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게 일의 과정을 즐겨라 - 정찬주
봄비가 원왕생 원왕생 내리고 있다.
처음에는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듯하여 반갑더니 이제는 첫사랑처럼 쓸쓸하다.
나그네가 지금 찾아온 곳은 신록의 잎들이 다투어 솟아나고,
법당 둘레의 동백꽃과 매화가 때늦게 만발한 목우암牧牛庵이다.
잔 나무 가지들은 수정 같은 봄비를 매달고 있고,
마당에는 대나무들이 젖은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눈썹이 허연 노스님이 뒷짐을 진 채 산 아래 마을을 응시하고 있는데,
마을 밭에는 마늘과 파들이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다.
중국과 해상 교통이 발달한 영산강 문화권인 위치 때문인지 암자를 창건한 스님은 중국 출신의 스님이다.
고려시대 1131년(인종 9)에서 1162년(의종 16) 사이에 원나라 임천사의 비구승 원명圓明이 처음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원명은 꿈속에서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에서
소 한 마리가 나와 이곳에 이르는 것을 보고
꿈에서 깨어난 후 찾아와 보았는데, 실제로 계곡 산길에 소 발자국 흔적이 나 있어 초암을 짓고 수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의 제자 5백 명도 뒤따라와 암자 옆에 법천사를 크게 짓고
수행하였다 해서 산 이름도 승달산僧達山이라고 불린다.
흥미 있는 산 이름이다.
목포에는 유달산이 있고, 이곳에는 승달산이 있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유儒와 승僧은 이유 없이 대립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소모된 민족의 에너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고,
유와 불뿐만 아니라 상생相生을 외면하는 너그럽지 못한 우리네 악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느낌이다.
나그네를 맞은 노스님은 일흔이 넘으신 금산金山스님이다.
노스님의 허리가 꼿꼿하다. 한눈에 선사임을 직감케 한다.
형형한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나그네의 궁금한 사항이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있는 눈빛이다.
나그네도 문안 인사를 생략한 채 바로 여쭙는다.
“선에는 염불선도 있고 참선도 있는데, 스님께선 어떤 수행을 하시고 계십니까?”
“산 정상을 오르는 데는 여러 갈래의 산길이 있어요. 자기 자신의 근기에 맞는 길을 선택해야지요. 업장도 다르고 과거 습관도 다르니까.”
그러면서 스님은 부처의 수제자였던 목련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 목련 밑에는 두 수행자가 있었다.
한 수행자는 대장장이 출신으로 풀무질했던 사람이고,
또 한 수행자는 세탁소에서 옷을 빨아 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목련은 과거의 업을 고려하지 않고
풀무질을 했던 제자에게는 욕망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관淨化觀을,
빨래질하던 제자에게는 들숨과 날숨을 들이쉬며 수를 헤아리는 수식관數息觀을 시켰다.
그러니 수행이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목련은 절친한 도반인 사리불에게 두 제자를 맡겨 수행케 했다.
지혜로운 사리불은 두 사람의 과거 직업을 물어보고는 수행법을 바꾸게 하였다.
그러자 두 수행자는 날로 수행이 깊어져 나중에는 아라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봄비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가슴에도 물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평생 관세음보살만 외던 할머니에게 어느 날 갑자기 무無자 화두를 들라 하면 되겠어요?
할머니의 습관이
그러하면 당연히 관세음보살을 외게 해야지요.”
“스님, 목우암이란 암자 이름이 참 예쁩니다.”
“보조 지눌스님을 목우자牧牛子라고 부르는데,
이 암자를 다녀간 후 목우자로 불렸다고 해요.”
목우란 ‘소를 길들이기’인데,
넓은 의미에서 심우尋牛란 단어와 동의어이다.
소가 상징하는 것은 참나, 자성, 불성, 진여 등등으로 다 같은 동류항이다. 법당 벽에 ‘소 찾는 그림’이 바로 심우도인데,
열 단계로 그려져 있다.
깨달음으로 가는 상징구조가 재미있고 묻는 사람이 많으므로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참나인 소를 찾아尋牛,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見跡
, 드디어 소의 실체를 보고見牛, 소를 얻어得牛, 소를 길들이고牧牛,
소를 타고 깨달음의 집에 돌아와서騎牛歸嫁,
이제 소가 달아날 염려가 없으므로 소 같은 것 다 잊은 채 안심하고忘牛存人,
사람도 소도 실체가 공한 것을 보아人牛俱忘,
있는 실상을 그대로 보고返本還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入纏垂手는 열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최근에 숭산스님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선이란 한마디로 이런저런 생각 하지 않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불법이 무엇이냐고 묻기 전에 조주스님같이
‘차나 한잔 마셔라’이거나 숭산스님처럼 ‘코카콜라나 밀크셰이크를 한 컵 먹어라’이다.
금산스님은 선에 있어서 일행삼매一行三昧와 일상삼매日常三昧를 강조하신다.
“일상삼매란
고양이가 쥐 사냥하듯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고,
일행삼매란
어미 닭이 병아리를 부화하기 위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줄탁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에요.
병아리가 알 속에서 쭉쭉 소리내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병아리를 까려고 껍질을 쪼는데 그것을 탁이라 합니다.”
스님이 강조하는 것은 성불보다는 그 과정이다.
나그네의 귀에 가장 남는 말씀이다.
“성불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행복해야 합니다.
편안하고 행복해야 공부도 더 잘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 일상삼매나 일행삼매를 하면 일을 즐기게 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집착을 버린 무심의 차원에서 일의 과정을 즐기는 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스님의 선에 대한 요점 정리가 끝나자 어느새 점심 공양시간이다.
나그네는 과분하게 스님과 상을 같이해서 음식을 든다.
스님은 가끔 외국으로 나가 법문도 하시는 모양이다.
독일에 갔을 때 한 외국인이 감동하여 ‘지난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일상삼매로 살겠다’고
맹세하더라는 전언이다.
선이 이제는 불가의 울타리를 넘어 저잣거리에서 응용되고 있음을 다시 느낀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같은 상에서 네 사람이 공양을 하였는데,
노스님의 숟가락 끝과 젓가락 끝이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가지런한 것에 문득 부끄러워진다.
우리 집 식탁을 떠올려보니 그것은 난장판과 다름아니다.
가는 길
광주시나 목포시에서 가는 거리는 엇비슷하다.
고속도로를 타고 무안군 몽탄면으로 가서
목포시의 상수원지이기도 한 달산리수원지를 찾아가 외길인 산길을 타고 가면 목우암에 이른다
. 남도에서 이만큼 호젓하고 긴 산길도 드물다. 전화 061-452-3855
캡션
1. 성불의 과정도 행복해야 한다는 금산 노스님
2. 대숲과 동백나무에 가린 목우암
3. 노선사처럼 허리가 꼿꼿한 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