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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로...
공부와 연구의 작은 천국 칼텍으로부터 테네시에 있는 국립연구소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나름대로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과 맞부딪혀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이 뛰고 긴장되는 일입니다. 관심있는 분야에서 일하는 여러 미국의 다른 대학, 연구소 등에 인터뷰를 위해 방문해 보면서 세계최강국의 과학기술 무대와 연구자들의 생각, 현실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거대한 실체의 편린에 불과할지라도 촌구석에 살던 더벅머리와 같은 저에게는 거울앞에 다시 서게 할만큼의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 동부 테네시까지 저의 아내와 세살짜리 딸은 약 3,000 마일을 여행했습니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냐구요? 이삿짐을 트럭에 실어보낸 후 Pasadena를 출발, 앞으로는 그 고마움을 계속해서 느낄 것만 같은 LA 한인타운에 들러 장을 봤지요. 전미 로데오 축제가 한창인 라스베가스에 가서는 로데오 경기보다는 하루 저녁 벨라지오 호텔앞의 분수 쇼를 감상했지요. 도박과 매춘, 그리고 회합의 도시가 끝도 없어보이는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있더군요. 기념으로 하루저녁 100불 정도를 슬롯머신으로 지불(?)하고 라스베가스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랜드캐년, 애리조나의 피닉스를 거쳐 멕시코 국경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콜로라도 쪽의 70번 도로가 내심 욕심이 났지만, 12월 초순이었으니 딸을 생각해서 남부 루트를 타기로 했던 것이었죠. 예상대로 기온은 높은 편이었습니다만, 황량한 사막의 연속.... 엘파소 근처에서는 국경순찰대가 프리웨이의 차를 무차별 검문을 하는데, 외국인에 대한 검문 검색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오래전 봤던 잭 니콜슨의 영화가 머리속에 떠올랐습니다. 이어서 뉴멕시코 주립대가 있는 라스크루세스를 거쳐 서부 텍사스의 러복에 가서 친구네집 신세를 좀 졌습니다. 중간중간에 여기저기 들르면서 동으로 동으로 달려 달라스, 리틀록, 멤피스, 내쉬빌을 통과하고서야 새로운 정착지 오크리지가 있는 낙스빌(Knoxville)지역에 들어섰습니다. 도합 8일이 걸렸죠. 연구소측에서 이사, 여행경비를 부담해주고 시간상의 여유를 많이 허락해주어 충분한 시간 남부 미국을 둘러볼 좋은 기회였습니다.
오크리지는 1943년 오크리지 연구소가 건설되기 전에는 수십가구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지금도 인구는 3만명을 넘지 않습니다만,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없는게 없는 살기좋은 시골 소도시입니다. 약 20마일 떨어진 곳에 동부 테네시의 중심지 낙스빌이 있고, 예쁘고 호젓하기로 소문난 공항이 지척에 있어서 여행에 불편함이 없지요. 근처에는 Smoky산맥 연방국립공원이 있는데, 지도를 보니 넓이가 대략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크더군요. 산에 나무가 없고 강이 없는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니, 비도 많고 높지 않은 산과 구릉의 연속에, 나무들이 빽빽한 것이 사뭇 한국의 산천을 연상하게 합니다. 가까운 곳에 테네시 강 유역 개발사업(TVA)의 산물인 여러 개의 댐들이 있고 봄여름이 되면 보트를 타거나 낚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지역들이 무진장 분포되어 있습니다. 남부 억양이 강한 이곳 사람들은, 여러 인종들이 모여사는 거대도시 지역이었던 LA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것 같습니다. 친절하고 순박하죠. 멤피스를 들렀을때도 그랬지만 이곳의 몇군데 박물관에 가보니 미국인은 모두 각기 다른 곳에서 자랐지만, 감성적인 고향으로는 모두 테네시를 공유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레드 스튜어트의 테네시 월츠를 듣고 자란 미국인이라면 그 문화적 자양분을 섭취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가까운 켄터기 경계지역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고향이 있어 토종 미국인의 뿌리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오크리지에 왔을때는 전형적인 촌동네의 약간 어질러진 모습, 느슨한 분위기가 떠나온 패사디나의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과 대비되면서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정이 들어가고 있으니 곧 이곳 생활을 즐기게 되겠지요. 누구든 저를 아시는 분이라면 동부 테네시에 놀러오세요.

Oak Ridge National Laboratory
오크리지 연구소의 입구 안내건물 현관에는 큼지막하게 아인쉬타인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확대 복사되어 걸려있습니다. 2차대전 중에 나치의 핵무기 개발 계획을 경고하고 원자탄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간단한 내용입니다만, 그 편지로 인해 루즈벨트 대통령은 오펜하이머를 책임자로한 맨해튼 계획을 추진하게 되고 그 결과로 동부 테네시의 오크리지에 거대한 플랜트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목적은 시카고 대학 지하연구실에서 엔리코 페르미 그룹이 성공한 연속 핵분열 현상을 실용적인 목적(원자탄 제조)을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실질적인 핵폭탄 제조 원료를 추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전시였고 국가 최우선 과제였으므로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이 지역에 평균 2.5초당 한채씩 집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인류 최초의 원자탄이 연구되고 제조된 곳이기도 합니다만, 그 뒤로 여러가지 연구업적들이 쏟아져 나온 산실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핵무기 관련 연구는 모두 로스알라모스등 다른 연구소로 이관했고, 환경과 생명 공학, 그리고 고체 물리 연구의 실용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과거 핵무기제조를 위한 추출작업이 이루어졌던 원자로는 이제 사적지로서의 기능이 더 크게 되었고, 지금은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5개 국립연구소들의 공동 작업으로 연구소 외곽에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가 건설되고 있어서, 2006년 경에는 보다 광범위한 X선, 중성자 빔을 사용한 연구들이 이곳에서 가능하게 될 예정입니다.
연구 스탭들의 출퇴근이나 연구활동은 무척 자유롭고, 특히나 저와 같은 포스트닥들에게는 연구비 부담이 없어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기술을 배우는데에는 무척이나 좋습니다. 20세기 과학기술의 진보와 주요 인물들의 사진들을 두루 걸어놓은 연구소 도서관을 거닐며, 녹슨 머리를 굴려 자연 현상에 대해 골똘이 생각해보는 즐거움이 일과 여가의 차이를 못 느끼게 할 정도입니다.
앞으로의 도약을 위해 무한대의 에너지를 축적하고픈 저에게 고마운 곳임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매일 인적이 드문 10마일 가량을 운전해서 출근을 할 때, 오크리지 연구소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연구소의 로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Bridge Science t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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