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way my Savior leads me
What have I to ask beside?
Can I doubt His tender mercy,
Who through life has been my Guide?
Heav'nly peace, divinest comfort,
Here by faith in Him to dwell!
For I know, whate’er befall me,
Jesus doeth all things well;
For I know, whate’er befall me,
Jesus doeth all things well.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All the way my Savior leads me
Cheers each winding path I tread,
Gives me grace for every trial,
Feeds me with the living Bread.
Though my weary steps may falter
And my soul athirst may be,
Gushing from the Rock before me,
Lo! A spring of joy I see;
Gushing from the Rock before me,
Lo! A spring of joy I see.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모든 시련 당할 때에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피곤하고
영혼 매우 갈하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All the way my Savior leads me
Oh, the fullness of His love!
Perfect rest to me is promised
In my Father’s house above.
When my spirit, clothed immortal,
Wings its flight to realms of day
This my song through endless ages:
Jesus led me all the way;
This my song through endless ages:
Jesus led me all the way.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때에
영영토록 찬송 제목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토록 찬송 제목
예수 인도하셨네

흔히들 말하길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 십자가 강도는
저녁에 일한
포도원 품꾼 처럼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은
행위를 내세워서도 안되지만
행위를 부정해서도 안된다.
만일 행위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주의 은혜가
완전한 성품을 이루기에
족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주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주의 은혜로 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감화 등, 주의 은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 가장 놀랍고 오묘한 것은 바로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으나 죄없는 생애를 사셨다는 것이다. (롬8:3, 소망312)

영광의 왕께서 자기를 낮추사 인성을 쓰셨다. (43)
천군 천사들의 밝은 광채가 온 들을 환하게 비추었다. 땅은 숨을 죽이고 하늘은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위하여 땅을 굽어 보았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오늘날에도 인류 가족들이 그 노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에 선포한 선언과 그때에 울린 선율(旋律)은 끝날이 가까이 이를수록 더욱 고조될 것이며 땅 끝까지 반향될 것이다. 의로운 해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면서 떠오를 때에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라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허다한 무리의 음성에 의하여 이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베들레헴의 이야기는 다함이 없는 주제이다. 그 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롬 11:33)이 숨기어 있다. 우리는 하늘의 보좌를 구유와 바꾸시고 경배하는 천사들과의 교제를 외양간의 가축과 바꾸신 구주의 희생에 경탄한다. 사람의 자만심과 자부심은 그의 임재 앞에 견책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놀라운 겸비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유전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으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예수의 육신의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드러나 있다. 그는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시험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죄없는 생애의 모본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48, 49)

아담이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아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아담은 완전한 장년으로 몸과 마음에 충만한 활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에덴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고 날마다 하늘의 천사들과 교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단과 상대하시기 위하여 광야에 가셨을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4천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적 능력, 그리고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퇴보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서만 그는 인류를 쇠퇴의 깊은 구렁에서 구출하실 수 있으셨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시험에 정복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처지에 서지 못하셨을 것이며, 아담이 얻지 못한 승리를 얻을 수 없으셨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점으로든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것보다 더 혹심한 투쟁을 당한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는 온갖 연약성을 지닌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가 당하지 아니한 시험은 하나라도 당해야 할것이 없는 것이다. (117)

하늘 성소

기원전 4년에 태어나신 주님께서 서기 31년 까지 34년 동안 죄인이 되어 생활하셨고, 또 하늘 성소에 가신 후에는 1844년 까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죄인들을 돕는 방법을 설정해 놓으셨다. 만일 그렇게 죄인들을 돕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아담이 의를 이루도록 도움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말세를 사는 우리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1844년 이후에도 주께선 우리를 위해 계속 하늘 성소에서 일을 하고 계신데 그 일은 옛날 이스라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했던 상징적 의식과 비슷한 것이다.

상징적 의식에는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 곧 그들의 죄가 속죄 제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자들만이 대속죄일의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대속죄와 조사 심판의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사건만을 다루게 된다. 악인들의 심판은 완전히 구별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 후에 집행된다......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을 펼치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들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우리의 대언자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사건을 제시하신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된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된다...... 심판은 오늘날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신속히, 얼마나 신속히 오늘날 살아 있는 자들의 사건이 취급될지 아무도 모른다.

성경에서 어떤 말씀보다 재림신앙의 기초가 되고 중요한 기둥이 되어온 것은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단 8:14)고 한 말씀이었다...... 이천삼백 주야는 기원전 457년 가을에 효력이 나타난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예루살렘 중건(重建)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계산하면 다니엘서 9장 25절로 27절까지 예언된 모든 사건들의 설명은 완전히 들어맞는다. 이천삼백년의 첫 부분인 483년, 곧 69주일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의 시대까지 미칠 것이었다. 그런데 기원후 27년에 그리스도께서 침례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그 예언은 분명히 성취되었다. 또한 70 주일의 중간에 메시야는 끊어질 것이었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침례 받으신 후 3년 반 만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때는 서기 31년 봄이었다. 70주 곧 490년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속한 것이었다. 그 기간의 끝에 유대 민족이 제자들을 핍박함으로 마침내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되었고, 그때로 부터 사도들은 이방인에게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가 서기 34년이었다. 이로써 2300년의 첫째 부분인 490년이 지나갔으므로 1810년이 남게 된다. 서기 34년에서 1810년을 연장하면 1844년이 된다. 천사는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하였다.

성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경은 분명한 해답을 준다.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소라는 말은 첫째, 하늘 성소의 식양을 따라 모세가 지은 장막을 가리키고 둘째, 지상의 성소가 가리키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형적 봉사는 끝났다. 하늘에 있는 참 성소가 새 언약의 성소이다. 그런데 다니엘 8장 14절의 예언은 현대에 성취될 예언이므로 거기 말한 성소는 새 언약의 성소가 되어야 한다. 2300주야가 끝나는 1844년에는 여러 세기 전부터 지상에 이미 성소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예언이 하늘에 있는 성소를 가리키는 것임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소의 정결이 무엇이냐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의문이 해답되지 아니한 채 남아 있다. 구약 성경은 지상 성소와 관련하여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봉사가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늘 성소에도 정결케 할 무엇이 있을까?

죽지 않을 특권을 얻은 사람들은 창조력의 경이, 속죄애(贖罪愛)의 오묘를 결코 사라지지 않을 기쁨으로 명상한다. 하나님을 등한히 하도록 유혹하던 잔인하고 기만적인 원수는 더 이상 없다. 모든 능력과 재간은 증가되고 발달된다. 지식을 얻는데 두뇌가 피로해지거나 정력이 소모되는 일이 없다. 가장 큰 기도(企圖)도 실행되고, 가장 고상한 포부도 성취되며, 가장 높은 희망도 실현될 것이다. 그럴지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정복해야 할 새로운 높은 봉우리, 경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이, 이해해야 할 새로운 진리, 마음과 몸과 영의 능력을 다 기울이게 하는 새로운 연구 대상들이 있게 된다.

우주의 모든 보화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구 대상으로 펼쳐진다.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난 그들은 멀리 떨어진 다른 세계들, 곧 인간의 불행을 보고 슬프게 탄식하고, 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 다른 세계들을 향하여 피곤을 모르는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땅 위의 자녀들은 타락하지 않은 다른 세계의 주민들의 지혜와 기쁨을 같이 나누게 된다. 그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솜씨를 명상함으로 얻은 지식과 지혜의 보화를 같이 나눈다. 그들은 흐려지지 않은 시력으로 창조의 영광, 곧 별들과 태양계들이 모두 그들에게 정해진 일정한 궤도를 따라 하나님의 보좌를 돌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만물 위에는 창조주의 이름이 기록되고, 모든 것에는 창조주의 능력이 표현되어 있다.

사단은 사람들을 무지 속에 가두려고 한다. 오늘날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 과학을 배우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거나 아니면 과학 분야의 직장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과학을 접해 보지도 못하고 평생을 마친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가끔 나의 직업에 후회를 느낄 때가 있다.

오늘날 교육과 직업의 문제점

오늘날 교육과 직업의 문제점을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하고 정확하게 지적하였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문제점을 모르고 산다.

문제점은 3가지가 있는데
1.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종일 서서 힘들게 일을 한다.

2. 과학을 배우지 못해 사람들은 지적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3. 무의미하거나 난해한 것 (아무 의미가 없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1. 아무 생각도 없이 하루종일 서서 힘들게 일을 한다.
  • 하루종일 서서 힘들게 일을 하다 보면 의자에 앉아 쉬고 싶다.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은 생각하면서 일하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는데 나는 자꾸 시계만 쳐다보게 된다. 왜 그렇게 시간이 더디 가는지!!! "육체 노동이 천시되는 큰 이유는 그 일을 흔히 되는 대로 생각 없이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가 택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다. 일꾼은 거기에 전혀 심혈을 쏟지도 않고, 자존심도 없으며, 남의 존경을 받지도 못한다." (교육222)

  • 정주영은 노가다에만 안주하지 않고 부기를 배우며 다른 일을 찾아 보았다. 향상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품어라. 기술을 배워서 장사를 해라. "우리는 이 나라에서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일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수 있도록 교육시킬 학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자서전352)

    "도시에는 자본가, 상점 주인, 일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있고, 시골에는 지주, 소작인, 날품팔이 하는 일꾼이 있어서 세가지 계급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교육과 사상과 생활 환경 면에서 저들 사이에는 너무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사람이 동시에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기란 매우 어렵다. 재물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권세를 주지마는 빈궁은 노예 생활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존재하도록 계획해서 생긴 것들이 아니다." (복음전도416) Nothing of this kind was seen anciently.....

    공병호의 말대로

    • 스스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강한 정신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 인생을 스스로 당차게 만들어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품고
    • 스스로 당차게 대지 위에 두발로 우뚝 서고야 말겠다는 결의 (정신적인 기백이나 결단력)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참으로 험난한 세상이다. 세상이 맘 먹은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다.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데 있어서 나의 의지 보다는 주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더 많았다. (More Info)

      배운게 없고 가진게 없는 사람들은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다. 특히 한국같은 나라는 더욱 그러하다. 8시간 노동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법을 지키는 공장은 단 한군데도 없다. 따라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하거나 늙어서도 일을 하는등 부모님처럼 행운이 따라야 한다. 잘사는 부모와 잘사는 나라 (8시간 일하고 나이 차별없이 취직하는 나라)에서 출생하는건 행운을 타고 나는 것이다. 한사람이 정주영처럼 성공하면 그 후손과 나라가 대대에 걸쳐 잘살게 된다. 가난은 결코 대물림 되어선 안된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대로 경작할 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계속해서 이행되어 왔다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세상의 현재 형편은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계획하고 고안하는 기술을 자녀에게 가르쳐 주지도 못하고, 재산을 물려 주지도 못하는 한심한 부모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Nothing of this kind was seen anciently.....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계속해서 이행되어 왔다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세상의 현재 형편은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이기심과 거만한 마음이 지금과같이 나타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요 각 사람은 타인의 행복과 복리에 친절한 관심을 품게 되었을 (것이고, 영국과 아일랜드 대부분 지역에서 지금 볼수 있는 것처럼 그토록 널리 퍼진 빈곤과 인간의 비참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빈한한 자들이 부요한 자들의 심한 압박의 발굽에 짓밟히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어서 영적인 사물과 아울러 현세의 사물에 자기들을 위하여 생각하게 하고 계획하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자립하는 사상과 행동을 취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The sense of being owners of their own homes 자기가 가정의 소유자라는 의식은 그들로 향상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할것이다. 그들은 곧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계획하고 고안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근면과 절약의 습성을 기르도록 교육받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요 노예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잃어버린 바 된 자존심과 도덕적인 자립을 크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373)

    공병호의 말대로

    • 스스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강한 정신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 인생을 스스로 당차게 만들어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품고
    • 스스로 당차게 대지 위에 두발로 우뚝 서고야 말겠다는 결의 (정신적인 기백이나 결단력)을 소유하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향상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품은 사람은 못사는 사람이 아니라 잘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가정의 소유자라는 의식은 그들로 향상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할것이다. 미국처럼 임대아파트가 많지 않은 나라에선 사람들이 집다운 집에서 살지 못하고 있다. 집다운 집이 있어야 자녀들은 근면과 절약의 습성을 기르도록 교육받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 "훌륭한 품성을 지닌 그리스도인들 중에 근면과 절약의 습성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 "만약 지력을 가진 자들이 노동하는 자들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 주므로 저희의 근육을 든든케 한다면, 노동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노동을 덜하고 정신과 도덕적 교양을 위하여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앉아서 책만을 가지고 씨름하는 자들은 생활 수단을 위한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육체적 노동을 해야만 할 것이다. 건강은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을 연합해야 할 충분한 유인적 요소가 되어야 한다.

    원만히 계발되고 적절히 균형진 인격을 형성하기 위하여는 도덕적·지적·육체적 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지적 능력을 활용할 자격을 더 많이 갖추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육체적 노동을 사랑하고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저들이 각기 결핍되어 있는 점들을 개선하여 저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림으로 저희가 드릴 영적 예배가 되게 할 것이다. 유행을 따르는 사회의 습관과 관습이 저희의 행동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영감받은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였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사고하는 사람들의 정신은 지나치게 과로한다. 저들은 종종 저희의 정신력을 탕진하고 있는 반면에, 육체적 노동을 생애의 가장 고상한 목표로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자들은 정신을 활용하지 않는다. 저희의 뇌가 지적 능력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에 근육만이 활용되고 있는 것은 마치 두뇌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근육의 운동을 무시하면서 체내의 능력과 활기를 빼앗기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저희 생애를 육체적 노동에 바치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저희들 대신 생각하는 일을 맡겨 버림으로 단지 다른 사람들이 계획한 것을 수행하는 이들은 튼튼한 근육은 가질 지는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박약하게 될 것이다. 만약 저들이 근육을 활용한 만큼 저희의 뇌를 사용하였다면, 훨씬 돋보였을 저들의 선한 감화력이 비교적 약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질병이 침투하게 되면 질병을 저항할 강력한 힘으로 신체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하였기 때문에 쉽사리 병에 걸리게 된다.

    훌륭한 체력을 소유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저들의 두뇌의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대신에,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스스로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 일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일반적인 과오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교사, 사무원, 상인, 법률가 및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자리를 얻으려고 열심히 교육을 받으려 한다." (3증언 157, 158)


2. 과학을 배우지 못해 사람들은 지적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 밤늦게 자고 2006년 5월 4일 아침,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깬적이 있다. 그런데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하루종일 연구에 몰두하였다. 잠을 제대로 못잤으니 분명히 졸려야 할텐데 졸립지가 않았다. 전도서(12:12)에 보면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한다"고 하였는데 혹시 내가 과로를 하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아침부터 자정이 넘을 때까지 열두시간 이상을 나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냈다. 재미있으면 시간도 달아나고, 잠도 달아나는것 같았다.

    피곤하지 않게 하루를 보낸 원인 중의 하나는 소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일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먹는둥 마는둥 하였다. 먹은 것이라곤 고작 닭고기 한조각에 마늘빵이 전부였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전5:12) 정신 노동을 하는 사람은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과 달리 소식을 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

    다음날 (5일) 아침 일찍 나는 잠이 깼다. 몇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몸이 상쾌했다. 어제 나는 제대로 잠을 못잤기 때문에 오늘은 실컷 자야 하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가?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때 나는 알라스카에서 만난 일본인, 나의 룸메이트, 그리고 나폴레옹과 에디슨이 잠을 적게 자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소식을 하고, 또 할일을 찾아서 바쁘게 생활한다는 것이다.

    1. 동물원에 갇힌 짐승을 보라. 할일이 없으니 하루종일 잠만 잔다. 사람도 할일이 없으면 기차 여행을 할때 처럼 잠밖에 자는 것이 없다.
    2. 육체 노동을 할때도 마찬가지다. 하기 싫은 육체 노동을 억지로 하면서 느끼는 것은 오로지 "쉬고 싶다" "자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다. 그리고 노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 저녁을 먹자 마자 골아 떨어지게 된다. "육체 노동이 천시되는 큰 이유는 그 일을 흔히 되는대로 생각 없이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가 택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다. 일꾼은 거기에 전혀 심혈을 쏟지도 않고, 자존심도 없으며, 남의 존경을 받지도 못한다." (교육222)
    3. 수면을 하면서 우리 몸에 유익한 항산화제가 나오고, 우리 몸은 재충전이 된다. 그러나 할일이 없어서 세상 근심을 잊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은 안좋다. 또한 육체 노동을 하는등 세상 근심에 너무 시달리고 피곤해서 잠이 오는 것도 안좋다.

  • 학과들 중에 과학만큼 실생활에 적용할수 있는 학문이 드물다. 그리고 무의미한 것을 외우는 다른 학과와 달리 의미가 있고, 따라서 재미가 있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그런데 학과들 중에 가장 재미없고, 배우기 힘든 과목이 되었다. 왜냐하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E=MC² 같은 공식을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교사들 또한 공식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국에서 정비학원을 다닌적이 있는데 자동차 고치는 정비기술은 안가르쳐 주고, 이해할수 없는 것들만 외우게 하였다. 그래야만 정비사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할수 있었다. 실기시험 또한 포니 자동차 엔진을 분해하고 조립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동차 고치는 정비기술은 하나도 테스트하지 않았다. 그러니 비싼 돈들여 정비학원을 다니고, 정비사 자격증을 취득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 고등학교와 대학 예과 2년 동안은 실생활에 적용할 수도 없는 쓸모 없는 것들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전공과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대학 본과나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서 2년 동안 실지로 이용할 수 있는 전공 과목을 배운다 할지라도 제대로 배우질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라도 철저히 가르치지 않고 너무 광범위하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학 과정을 졸업한 많은 청년들이 실제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참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3증언 159) 박사 과정을 밟아야 비로소 한 분야에 일가견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비록 쓸모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암기를 해야 한다. 암기량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고시 공부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오랜 세월 동안 암기 위주의 교육을 참고 견뎌야만 박사가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소요되는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논문 준비를 시작하는 시기 자체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은 전공학과별 특성을 고려해 대학원 2년에서 4년 사이에 학생들이 박사학위 논문 주제 선정을 마치고, 시험 응시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동시에 교수와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늦어도 6~8년 이내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립과학재단(NSF)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미 대학원생들이 학사학위 취득후 박사학위 취득까지 걸리는 기간은 전체 평균 10.1년이었다. 이는 10.8년을 기록한 1996년과 비교해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수준이다. 계열별로는 사회과학 계열이 평균 10년으로 가장 길었으며 자연과학 계열이 7.9년, 생명과학 계열 8.2년 등이었다. 전공학과별로는 교육학이 18.2년으로 가장 길었고 보건학이 13년, 인류학 11.9년, 사회학 11.2년, 정치학 10.9년, 농업과학 10.3년, 엔지니어링 8.6년 등이었다.


3. 무의미하거나 난해한 것 (아무 의미가 없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것을 외워야만 한다.
  1. "여러 세기를 내려오면서, 교육은 주로 암기 위주로 행하여져 왔다. 암기하는 일에 극도의 부담이 지워지고, 반면에 다른 지적인 능력들은 이와 병행해서 바람직하게 발달하지 못하였다. Students have spent their time in laboriously crowding the mind with knowledge, very little of which could be utilized. The mind thus burdened with that which it cannot digest and assimilate is weakened. 학생들은 지식을 두뇌에 축적하기 위하여 힘들게 시간들을 사용하였지만, 실지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이란 별로 없었다. 이와 같이 소화할 수도 없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도 없는 것으로 짐 지워진 두뇌는 약하여졌다." (교육230)

    부모와 친척들은 아이들이 외우는 공부를 안하면 무슨 큰죄라도 지은 흉물 취급을 한다. 자기들도 하기 힘든 공부를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어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 (마23:4)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또 공부 안하는 아이들을 정죄하지도 않으신다. 왜냐하면 불필요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을 외워야만 하는 공부는 하나님이 만드신게 아니고, 사단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가 필요한 10대 시기에 아무도 나를 제대로 지도할만큼 노회하고 성숙한 어른이 없었다. 어른들은 나에게 공부하기만 강요했지, 아무도 나에게 "맘껏 놀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 이민을 왔다는 사람들 조차도 매한가지였다. 하긴 나도 교회에 들어온지 25년만에 (2006년 5월에) 알았으니 나도 꽤나 늦게 깨달은 셈이다. 내가 다시 10대가 된다면 한창 자라는 시기에 맘껏 놀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가지 않고도 성공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볼것이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농부나 직공, 혹은 간호원으로 성공할수 있지 않은가?

    • "일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일반적인 과오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교사, 사무원, 상인, 법률가 및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자리를 얻으려고 열심히 교육을 받으려 한다." (3증언 158)
    • "다른 직업에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지적 직업(학문적 소양이 필요한 직업)을 가지려는 야망을 갖는 이가 많다. 농부나 직공, 혹은 간호원으로서 성공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 목사나 변호사, 의사 같은 부적당한 지위를 차지한다. 반면에, 어떤 책임 있는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원기와 근면과 인내가 부족한 탓으로 안일한 지위에서 자족하는 수도 있다." (교육267)

  2. 흔히들 말하길 좋은 성적의 학생들이 똑똑하다고 한다. 그렇게 항상 칭찬을 들은 그들은 어려서 부터 똑똑했던줄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들의 지능이 발달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을 가지거나 아니면 대학원에 들어가 생각하면서 부터이다. 물론 그러한 성공을 이루는 사람은 산업시대인 오늘날에도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전문직에 취직하지 못한 낙오자들,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마땅한 기술이나 industrious habits 근면성도 없고 대학에도 가지 못한 낙오자들이다.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교육 방법으로 인해 곁길로 들어섰다. 인생에는 공부하는 기간과 일하는 기간, 즉 준비와 실행의 기간이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 보편화 되어있다. 청소년들은 평생을 위한 준비로 책을 연구하여 지식을 얻기 위해 학교로 간다. 그들은 일상 생활의 여러 가지 책임으로부터 떠나서 공부에 몰두하나, 그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는 수도 있다. 처음에 가졌던 헌신적 정열은 잃어버리고,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야심을 갖게 되는 일이 많다. 졸업에 임해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실제의 사회와는 동떨어져 살았다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만 취급해 왔으므로, 급기야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순간에 이르러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정력은 처음에 목적했던 고상한 일에 쓰이는 대신에 단순히 생존 경쟁에만 빼앗긴다. 실망이 거듭되는 동안, 필경에는 생계비를 버는 일까지도 단념해 버리고 수상쩍은 범죄 행위에 빠져 버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리하여, 세상은 한 사람의 일꾼을 잃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대표자로 향상시켜서 고귀하게 하고자 하셨던 하나의 영혼을 잃게 되는 것이다." (교육265)

  3. industrious habits 근면성이 있는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을 갖는다. 그러나 대졸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 배우는 사회 경험을 배울 기회가 없다. 그들은 온실 속의 화초 처럼 사회와 너무 동떨어진 생활을 하였다. 자수성가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잘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사람은 잘사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처럼 주어진 행운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고학을 하며 변호사 준비를 하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말하길 "언젠가 고된 일을 하는 지금의 시절을 되돌아 보는 날이 올거라"고 하였다. (1)직장을 찾아 헤매 다니고, (2)자주 해고 당하며, (3)저임금을 받고 (4)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된 일을 하면서 업신여김을 당하는 등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실직을 하거나 혹은 사업이 망해서 무일푼 빈손이 되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폐물이 되기 쉽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다. (잠14:31, 17:5) 성남이 형은 말하길 20년 넘게 사회 생활을 못한 내가 아직도 어린애라고 하지만 사실 형이야말로 어린애다. 형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순탄한 생활을 하면서 쓰라린 사회 경험을 한번도 겪은적이 없다. 대학 4년, 군대 3년을 마치고 유학을 온 형을 보러 온 외삼촌도 나를 건달이라고 놀렸다. 그런데 외삼촌의 돈으로 좋은 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형은 건달이 아니란 말인가? 자기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줄 알아야지, 당시 20살 밖에 안된 청년에게 건달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나같은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 "역마살이 낀 놈, 싸돌아 다니며 부모 근심 시키지 않게 군대에 집어 넣어야 한다"면서 자기 자식은 수도방위사령부에 근무하도록 빼돌렸다. 자기 자식이 아파 하면 그렇게 하고, 남의 자식은 아프건 말건 돈 한푼 쓰지 않는 외삼촌이다. 어머니에게 말하길 "군대에서 고생 좀 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였다. 그것을 앞으로 잊지 말고 경계하자. 사람만 보면 좋아하는 개와 달리 조심성이 많은 고양이는 한번 맞으면 전혀 잊지 않는다. 어쩌면 고양이의 조심성 때문에 "고양이가 아홉번 산다"는 속담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회사들은 대학 졸업생들 중에 제대로 된 일꾼이 없음을 안타까워 한다. 그것은 곧 미련한 대학 졸업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회사들은 다른 사람을 안뽑고 오로지 대학 졸업생들만 똑똑한줄 착각하고 그들만을 채용한다. 어찌되었건간에 그들은 생각하는 직업을 갖거나 아니면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은 지능이 발달한다. 될성 싶은 나무는 떡잎 부터 알아본다는 속담대로 어려서 공부 잘해 똑똑한줄 착각했던 아이들이 결국은 전문직을 갖고 똑똑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오늘날 사회는 똑똑한 그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또 발달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전부 맞는 말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교육은 너무나 많다. "대학 과정을 졸업한 많은 청년들이 실제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참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3증언 159) 남이 알지 못하는 지식을 가진 박사일지라도 일자리가 없으면 택시 운전을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육체 노동을 이상하거나 천한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자녀에게 industrious habits 근면한 습관을 기르도록 훈련하라는 교훈을 받았으며 젊은이가 육체 노동을 모르고 자라게 하는 것을 죄로 생각하였다. 성직을 위하여 교육을 받아야 할 아동에게까지라도 실생활에 대한 지식은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의 부모가 부하거나 가난하거나간에 모든 청년들은 어떤 일을 배웠다. 그들의 자녀를 위하여 이와 같은 훈련을 준비하기를 게을리하는 부모들은 여호와의 교훈에서 떠나는 것으로 여김을 받았다. 바울은 이 풍속에 따라 일찍이 천막 만드는 일을 배웠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전에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생계를 위하여 수공업에 의존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후에 그리스도의 사업을 진전시키는 데 그의 재물을 모두 사용해 버렸을 때 그는 때때로 생계를 위하여 수공업에 의존하였다..... 일에 굳어진 그의 손이 그리스도인 목사로서의 그의 감동적인 호소력을 감소시키지 아니하였다."

  4.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교육을 배우는데 쓸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얼마일까? "단시일 내에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을 갈급하는 많은 학생들이 있으며 저들에게는 1년이나 2년의 교육 과정이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부교학404)

    어린 소년들과 소녀들 처럼 시간만 넉넉하다면 처음에 가졌던 헌신적 정열과 처음에 목적했던 고상한 포부를 갖고 평생을 위한 준비를 위해 학교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의 생애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들은 세상에서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하여 교육을 받고자 열망하는가? 그대들은 감히 발표할 수 없는 생각, 즉 그대들이 장차 최고의 위대한 학자의 지위에 서고자 하는 생각, 그대들이 심의회와 국회에 앉아서 국민을 위하여 법률을 제정하는데 협력하려 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가? 이러한 포부를 품는 것이 조금도 나쁘지 않다. 그대들은 각자 자기의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그대들은 결단코 저열한 학식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높은 목표를 세워라. 그리고 이 표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라." (청년36)

    "좀 더 보람찬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세상 학교에 있는 학자들 밑에서 장기간의 교육 과정을 받아야 하는 줄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만약 저들이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교육을 받기 원한다면 물론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청년들에게 “공부하라. 공부하라. 언제나 책에 몰두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그대들은 소위 고등교육을 받기 위하여 학교에서 한 동안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라고 저들에게 말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경험있는 일꾼들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든 학문 분야에서 지식의 최고 단계에 올라가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때는 얼마 남지 않았으며 우리들은 영혼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여야 한다. 만약 학생들이 부지런히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다면 저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부교학 496,497)

    "시간이 급박하므로 우리들은 부지런함과 배가된 힘으로 일해야만 한다. 우리 자녀들이 대학에 전혀 못가게 될는지 모르나 저들이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정신에 수양이 되며 그 정신력을 응용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대학 과정을 졸업한 많은 청년들이 실제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참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부교학293)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에서 연구하는데 수년간의 세월을 보내지 않도록 하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경고는 어린 소년들과 소녀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어린이들은 좀더 성숙하고 신뢰성있는 판단력을 가질 나이에 이를 때까지 철저한 훈육과 일반 학과와 성경에 대한 공부를 마쳐야 한다." (부교학219)

Historical Sketches of the Foreign Missions of SDA 164-166

"도시에는 자본가, 상점 주인, 일급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있고, 시골에는 지주, 소작인, 날품팔이 하는 일꾼이 있어서 세가지 계급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교육과 사상과 생활 환경 면에서 저들 사이에는 너무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사람이 동시에 모든 계급의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기란 매우 어렵다. 재물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권세를 주지마는 빈궁은 노예 생활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존재하도록 계획해서 생긴 것들이 아니다." (복음전도416) Nothing of this kind was seen anciently among his people when he was their acknowledged leader. Valuable lessons might be learned by the rulers of to-day, if they would study the plan of government given to the children of Israel.

People were subject to misfortune, sickness, and loss of property the same then as now; but so long as they followed the instruction given by God there were no beggars among them, neither any who suffered for food. Their wise Governor, foreseeing that misfortune would befall some, made provision for them. When the people entered Canaan, the land was divided among them according to their numbers, and special laws were enacted to prevent any one person from joining field to field, and claiming as his, all the land that he desired, or had money to purchase. No one was allowed to choose the most fertile parts for himself, and leave the poor and less desirable portions for his brother; for this would cultivate selfishness and a spirit of oppression, and give cause for dissatisfaction, complaint, and dissension.

By the special direction of God, the land was divided by lot. After it had been thus divided, no one was to feel at liberty, either from a love of change or a desire to make money, to trade his estate; neither was he to sell his land unless compelled to do so on account of poverty. And then whenever he or any of his kindred might desire to redeem it, the one who had purchased it must not refuse to sell it. And if the poor man had no one to redeem it for him, and was unable to do so himself, in the year of jubilee it should revert to him, and he should have the privilege of returning to his home and again enjoying it. Thus the poor and unfortunate were ever to have an equal chance with their more fortunate neighbors.

More than this, the Israelites were instructed to sow and reap their fields for six successive years; but every seventh year they were commanded to let the land rest. Whatever grew of itself was to be gathered by the poor; and what they left, the beasts of the field were to eat. This was to impress the people with the fact that it was God's land which they were permitted to possess for a time; that he was the rightful owner, the original proprietor, and that he would have special consideration made for the poor and unfortunate. This provision was made to lessen suffering, to bring some ray of hope, to flash some gleam of sunshine, into the lives of the suffering and distressed. Is any such statute regarded in England? Far from it. The Lord set needy human beings before the beasts; but this order has been reversed there, and, compared with the poor, horses, dogs, and other dumb animals are treated as princes. In some localities the poor are forbidden to step out of the path to pick the wild flowers which grow in abundance in many of the open fields. Anciently a man when hungry was permitted to enter another man's field or vineyard and eat as much as he chose. Even Christ and his disciples plucked and ate of the corn through which they passed. But how changed the order of things now!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계속해서 이행되어 왔다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세상의 현재 형편은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이기심과 거만한 마음이 지금과같이 나타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요 각 사람은 타인의 행복과 복리에 친절한 관심을 품게 되었을 (것이고, 영국과 아일랜드 대부분 지역에서 지금 볼수 있는 것처럼 그토록 널리 퍼진 빈곤과 인간의 비참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빈한한 자들이 부요한 자들의 심한 압박의 발굽에 짓밟히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머리를 빌어서 영적인 사물과 아울러 현세의 사물에 자기들을 위하여 생각하게 하고 계획하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자립하는 사상과 행동을 취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The sense of being owners of their own homes 자기가 가정의 소유자라는 의식은 그들로 향상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할 것이다. 그들은 곧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계획하고 고안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근면과 절약의 습성을 기르도록 교육받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요 노예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잃어버린 바 된 자존심과 도덕적인 자립을 크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373)


[공병호의 성공칼럼] 2005-08-11
부자 삼대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 "부자는 3대를 넘기기 힘들다"는 속담이 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땀을 흘리지 않고 부모의 재산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시작한 사업에서 마지막까지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이따금 삶이란 그다지 불공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부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할수록 스스로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강한 정신적인 기반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유한 부모 밑에서 나서 성장할 때 참으로 가지기가 힘든 것이 인생을 스스로 당차게 만들어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일 것이다. 부유함 속에서도 이같은 정신적인 기백이나 결단력을 소유할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다. 부유하게 태어나고 순탄하게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니다. 긴 인생살이에서 얼마든지 기복은 있게 마련이고, 이런 와중에 자신을 구원해 줄수 있는 것은 스스로 당차게 대지 위에 두발로 우뚝 서고야 말겠다는 결의라 하겠다.


보호하는 한 천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각 사람에게 지정되어 있다. 그 하늘의 보호자들은 의인을 악한 자의 세력에서 지켜 준다. 이 사실은 사단 자신도 시인했다. 그는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욥 1:9, 10)라고 한 말은 그 사실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 주시는 데 사용하시는 존재가 시편 기자의 말에 나타나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시 34:7). 구주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들에 관하여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없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봉사하도록 지정된 천사들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GC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