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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Nausicaa )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매우 유명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것은 많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혹시 그가 그린 만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보셨습니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먀쥬'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것이라는데 이것이 애니의 원작입니다. 국내에서는 5권까지만 출판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동아리에서 미출판된 6, 7권을 자체 번역, 식자까지 붙여서 10부 제본했습니다. 권당 10,000원이라는 엄청난 돈과 많은 시간이 들어갔습니다. 이 10부는 저희 동아리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열혈팬들이 나누어가졌습니다.


Opening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변두리에서

발생했던 산업문명은

수백년동안 전세계에 퍼져

거대한 산업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천연자원을 고갈시키고

대기를 오염시키며

생명체를 마음대로 변형시킨

거대한 산업문명은 백년 뒤

절정기에 이르게 되나 마침내

급격한 쇠퇴를 맞이하게 되었다.

'7일간의 불의 전쟁'으로 인해

도시는 유독물질이 만연되어 붕괴되고

고도화된 기술체계는 손실되어

지구는 거의 불모의 땅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 뒤 산업문명은 재건되지 않고

길고 긴 황혼시대를

인류는 살아가게 되었다.



책의 줄거리


2권까지 내용은 애니와 비슷하다. 바람계곡의 족장인 질의 딸 나우시카는 페지테시의 비행기를 도와주다가 거신병을 조정할 수 있는 비석을 손에 넣게 된다.

페티테시의 왕자 아스텔은 트루메키아에 의해 페지테시가 멸망당하자 그 보복으로 트루메키아의 황녀 쿠샤나의 비행기를 습격하고 나우시카는 아스텔과 같이 사해 (혹은 부해, 썩은 바다라는 뜻)의 바닥에 떨어진다.

아스텔과 같이 사해를 빠져나온 나우시카는 트루메키아의 침공을 막기위해 대왕충(오므,warm)을 이용하려는 토르크 (혹은 토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토르크 인들은 대왕충의 새끼를 이용하여 대왕충을 페지테 함대쪽으로 유도하여 함대를 괴멸시키나 자신들로 대왕충 의 분노에 희생되고 만다. (애니에서는 페지테 인이 새끼를 이용하고 토르크인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3권부터의 내용은 애니에는 나와있지 않 다. 대왕충으로부터 토르크 땅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해들은 나우시카는 쿠샤나와 함께 토르크 땅으로 향한다. 토르크의 수도 슈와에는 옛 문명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묘소가 있고 트루메키아의 황제는 이 묘소의 비밀을 탈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토르크를 통치하는 신성황제는 묘소의 비밀과 승회를 이용하여 공포정치를 시행하는 자다. 그는 트루메키아를 물리치기 위해 점균을 이용한다. 이 점균은 묘소의 비밀을 이용하여 토르크 승회의 학자들이 인공적으로 만든 곰팡이와 같은 식물이다. 사해의 식물들이 포자를 날려 모든 것을 침식해 들어가듯이 인공적으로 생성된 이 점규은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대신 빨리 사라진다.

학자들이 의도를 뛰어넘어 이 점균은 이 점균은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 사람들의 마을과 숲등 모든 것을, 심지어는 사람들까지 먹어치운다. 대왕충은 점균을 진정시키기 위해 점균에게 먹혀서 점균과 하나가 된다. 옆의 그림은 점균에게 먹힌 대왕충 무리의 시체. 포자가 발아하고 있다.


사해는 대왕충이 시체로부터 돋아난 포자가 발아해서 생겨난 것이고 유독 물질을 결정화시켜 세계를 정화시킨후 멸망하도록 되어있는 생명체이다. 나우시카는 자신을 희생시켜 숲(사해)을 만든 대왕충과 같이 죽으려하지만 그녀를 아끼는 대왕충과 여러사람의 노력으로 다시 깨어난다. 옆의 그림은 가사상태의 나우시카의 마음속. 나우시카는 심연의 끝에 있다. 옆의 인물이 토르크의 신성황제 미라루파. 형의 음모에 의해 살해당한 후, 나우시카의 마 음속으로 침투하여 그녀를 해치려하나 나우시카에 의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미라루파의 형의 새로 신성황제에 등극, 새로운 독재자가 되려고 하지만, 나우시카와 쿠샤나는 이를 저지하고 그 과정에서 멸망당한 페지테시로부터 운반되온 거신병이 눈을 뜬다. 나우시카는 갓 태어난 그 거신병이 갓난 아기와 같은 상태인것을 보고 오마(티없다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거신병은 나우시카를 어머니로 여기고 나우시카는 거신병의 힘을 빌려 슈와의 묘소의 문을 닫으러 출발한다.

거신병이 내뿜는 독기에 의해 테토(나우시카의 어깨위에 있는 다람쥐 비슷한 작은 동물) 가 죽고, 테토를 묻기 위해 내린 땅에서 어떤 사람과 만난다. 위의그림이 그 장면, 쪼그려 앉은 거신병이 귀엽지요~.(본래 거신병은 구세계의 사람들이 이해조정을 위해 만든 신이다. 심판자이자 조정자. 사람의 마음을 꽤 뚫어보고 지능을 가지고 있다. 끝에 가서는 나우시카의 뜻에 따라 슈와의 묘소를 파괴하고 자신도 죽는다.)


테토를 묻기 위해 내린 땅에서 만난 이는 나우시카를 어떤 정원으로 인도한다. 그는 희드라(불노불사의 인공생명체)로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형태마저 그에 맞춰 변형시킬 수 있다. 그는 나우시카의 마음속에 침투하여 그녀를 잡아두려 한다.


나우시카는 숲 사람 세룸(나우시카 옆의 이상한 옷차림의 젊은남자)의 도움으로 희드라에게서 벗어난다. 그녀는 희드라로부터 지금 세계의 사람들은 오염에 견딜 수 있도록 개조된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염된 세계에 견딜 수 있도록 개조되었기 때 문에 역으로 인간들은 독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사해에 의해 세계가 정화되더라도 그 정화된 세계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한편, 쿠샤나는 거신병에 의해 죽은 토르크 황제의 시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사람들은 공포정치가 끝난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토르크 사람 들과 트루메키아 사람들 사이의 원한은 가라않지 않아서, 토르크인들은 쿠샤나를 습격하고 나우시카의 스승 유파는 이를 막기 위해 죽음을 택한 다. 쿠샤나는 아버지와 오빠들에 의해 어머니가 죽고 그녀 역시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로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으나 나우시카와의 만남으 로인해 분노를 누르고 피투성이인 자신의 길을 벗어나려 한다.

유파는 자신의 몸으로 쿠샤나를 향한 토르크인의 칼을 막음으로서 싸움을 막는다.

후에, 쿠샤나는 슈와의 묘소에서 죽은 부황의 뒤를 이어 트루메키아를 다스리며 나라를 부흥시키나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거부한다. 이래로 트루메키아는 왕을 갖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슈와의 묘소의 모습. 이 묘소는 일종의 거대한 유기체이다. 불의 칠일간 이후로 세계의 오염이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을 때 인간과 생물들을 개조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사해를 만들어 세계를 재생시키려 한다. 사해는 겨우 수천년만의 시간으로 불모의 대지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부여받았고 그 역할이 다했을 때 멸망하도록 되어있다.

나우시카는 이렇게 말한다.

"목적을 가진 생태계, 그 존재 자체는 생명의 본모습일 리 없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은 마치 바람이나 소리와 같은 것. 태어나 서로 화음을 이루고 사라지는 것"

슈와의 묘소는 사해와 대왕충을 만든 사람들이 만든것으로서 사해에 의해 세상이 정화되었을 때 인간과 생물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도록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뺏어서 정화된 세계에 어울리되록 인간을 개조(일종의 세뇌)하려 한다. 그러나 나우시카는 청정만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나우시카가 도중에 만났던 희드라는 바로 슈와의 묘소 그 자체이다.

"그 사람들은 몰랐을까. 청정과 오탁 그 자체가 생명이라는 것을. 고통과 비극과 어리 석음은 청정한 세계에서도 없어지지 않을 인간의 일부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고통에 처해있어도 기쁨과 빛남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몸을 인공을로 개조했어도 우리들의 생명은 우리들의 것!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그녀는 살아가는 모든 것은 변해가는 것으로 슈와의 묘소의 만들어진 예정을 생명에 대한 모멸이라고 거부한다. 나우시카는 거신병을 이용하여 슈와의 묘소를 무너뜨린다.


이상향(Utopia)과 종말론


칼 뢰비트라는 사람이 쓴 '역사의 의미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역사철학'에 대하여 다룬 것으로 저자는 역사를 의미있게 보는 역사철학은 유대교, 기독교의 구속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역사적 사건이 의미 를 가지려면 그 사건은 역사의 궁극적 단계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의미는 목적이 있어야 성립하므로 역사가 의미를 가지려면 역사의 목 적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역사가 궁극의 단계를 향하여 발전한다는 것이 서 양의 직선적인 역사관이고 맑스의 역사관 역시 이러한 기독교적 전통에서 비롯 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흔히, 이상향이란 일단 이룩되면 변화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향의 조건 중의 하 나라고 생각됩니다. 변한다는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니까요. 이상(ideal)이란 그렇게 끝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상향은 종말론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역사는 변하고 있지만 역사의 종말은 심판에 의해 선택된 자들의 이상향이 오니 까요. 그리고 더이상 역사란 없겠지요.

나우시카는 슈와의 묘소의 히드라에게 "산다는 것은 변하는 것이다. 대왕충도 점균도 초목도 인간도 변해가는 것이고 사해와도 살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너는 변하지 않는다. 만들어진 예정이 있을 뿐. 죽음을 부정하고 있으니까." 만들어진 예정이란 말이 아주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이상향에 대한 토론이 만화에서 이루어졌다고 쉽게 생각하실지 모르지 만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스키너의 '월덴 투'같은 것도 소설이고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온 이상사회나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가이아의 모습보 다 나우시카나 Apple Seed의 모습이 더 구체적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상향 에서 나타날 문제점들에 대해 더 잘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책들을 보다보면 결국 이상향이란 인간의 과연 백지같이 선할 수 있느 냐와 관계된 것 같습니다. 나우시카에서 '청정(깨끗함)과 오탁(혼탁함) 그 자체가 생명이라고 하거나 Apple Seed에서 '고뇌가 없으면 인간의 자율적인 완성으로 는 부족할 지도 모른다'라고 하는 것처럼 인간은 선함도 악함도 아닌 존재이고 끊 임없이 살기위해, 이상을 위해, 선해지기 위해, 영혼을 위해 싸우면서 변해가고 그 변함자체가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종말론에 대해, 이상향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혹시 이런 것들에 대해 좋은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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