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의료제도..."에 보태어

이승환님이 지적하신 "미국의 의료제도의 딜레마"에
관해 한두가지 덧보태고자 합니다.

미국에서는 과거 의료보험회사에서 운영하던 의료보험에서
드러난 제반 문제를 보완 내지 수정한다는 차원에서 HMO
(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이라고 부르는 군소의
의료행정기관들이 생겼습니다. 80년대 중반쯤 생긴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Managed Care Provider라고 불리기도 하는 HMO는
1. 한 없이 치솟는 의료보험비를 정지시키거나 더 낮춘다.
2. 의료보험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될 수 있게 한다.
등의 이슈들을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의료비가 치솟는 이유로는 소수의 의료분쟁으로 인한 막대한
송사비의 유출, 일부 특수한 환자들의 고가 의료비의
장기적 지출, 부모가 모두 직장에서 보험을 갖고 있을 경우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편에 모두 자녀의 보험 및 배우자의
보험을 자동 등록 시키는 관행등 여러가지 점들이 지적
되었습니다.

HMO들이 낸 해결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HMO의 관리하에 의료인단을 편성한다. 이 의료인단은
보편적인 의료 시술에 있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비슷한
시술을 하고 같은 액수의 보상을 HMO로부터 받는다.
특정 HMO에 속한 이 의료인단을 member provider라고 부른다.
멤버 의료인 리스트에 없는 의료인을 사용할 경우에는
의료비 배상 액수가 적어지므로 멤버를 사용하는 인센티브가
있다.

2. (HMO에서는 환자(patient)라는 단어 대신 소비자(consumer)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소비자는 주치의(primary physician)를
선정하여야 한다. 주치의는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
소아과, 내과, 산부인과 등등 일반의학을 시술할 수 있는
의사들이 되는데 이들은 '소비자'의 건강상태를 일차적으로
진단할 자격과 책임이 있다. 만약에 '소비자'가 주치의의
권고 없이 전문의에게 직접 갔다면 보험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추천에 의해 다음 단계의 의료를 받게하는 이 제도를
referral service라고 하는데 이 제도로 무분별하게 전문의부터
찾을 때 생기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3. HMO 등록시 병력이 있는 사람은 보험가입이 어려울 수 있다.
임산부의 경우 이 것이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물론
HMO의 입장에서는 비용절감에 큰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직장을
따라 보험을 옮겨야 하는 일반인의 경우 새 직장에서 보험
가입을 거부 당할 수 있는 것이 아주 큰 부담을 주게 되었다.

등등...

제 생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이런 HMO들을 탄생시킨
게 아닌가 하는데요.

이승환님이 일반적으로 자유개방시장경제 체제 (laissez faire)를
옹호하는 말씀을 많이 하시다가 사회주의에 근접하는 말씀을
하시니까 새롭습니다. 사실 이는 의료비 뿐만 아니고 교육비,
공공시설비 등등 모든 사회내의 자원분배의 형평성에 관해
일반화할 수 있는 문제들의 일부일 뿐입니다. 미국내에서도
교육비 사용의 형평성 문제로 많은 골머리를 썩히고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들의 시험성적은 정비례한다는 것은 많은
통계를 통해 무수히 증명된 사실입니다. 이는 가난한 집의
아이가 재능이 떨어져서는 아닙니다. 단지 안심하고 마음 편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어 그런 결과가 난다는
것이지요. 실험을 해 보았더니 아침 공부 시작 전에 빵
한 개씩 꼭 주고 공부를 시킨 반과 안 주고 시킨 반 둘 중에
먹고 한 반이 성적이 항상 더 잘 나왔더란 결과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의 공평한 발전을 위해서는 비만증이 걸리도록
먹는 녀석의 빵을 쫄쫄 굶고 오는 녀석에게 먹이고 공부를
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특히 그 굶던 녀석이 사회에
비상한 공헌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녀석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어느 경우에 있어선 그 녀석이 말썽을 부리지
않았으면 하는 뜻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요.)

아뭏든 그런 이유에서 미국에선 여러 제도가 입법화 되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교육비 지출은 주 정부에서 관할하지 군, 시, 동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또, 같은 지역에서도 잘 사는 동네가 있고
못 사는 동네가 있어서 학생들이 섞이질 못하고 있다 싶으면
버싱 (bussing)이라는 걸 합니다. 말 그대로 버스에 못사는 동네
학생을 실어다 잘사는 동네 학교에 풀어 놓는 겁니다.
이 걸 반분리 정책 즉, desegregation policy라고 하지요.
과연 이런 일련의 제도가 얼마만큼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하는 것에는
아직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버싱을 했다가 없애는 지역도
있고 합니다.

주에서 주는 교육비만으로 학교가 낙후되었다 생각하는 부모들이
힘을 합쳐 군, 시, 동 단위로 교육비 지출을 위한 동의안을
주민 투표에 붙여 채권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정부가 모든 학교가 재정적으로 평등하도록 하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하지요. 이런 교육 채권을 주정부가 막을
법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압니다. 집에 학생이 없는 노인들은
교육비로 인한 세금인상을 주로 반대하는 편이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교육구가 좋다고 이름난 지역은 집값이 비싸집니다.
그래서 학생 가진 부모들이 과반수를 설득시켜 채권을 발행시킬
수가 있게 됩니다.

이영희 교수가 전에 중국에 관해 썼던 책에서도 중국의 의료제도에
관해 다수의 인민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서구 서선진자본주의
사회의 그 것에 비해 인민을 잘 서브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산업주의를 지향하는 한
그에서 파생되는 여러 부작용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인들은 상냥한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사회를 만들어 내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