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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모는 행복해?"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구요? 저랑 같이 도쿄에서 살고있는 제 여자조카 현진이가 전에 제게 던진 말입니다. 상당히 당돌하게 들리는 이 말은 당시 저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지요. 오늘은 제 조카 현진이와의 도쿄 생활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현진이는 둘째오빠의 세째딸로 22살(아마)입니다. 작년봄 한국에서 전문대를 졸업했는데 단신부임을 하게된 제가 일본에 같이 가자고 꼬이는 바람에 저를 따라 도쿄에 왔지요. 지난해 1년은 일본어 학교에 다녔고 다음달부터는 일본서 제일 유명하다는 도쿄제과학교 양과자(케익)과정에들어갑니다. 현진이는 성격도 싹싹하고 얼굴도 예뻐서 제가 귀여워하는 편이었지요. 물론 제가 좋아하니까 하구 많은 조카(조카가 12명이나 된답니다)중에 같이 오자고 권했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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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진이랑 살면서는 하루하루가 전쟁입니다. 아니 현진이와의 전쟁이 아니라 제 자신과의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여러분중 많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아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아랫사람을 책임지며 살아본 경험이 한번도 없지요. 결혼전에는 친정에서 부모님과 오빠언니, 조카들도 함께 모여살았지만 그때는 제가 누굴 책임졌던 것은 아니고요, 또 결혼후에는 시부모님 그늘에서 적당히 신세를 지며 살았지요. 그런데 도쿄에 오면서 갑자기 현진이가 내 부양가족이 된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머릿속으로는 가족은 누구나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서로 평등하게, 서로 의견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레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현진이를 저와 같은 수준에 올려놓고 친구처럼 대하며 존중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주로 타사 특파원이나 아사히 등 일본신문기자, 제 후견인 격인 일본 아줌마들)도 함께 만나고 놀러도 같이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느끼는 것을 현진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현진이를 친구처럼 대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현진이가 저랑 비슷한 의식을 갖고 있어야한다고 믿었던 겁니다. 현진이가 저보다 열몇살이나 어리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어른의 잣대로 여러 가지 완벽하게 생활하기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현진이만할때는 노는 것을 좋아하고 했을텐데 현진이에게는 항상 공부하란 잔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진이가 빈둥대거나 친구들과 놀다가 늦게 돌아오는 것(어른인 제가 보면 빈도수가 좀 잦습니다)을 보면 은근히 화가 치밀어 견딜수가 없어집니다. 그럴때마다 앉혀놓고 설교를 시작합니다. 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왜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되는지 등등... 그랬더니 현진이가 당돌하게도 제게 물었던 겁니다. "고모는 공부 열심히 해서,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지금 행복한거야?"라구요. 말문이 탁 막혔지요. 현진이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친구랑 사귀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순간 멍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해서 사회적으로 안정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의 의지대로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여자에게도 필요하다고요. 설사 부잣집 남자 만나서 결혼한다고 해도 남편한테 받는 돈으로 살아갈 경우 얼마나 치사한 일이 많겠냐고요. 부부가 됐건 친구가 됐건 아니면 가족이 됐건(부모자식지간을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인간관계마저 망가질 수 있다고요. 돈 주는 사람은 못느끼는데도 돈 받는 사람은 괜히 자격지심이 생기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잖아요. 이 대목에서는 현진이도 상당히 이해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서 저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와 도쿄특파원까지 왔으면 행복하게 느껴야 마땅한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그 사실을 현진이한테도 들킨 것 같아 왠지 설교도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누굽니까. 저는 도쿄에 와서는 줄곧 제가 보호자라는 의식 때문에 끊임없이 간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빠 대신 제가 부모 역할을 하면서 현진이를 반드시 '훌륭한 성인'으로 만들어 데려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떠나지 않았던 거지요. 저는 지금까지 인간은 모두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제 친구의 지적에 따르면 이건 완전히 자칭 '엘리트'들의 '잘난체'라고 합니다) 또 모든 사람이 자신이 세워둔 목표를 향해 치밀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제 자신도 그렇게 못해왔으면서) 그래서 아직 그 단계에 오르지 못한 현진이에게 '지도' '자극'이란 명목으로 계속 강요하고 있는 거지요.
며칠전에도 현진이를 앉혀놓고 두시간정도 설교를 했습니다. 그날은 무슨 생각이 들어서인지 현진이에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토요일까지 글로 써서 고모한테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현진이는 황당한 표정으로(제가 생각해도 황당합니다) "왜 그런 걸 써야하냐"고 되물었습니다. 어린 것에게 너무 가혹한가 싶어서 그러면 대화를 해보자고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직업관, 대인관, 인생관 등에 대한 제 생각을 늘어놓았습니다. 현진이가 그렇게 따라와주길 바라면서요. 그러나 역시 역부족이었습니다. 제가 "빵하나를 만드는데도 빵을 먹는 사람의 삶을 이해해야 하고 나름대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 즉 (어려운 말로) 철학이 필요하다. 그러러면 빵 만드는 시간 말고는 책도 다양하게 열심히 읽어야 하고, 우선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 배려 그런 것을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더니 현진이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빵 하나 만드는 데 뭐 그렇게 복잡하냐"고요. 현진이는 일본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고 했습니다. 구경다니는 것도 재밌고 백화점이나 거리에 나가면 새롭고 좋은 물건들도 많고... 저는 일본에 있는 3년동안만 눈 딱감고 자신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게 좋지 않냐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어린 현진이에게는 눈앞의 재미, 즐거움이 참 큰 모양입니다.(요즘 젊은 애들은 모두 그런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실 그런 즐거움을 저는 어렸을 때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시대도 달랐겠지만 그런데 빠지면 안된다는 '자율규제'의식이 강했지요. 그래서 지금 너무 '외골수'처럼 변했는지도 모르지만요. 요즘에는 현진이의 귀가시간을 놓고도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진이는 도쿄에 오기전에 자기 부모와 살때는 별로 귀가시간에 규제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전 다르지요. 제 자신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외국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지 않으면 생활이 흐트러지기 쉽다는 우려 때문에 늘 일찍 들어오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현진이는 자주 늦게 들어옵니다. 그것도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술을 저보다 훨씬 잘마십니다) 밤새도록 화장실을 왔다갔다 합니다. 처음에는 도쿄에 와서 적응하기 힘드니까 그러려니 하고 조금 내버려두었는데요, 나중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말경 현진이가 새벽 1시쯤 전화해 집에 못들어온다고 했던 때입니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집근처 신주쿠라고 하면서 친구들이 모두 취해있기 때문에 함께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기가 막혔지요. 화도 났구요.(현진이가 놀고 있던 곳은 바로 그전날 일본청소년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겠다며 폭발사고를 일으켰던 곳이어서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밖이 좋으면 계속 밖에서 살라면서 전화를 끊고 문을 걸어잠갔습니다. 잠도 못자고 뒤척거리는데 새벽 3시가 조금 넘어서였는지,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현진이였지요. 문밖에 와있으니 문을 열어달라는 겁니다. 안된다고 끊고는 새벽 6시쯤까지 버텼지요. 아주 추운날이었어요. 몇 번이나 문을 열어줄까 망설였지만 버티다가 6시에야 문을 열어줬지요. 그리곤 그날 오후 회사에서 퇴근해 돌아왔더니 현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성격이 무지 싹싹합니다) "다녀오셨어요?" 하는 겁니다. "너랑 말하기 싫어"(왜 이렇게 무뚝뚝하게 말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면박을 주었더니 현진이가 정색을 하고 "고모, 내가 그렇게 잘못한거야?"라고 되묻는 겁니다. 몇마디 주고받았지만 현진이랑 논쟁을 시작하면 제가 백전백패입니다. 제 조카는 말을 굉장히 잘하거든요. 그래서 버럭 화를 냈지요. "고모는 지금 너를 혼내고 있는거지, 말싸움하고 있는게 아니야"라구요. 한 시간 가량 침묵이 흘렀을까요. 찔찔 울고 있는 현진이를 달래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현진이가 먼저 백기를 들었습니다. "고모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는데" "늦게 들어온 것 하구, 고모한테 말대답 한 거요" "그럼 됐어" 그날도 한두시간 정도 다시 설교를 늘어놓았습니다. "왜 꼭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하냐"는 현진이의 반문도 있었지만 갖은 이유를 붙여 설명했습니다.(사실을 이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왜 집에 반드시 일찍 들어와야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었지요) 그래도 다행히 현진이가 좀 알아듣는 것 같은 반응을 보여 서로 적당히 기분이 풀려 잠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현진이 통행금지 시간은 밤 12시로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그후 몇 번인가 어겼고 그것을 빌미로 저는 다시 통금을 10시로 당겼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멋진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현진이를 제대로 감시(^^)하려면 일찍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 생활이 더욱 규칙적으로 돼버렸습니다.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새버렸네요.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자면 결론은 저는 현진이와 살면서 느낀게 참 많았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저와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갖고 살고 있는지, 사실 처음으로 실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저는 늘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최소한 대화할 때는 저와 그다지 생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들하고만 살거나 교류해왔으니까요. 또 처음으로 (부모는 아니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게됐습니다. 그리고 자주 엄마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에게 엄격했는데 저도 어릴땐 늘 그것이 불만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고 해서 늘 잔소리가 많았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맘에 안드는 행동을 할 때면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끙'하며 크게 헛기침을 하셨지요. (저도 가끔 아버지 생각하면서 현진이가 맘에 안들때면 아버지 소리와 똑같은 헛기침을 하면서 야단치고 싶은 생각을 누르곤 합니다만, 현진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겠어요) 제 언니에게 가끔씩 현진이 얘길 하며 하소연했더니 언니는 "자식 키우는 부모는 부처님이 돼야한단다"라며 충고해주더군요. 자식이 어떻게 하든 크게 어긋나지만 않으면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고요. 언니에게는 늘 그러마 대답하지만, 그런데 그게 쉽나요... 너무 얘기가 길어졌지요? 한참 현진이 흉만 봤지만 사실은 현진이는 장점도 많은 아입니다. 눈치도 빠르고요, (공부는 별로지만) 머리도 좋은 것 같고요, 무엇보다 성격이 싹싹해 무뚝뚝한 저를 금새 풀어놓는답니다. 앞으로 가급적 잔소리 안하겠다고 늘 다짐해보지만 어쨌든 현진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멋진 케익전문가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현진이에게도 말했지만 현진이가 목표를 이룰수만 있다면 '독한 고모'라는 악역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2001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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