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글에서는 일본의 좋은 점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일본 험담을 좀 해볼까 합니다.

어제 저희 도쿄지사에 근무하는 여성직원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그 사람은 재일교포 3세로 역시 재일교포인 남성과 지난해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일본 스포츠신문 기자로 지금은 업무직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뜻한 바가 있어 회사를 그만두고 한의학을 공부하기로 진로를 바꿨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계시는 홋카이도에 가서 아버지 사업을 도와가며 경제적 지원을 받아 공부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 이사를 하기 전에 이사할 집을 찾으려다 겪은 일인데요, 맘에 드는 신축 아파트가 있어서 빌리려고 했는데 복덕방에서 갖은 조건을 붙여서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 조건은, 본인명의 계약시에는 회사근무경력 5년이상이어야 하고 법인명의 계약시(아버지가 갖고 있는 법인으로 계약할까도 생각했답니다)에는 법인이 1부증시에 상장된 기업이라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이라면 다른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집을 빌리느냐며 항의했지요. 또 만일 집세를 제때 내지 않을까봐 걱정이 돼서 그런다면 2년치 집세를 선불로 내겠다고 했는데도 복덕방은 그 조건이 안되면 빌려줄 수 없다며 버티었습니다. 직원남편은 너무나 화가 나서 여러 가지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원래부터 그런 조건은 있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다만 재일교포라고 하니까 복덕방측에서 적당히 거짓말 조건을 붙여서 거절한 겁니다.

직원 남편이 이를 확인하고 다시 복덕방에 항의했더니 그제서야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집을 빌려주겠다더랍니다. 직원 남편은 복덕방이 직접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를 하기전에는 용서할 수 없다며 벼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집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있습니다. 외국인 유학생이나 취업자들이 일시적으로 일본에 살다가 집세도 내지 않고 귀국해버리는 일이 없지는 않기 때문에 집을 빌려줄 때 망설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인들도 월세로 외국인에게 집을 빌려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마 더욱 심하게 노골적으로 거부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번에 말씀드린 것은 재일교포의 일입니다. 하루이틀 일본에 산 사람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세를 떼어먹고 일본을 떠날 사람들도 아닌, 일본인과 똑같이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집을 빌려주지 않는 것은 일본인이 얼마나 폐쇄적인가를 쉽게 보여주는 단면이지요.

요즘에는 일본내 영주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참정권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앙의 국회의원이 아닌 지방의회의원 선거에는 재일교포 등 영주외국인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움직임이지요.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들은 일본을 제2의 모국으로 생각하며 일본에 생활기반을 두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는, 일본인과 조금도 다름없이 의무를 다하고 있지요. 그런 재일교포가 70만명정도 됩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는 제손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켜주는 사람을 선출하지 못해왔습니다. 이제사 그런 참정권을 주자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러나 정작 외국인 참정권 문제가 일본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종적을 감춰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내의 보수세력이 반대하며 이를 저지한 것입니다. 외국인 참정권 문제는 이미 물 건너갔고 오히려 재일교포들이 귀화하기 쉽게 귀화절차를 간소화하는 개정안을 추진중입니다. 참정권을 갖고 싶으면 일본사람으로 귀화하라는 것이지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일관계는 그어느때보다도 가까워졌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문화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물량의 행사가 양국에서 벌어지고 있지요.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사실상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외국인참정권 문제는 물론이려니와, 최근에는 역사교과서도 우익화되고 있습니다. 일부 교과서에서는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며 종군위안부에 대한 언급은 회피하는 등 역사를 분명히 왜곡하고 있는데도 이 교과서가 검정교과서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지난번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26)가 술취한 일본인 승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을때만해도 일본의 온국민이 한국인에게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빈소에는 모리 요시로 총리를 비롯해 고노 요헤이 외상 등 높으신 분들이 대거 행차해 이수현씨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한일 양국간 우호관계를 긴밀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이수현씨 조위금으로 낸 돈만해도 수천만엔에 이릅니다.

그런데 그 열기가 식자마자 역사교과서 문제가 터진겁니다. 그리고 일본내 보수세력들은 "내정간섭하지마라" "정치적 개입은 필요없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내정'의 문제이고 '정치적 개입'입니까. 일본 보수세력들은 왜 일본에 70만명의 재일교포가 존재하는지, 왜 역사교과서의 내용에 한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별로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재일교포에게조차도 집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헛된 바람에 불과한 것일까요? (2001년 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