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꽃

이재무


차창 너머 능선이나 계곡
허옇게, 머리칼 나풀거리며
초겨울 속으로 걸어가는 그대
그대의 메마른 피부
굽은 등 위에 분분한,
마분지 같은 오후의 햇살 눈물 난다
무성했던 여름 그대와 함께 였던
날벌레, 길벌레들 땅, 나무 껍질 속으로
동면 취하러 간 지 오래고
억새꽃, 그대만이 지금 맨가슴으로
폭풍이 물러간 바다 보고 있다
문득 건초같이 물기 없는 문장이
눈시울 젖게 하던 기억 눈을 때린다
생의 무게는 결코 화려한 수사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
담백했던, 그날 그 책의 감동
저기 저렇듯 하얗게 다시 나붓기고
먼 곳에서 그리운 사람아
우리가 저 수묵 같은 억새꽃의
한 생애로 온전히 저물 수 있다면
지난 날 서로에게 상처였던 무수한 과오인들
어찌 허물일 수밖에만 없겠는가
불어오는 바람에 저를 맡기며 걷는
억새꽃, 나의 내일이여

《현대시,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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