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PHIADEI | ||||||||||
| veritasdei | ||||||||||
| Der Gott und Die Weltanschauung I | ||||||||||
| foreword. 이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게 되어지는 기독교 유신론'과 '세계관'(Die Weltanschauung)과의 혼동이라고 함의 잘못됨에 대한 고찰과 분석을 통하여서 '기독교 유신론'의 의미와 그것이 결코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함으로 대처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에 대한 분명한 증거와 입장을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에 있어서 게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신론과 그 실재론에 대한 것과 세계관이라고 함의 실재의식에 대한 것을 비교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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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r Gott..(기독교 실재론에 대하여서..) 1. 게할더스보스의 성경신학적 신론(Geehardus Vos's the Biblical doctrine of God) 그의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밝힌 것을 차례대로 인용하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용) '둘째 예언은 셈과 관계되어 있다. 여기서 여호와라는 명칭의 사용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이 이름은 그 자체로서 벌써 셈에게 축복의 부여가 되는 것이다. 구속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능력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이 특정한 족속의 종교적인 소유와 기쁨이 되어주신다는 뜻이 깔려있다. 이는 셈족이 여호와를 경배하리라는 것 이상의 언약 형식이다. 그리고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류의 어느 특정한 그룹의 하나님으로 불리운 최초의 것이다. 이는 그 족장이(이는 노아를 말함 역자주) 다음과 같은 송영을 말하게 될 정도의 경이적인 일이다. -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문자적으로 옮기면 이것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는 그분이 셈의 하나님이 (기꺼이) 되셨도다'이다. 중략 그리고 야벳이 셈의 영토를 침범한다는 것을 셈과 야벳의 영적인 동거를 말하는 듯이 풍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실제적인 정치적 정복이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러한 물리적 정복이 야벳에게 종교적인 축복을 결과로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 셈의 장막을 취함으로 거기서 구속과 계시의 하나님 되시는 셈의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이 예언은 그 일차적인 정치적인 정복에 있어서도, 그 결과적인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그리이스와 로마인들이 셈의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정복은 참 종교가 세상에 편만케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델리취는 인상깊게 말하기를, '우리 모두는 셈의 장막에 거하는 야벳족속이다'라고 하였다.'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이승구역 기독교문서선교회 pp. 84-85) 인용 끝) 해설) 여기서는 셈이라는 단어의 뜻이 '이름'이라는 것과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적 증거를 취하게 되어지는 자들에게 기꺼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찾게 되어지는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을 말하는 입장의 성경적인 근거를 말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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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또 성경에서는 종교적 관계에 있어서 '이름'의 삼중적 중요성이 생각되어야만 한다. 첫째로 신의 이름은 신의 성격을 표현한다. 우리가 속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형용적 지칭이 이름 가운데 쉽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것이 그의 이름이다. 그러나 선지자가 그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할 때, 그것은 특정한 이름(nomen proprium)이 된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추상적이고 종합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 개시하신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표호)'(the name of God)이다. 이런 점에서 이름은 그 행위에서의 계시라기보다는 결과로서의 계시와 동일한 것이다. 이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온 세상에서 영화로우시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그것을 견고한 망대로 삼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이름은 실제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다. 그 이름은 신현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동등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이승구역 기독교문서선교회 pp. 90-91) 인용 끝) 해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등한 것으로 말하고 있음에 있어서 또한 하나님의 계시와 이름의 동일성을 말하고 있음에 대한 것을 주목하게 됩니다. 인용) '..재귀형을 말하면서도 좀 덜 자연주의적인 설명은 쿠엔넨의 것으로 그는 '존재의 원인이 되는 자', 즉 창조주 또는 좀더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자신의 약속들을 성취하는 자'로 해석한다. 이 모든 파생 설명은 완전히 추측들일뿐이다. 구약 성경의 용법 배후에 어떤 원인인가 숨어 있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종교에서 권위적인 것은 출애굽기 3장의 계시를 통해 고정된 의미이고 우리는 이것만을 다루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일인칭이 삼인칭으로 바뀌어 Yehweh가 된 것이다. 이 신비의 해답은 그 문장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이승구역 기독교문서선교회 p. 148) 해설) 게할더스 보스가 앞서 언급한 것들에 대하여서 파생적 설명이 완전히 추측들일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은 그 합리성에 대한 자체적 정당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론적 입장에서는 유명론적 입장을 취하는 자들과는 달리 그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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