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불교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특히나 이런 어려운 비교를
해보려 한다는 것이 무리임을 잘 압니다. 우선 저는 불교에 대해
아주 무지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불교는 이러하다라고 비교하는
촛점 자체가 빗나갔을 수도 있읍니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약간
더 많이 읽고 생각하였으나 그 것도 모든 면을 다 꿰 뚫고 있을
정도로 다독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많은 생각을 깊이 있게 하신
분들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한 편으로는 이 짧은 글들은 시간과 지면을 최대한 줄여 제가
아는 기독교의 내용중 굵직굵직한 일부를 보이고자 생각하고 쓴
것입니다. (그나마도 오늘은 극히 일부만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적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오랜 시간 명상을 하신 분께 특히
제가 생각하는 점들을 알려드리는 것이 서로의 이해에 약간의
도움이 될까 하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신앙은 오랜 시간을 거쳐 명상과 경험의 깊이가 쌓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무리 잘 설명을 한다고 해도 할머님의
인내심의 깊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과 이치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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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 - 1. 구원
기독교와 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자력구원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기독교는 스스로 구원 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가르치는 반면 불교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에서의 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지 모르지만 기독교의 업은 원죄를 일컫는다.
원죄의 특정 사건은 에덴동산의 과실을 딴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의 위반, 관계의 단절,
자유의지로 인한 죄악에의 노출등으로 특징지어진 사건이다.
바울의 고백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낼꼬?"하는 질문은 인간이 어쩔 수 없게
저지르고 말게 되는 죄악의 근본 원인이 육신과 함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육신을 벗어
버리고 영혼으로 신 앞에 서기까지 항상 어쩔 수 없이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고 단정 짓고 있다.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계를
받아도 숲속에서 한 발자국 뗄 때마다 발 밑에는 무수한
미생물들이 밟혀 죽고 있는 것처럼 죄를 안 짓겠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기독교의 견해이다.
죄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죄는 신과의 관계를 멀리하는 것이
죄다. 역으로 인생의 최고 덕목은 신을 제대로 알고 찬양하고
신이 보시기에 기쁘도록 사는 것이다. 이를 인해 육신이
죽어질 때 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영혼이 살도록 판단을 받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드는' 것은 기독교에서 죽어서
'천당 가는' 것과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할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기독교에서는 '거듭 난다'고 한다. 혹은 구원을 받았다라고도
한다. 이 말의 뜻은 그 동안 신과 단절되어 살았던 것이
죄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참회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받는다'
라고 이야기한다. 죽기 직전이라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고
믿겠다고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이 때문에 생긴 말이라고
본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구원 받은
순간으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끝장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이후가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부터 '성화' 즉 부단히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려는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기독교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불교에 입문해서 계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계를
받은 후에도 많은 깨달음과 고행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 단지
기독교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의 선함만으로 천국에
이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다르다.
믿음과 행위의 이 양면에 대해 신약에서의 두 저자, 즉 바울과
야고보는 일견 상반된 것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바울은 "사람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얻는다."라고
말하는 한편 야고보는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고,
믿음으로만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관해 성경 전체를 통한 기독교의 결론은 '은혜'-'믿음'-
'행위'의 순이다. 즉, 신이 무조건적으로 인간에게 주는
은혜가 우선 있었고, 그를 인정하고 믿음으로써 구원의 첫발을
내어 밀면 행위는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는 설명이다.
즉 행위는 믿음의 열매이다.
이 질문은 불교에서의 구원을 향한 노력에 관하여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피조물인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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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 - 2. 개인과 공동체
기독교에서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무욕, 자비, 선행, 감정의
다스림등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여기에 있어선
불교와 기독교는 거의 같은 도덕율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 외의 차이점들에 대해 생각한다면,
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의 율법 위에 신에 대한 의무를
우선시킨다. 불교에서는 무소유, 무념, 무상등 인연을 끊고
해탈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이 제시 된다.
불교에서 인연을 끊음으로 해탈한다고 하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로 하여금 스스로 장사하게 하라'하던가 '가족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하는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선상에 있다. 언제나
많은 문제가 되는 교회에 '미쳐' 가족을 버리는 그런 사람들은
마로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불교에서도 있다. 개인의 구원을 중시하는 모든 종교에 이런
원칙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한 종교들은
'더불어' 사는 것에서 또한 구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쪽으로
치우치면 30년 면벽수행이 되고 저쪽으로 치우치면 해방신학자가
된다.
기독교에서도 Athletes for Christ라고 해서 고행을 많이
한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에 매어 달려
수십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기독교의 신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제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하고 위로의
말씀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게끔 한다. 이들은 너무도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구원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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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 - 3. 고통
기독교는 고통에 관해 여늬 종교보다 관대한 입장을 보인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를 '사고'라고 정의하고 이를 단절시킬
방법을 모색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신을
인하여 고통을 받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고통은 막상 나쁜 것 뿐만은 아니다. 고통이 없으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나이에 암을
가벼운 병으로 알고 소홀히 넘기다 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극명한 예는 신경이 마비되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한센씨병, 즉 나병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함으로 염증이 생기는
신체의 모든 부위를 적절히 간수하지 못해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각막이 마르도록 눈을 깜박거리지 못해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분들에게는 고통의 느낌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지금의 고통은 더 나아질 미래를 위해 배우는 과정이다.
고통이 주어지는 것에 관해 기독교 내에서도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예정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의지론 혹은
우연론이다. 예정론은 말 그대로 인생의 모든 일이 태초부터
예정지어져 있다는 설이다. 성경에는 이를 지지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리게 기술되지 않았다는 성경
무오론으로부터 이 예정론은 많은 지지를 받는다. 매우 보수적인
교파에서 이 두가지 설을 철두철미 믿으며 특히 장로교가 많은
한국교회에는 예정론에 입각한 신앙이 많이 퍼져 있다.
다른 한 견해는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연일 것이라는 견해이다.
실은 정확한 표현은 완전한 우연뿐만은 아니고 자유의지에 따른
인과응보적인 결과와 여러 자유의지들이 맞물려 돌아 가다가
생긴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의 복합체적인 결과라는 설이다.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해도 마찬가지 말이 될 것이다.
이 견해는 논리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에게 훨씬 수용하기
쉬운 견해이다.
(나는 사실 신이 애써서 고안한 이 우주를 움직이는 모든 원소와
자연 법칙들이 왜 가끔 종교단체내에서 무시당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신이 모든 '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는 점은 없었을까? 자연이야말로
신의 위대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아닌가 말이다.)
둘째 설에 따르면 내가 탄 택시가 교통사고를 내는 것도 우연한
일이고 내가 산 복권이 당첨이 되는 것도 우연한 일이다.
어느 경우에고 그 사건이 신이 내게 특정한 이유로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경우이건 내 영혼이 거룩하게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돈이 많아져 인생이 비참하게 되고 신으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고, 차사고 때문에 신과 가까와 질 수도 있다.
딴 자가 잃기도 하고 잃은 자가 따기도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우리 친구들이 한동안 되뇌이고 다녔던 화두
"이게 내 입시와 무슨 상관이 있나?"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단지 '입시'와 '천당가는 것'을 대치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