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오피아에서 온  빨간 열매

커피의 기원

 커피의 기원을 찾아 나서면 대륙과 역사를 뛰어넘어 거의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어떻게 그 빨갛고 달콤한 열매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료의 원료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커피의 기원과 전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가 얽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만 전해지고 있다. 떠도는 많은 이야기 중에서 목가적인 내음이 물씬 풍기는 염소치는 목동의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자.

 칼디라는 이름의 목동이 있었다, 그는 가뭄이 계속되자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떼를 몰고 갔다. 염소를 풀어놓고 한가로이 거닐던 목동은 염소들이 어떤 나무의 잎과 열매를 먹더니 평소보다 더 껑충거리고 들뜨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자 자신도 들판을 가로질러 마구 춤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신기한 열매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어 커피의 기원을 이루게 되었다. 함께 전해지는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목동들은 그열매를 갈아 동물의 지방과 섞어 작으니 덩어리로 만들어 먼길을 떠날 때 고열량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다고도 한다.

커피 열매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 사람들은 발효된 커피열매로 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그러나 이 이야기는 커피를 뜻하는 아랍어와 카와(quhwa)가 원래는 술(wine)이란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마도 잘못 해석된 것으로 여겨진다.

아랍 문헌에 커피에 대한 언급이 처음으로 나타난 때는 15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랍 세계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들인 수피교도들이었다. 그들은 커피를 음료로 마셨던 것이 아니라 긴 밤기도 시간 동안 잠들지 않게하는 약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커피 원두를 그들에게 전한 사람은 다바니라는 이름의 학자였는데, 커피 열매가 의약용으로 쓰이던 이디오피아에서 커피를 들여왔다. 다바니가 예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병이 들었는데 커피는 그를 병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기도할 힘까지 주었다. 그 후로 커피는 수피교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커피를 섭취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짐작할 수가 없다. 커피콩이 처음으로 볶아진 것은 언제이며 우리가 오늘날 느끼는 것처럼 매력있는 음료로 마시기 위해 가루를 내고 끓이게 된것은 언제부터일까? 여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6세기 후반 유럽의 여행가들은 '아랍인들은 태운 열매로부터 만드어진 거무스름한 시럽을 마신다' 고 언급하고 있다.

카와란 단어를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커피의 기원에 대한 시점을 잡는 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알바의 문혼에서 그것은 자주 술이란 단어와 혼동되어 쓰였기 때문에 학자들은 커피의 기원이 실제보다 오래된 것으로 잘못 추측하기도 했다. 다른 아랍어 쿠와(quwwa)에서 비롯된 오해도 있다. 그 단어는 힘 또는 강함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기운을 동우는 커피의 효과를 연상시키므로 커피의 어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밖에도 커피가 처음 발견된 이디오피아 지명 카파(KAFFA)에서 유래했다는 설, 커피나무를 처음으로 이용했던 이디오피아 여인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Coffee & Copy


   

커피의 전파

 커피의 기원에 대한 연구도 재미있지만 커피가 각 나라에 어떻게 전해졌는가를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다. 나라마다 커피의 전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들은 사실적인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기 보다는 그저 낭만적인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아랍의 약으로 알려진 커피가 마침내 유럽에 소개됐을 때 커피는 온갖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되었다. 유럽인들은 나중에야 비로소 아랍인들은 약효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커피의 향을 즐긴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후로 유럽인들은 커피를 마시기 좋은 형태로 발전시켰는데, 그때 아랍은 이미 원두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랍인들은 그들의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싹이 터서 발아할 수 있는 종자의 반출을 막고, 열매를 끓이거나 볶아서 유럽행 배에 선적했다. 외국인은 커피 농장 방문이 금지되었으며, 호주머니에 몰래 원두나 묘목을 숨겨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당했다. 그러나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은 원두를 가지고 나오기도 하였다.

 1616년 마침내 네델란드의 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로부터 원두를 입수해 그것을 유럽으로 밀반출했다. 이후 70년 동안 네델란드는 인도네시아의 플랜테이션에서 커피를 재배했고 커피는 네델란드의 가장 인기있는 음료가 되었다.

프랑스에 커피나무가 전래된 것은 1714년 암스텔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커피나무를 선물한 때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할 수 있었던 것은 노르망디 출신의 젊은 군인 끌리외(Gabriel De Clieu)의 애국적 정열 덕이었다. 루이 14세의 정원에서 커피묘목 몇그루를 구한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한 곳인 마르티니그 섬으로 향했다. 항해중 자신에게 할당받은 식수까지 커피나무에 주며 그는 한그루의 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에 옮겨심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커피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옮겨져 번성했다.

 브라질에 커피가 전해진 사연은 한결 로맨틱하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 부인이 화려한 꽃다발 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펭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롬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 조건 위에서 잘 자라 두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Coffee & Co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