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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e way my Savior leads me What have I to ask beside? Can I doubt His tender mercy, Who through life has been my Guide? Heav'nly peace, divinest comfort, Here by faith in Him to dwell! For I know, whate’er befall me, Jesus doeth all things well; For I know, whate’er befall me, Jesus doeth all thing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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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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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e way my Savior leads me Cheers each winding path I tread, Gives me grace for every trial, Feeds me with the living Bread. Though my weary steps may falter And my soul athirst may be, Gushing from the Rock before me, Lo! A spring of joy I see; Gushing from the Rock before me, Lo! A spring of joy I see.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모든 시련 당할 때에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피곤하고 영혼 매우 갈하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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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영광의 왕께서 자기를 낮추사 인성을 쓰셨다. (43)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오늘날에도 인류 가족들이 그 노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에 선포한 선언과 그때에 울린 선율(旋律)은 끝날이 가까이 이를수록 더욱 고조될 것이며 땅 끝까지 반향될 것이다. 의로운 해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면서 떠오를 때에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라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허다한 무리의 음성에 의하여 이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베들레헴의 이야기는 다함이 없는 주제이다. 그 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롬 11:33)이 숨기어 있다. 우리는 하늘의 보좌를 구유와 바꾸시고 경배하는 천사들과의 교제를 외양간의 가축과 바꾸신 구주의 희생에 경탄한다. 사람의 자만심과 자부심은 그의 임재 앞에 견책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놀라운 겸비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유전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으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예수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는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죄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48, 49) 아담이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아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아담은 완전한 장년으로 몸과 마음에 충만한 활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에덴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고 날마다 하늘의 천사들과 교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단과 상대하시기 위하여 광야에 가셨을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4천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적 능력, 그리고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퇴보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서만 그는 인류를 쇠퇴의 깊은 구렁에서 구출하실 수 있으셨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시험에 정복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처지에 서지 못하셨을 것이며, 아담이 얻지 못한 승리를 얻을 수 없으셨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가 당하지 아니한 시험은 하나라도 당해야 할것이 없는 것이다. (117)
하늘 성소상징적 의식에는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 곧 그들의 죄가 속죄 제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자들만이 대속죄일의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대속죄와 조사 심판의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사건만을 다루게 된다. 악인들의 심판은 완전히 구별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 후에 집행된다......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을 펼치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들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우리의 대언자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사건을 제시하신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된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된다...... 심판은 오늘날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신속히, 얼마나 신속히 오늘날 살아 있는 자들의 사건이 취급될지 아무도 모른다. 성경에서 어떤 말씀보다 재림신앙의 기초가 되고 중요한 기둥이 되어온 것은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단 8:14)고 한 말씀이었다...... 이천삼백 주야는 기원전 457년 가을에 효력이 나타난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예루살렘 중건(重建)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계산하면 다니엘서 9장 25절로 27절까지 예언된 모든 사건들의 설명은 완전히 들어맞는다. 이천삼백년의 첫 부분인 483년, 곧 69주일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의 시대까지 미칠 것이었다. 그런데 기원후 27년에 그리스도께서 침례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그 예언은 분명히 성취되었다. 또한 70 주일의 중간에 메시야는 끊어질 것이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침례 받으신 후 3년 반 만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때는 서기 31년 봄이었다. 70주 곧 490년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속한 것이었다. 그 기간의 끝에 유대 민족이 제자들을 핍박함으로 마침내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되었고, 그때로 부터 사도들은 이방인에게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가 서기 34년이었다. 이로써 2300년의 첫째 부분인 490년이 지나갔으므로 1810년이 남게 된다. 서기 34년에서 1810년을 연장하면 1844년이 된다. 천사는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하였다. 성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경은 분명한 해답을 준다.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소라는 말은 첫째, 하늘 성소의 식양을 따라 모세가 지은 장막을 가리키고 둘째, 지상의 성소가 가리키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형적 봉사는 끝났다. 하늘에 있는 참 성소가 새 언약의 성소이다. 그런데 다니엘 8장 14절의 예언은 현대에 성취될 예언이므로 거기 말한 성소는 새 언약의 성소가 되어야 한다. 2300주야가 끝나는 1844년에는 여러 세기 전부터 지상에 이미 성소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예언이 하늘에 있는 성소를 가리키는 것임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소의 정결이 무엇이냐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문이 해답되지 아니한 채 남아 있다. 구약 성경은 지상 성소와 관련하여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봉사가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늘 성소에도 정결케 할 무엇이 있을까?
죽지 않을 특권을 얻은 사람들은 창조력의 경이, 속죄애(贖罪愛)의 오묘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쁨으로 명상한다. 하나님을 등한히 하도록 유혹하던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는 더 이상 없다. 모든 능력과 재간은 증가되고 발달된다. 지식을 얻는데 두뇌가 피로해지거나 정력이 소모되는 일이 없다. 가장 큰 기도(企圖)도 실행되고, 가장 고상한 포부도 성취되며, 가장 높은 희망도 실현될 것이다. 그럴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정복해야 할 새로운 높은 봉우리, 경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이, 이해해야 할 새로운 진리, 마음과 몸과 영의 능력을 다 기울이게 하는 새로운 연구 대상들이 있게 된다. 우주의 모든 보화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구 대상으로 펼쳐진다.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들은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들, 곧 인간의 불행을 보고 슬프게 탄식하고,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 다른 세계들을 향하여 피곤을 모르는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땅 위의 자녀들은 타락하지 않은 다른 세계의 주민들의 지혜와 기쁨을 같이 나누게 된다. 그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솜씨를 명상함으로 얻은 지식과 지혜의 보화를 같이 나눈다. 그들은 흐려지지 않은 시력으로 창조의 영광, 곧 별들과 태양계들이 모두 그들에게 정해진 일정한 궤도를 따라 하나님의 보좌를 돌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만물 위에는 창조주의 이름이 기록되고, 모든 것에는 창조주의 능력이 표현되어 있다. 사단은 사람들을 무지 속에 가두려고 한다. 오늘날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과학을 배우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거나 아니면 과학 분야의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과학을 접해 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마친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가끔 나의 직업에 후회를 느낄 때가 있다.
오늘날 교육과 직업의 문제점문제점은 3가지가 있는데 2. 과학을 배우지 못해 사람들은 지적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3. 무의미하거나 난해한 것 (아무 의미가 없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1.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종일 서서 힘들게 일을 한다.
2. 과학을 배우지 못해 사람들은 지적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3. 무의미하거나 난해한 것 (아무 의미가 없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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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were subject to misfortune, sickness, and loss of property the same then as now; but so long as they followed the instruction given by God there were no beggars among them, neither any who suffered for food. Their wise Governor, foreseeing that misfortune would befall some, made provision for them. When the people entered Canaan, the land was divided among them according to their numbers, and special laws were enacted to prevent any one person from joining field to field, and claiming as his, all the land that he desired, or had money to purchase. No one was allowed to choose the most fertile parts for himself, and leave the poor and less desirable portions for his brother; for this would cultivate selfishness and a spirit of oppression, and give cause for dissatisfaction, complaint, and dissension.
By the special direction of God, the land was divided by lot. After it had been thus divided, no one was to feel at liberty, either from a love of change or a desire to make money, to trade his estate; neither was he to sell his land unless compelled to do so on account of poverty. And then whenever he or any of his kindred might desire to redeem it, the one who had purchased it must not refuse to sell it. And if the poor man had no one to redeem it for him, and was unable to do so himself, in the year of jubilee it should revert to him, and he should have the privilege of returning to his home and again enjoying it. Thus the poor and unfortunate were ever to have an equal chance with their more fortunate neighbors.
More than this, the Israelites were instructed to sow and reap their fields for six successive years; but every seventh year they were commanded to let the land rest. Whatever grew of itself was to be gathered by the poor; and what they left, the beasts of the field were to eat. This was to impress the people with the fact that it was God's land which they were permitted to possess for a time; that he was the rightful owner, the original proprietor, and that he would have special consideration made for the poor and unfortunate. This provision was made to lessen suffering, to bring some ray of hope, to flash some gleam of sunshine, into the lives of the suffering and distressed. Is any such statute regarded in England? Far from it. The Lord set needy human beings before the beasts; but this order has been reversed there, and, compared with the poor, horses, dogs, and other dumb animals are treated as princes. In some localities the poor are forbidden to step out of the path to pick the wild flowers which grow in abundance in many of the open fields. Anciently a man when hungry was permitted to enter another man's field or vineyard and eat as much as he chose. Even Christ and his disciples plucked and ate of the corn through which they passed. But how changed the order of things now!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계속해서 이행되어 왔다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세상의 현재 형편은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이기심과 거만한 마음이 지금과같이 나타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요 각 사람은 타인의 행복과 복리에 친절한 관심을 품게 되었을 (것이고, 영국과 아일랜드 대부분 지역에서 지금 볼수 있는 것처럼 그토록 널리 퍼진 빈곤과 인간의 비참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빈한한 자들이 부요한 자들의 심한 압박의 발굽에 짓밟히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어서 영적인 사물과 아울러 현세의 사물에 자기들을 위하여 생각하게 하고 계획하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자립하는 사상과 행동을 취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The sense of being owners of their own homes 자기가 가정의 소유자라는 의식은 그들로 향상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할 것이다. 그들은 곧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계획하고 고안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근면과 절약의 습성을 기르도록 교육받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요 노예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잃어버린 바 된 자존심과 도덕적인 자립을 크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373)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 "부자는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속담이 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땀을 흘리지 않고 부모의 재산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시작한 사업에서 마지막까지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이따금 삶이란 그다지 불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부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할수록 스스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강한 정신적인 기반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유한 부모 밑에서 나서 성장할 때 참으로 가지기가 힘든 것이 인생을 스스로 당차게 만들어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일 것이다. 부유함 속에서도 이같은 정신적인 기백이나 결단력을 소유할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다. 부유하게 태어나고 순탄하게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니다. 긴 인생살이에서 얼마든지 기복은 있게 마련이고, 이런 와중에 자신을 구원해 줄수 있는 것은 스스로 당차게 대지 위에 두발로 우뚝 서고야 말겠다는 결의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