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꿈을 묻어놓고 이기철지음 오늘 나는 또 한 번 가슴 속 여린 곳에 금이 가는 것을 보았다 새들은 따뜻한 남쪽 들판에 사라지기 쉬운 몇 가닥 울음을 남겨놓고 꽃들은 끝내 검고 어두운 쭉정이 속에 그의 허무를 드러내고 차례로 죽어갔다 지상에는 다만 산과 바다의 잴 수 없는 거리 왔다가는 가버리는 그런 가을에도 사람들은 그의 뜨락에 맨드라미 씨를 받아놓고 너무 많은 말들을 남긴 사람들은 죽어서도 책 속에 잠들어 있다 누구가 말할 것인가 떠올라 깊섶의 꽃이 되지 못하는 물 속에 누운 돌멩이의 슬픔을 누구가 말할 것인가 씨앗들의 분홍꿈을 밟고 가는 바람의 서걱이는 욕망을 땀에 젖은 내의를 갈아입고 이제 우리는 낯익은 그리움을 찾아 길 떠나야 하리 장미의 아름다운 향기와 같은 오늘의 짧은 노래, 짧은 시나 외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