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4월16일

안녕하세요. 여기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입니다.

웬 자카르타냐구요? 오늘 취재차 출장왔거든요.

동아일보에서 연중기획으로 연재하고 있는 이슬람시리즈중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부분을 제가 맡았습니다.

해외에 나와 본 것은 제가 특파원으로 있는 일본(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과 91년 홍콩, 97년 제네바 모터쇼에 가본 것이 거의 전부라서 그런지 인도네시아 오기 직전 엄청 흥분되더라구요. 게다가 적도를 넘어 남반구로 오다니요…

고등학교땐가 대학땐가 안성기하구 장미희가 나오는 영화 '적도의 꽃'을 보면서 적도라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상상만 했었는데 실제로 적도를 넘어왔습니다.(저 무지 촌스럽지요?)

자카르타는 일본 도쿄에서 비행기로 7시간. 이코노미석에 앉아(그것도 창가쪽이라서 자주 드나들지도 못하고) 7시간을 버티자니 정말 '이코노미증후군'이 실감이 나더군요. 다리가 뻣뻣해 지는 것이 속이 울렁울렁. 왜 있잖아요. 몹시 불편한 상황. 자고 먹고 또 자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영화 한편 보고, 그러고 나니 비행기항로가 막 적도를 지나는데 밖을 보니 아무 표시도, 금도 없더라구요. 적도란 참 싱거운 거구나….

자카르타의 소카르노공항에 내린 첫인상은 참 좋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절차를 밟는 곳까지 연결된 통로가 참 예쁘더군요. 통로 양옆이 유리창으로 밖이 내다보였는데 밖에는 파란 잔디와 열대식물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있었습니다. 통로 중간중간의 벽면에는 인도네시아 전통문양들이 새겨져있었구요.

정말 멋없는 우리나라 공항(저는 아직 영종도 공항은 안가봤으니 모르겠지만)과는 너무나 딴판이었습니다. 늘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자기나라 고유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우리가 한수 지고 있는 것 같았지요.

얘기가 옆으로 새는 것 같지만 도쿄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장준비 때문에 도쿄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대사관에 가봤는데 참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더라구요. 현관 로비에는 전통 조각품도 놓고(왜 있잖아요, 울긋불긋한 새같기도 하고 닭같기도 한 동물조각) 예쁜 아가씨가 방문객을 상냥하게 맞이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사관은 꼭 무슨 정보기관 건물처럼 시커먼 양복의 아저씨들이 무서운 표정으로 버티고 있고 현관은 썰렁하니 어느나라 대사관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무미건조하거든요.

자카르타 거리에서.

어쨌든, 공항에 내려 감탄을 하자니 LG전자에서 나오신 분이 저를 맞이해주셨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LG의 사례도 취재할까해서 부탁을 했더니 공항까지 저를 마중나와주신 겁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무지 밀렸습니다. 그 시간동안 LG분과 얘기를 나눴죠.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인도네시아 현지에 사는 사람들 생활수준이었습니다.

"모두들 운전사까지 딸린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집에 가정부까지 두고산다면서요? 얼마나 좋으세요? 물가도 싸고, 생활도 편하고…"

그랬더니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오죽 치안이 불안하면 운전사 딸린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죠. 외국인은 길에 혼자 걸어다니기 힘들 뿐만 아니라 손수운전도 위험하다는 겁니다. 경제사정이 안좋다보니 강도나 그보다 더 흉악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거죠. 손수운전할 때는 꼭 차문을 잠그고 도로에 뭐라도 떨어져 있으면 반드시 피해서 운전한답니다. 나쁜 사람들이 도로에 담배갑같은 것을 놓고 자동차 타이어를 펑크낸뒤 운전자가 고치러 차밖으로 나오면 강도를 한다나봐요. 교민중에도 상당수가 나쁜 일을 당하고 심지어는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대요.

참 안타깝죠? 우리나라도 IMF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지만 인도네시아는 국민소득이 1000달러도 안되는데다가 빈부격차가 워낙 커서 일반 국민생활은 말도 아니래요. 그런데도 위정자들은 잘먹고 잘살고 있다니… 세계 어디나 그런 특권층은 있게 마련이지만.

LG분의 말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보고 1000년의 미소라고 하지만 가난앞에서는 그 미소도 사라져버린다"고 하더군요. 언제나 착하고 상냥한 것 같은 인도네시아사람들이 오죽하면 그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항에서 곧바로 아사히신문 자카르타지국에 갔습니다. 아사히 자카르타특파원은 제가 일본에서부터 알던 여기자여서 저의 취재일정 잡는데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아사히 여기자의 집에서 일주일 동안 묵게 됐습니다.

폐가 되지 않겠느냐고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폐가 안될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 저녁식사후 아사히 여기자 집에 오니 자기집에서 묵어도 된다는 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집은 거의 호텔급으로 욕실과 화장실이 별도로 딸린 큰 방이 비어있었습니다. 청소는 아파트측에서 매일 해주고 욕실의 수건까지도 갈아준다는 군요. 한달 집세가 250만원 정도. LG전자가 고용하는 현지인 대졸 월급이 20만원 정도라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금액이죠.

너무 낭비 아니냐고 물었더니 치안이 불안해 이런 곳에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도 그런 것이 들어오는 현관을 보니 전자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오도록 돼있고 로비에는 호텔처럼 보이들이 죽 서있었습니다. 일반 주택에 살려면 별도로 가정부도 두고 경비원도 두어야 하기 때문에 호텔식 아파트가 편하다는군요.

덕분에 저는 오늘 호화스런 호텔같은 아파트에서 편하게 잠을 잘랍니다. 내일의 취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