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부인과 인삼차씨
커피부인은 원래는 미스 커피였는데 용케 만으로 서른이
지나기 바로 전에 개명을 하게 되었다. 라면을 먹어도 커피는
마신다는 미스 커피에 대한 대학 동창들의 평은 가히 전설과도
같이 미스 커피를 따라 다녔는데 대학 졸업후 10년이 지나도록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남자 후배 녀석들의 머릿수를 세어
보더라도 미스 커피가 풍겼던 커피 향에 취한 인원이
허다했었음에 분명하다.
커피부인의 아버님도 어머님도, 그리고 오빠, 언니들 모두
커피 콩에 대한 대동소이한 감정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커피부인이 보이는 지극한 애정에 비하면 다른 분들의
감정은 호감 정도로 밖에는 불릴 수가 없다. 커피부인이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니고 진하게 마시는 것도 아니다.
연하지만 절대 블랙으로 마시는 것인데 그 모습을 보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스며들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적도 있다.
커피부인이 유학과 실습의 마지막 단계에서 부딪친 장애물은
인삼차씨다. 인삼차씨는 처음엔 맹물씨 같기도 했고 콜라씨
같은 점도 있었으며 혹은 진토닉씨나 맥주씨 그리고 간혹
커피씨의 흉내를 내는 적도 있었다. 이런 무쌍한 변화가
커피부인의 마음에 들었을까? 경우에 따라 분위기도 있고
매너도 있는 그래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어느 때고 이루어
줄 수 있는 이상형으로 서서히 가슴속에 자리잡았는지 모른다.
서서히 자리잡은 시간은 의외로 며칠이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미스 커피가 그런 사소한 것을 눈치 채기 전에 우수한 감성이
앞서서 이성의 작동을 막아주고 있었으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삼차씨를 위해서라면 보리차부인이 되어도 좋다하는
마음을 품게끔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인삼차씨도 사실은 본인이 진토닉씨인지
커피씨인지 코코아씨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열심히 체질 개선에 노력한다면 아무도 이전에 정종씨였던 것을
모르게 완벽한 커피씨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있었다. 그 것이 비단 정종씨가 아니고 홍차씨나 녹차씨,
오렌지 쥬스씨나 밀크 셰이크씨였다고 할지라도 확신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씨에서 멀면 멀수록 고귀한 사랑이
더 빛이 날 것이며 자신이 부족한 점을 딱 보완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과거에 막걸리씨나 동동주씨였다면 더
드라마틱하다고 믿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우연한 일로 만나게 된 한 어느 도사같은 아저씨가 예언을
했다.
"댁은 완벽한 사람이요?"
(450 내노세컨드 가량 숙고하고)
"아니지라." (계면쩍은 실웃음)
"미스 커피는 그럼 완벽한 사람이요?"
"옴마. 게도 아마 아닐 것이지라."
"고롬 완벽한 결혼은 꿈꾸지 않는 게 좋겠수."
때 맞춰 이런 예언자적인 말을 들을 수 있던 행운적(?)인
상황에서도 인삼차씨의 이성은 이 말을 도저히 소화해내길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가의 허락과 축복을 얻어 달포만에 커피부인과 인삼차씨가
결혼에 골인한 상황에서도 이 둘의 발은 도무지 땅에 닿는 법이
없었다. 밤이고 낮이고 둥둥 떠다니는 나날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불과 몇 개월만에 들어앉고서야 커피부인의 발끝이
다시 땅에 닿았다. 그 순간 이후로는 기분이나 실제나 다시
공중에 뜨는 현상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아기에게 영향이
있을까봐 그 사랑하던 커피마저 금해 버리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아기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아기를 본 기쁨 못지 않게
다시 커피부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 또한 컸었다. 그러나
커피부인은 아무리 해도 미스커피였던 시절처럼 돌아 갈 수가
없었다.
그 점은 인삼차씨도 마찬가지였다. 태교를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음악이나 영화, 오락 같은 것도 포기하고 나가
싸돌아다니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들도 다 포기해야만 했다.
인삼차씨의 희생이 아기를 위한 것인지 커피부인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커피부인은 커피부인대로 커피를 마실
기본적 인권조차 포기한 희생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커피부인은 모유의 부족으로 자의반타의반 젖소씨의 힘을 빌어
우유꼬마를 기르게 되었다. 우유꼬마는 커피부인과 인삼차씨의
커다란 낙이었으며 커피와 인삼차를 섞는 꿀물꼬마이기도 했다.
처음엔 무슨 식성인지가 불분명했던 인삼차씨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은 본래 인삼차나 생강차 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 아기를 기르면서도 커피부인은 여전히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기는 하였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인삼차씨가 집에 돌아 오면 둥글레부인이 되기도 했다
유자부인이 되기도 했다 하는 변화를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매운 것을 안 먹여 키우는 큰 우유꼬마와 작은 우유꼬마를
데리고 온 가족을 매운 순두부집으로 몰고 가는 것도
커피부인의 달라진 모습일 것이다.
인삼차씨와 커피부인,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큰 우유꼬마와 또 역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은 우유꼬마로
이루어진 이 가정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헤쳐 나갈지 그 것은
기실 하나님 외엔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인삼차씨도 커피부인 몰래 디카페 한 잔쯤은 가끔 즐기고 있다.
미스커피의 젊은 날과 인삼차씨의 청춘을 되새겨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