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이야기 (Re: 21823)
부제 :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으로 조명해 본 민족주의
1. 서
전에도 종종 민족이란 개념을 정의하거나 이슈화하려는 글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최근에 읽은 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이란 책이 주는 유전자적인
관점을 가족, 민족, 인종 등의 개념에 결부시켜 보고자 합니다.
2. 본
생물적인 보존이란 개념 중에 도킨스가 독특한 관점을 제공한 것은
아마 다음 명제일 것입니다. "생체는 유전자들에 의해 창조된
기계로써 생체의 유일한 목적은 유전자들을 존속시키는데 있다."
도킨스는 생의 기원을 원시 스프에 포함되어 있던 화학물질들이
(비록 생명체라는 개념은 없었을지라도) 자기와 비슷한 물질과
결합하려는 '자기복제' 현상에서 찾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화학원소들이 결합하다가 아미노산이 되고 아미노산들이
결합하다가 초보적인 핵산이 되고 핵산이 디옥시리보 핵산이
되고 등등.... 그러다 초보적인 단세포 생물이 나오고 다세포
생물이 나오고 진화를 하고...
이 과정중에 자기복제를 잘하는 화학 물질들은 '살아 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물질들은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이렇게 혼란 중에 '살아 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공격형 (매파)와 방어형 (비둘기파)로 예를 들어 공격과 방어의
전략 중 어느 것이 안정한가를 찾아 봅니다. 노상 공격만 하는
매파의 전략이 생존에 유리한가 아니면 노상 양보만 하는 비둘기파의
전략이 유리한가를 비교해 보기도 하고, 혹은 이들이 전략을 수시로
바꾼다거나, 혹은 허세를 부린다거나, 허세를 부릴 때 반격을
안한다거나, 떼를 지어 반격을 한다거나, 그룹의 약자가
희생양이 되게 놔 둔다거나, 등등 여러 전략을 수치적으로
모의검토 (simulate) 하고 실제로 또 관찰해 본 결과로 ESS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을
찾아 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예로도 ESS를 찾으려는 시도로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가족계획 같은 것이 그 것입니다. 이를 잠시
차용하여 적용해 본다면 ... 미혜라는 이름의 여성이 다양한
남자를 접하는 것은 미혜라는 개체를 프로그램하여 들어 앉아
살고 있는 유전인자들의 보존에 직접적인 도움은 주질 않습니다.
미혜의 유전인자가 원하는 것은 미혜의 유전인자가 나와서 다시
유전인자를 그 후대에 전해 주기까지 그 자식의 양육을 잘 책임져 줄
남성인 것입니다. 물론 그러자면 미혜의 배우자인 남성이 우수한
유전인자를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감이
있어야 자식들에게 전달된 유전인자들을 잘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배우자인 남성이 미혜 외에도 다수의 여성 파트너를 데리고
있다면 이는 미혜의 유전인자를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미혜의 유전인자가 이 것을 거부합니다. 또한 미혜가 다수의 파트너를
상대하려고 한다면 이는 그 파트너들의 유전인자를 보존하는데
감점요인이 되므로 파트너들이 이런 미혜를 받아 들이려고
안할 것입니다.
이를 수치적으로 정확히 산출해 내는 것은 생물학자들이 할
일이지만 이 관점을 추적해 볼 때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결혼제도, 풍습,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관념 따위는
바로 수억년을 거쳐서 검증된 ESS, 즉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개체나 종의 군에서 일부 동물류에서 보이는 것처럼 여러가지
속임수를 전략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유전인자를 퍼뜨리기
위해 자기 자식을 남에게 속여서 입양시키고 나 몰라라 하는 종도
있습니다. 어떤 종은 누구 자식이든 가리지 않고 다 돌보아 줍니다.
어떤 종은 자기 자식만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지막지한 노력을 들입니다.
어떤 종은 자식을 무조건 많이 만들어 놓고 전혀 방치해 둡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다른 전략은 현재 인류의 대다수가 택하고 있는
여러 전략에 비해 대체로 열등한 전략들이라고 합니다.
형제나 가족이 더 귀하고 그들이 위험에 처하면 구하고 싶고 돕고
싶은 이유를 도킨스는 역시 구하는 경우가 그런 유전자의 보존에
유리하니까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구해야 사는 유전인자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압니다.) 도킨스가 한 가장
인상적인 관찰은 바로 이 '이타적'인 전략의 성과에 관한 것입니다.
'이타적'인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 유전자가 전파되려면
그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이타적인 행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살아남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서로 돕는 개체들은 생존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 전략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치적인 분석에
따르면 이런 이타적인 전략은 유전자의 보존에 매우 유리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비단 도킨스 자신이 이를 확률적인 계산으로 밝히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협조'가 '대결'보다도 궁극적으로
본인에게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타적인 성질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킨스는 '근친도'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형제는 이촌, 아저씨는 삼촌,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둔 사람은 사촌등으로 구분하는 우리의 촌수 산정 방식과
거의 동일합니다. 다만 이 근친도는 전적으로 유전인자의 공유도에만
의존합니다. 도킨스는 이 근친도를 이타성이 유전인자를 보존하는데
얼마만큼 효과적인지를 산출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이런 관점은 제가 보기에는 왜 가족, 친척, 민족, 인종등이
생물적으로 중요한지 왜 개체가 그런 집단에 대해 이타적이고자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발명한 도덕률의 동기 및 실용성을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타성이 왜 중요한지는 우리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유전인자가 우리를
그렇게 프로그램시켰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 본능의 이면에는 유전인자의 생존이라는 지상의 행동강령이
숨어 있습니다.
(근친도와 이기, 이타성이 유전인자의 보존에 미치는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해의연금을 얼마나 낼까 결정하고 일본을 미워할까
말까를 결정합니다.)
민족애,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도킨스의 관점에 따르면 대충 이런
생물학적인 보존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이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민족애는 인류애보다 더 강한가? 하는 질문이 하고
싶으시다면 그 답변은 민족애는 인류애보다 나의 유전인자 보존에
긍정적인 영향이 강하므로가 도킨스적인 답변이 될 것입니다.
(이 결론은 김미혜씨의 '개인 이기주의는 용납을 못하면서 국가
이기주의는 용납을 한다'라는 관찰과 약간 다른 결론인데, 사실
제가 보기에는 김미혜씨의 관찰은 사실과 다릅니다. 월급을 받아다가
아내와 자식에게 갖다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모두 다 국가에
세금으로 내야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3. 결
위의 응용은 순전히 도킨스의 관점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이
어느정도로 '과학적'이거나 '현실적'인지는 저는 약간 회의적입니다.
어느 정도 타당성이 없진 않으나 사실 해답보단 질문이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관점이라고 보여집니다.
위의 글은 단순히 도킨스의 관점을 옮기고 단순적용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킨스가 건너 뛰는 중요한 부분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예를 몇 가지만 들자면, 1, 생물의 기원은 아직 밝혀진 것이 아니다;
2, 두뇌의 작용은 무엇인가; 3, 왜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 양성 생식이
필요한가; 4,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 노화가 필요없지 않은가; 등등
외에도 많습니다. 유전자가 모든 결정을 다하면 두뇌라는 조직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가요? 두뇌가 현실을 simulate하기 위해
생겼다는 설은 자가당착적인 결론은 아닌가요? 무성생식으로도 훌륭히
유전자를 번식시킬 수 있는데 왜 부모의 유전자를 딱 절반씩 섞는
우아한 방식이 우연히(?) 나타나게 되었을까요? 유전자의 보존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관심이었다면 왜 노화라는 현상,
사망이라는 현상이 생겼을까요? 인간은 과연 두뇌를 써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 내고 해낼 수 있는 것일까요?
4. 완전한 사족
(저도 전문이 아닌 이야기를 땅콩 만한 두뇌로 생각해 보려고
무리를 해서 ... 만약 혼동이 되셨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아 그리고 오늘 배운 건데... '섹시'하다는 게 좋은
토론감이 된다 뭐 그런 뜻인가 봐요... 난 뭐 똑똑한 사람이
하면 그냥 그대로 배우니까 ... ^_^)
글모음 : http://www.oocities.org/whan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