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얼마전 조카로부터 홈페이지가 제대로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 다는 불평을 들었습니다. 게을러진 점 사과드립니다. 다음은 동아일보에서 발행하는 사외보 에 기고한 글입니다.

<일본열도 흥분시킨 마사코 황태자비 임신>



















천황일가 사진.

앞줄 양쪽끝이

황태자부부.











일본 도쿄(東京)특파원으로 부임한지 1년반이 됐지만 외국에 살고 있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 생김새가 한국사람과 똑같고 우중충한 건물 모양도 서울과 비슷 하다. 정치나 사회제도, 문화 풍토도 거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있는 천황궁을 지날 때 만큼은 적지 않은 이질감을 느끼게 된 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왕조의 역사유물이 껍데기뿐인 '박제'상태로 남아있는 반면 일본에는 비록 '상징적 존재'라 해도 천황이 아직도 대를 이어 '현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 가 오래됐다는 천황 일가는 한국인에게는 쓰라린 역사를 일깨워주지만 일본인에게는 자기정 체성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절대적인 존재다.

천황 일가에 대한 일본 국민의 열성은 얼마전 마사코(雅子) 황태자비(37)의 임신 발표를 계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천황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이 5월 15일 마사코비의 임신 사실을 정식으로 발표하자 전 매스컴이 열광하며 대대적으로 특집보도를 전했다.

마사코비는 93년 황태자와 결혼한뒤 8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어 온국민이 애를 태웠다. 황 실에서는 황태자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가 태어난 이후 36년동안 남자아기가 없 어 대가 끊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아키시노노미야도 두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딸이다.

매스컴들은 마사코비의 임신사실 발표후 황태자 부부의 출생에서부터 성장과 만남, 결혼 에 이르는 과정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보도했다. 또 시민 반응과 각계인사 코멘트, 출산에 이르는 의식 등도 자세히 소개했다. 날마다 황태자 부부의 동정을 다루고 5월16일에는 이들 이 자동차로 외출하는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이에 앞서 4월 16일 궁내청이 임신 가 능성을 발표했을 때 일부 신문들은 호외까지 찍어 냈다. 한 연구소는 마사코비 임신이 국내 총생산(GDP)을 0.1∼0.2% 상승시킬 것이라는 경제 전망을 발표하기도 했다.

11월말 전후로 예정된 마사코비의 출산을 앞두고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로 술렁대고 있다. 궁내청은 현 황후가 황태자를 출산했을 때의 전례에 따라 '황태자의 자녀탄생식'을 실시할 계획. 임신 5개월 때 임시로 복대를 두르는 임시착대식, 9월에는 정식 착대식을 지낸다. 또 출산당일에는 천황이 아기에게 보호검을 보내는 사검(賜劍)의식을, 출산 7일째에는 명명(命 名)의식을 행한다.

이같은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매스컴들은 한편으로는 상당히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99년말 마사코비가 임신했다가 유산한 경험이 있기 때문. 특히 12월10일 아사히 신문이 마사코비의 임신사실을 특종보도한 후 매스컴 전체가 과열 보도경쟁을 벌이다가 유 산하자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은 독자 항의가 쇄도하자 지난해 1월 1일자에 편집국장 명의로 해명기사를 싣 기도 했다. 아사히는 "임신보도에 대해 모성보호와 프라이버시에 대해 항의가 많았지만 황 태자비는 공인중 공인이고 황위계승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쏠려있다. 이번 보도가 마사코비 에게 정신적 부담이 됐다면 드릴 말씀이 없다. 회복을 빈다"고 해명했다. 아사히는 최근 마 사코비의 임신이 공식확인됐을때에도 '부디 무사히 출산하기 바란다'는 사설을 실었다.

마사코비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미모의 엘리트 외교관 출신 황태자비라는 점 때문에 해 외 매스컴으로부터도 관심의 초점이 돼왔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공부한 그가 전통적인 황실 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황태자의 뒤를 이을 아기는 언제 낳을지도 기사의 단골메뉴였다.

결혼후 4년쯤 지나자 해외 미디어에서는 '슬픔의 황태자비' '사라진 일본의 프린세스'라 는 제목의 보도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뉴스위크는 "황실을 개혁할 것으로 기대됐던 하버드 대 출신의 엘리트 외교관이 황실의 전통에 억눌려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마사코비는 "내가 우울상태에 있다는 보도도 있지만 그런 일은 없다"고 반박했지만 궁내청 간부들은 "황태자 비의 머리는 아직 미국식이어서 익숙해지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일부 시인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는 올해초 부록책자 표지기사로 황태자 부부얘기를 다뤘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신문은 표지에 실은 황태자부부 사진에서 황태자 바지 위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글자를 넣어 '불임'을 암시했다가 일본측의 강력한 항 의를 받고 사과했다.

한편 마사코비의 임신발표 직후 정계를 중심으로 여성천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동 안 황태자에게 아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황위계승 문제를 거론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오 히려 임신한 황태자비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

현재 일본헌법에는 황위계승에 대해 '세습'이라고만 돼있지만 황실전범은 1889년부터 '황 위는 황통에 속하는 남계(男系)의 남자가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36년간 태어난 아기 8명이 모두 딸이며 이번에 황태자비가 딸을 낳는다면 여자천황시대가 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일본 역사상 여자천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25대에 이르는 천황중 여자천황 은 10대, 8명이나 된다. 대부분 남편이 죽은 뒤 황위에 오른 황후, 황태자비거나 평생 독신 으로 지낸 여성이지만 선정을 베풀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천황제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물론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 法) 공명당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雄) 민주당 대표 등이 잇따라 찬성의견을 밝혀 법개정은 시간문제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여성천황 용인'이 절반을 넘었다.

주변국과의 잦은 마찰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일본을 새로운 평화시대로 이끌 여자천황이 과연 등장할 것인가, 또 다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2001년7월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