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왔습니다.

지난주 인도네시아 후반부에는 자카르타 현지 르포기사(인도네시아 어디로 가나, 총 3회)를 송고하느라 시간이 없었고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로 옮긴 뒤에는 인터넷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현지소식을 곧바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도쿄에는 어제(28일) 돌아왔습니다.

자카르타에서는요, 어디까지 말씀 드렸더라…. 잊어버리기 전에 정리해야 하는 건데….

19일에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인데 왠 점쟁이냐구요?

아사히 기자에게 들으니 이슬람을 믿으면서도 점쟁이가 성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요즘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이슬람지도자들까지도 점쟁이를 찾아다닌답니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이 얼마나 다른 종교와 혼합돼있는지를 아시겠지요?

자카르타 외곽에 있는 점쟁이는 네덜란드인 여성으로 한 50대후반쯤 돼보였습니다.

자카르타 외곽 고급주택지에서 점을 쳐주는 점술가. 이슬람교도들한테 특히 인기가 있다고.

방에 들어가니 힌두교 예언가 사진을 비롯해서 알라신 십자가 예수상 불상 등 모든 종교의 조각이나 그림이 여기저기 붙어있었습니다. 의아해 하는 저에게 점술가는 "모든 신을 다 섬긴다. 많은 신이 지켜주기 때문에 더 영험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죠. 인도네시아 정국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요.

그녀는 "4월20일부터 5월18일 사이가 가장 위험하다. 와히드 대통령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이 충돌해 엄청난 유혈사태를 빚는 비극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어떻게 되든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가 진정된다고 하더라도 인니정국은 2007년까지 계속 나빠질 것이다. 2007년부터는 조금 나아질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그럴듯하지 않아요?

진짜로 영험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찾아오는 정치가들에게 귀동냥한 것을 종합분석한 것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그럴듯한 예언이었습니다.

점쟁이를 만나서 제 자신의 운명을 묻지 않으면 섭섭하지요. 제 자신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난 가정적으로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가정적으로 순탄치 않을 것 같아 고민이다. 아이도 없는데 말년에 외롭지는 않겠는가 등등….

그랬더니 대답은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녀는 "얼굴이 너무 평화롭고 행복해보이는데 무슨 걱정이 있다는 거냐. 가정에 몰두하는 것은 당신에게는 맞지 않는다. 일을 하는 것이 당신의 '카르마'다. 일하느라 바빠서 외롭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을거다.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맞는지 틀리는지 몰라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곤 내가 행복에 겨워서 괜히 불평하고 있는 것 같아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까지 들더군요.

이번엔 프산트렌이라는 학교 말씀을 드릴께요. 아마 20일에 방문했을거예요.

프산트렌은 기숙사식 이슬람학교로 와히드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이슬람단체인 NU(나들라틀울라마) 산하의 학교를 말합니다. 1926년 NU가 싹트기 시작한 것도 이 학교를 중심으로 였는데 바로 와히드대통령 할아버지가 프산트렌을 세웠다고 합니다.

프산트렌은 현재 전국적으로 1만여개가 있고요, 이슬람지도자들 개인소유로 돼있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자카르타에서 가장 크다는 프산트렌 '아시디퀴아'로 1985년 7월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중고교 과정이 있고 학생수는 2500명.

자카르타 외곽에 있는 이 학교는 겉에서 보기에는 학교라기 보다도 회교사원 같았습니다. 학교안에 들어서니 동네 아저씨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얘기 하거나 어린애들이 여기저기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학교안에 있는 기도실에 동네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또 애기들은 이 학교 교사(역시 기숙사에서 생활)들의 자녀들이고요.

특별활동 시간에 공놀이를 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기를 꺼내자 교실에 있던 학생들도 일부 나와 포즈를 취했다.

정문 안내자의 안내로 누르 무하마드 이스칸다르 교장(46)이 있는 건물로 갔습니다. 역시 커다란 회교사원 모양으로 현관을 들어서자 마자 넓은 응접실이 있었고 아주 큰 카페트가 깔려있는데 방문객들이 거기에 앉아 교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면 벽면에는 아주 커다란 교장의 초상화가 걸려있었구요.

교장은 나이에 비해 굉장이 근엄해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친절하지만 상당히 무게있는 목소리로 프산토렌을 소개하더군요. 그는 이 학교의 소유자로 엄청난 재력가라고 합니다.

이 학교는 도덕적인 무슬림을 양성하기 위한 종교학교로 종교청에서 관할하는 신학교지만 일반교육과정처럼 다닌답니다. 학생들은 이학교에 들어와 24시간 공동으로 생활하면서 이슬람식 생활을 배우는 거지요. 학생들 일과는 보통 새벽 3시에 기도로 시작해 밤 8시 저녁기도후 자율학습을 한뒤 10시에 취침하는 것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수업료는 월 16만5000루피아(약2만원).

남녀 학생용 기숙사와 교실이 각각 있고 기도실 등 건물 6개로 이뤄졌는데요 교실있는 쪽으로 걸어들어가니 마침 아이들 특별활동 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던 학생들이 저를 보고 환호를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외국인들을 퍽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면 한마디라도 더 영어로 해볼까 하는 적극성이 엿보였습니다. 즉석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더니 더욱 좋아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봤습니다. 댄스 영어 컴퓨터 등 각종 취미반별로 수업이 진행됐습니다. 영어반에서는 영어로 몇마디 인사말을 한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여줬더니(디지털카메라거든요) 매우 신기해하더군요.

여학생 학생회장인 아울리아(15·고교2년)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5년간 이 프산트렌에 다녔다는 그는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신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기쁘다"고 했습니다. 집에는 1년에 세 번, 1주일씩 다녀온답니다. 여기서 느낀 건데 인도네시아 역시 여자들이 참 똑똑하고 말을 잘한다는 겁니다. 그는 "나는 자카르타 사람이지만 기숙사에 있으면 다른 지역에서 온 많은 친구들과 생활할 수 있어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물론 현대식 학교가 부럽기도 하고 재미잇게 놀고싶기도 하지만 지켜야할 경계선이 있다. 현대식 학교에서는 약물복용이나 폭력 등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종교교육이 얼마나 규율과 틀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그녀의 장래희망은 의사. 꼭 훌륭한 의사가 되달라고 부탁하고 헤어졌습니다.

토요일(21)에는 당일치기로 족자카르타라는 데를 다녀왔습니다.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비행기로 한시간 걸렸습니다. 과거 불교왕국이 번성했던 지역으로 현재는 이슬람 술탄이 사는 곳입니다. 이 지역은 한마디로 '관용의 이슬람'의 상징이었습니다.

자동차로 30분도 안되는 거리안에 이슬람 왕궁과 불교사원 힌두사원이 인접해 있는 겁니다. 불교사원인 보르부드르 사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8∼9세기경 세워졌으며 1814년 영국총독에 의해 재발굴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입니다. 힌두사원 쁘람바난 역시 9세기 중반에 건설됐으며 사원안에는 힌두신인 시바와 브라만 등의 입상이 있습니다.

족자카르타의 쁘람바난 사원. 힌두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모신 사원이다. 이곳서 멀지 않은 곳에 불교사원인 보르부드르와 이슬람왕궁이 있다. 왼쪽은 족자카르타에서 통역을 맡아준 남지화씨..

얼마전 아프가니스탄에서 과격한 이슬람교도들이 거대한 불상을 파괴한 사건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는데 이곳 이슬람 교도들은 마음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힌두, 불교유산을 파괴하기는커녕, 가꾸고 보수해 세계유산으로 만들어놓았으니 말입니다.

보르부드르사원과 쁘람바난사원에서는 머리에 질밥을 쓴 이슬람 여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쁘람바난사원을 보러 여행왔다는 한 이슬람교도 여대생(20)은 기자에게 힌두교 신화와 철학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슬람교도가 어떻게 그렇게 힌두교를 잘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규과목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으면 선생님들이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족자카르타 주지사겸 술탄인 하멩쿠 부워노 10세가 살고 있는 이슬람왕궁은 아예 이슬람식과 불교 힌두교를 모두 담은 건축양식으로 돼있었습니다. 안내원은 왕궁건물내 기둥을 가리키며 "맨 윗부분은 힌두신화에 나오는 거인의 이빨 모양이며 중간부분은 불교의 연꽃, 아래부분은 아랍의 전통문양이 들어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족자카르타에서 돌아온 것은 저녁 6시반. 아사히 자카르타지국의 사나다 지국장 부부의 초대로 몇 년전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식사를 했다는 멋진 이슬람왕궁식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을 얻어먹으며 자카르타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2001년4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