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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루마니아 역사
1.고대
루마니아 역사는 유럽사의 한 부분에 속해 있다. 민족은 Indo-European Geto-Dacians라고 하며 기원2세기의 트라키아계에서 나왔다. 기원6-7세기에 헬라인들이 흑해주변에 식민지를 건설 할때에 고대Histria,Tomis,Callatis 도시를 세웠는데 바로 그 지역이 루마니아의 조상이였던 다치아인들이 살았던 지역이였다.5세기 뒤에 로마가 강성해 져서 헬라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때 다치아는 Burebista에 의해 첫 통일국가를 세운다. 그는 수도를 Carpathian 산맥 높은 곳에 세웠고 200년 뒤인 AD 1세기에는 Decebalus가 새 수도인 Sarmizegetusa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그는 20년 동안 로마와의 전쟁후 Traianus에 의해 폐배하고 2세기 동안 로마제국이 지배한다.로마는 새 도시들과 도로를 건설하고 공식어로 라틴어인 루마니아어를 탄생 시킨다. 로마군은 AD 271년 다치아로부터 철수한다.
2.중세
14세기에 루마니아는 동방 정교회 국가로서 3국으로 분할되었다. 그것은 Wallachia,Moldavia, Transylvania 이다. 당시 주변 열강들은 Ottoman제국,Czarist Russia제국,그리고Hapsburg 제국이 있었다. 서쪽 트란슬바니아는 1141년 부터 15세기 1600년경까지 미카엘왕이 등장할 때까지 합스부르그-헝가리계의 헝가리 왕에게 지배를 받았다.남부지방 왈라시아지방은 AD.1310년 동쪽 바사라브(Basarab)왕국에 의해 지배 되었지만 왈라시아 전 역사는 오토만 제국의 침략에 대한 저항역사로 일관 되었다. 동부지방 몰다비아지방은 남쪽의 오토만제국의 침략과 또한 극동의 타타르족의 침략을 막아야 했다. 1457년부터 1504년까지 몰다비아를 통치한 스테판 대제의 지도력으로 제국은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였고 승리한 격전지마다 그는 그의 신앙심의 표현으로 정교회를 세워 갔다.
3.근대
1848년에 루마니아는 오토만 제국과 러시아 그리고 합스브르그 왕가로부터 회복한다. 당시의 이상적 기치는 "정의와 형제애"였다. 1859년 몰다비아와 왈라시아지방은 유럽열강들의 주도로 루마니아를 위한 군주를 선출했는데 그가 Alexandru Ioan Cuza(알렉산드루 요안쿠자)였다. 1866년 쿠자는 Hohenzollern-Sigmaringen의 Carol 군주로부터 자주적 독립을 쟁취 한다. 수도를 현재의 Bucharest에 세운다. 1877-78년 오토만 제국에 대한 독립전쟁으로 Dobrogea를 회복함으로 첫 통일국가를 건설한다.
루마니아는 1916년 연합군에 속해서 세계1차대전에 참전해서 1917년에는 M\r\[ti, M\r\se[ti, Oituz에서 유럽전사에 남는 격전이 있었고 1918에는 본래의 영토를 회복한다. 루마니아에서 전사한 연합군은 총 80만명에 이른다.1938년 프랑스가 나찌에 함락되면서 소련은 1940년 6월 루마니아 동부 바사라비아를 점령한다. 1940년 8월 독일 나찌에 사주받은 헝가리가 루마니아 서부 트란슬바니아를 점령한다. 1940년 9월에는 남쪽 도브로자지방을 불가리아가 점령한다. 이에 1941년 6월 Antonescu장군이 소련 점령지역을 반환 받기 위해 독일 나찌에 연합해서 세계2차대전에 참전한다. 1944년 8월 루마니아 미카엘왕은 독재자 Marshal Ion Antonescu를 체포해서 국외추방시키고 독일에 대해 다시 역 저항한다. 1944년 8월23일 53,159명의 독일군이 루마니아에서 포로가 되고 8월25일 루마니아는 소련 군정에 들어간다. 하지만 소련은 1947년 미카엘왕을 강제 추방시키고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을 수립한다. 1960년 소련 공산당은 Nicolae Ceausescu를 선두에 내세워 공산 독재 정권을 수립한다.
챠우체스코 공산정권은 거대한 프로젝트 사업들을 추진했는데 다뉴브강 수로공사, 고속도로건설, 새 정치중심지인 수도건설, 지하철건설 등을 이루었다. 또한 13,000개의 마을을 7,000개로 파괴 축소시켜 산업 도시들을 건설하면서 인구이동을 시키고 노동력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챠우체스코의 개인 우상화 독재에 대해 1989년 12월말에 헝가리계를 중심으로 “피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1990년 5월 자유총선거로 새 민주정부가 들어선다.
3. 1989년 “반쪽 혁명(Half Revolution)”
루마니아의 혁명을 서방세계에서는 "반쪽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혁명이 그 과정에서 챠우체스코의 다른 경쟁자들에게 약탈당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혁명은 처음 1989년 12월15일 루마니아 서쪽 국경 도시인 Timisoara에서 일어났다. 헝가리 개혁교회 목사인 Laszlo Tokes의 가택 구금에서 비롯되었다. 그와 함께 대정부 의사를 표명하고 은밀하게 기도모임을 하던 목사들이 계속 실종되면서 헝가리계 개혁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데모대가 목사사택을 인간띠로 에워싸면서 발단되었다. 12월17일 오후에 시내에서 데모대에게 총격을 가함으로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혁명은 사실 서쪽 지방에서 루마니아 공산당에게 피해를 입은 헝가리계 사람들의 주권회복을 위한 혁명이었다. 혁명은 그래서 헝가리계 서쪽 도시들로만 번졌다. 하지만 12월21일 챠우체스코가 사우디 방문을 마치고 귀국후 반공궐기 대회를 개최하면서 궐기대회장이 돌연 한 여인의 야유와 함께 모인 군중이 야유를 퍼 붇자 비밀경찰들의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고 혁명은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차우체스코 독재자는 12월25일에 군법재판으로 처형된다. 챠우체스코의 처형이 혁명 후 청문회나 절차를 밟은 재판없이 군번재판으로 성급히 추진된 것은 차우체스코의 비밀경찰의 저항이 거셌고 또한 군부를 제휴한 전 비밀경찰 간부이며 한때 티미소아라 시장을 지냈으며 과거 차우체스코에 다음가는 이인자였던 일리에스코의 정치적 승리였다. 차우체스코 집권당시 약 64,000명이 처형되었고 혁명으로는 865명이 죽었다.
4.1989년 혁명후 21세기를 향한 정치 동향
일리에스코는 두 번의 대통령 재선 승리를 얻었다. 서방에서는 두 번씩이나 재선 시킬 수 밖에 없는 루마니아 국민들의 열망이 과연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일리에스코의 첫 임기동안 그렇게 충분한 개혁이 진행되기 보다는 오히려 구 공산당원들의 부패가 은폐되고 양성화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다 더 자유롭게 시장경제의 독점들이 나타났다. 일리에스코는 러시아의 체첸 침공을 기념하는 퍼레이드도 러시아의 시간에 맞추어 정치적 동질성의 제스츄어를 쓰는 러시아식 페레스트로이카를 추구하였다. 그는 스위스에 망명중인 루마니아 국왕 미카엘 대제의 귀국을 반대해 왔다.
1996년 일리에스코는 3선 도전에는 실패하고 루마니아는 첫 민선 대통령인 콘스탄티네스코를 선출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실제적인 루마니아의 실세는 일리에스코의 구 공산당 출신들이 가지고 있었으므로 콘스탄티네스코가 바라 보는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그가 취한 첫번째 제스츄어는 루마니아 경찰 간부들에게 200대의 독일제 폭스바겐 승용차로 교체해 준것이였으며 미카엘 왕의 영구 귀국이 허용되었다는 점이다. 혁명 후 지금까지 루마니아의 정치적 이슈는 나토가입과 유럽연합에 가입 이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금융개방과 정치 구조를 서방에 맞추어 개혁을 진해해 왔던 체코와 헝가리 폴란드는 나토 가입이 승인되었다. 루마니아가 이러한 탈출구를 유효하게 하려면 보다 긴급히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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