芳園 李 盛 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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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 이성찬 선생은 1927년 서울 종로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 만주에서 소학교를 다니기도 했으며, 경성원예전문학교를 졸업한 후엔 창경원 원예 책임자로 근무하였다.

그후 잠시 전주농림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6.25 직후 전주중앙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의 국화전시회도 성황리에 주도하여 전후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에 정서를 심기도 하였다.

1954년 육종학의 권위자인 우 장 춘 박사를 도와서 서울에 원예기술원을 만들었으며, 1955년 경무대 원예책임자로서 이 승 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기도 하였다.

천성이 엌매임을 싫어하는 방원은 1957년 한국일보의 장 기 영 사장의 후원으로 한국 최초의 서구식 화훼유리온실을 짖고 원예 식물원을 운영하였으며 서울대학 식물학과 지정 연구식물농장으로서도 식물연구의 큰 몫을 해내기도 했다.

그이후 방원은 어려운 농촌이 고소득을 이루는 길은 근교농업의 정착이라는 신념아래 1960년대 중반부터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조종리(현 부천시 원미동)에 방산식물원을 운영하며 농민들에게 화훼, 분재, 정원수, 시설원예등의 기술을 보급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말이후 부천의 서울의 위성도시권화로 인한 도시계획실행으로 식물원이 소실될때까지 근교농업부흥을 향했던 방원의 뜻은 순결하고 고귀했다.

그후 신구대학등 원예학과의 꽃전시회의 자문등을 하며 끝없는 원예사랑을 외면하지 않았다.

원예가 예술의 한 범주임을 확신하는 방원은 7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양화의 대가들과의 교류등 다른분야 예술가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통해 원예예술의 차원을 높이고 있다.




좌측 앞줄이 방원선생, 우장춘 박사와 함께 했던 시절



부인 이 춘 연 여사와의 사이에 3남2녀를 두어 현재 6명의 손자와 3명의 손녀의 재롱속에 삶을 더욱 젊게 가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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