

이들의 존재는 오늘날 스포츠맨들처럼 힘없는 서민에겐 대리만족감을 주는 순기능적인 역할도 하죠. 조폭처럼 말도 안되는 영웅이야기가 아니라요. 하긴 얼마나 위정자들에게 혐오감이 들었으면 조폭신드롬까지 생겼을까마는요. 신경 쓰야할 데는 신경 안쓰고 엉뚱한 일에나 골몰해서 문제아집단으로 지탄받는 정치가들이나 조폭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요......

오늘 이야기는 중국의 협객(?)이 아니라 망나니들의 골 때리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에요. 문제의 두 주인공은 '삼국지'의 주연 중 한명인 위나라 무제인 '조조(曹操)'와 그의 '죽마고우'이자 패거리 깡패시절 라이벌이었던 '원소(袁紹)' 이야기에요


두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서로 친구처럼 어울리기도 했지만, 또 경쟁했던 사이였죠. 이 두사람에 대한 기록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와요. 이 책은 후한 말에서 삼국(三國)에서 서진(西晉)과 동진(東晉)시대까지 인사들의 기행(?)을  적은 것이에요

이  “세설신어”(世說新語)의 ‘가휼편’(假譎編)은 휼책(譎策)과 농간으로 남을 속이고 괴롭힌 일들을 주로 적어 놓은 책인데요,  총 13개의 이야기 가운데 조조는 네 차례나 나오니 조조가 얼마나 막돼먹은 인사인지 잘 알 수 잇죠. 유유상종이라고 친구인 원소도 두 차례에 걸쳐 나와요.

결혼식에서 조조는 도둑이 들었다면서 고함을 쳐 사람들의 이목을 흐트린후 신부를 겁탈했고 당근 친구인 원소도 여기에 참가해서 둘 다 다정하게 강간범이 되었죠. 우정은 나눌수록 진해진다고 하지만 가휼편에 이 이야기가 실렸다는데서 알 수 있듯 인간 안될 것들은 항상 어린시절부터 티가 나요. 이래서 '될성싶은 잎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나왔겠죠

일을 끝내고 도망 중 원소가 가시밭에 넘어져 못나오자 조조는 “도둑이 여기 있다!”고 고함을 쳐서 이에 깜짝 놀란 원소가 후다닥 가스덤불에서 뛰어나와  도망을 순조롭게 갈 수 있었죠

또한 죽은 후에 몇 달동안 그 기름진 몸뚱이를 태웠다는 동탁을 살해하려다 조조가 실패해 도망하다가 아버지의 의형제인 친구네에 몸을 피하던 중 오해로 그 가족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아버지의 친구를 길에서 만나자 이 분마저 후환을 없애려 살해했죠. 한 마디로 도덕적인 측면에서 싹수가 없는 놈이 조조였죠. 오늘날도 그렇지만 과거 중국에서 아버지의 의형제는 아버지나 진배없는 분인데요


하지만 조조나 원소는 집안 배경은 대단했어요. 조조보다 원소의 집안이 더 좋았는데 조상4대에 걸쳐 3공(三公: 太尉 司徒 司空)을 배출한 최고 명문가 출신이고 조조는 이보다는 떨어지지만 조상이 전한 시대 개국공신으로 상국(相國)이었던 조참(曹參)의 자손이에요. 하지만 조는 환관의 양자로 많이 알려져 있죠. 실은 조조의 아버지 조숭(曹嵩)이 환제(桓帝) 시대 환관의 최고 관직인 중상시(中常侍)에 있었던 조등(曹騰)의 양자로 들어간 거지 조조는 환관의 양자가 아니에요

'티코'와 '그랜저' 이야기 아시죠? 우리나라 모재벌의 손자 놈이 그랜저 타고 가다 ''티코' 탄 놈이 길을 막는다'고 벽돌로 찍었다던가 하는 이야기 말에요? 내 아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난 그 사고친 손자 놈보다 교육잘못 시킨 그 아비 멱살을 쥐고 흔들었을 거 같은데요. 티코의 주인 엄마는 저보다 교양이 더 있었던가 봐요. 암튼 그 재벌 손자처럼 이 두 친구는 일찍부터 싹수가 노랬어요

 당시 영웅이라 칭하던 사람들 중 사람 같은 자가 누가 있었겠어요. 하지만 그 중 조조는 이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휘어잡았죠. 이 두 친구의 우정같지 않은 우정은 '관도평원'에서의 전투로 결판이 나요. 2만의 조조군이 10만의 원소군을 대파시켰으니까요. 중국인들은 적은 숫자로 많은 적을 이겼을 때 이 '관도의 전투'를 많이 들죠


'삼국지연의'에서 왜 유비를 좋게 평했는지 모르지만 유비도 후안무치의 표본이에요. 조조는
비인간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능력으로 앞날을 헤쳐 나가기는 했잖아요? 유비는 지
조도 쓸개도 없는 놈이에요. 먼저 조조에게 의탁하다 여포에게 붙고, 여포에게서 숙적 손권과 결탁하고 다시 원소의 품에 안기고.....동서남북 어디 신세지지 않은 집이 없었잖아요. 게다가 여자도 아니면서 울기도 잘하여 여기저기 동정을 사서 연명했죠. 오죽 했으면 당시 중국인들이 “유비의 땅은 모두 그의 울음으로 얻어진 것”이라고 비난했겠어요?


근데 이들 우정어린 두 남정네는 모두 철이 들자 사람이 변해서 원소는 20세에 관직에 취임해서 청렴하다는 평을 들었고 , 조조도 20세에 관계에 진출한 후 유능한 관리로 활약했어요.
30세 때 승진한 조조는 뇌물이 횡행하고 독직사건이 빈번했던 영내의 관료 8할을 면직시키고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어요

하지만 이들은 난세에 꿍꿍이가 있어 그랬던 것이지 이게 본심이 아니었어요. 결국 '후안무치', 백성에게 '잔인봉사' 정신으로 일로매진 했잖아요?  물론 그 와중에 조조는 자신이 차지
한 땅에서 제도를 개혁하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덜어주고 하는 등 유능한 위정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원채 '음모'나 '술수'가 능하여 백성들로부터 마음을 얻지 못했어요

 오죽하면 '후안무치' '무능력'의 표상인 유비에게 백성들의 마음이 기울었겠어요?  '어릴석
을사 힘없는 백성'이라고 이건 오늘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군요. 이웃 일본도 '이미지 메
이킹'에 속아 고이즈미를 수상으로 만들어 이웃나라 백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잖아
요.  어쨌건 이 요주의인물이 벌인 행각탓에 삼국지의 주연이나 기타 조연 중 오늘날 신으
로 추앙받고 중국인에게 왕이 아닌 자로 왕대접을 받는 유일한 민간인이 '관우장군'뿐인지
몰라요


유비야 오늘날 태어났으면 매일 질질 짜는 비극의 조연배우밖에 할 일이 뭐 있겠어요? .  
손권이야 그래도 장군감은 되겠고, 음모와 술수의 왕인 위나라 무제인 조조는 그래도 오늘
날 환생하면 대통령감은 되겠네요. 뭐

위정자의 전횡이야 오늘날 제도가 개인의 독재를 허용할만큼 자비롭지도 않고, 국민들의 저
항이 심할테니 자제할 수밖에 없을 거고 여자문제나 음모, 술수, 돈에 대한 집착이야 오늘날
정치가들이 더하지 않나요? 자식문제야 우리도 익히 봐 왔잖아요. 뭐..... 결정적으로 조조가
오늘날 정치가들보다 나은 건 국가를 운영할 능력을 충분히 겸비했다는 거에요. 우린 그런
사람을 뽑지 못해 별의 별 일을 다 당했지 않아요? 조조와 원소 두 사람의 우정같지 않은 우정의 역사를 보면 많은 생각들지 않나요?
 
원소와 조조의 우정은 관도의 전투로 끝나고, 우리의 오랜 노인 지도자들의 우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으니 역시 그분들의 우정은 대단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