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사유화를 규탄한 불굴의 사회사상가"


"진보와 빈곤"의 헨리 조지


헨리 조지(1839-1897)의 대표작 <진보와 빈곤>이 그의 사후 1백년만에 완역된 사실은 경제사상사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빈약한 지위를 대변한다

헨리 조지의 '토지공유론'은 당대의 이상주의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10만 인파가 모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세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돼 치열한 체제경재을 전개했던 '극단의 시대'에 헨리조지가 제시한 제3의 대안은 발붙일 틈새가 없었다.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갈려 있었던 경제학계 역시 헨리 조지의 주장을 외면했다. 경제학 교과서는 물론이고 경제사상사 관련 서적에서도 그이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헨리 조지가 창안한 토지공유제는 기득 이권층의 이익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제도다. 따라서 이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은 거셀 수 밖에 없다. 그의 토지 공유제는 아직도 실현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저 아름다운 지하자원'에 속한다.

그렇다고 헨지 조지는 전혀 생소한 인물이 아니다. 눈썰미가 있는 톨스토이의 독자라면 그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부활>에 헨리 조지가 등장한다, 농민에게 토지를 나눠주기로 결심한 네홀류도프가 바람직한 토지분배의 방법을 언급한 대목에서 헨리 조지가 거명된다. 또한 이것은 <진보와빈곤>이 당시 얼마나 인기 있는 저작이었는지 입증하는 사례다.

1879년 출간된 <진보와 빈곤>은 미국과 영국에서 수십만부가 팔렸고 10여개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두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책이 잘 나갈 당시에는 <성경>다음으로 판매부수가 많은 논픽션 서적으로 기록되엇고 가장 많이 보급된 경제학 서적이라는 기록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부활>이 발표된 것이 1899년이니까 톨스토이가 <진보와 빈곤>을 접할 시간은 충분했다. 더욱이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의 사상에 적극 동조한 이상주의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진보와 빈곤>의 번역 "역사"는 생각보다 긴 편이다. 이 책의 초역은 1961년에 이뤄졌다. 4.19직후 대안모색의 하나로 보이는 번역작업은 대학원생이 맡은 탓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것마저 5.16군사구데타가 발발하자 금서로 지목되어 사라지게 된다. 계급의식을 부추기고 사유재산제를 부정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진보와 빈곤>은 축약본을 통해 긴 잠에서 깨어난다. 1953년 영국의 매드센이란 사람이 만든 축약뵨은 헨리 조지의 사상을 되새기려는 시도. 원래 분량을 절반 정도로 압축했고 일반인이 쉽게 읽수 있도록 오늘의 감각에 맞게 문장을 손질했다. 그래서 축약본을 읽으면 1백여년전과 오늘의 시간적 거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축약본의 번역이 현실 사회주의 몰락하는 시점과 맞물리는 점도 흥미롭지만 책의 내용이 재현된듯한 국내 상황은 더욱 흥미롭다. 1989년은 땅값과 집값이 폭등한 한해였다. 특히 전세갑이 치솟자 이를 비관한 세입자들의 자살이 속출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사회 여건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축약본 <진보와 빈곤>은 적잖은 호응을 얻었다. 1만부 가까이 팔렸다.

지난해 헨리조지 서거 1백주기를 맞아 완역본이 나왔다. 완역본은 텍스트로서의 가치를 고려해 원문에 충실한 직역을 했다. 완역본은 '산업불황의 원인과 부의 증가에 따라 빈곤도 증가하는 원인에 대한 탐구 및 그 해결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또 "부와 특권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발생하는 죄악의 비참을 보면서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독자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붙어 있다.

헨리 조지가 부제와 헌사를 통해 제기한 갖은 악덕의 근원은 다름아닌 지대,그리고 한마디로 해결핵을 제시한다. "지대를 모두 조세로 징수하자" 여기서 <부활>의 네홀류도프의 설명을 참고하기로 한다. "토지를 사용하는 사람이 토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각자의 토지에 해당되는 땅값만큼 지불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토지소유자로부터 지대를 세금으로 징수하고 다른세금은 그만큼 감면하는 것이다." 이것이 '토지가치세 제도' 또는 헨리조지의 '단일세안'의 골자이다. 불로소득을 배격하고 간나한 사람들 옹호한 헨리조지의 사상은 그의 저서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인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정규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여러 직업을 가졌다. 식자공은 그중 하나 신문사에서 일하던 중 식자공에서 기자로 발탁된다. 왕성한 독서를 통해 지적능력을 배양하고 틈틈히 글쓰기를 연마한 결과다. 그의 식자공 경력은 아무도 <진보와 빈곤>을 출판하려고 나서지 않았을때 스스로 조판하고 책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었다.

<진보와 빈곤>의 성공 이후 그는 세계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며 강연을 하여 많은 지지자를 얻는다. 이를 발판으로 1886년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 뛰어든다. 노동단체의 후원으로 선거에 참가한 그는 3만4천명의 추천서명을 받아 상대 후보들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표차로 2위를 기록 낙선한다. 하층계급 출신으로 계층상승을 이뤘고 책을 통해 사회개혁을 역설한 점은 동시대의 소설가 잭 런던과 비슷하다. 그러나 만년의 런던이 자본의 달콤함게 빠져 개혁성을 상실한 것과는 달리 헨리 조지는 끝까지 자신의 이론을 실천하기 위해 분투했다.

"나는 노동자계층을 위해 특별한 권리을 옹호하거나 특별한 이익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를 대변할 뿐입니다." 1897년 다시 뉴욕 시장선거에 나서서 행한 마지막 연설의 일부다. 건강악화로 그는 선거 나흘 전 세상을 떠났다. '자본의 사유와 토지의 공유'를 근간으로 하는 헨리 조지의 사상은 기존의 제도를 활용하는 면에서는 개혁적이나 내용면에서는 가히 혁명적이다.

"그는 독점과 불로소득을 타파하려고 애쓴 사상가다. 빈곤의 원인이 높은 지대에 있다고 보고 이를 혁신적으로 개선하려고 했지만 수입개방과 자유무역을 지지하기도했다." 축약본과 완역본을 모두 번역한 김윤상 교수의 말이다. 김교수는 오늘의 경제위기도 한편으로는 부동산투기의 휴유증으로 볼 수 있는 만큼 헨리 조지로부터 시사받을 점이 있다고 덧붙인다. 또한 통일 이후를 대비함에 있어 더욱 긴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북녘 땅을 투기꾼과 복부인의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도서신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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