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
-서주홍-


제 1 막

당신의 그림자만 밟으며 가다
그만 당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생각엔 분명히 당신의 그림자라 생각했는데
얼마 뒤에 보니 그건 당신의 그림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옷이라도 붙잡고 갔어야 했는데
설마 당신을 놓치리라 생각이야 했겠습니까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싶어서
몇 번이고 다시 보았지만 분명히 당신은 아니었습니다


제 2 막

나는 어쩔 수 없이 운명이라 여기고
다른 그림자를 따라갔습니다

한참을 당신 생각에 아쉽고 괴로웠지만
어쩐 일인지 금방 당신은 기억에서 지워졌습니다

얼마 가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앞서가는 그림자를 붙들어 세웠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운명이라 여겼던 그 그림자가 아니었습니다


제 3 막

(제 1 장)

이미 경험으로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나는 쉽게 안정이 되었습니다

다시 나는 다른 그림자를 만났습니다
이번엔 어떤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겠다 작정했습니다

얼마나 갔을까
그림자는 통 말이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았더니
그 그림자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제 2 장)

외톨이가 된 나는 세상이 다 싫었습니다
나는 무거운 몸을 끌고 가던 길을 돌아섰습니다

돌아가던 길 아무도 나를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습니다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을 텐데
바로 그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피곤한 모습대로 나에게 어디에 있었느냐 물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당신은 조용히 웃었습니다
당신 자신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했습니다


제 4 막

이제 나는 당신의 그림자를 밟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신을 또 놓치지나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깨달음은 우리를 믿음 위에 서게 하였고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난 길을
당신과 나란히 다시 떠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