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 앉아 교수의 따분한 강의를 들으며 조는 모습, 낙엽 지는 캠퍼스의 벤취에 앉아 고독을 씹는 모습, 햇살 좋은 잔디밭에 둘러앉아 인생을 토론하는 모습, 돌로 포장된 좁은 길에서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 사회와 정치의 모순을 질타하며 시가를 행진하는 모습.... 이 모든 것들이 낭만적인 대학생활의 추억이다. 그런데 대학의 모습이 최근 들어 급속도로 변화했다. 급속도로 변화한 대학의 모습을 살펴보고, 변화하는 대학의 문화에 대응할 방안을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대도시에 있는 학교의 교수로서 회사로 출강을 나가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학기의 경험은 특별했다.
전화회사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Southwestern Bell의 직원들에게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했다. 실제 강의는 텍사스 주의 라스 콜리나스(Las Colinas)에서 했는데, 청강하는 학생들은 라스 콜리나스 뿐만 아니라 켄자스 주의 켄자스 시; 미조리 주의 쎄인트 루이스; 오클라호마 주의 오클라호마 시, 털사; 알칸사 주의 리틀락; 텍사스 주의 휴스턴, 산 안토니오, 오스틴 등지에 흩어져 있었다. 다섯 주의 아홉 개 도시에서 근무하는 전화회사 직원들이 상호작용 비디오 시설(Interactive Video System)을 사용하여 마치 한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것 같이 서로 얼굴을 보며 토론을 할 수 있었다.
학교의 모습이 많이 변하여 우리의 부모님들이 가지고 있는 캠퍼스의 낭만은 거의 사라졌다. 특히 피닉스 대학교(University of Phoenix)와 같은 학교들은 컴퓨터를 통해 학위과정 전체를 마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기술발전으로 인해 변화된 대학가는 십여년 전에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나 발전하는 기술의 포용만이 변화된 대학의 모습은 아니다. 다양성의 추구라는 미명아래 대학가의 성문화가 엄청나게 변화했다.
1990년대 초, 저롬 펜(Jerome Penn)이라는 학생이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에 입학을 했다. 기숙사 내의 방을 배정 받았다. 그의 룸메이트는 동성연애자였다. 기숙사관리 사무실에 가서 다른 방으로 옮겨 줄 것을 요청했다. 관리실에서는 화를 내며 모욕적으로 이유를 따졌다. 학생이 결국 신앙적이 이유를 밝히자 기숙사 측은 마지못해 방을 재배정 해주며 방을 옮기게 된 이유를 절대로 발설하지 말도록 위협했다.
참으로 슬픈 일은 이와 같은 성문화의 변화가 소위 기독교 대학이라고 알려진 몇몇 학교들에서 더욱 현저하다는 것이다. 예일(Yale) 대학교의 경우가 그 한 예이다. 1939년 찰스 씨모어(Charles Seymour)가 예일의 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인사를 통해 모든 교수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다룰 것을 당부했다. 또한 그는 기독교 신앙이 대학생활의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취임 후 50년이 지난 1987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Lipsticks and Lords: Yale's New Look"이라는 제목의 기사 속에서 예일 대학교에 다수의 동성연애자들이 있음을 폭로했다.
인디안 선교를 위해 설립된 다트머쓰(Dartmouth) 대학도 마찬가지의 변화를 겪었다. 최근 다트머쓰 학생들에게 "좀더 안전한 성관계 도구"(safer sex kit)라는 것이 배포되었다. 그것의 사용설명서는 동성연애, 혼성연애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성관계 부추기었다.
이러한 성문화의 변화로 기숙사운영방침이 크게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남녀 기숙사 및 남녀공용 기숙사 시설의 비율변화
|
|
1970 |
1980 |
1990 |
|
건물별로 구분된 남녀 기숙사 |
77% |
23% |
10% |
|
층별로 구분된 남녀공용 기숙사 |
19% |
41% |
40% |
|
방별로 구분된 남녀공용 기숙사 |
3% |
36% |
50% |
이와 같이 변화된 대학문화의 내용을 소개하는 의도는 독자들의 마음에 대학들에 대한 불신감과 두려움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관심 있게 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아가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힘만으로 추세를 막거나 추세의 방향을 전환할 수는 없을지라도, 대학들을 비교/관찰해서 올바른 대학을 선택하고 추천하는 것을 통해 추세를 변화시키는데 일익을 감당할 수 있다.
이 글의 연재가 그리스도인들이 대학들을 바르게 비교/관찰하는 능력을 갖추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