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은 무슨 일이든 기록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언젠가 비행기 추락사고가 있었을 때 일본인 승객들이 사고를 만나 경황이 없는 중에도 자기 가족에게 유서를 남겨 보는 이들의 코끝을 시리게 했던 적도 있지요.

몇 년전에는 일본에서 '유서쓰기'도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곧 죽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개인사(個人史)를 정리해보는 것인데 제가 생각해보아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유서쓰기 뿐만 아니라도 일본사람들은 글쓰는 것을 참 좋아하고, 또 어렵지 않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출판왕국'이라고도 합니다. 서점에 가면 수도 없는 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터무니 없이 유치한 책도 있습니다. 저 같으면 챙피해서 내지 못할 정도로 수준 미달인 책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사람들은 열심히 책을 씁니다. 특히 자신의 삶을 고백한 책을 많이 씁니다. 요즘에는 장애인이나 과거 불량청소년이었던 주인공들이 역경을 딛고 당당하게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됐다는 그런 내용의 감동적인 책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이 쓰다보니 전반적인 책 수준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책을 출간해 조금만 팔려도 기본은 된다고 합니다. 보통 2000-3000권 정도 팔리면 손해도 이익도 남지 않는다고 하는데 일본 인구가 1억20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금방 팔수 있지요. 소비시장이 크다는 것이 그만큼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데다가 소비시장마저 든든하니 모두들 책 내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밖에요. 요즘 일본에서는 그런 추세를 뒷받침 하는 현상이 있어서 이번에 소개할까 합니다.

뭐냐하면요, 자기 인생이나 업적 등을 정리해 자비로 출판하는 사람을 지원하는 여러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문장 작법 강좌를 잇따라 개설하는가 하면 자비출판 서적류만을 취급하는 전문서점이나 저가격으로 출판해주는 중소 출판사들도 등장하고 있지요. 컴퓨터가 보급되고 있는 것도 중고년층이 책을 쉽게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 요인이 됐구요.

도쿄도 오타구는 지난해 9-11월 자비출판을 원하는 60세이상의 구민을 대상으로 강좌를 처음으로 열었습니다. 모두 10번 실시되는 강좌는 워드프로세서의 조작방법이나 문장작법, 어색한 표현 등 초보적인 내용을 가르쳤는데요, 정원 30명이 금방 차버렸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도쿄 시나가와에는 자비출판한 책만 모아두는 자비출판도서관도 있습니다. 물론 이 도서관에는 오래전부터 자비출판을 위한 강좌가 실시돼왔는데요, 1,2년전부터는 수도권 자치단체에서 강사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가정교사를 파견하는 일본 아카데미협회라는 곳에서는 4월부터 자비출판 세미나를 시작한다고 하고요. 이 세미나는 입회비가 10만엔(우리돈 약 110만원)이나 하고 매달 1만엔(11만원)씩 내야 하지만 상당히 인기를 얻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비출판물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점도 도쿄의 유명한 서점가 진보초에 등장했습니다. 자기 책을 팔고 싶은 사람이 3만엔(33만원)만 내면 서점내 선반 한쪽에 책을 진열할 수 있는 곳입니다. 책이 팔려도 서점에 수수료를 내지 않고 진열기간에도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자비출판자들에게 큰 인기입니다. 또 출판유통 루트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자기책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이지요. 현재 점내에는 약 1000여종의 자비출판 서적이 진열돼 있습니다.

이 서점을 운영하는 기획회사 다브리넷트는 자비출판업무를 직접 처리하기도 합니다. 200페이지짜리 책을 100부 인쇄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90만엔(약 990만원)정도로 일반 출판비용의 절반정도입니다. 이런 회사는 이곳 말고도 여러곳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출간된 자비출판물은 일반서점에서 팔리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연간 4, 5만종류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당 인쇄부수는 저자가 연말연시에 보내는 연하장 매수 정도라고도 합니다. 이런 책들은 공개적으로 빛을 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그중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일본그래픽서비스공업회'라는 곳에서는 98년 '일본 자비출판문화상'을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사나 문예 연구 평론 등 5개부문에서 매년 1000편정도의 응모가 있답니다.

일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책 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글 쓰는 것 조차도 너무나 겁내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냥 자기 얘기를 옆사람한테 들려주듯이 가볍게 생각해서 정리해도 될텐데요...(2001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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