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kins는  언어, 리듬, sound mechanism을 실험한 시인이다. 그는 토마스 하디와 동시대 시인이면서도 그의 시학과 그의 세계관에 동조하지 않았다. 워즈워스 이래의 전통 서정시에서 볼 수 있는 틀에 박힌 시형식을 무시하고서 용어를 의미와 직결시켜 시형식을 대담하게 자기 특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문장에서 관사와 접속사를 생략하기도 하는 등의 실험을 통해 시의 의미에 집중과 긴장을 도모했다. 그는 신앙이 깊었으나 신앙에서 존 던과 같이 고뇌하였다. 그들은 둘 다 시와 신앙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경로를 겪었으며 홉킨스는 그런 갈등을 격려로 딛고 이겼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용어는 inscape와 instress이다. Inscape라는 용어는 the out world reflection of an inner nature of thing, 즉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landscape라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서울’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서울이 가지고 있는 하나 하나의 특성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전체적인 모습, 즉 서울의 landscape을 생각하는 것이다. 홉킨스는 “정말 좋은 시라면 사물의 서술보다는 inscape을 알 수 있게 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Instress는 이  inscape을 알 수 있게 해주는 energy인 셈이다.

홉킨스는 왜 20세기 시인으로 취급되는가? 그 이유로는 우선 그의 시가 발견, 출판된 것은 1920년대 그의 친구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시가 얘기하고자하는 의미를 위해 form을 가지고 실험했는데, 그의 시는 디킨슨의 것보다 전통적인 form에 대해 더 실험적이었고 그 행동 자체가 상당히 modern한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 나름대로의 규격과 시를 정리한 것은 19세기 시인으로 보기엔 너무 modern한 것이었다. 그는 전혀 질문되어지지 않던 form이라는 것에 break를 걸어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시의 의미에 맞도록 form, accent 등 poetry의 가장 본질적인 것에 조차도 시인 개개인의 능력, 기술에 의해 해부되어야한다는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나름대로의 이론을 세웠다. 그런 시도는 후대 시인에게 form 자체는 시에 대해 전통으로만 받아들여질 요소가 아니고 충분히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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