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rief History and Projection of Christian Education in Korea
기독교교육의 회고와 전망

김종환 교수, Dallas Baptist University


기독교교육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당시 우리 나라의 교육은 선진교육을 의식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다가 1884년부터 우리 나라에서 사역을 시작하게된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교육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우리 나라 개화교육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즉 선교사들이 기독교교육을 소개하여 교육의 근대화를 전개하기 전까지 우리 나라 교육은 성균관(成均館), 4학(四學), 향교(鄕校), 그리고 서당 등의 기관에서 중국의 가정교과 형식에 맞추어 성리학설(性理學說)에 관련된 책만 읽히고 유교 이외의 것은 이단시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의 급변하는 내외정세 속에 선교사들이 내주 하여 그들의 선교활동을 교육중심으로 시작했다. 그들이 선교활동의 중심으로 삼았던 교육은 학교교육과 더불어 교회교육, 사회교육, 유아교육, 특수교육 등에 관한 것으로서 우리 나라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기에 충분했다 (김득룡, "한국 기독교 교육운동사," 한국기독교 성장100년, 서울: 기독교문사, 1986, 80).

그러나 교육의 여러 분야를 주도하며 시작되었던 기독교교육은 시작된지 100 여년이 지난 오늘날, 기독교가 괄목할만한 양적 성장을 이룬 오늘날 그 영향력을 많이 상실했다. 기독교대연감의 1991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기독교는 지난 100 여년 사이에 거의 진공의 상태에서 약 1천2백만명 신도의 모임으로 성장했다 (기독교문사, 기독교대연감 1991, 233).
기독교가 짧은 기간 내에 이처럼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처음 소개되면서 부터 우리 민족을 근대화로 이끌기 시작한 기독교교육의 절대적인 영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교육은 신학의 보조로서 신학적 결과를 전달하는 것만을 주된 기능으로 삼고, 그 기능의 수행을 위해 교육학적 지식 또는 기술을 끌어다 사용하는데 그쳐, 삶의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의 본분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교육이 오는 세대를 향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교육이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했던 개화기의 배경과 기독교교육이 그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듯한 현실의 상황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기독교교육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기독교교육이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기독교교육이 소개되던 당시의 배경과 기독교교육의 역할)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으로 인해 "은자의 나라 (Hermit Nation)"로 알려졌던 우리 나라가 1876년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게 됨에 따라 개화사상에 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늦게나마 세계의 조류에 눈을 뜬 우리 나라 정계 및 학계에는 어떻게 하면 서구의 문명을 빨리 받아들이까 하는 교육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이며 의사인 알렌(H.N. Allen) 부부가 왕실과 접촉을 가지게 됨으로써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G. Underwood) 목사와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seller) 목사가 1885년 부활주일, 인천에 상륙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고, 계속해서 1889년 말엽에는 최초의 침례교 선교사라고 인정되어지고 있는 캐나다인 펜윅(Malcom C. Fenwick)이 일개 독립선교사의 자격으로 서울에 도착하게 되었다. ("대한기독교회 시대," 배ㅂ티스트 15, 1992, 34).

쇠할 대로 쇠한 이조 말의 사회환경과 아시아 제패를 꿈꾸는 열강제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위협 등으로 인해 새로운 교육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에는 그 여건은 좋지 않았지만, 서구제국의 선진문물과 접하게 된 우리 나라의 젊은 지도자들의 서구화 교육운동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서구화 교육운동을 주장함에 있어 그들의 대부분은 기독교교육의 중요성도 더불어 역설했다. 우리 나라의 교육적 실정과 젊은 지도자들이 교육의 근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 초대 선교사들 중 언더우드는 자신의 선교사역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인재를 기르는 기독교교육 운동이라고 확신하고, 당시 주한 미국공사였던 푸트에게 자신의 선교사업이 교육사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득룡, 81).

우리 나라 교육의 근대화를 인식한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기독교교육에 투자했다.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는 스크랜톤(W.B. Scranton) 의사의 집 한 채를 사서 조그마한 교실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 학교는 1886년 고종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얻게 되었다. 그 학교는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교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기초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알렌 의사가 개설한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자 의학전문학교인 광혜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며 우리 나라에서의 교육활동을 시작하여, 1886년 고아원과 통칭 언더우드 학당이라고 불리는 고아학교를 열었다. 그는 그 학교에서 한문, 영어, 성경 등을 가르치며 우리 나라에 기독교교육을 뿌리내리기 위해 힘썼다. 우리 나라 첫 감리교 여선교사로서 스크랜톤 의사의 부인(Mrs. M.F. Scranton)도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세울 계획으로 1886년 한 명의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결국 이화학당이라는 우리 나라 최초의 여학교를 창립했다 (Ibid., 82).
한편 펜윅도, 다른 교단의 선교사들에 비해 조금 늦기는 했지만, 원산을 거점으로 선교활동을 하면서 장차 우리 나라의 침례교를 비롯하여 기독교 전체를 이끌어갈 지도자들을 양성했다. 선교사들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기독교교육이 전개되어 1885년부터 한일합방 직전인 1909년까지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 약 40개의 기독교계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Ibid).
이와 같이 선교사들은 교육운동을 통해서 서양의 근대문화를 우리 나라에 소개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감당했다.
선교사들에 의한 기독교교육이 당시의 사회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했다. 기독교교육이 사회에 끼친 영향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꼽아야 할 것은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천민에 대한 태도와 처우의 개선과 민주주의의 보급일 것이다. 가부장 중심의 계급사회에서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인정조차 받지 못하던 어린이와 여성과 천민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신들의 고유한 존엄성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기독교교육은 한글사용을 일반화하고, 미신숭배를 감소하고, 혼인습속을 개선하고,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알코올과 마약 등의 해악에 대해 계몽하고, 병자와 부상자에 대한 과학적 치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었다 (Ibid).

(오늘날의 상황과 기독교교육)
오늘날 우리 나라의 상황은 기독교교육이 그 첫 발을 내디디던 당시의 상황보다 훨씬 진보되어있음과 동시에 매우 복잡하고 어지럽게 얽혀있다. 민족적으로는 분단의 아픔과 슬픔 속에서 통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향하여 힘겨운 걸음을 걷고 있다. 정부는 부정부패로 인해 국민으로부터의 신임을 잃었고, 정당들은 여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역사책의 당파싸움만을 재연하고 있으며, 법조계는 무능으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국민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조차도 제한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후진국으로부터 선진국으로의 발전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제적으로는 경제적 종속문제로 고민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정경유착문제를 비롯하여 농업과 공업, 수입과 수출, 생산과 분배, 기업주와 노동자, 가진자와 못가진자 등의 관계에 있어서 극심한 불균형과 심각한 문제점들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다수의 소시민은 평생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해 탄식하고,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소수의 기회주의자들은 졸지에 얻은 부를 낭비할 방법을 찾느라 고심이다. 사회적으로는 정치경제의 문제로 인하여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가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지역간의 감정이 화합이 아니라 대립의 방향으로 날로 커져가고 있다. 미혼모, 청소년 가출, 마약, 퇴폐업소 등이 점점 증가되고 있으며, 생명경시풍조가 만연되어 살인, 낙태, 유괴, 인신매매 등이 빈번하다 (오인탁, "한국 사회상황과 기독교교육," 한국 교회와 교육,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0, 75-83).

교육적으로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바른 교육이 사라지고 선생과 학생 사이의 잘못된 교육이 오늘날 우리의 교육계를 지배하고 있다. 교육은 피교육자가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순응하거나 방황하다가 죽어가도록 방치해 놓고 있다. 도덕적으로는 심각한 가치상실의 시대를 맞아 절대적 가지를 부정하고, 옳고 그른 것보다는 좋고 나쁜 것에 행동결정의 기준을 두고 있다. 또한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돈으로 교단을 팔고 사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이질적인 종교들의 오랜 공존으로 인해 혼합주의가 보편화되어 있고, 기독교적으로는 무수한 사이비, 이단종파들이 할거하고 있으며, 교회 적으로는 너무도 많은 교회가 안주하는 교회로 만족하고 있다. 교회는 예배하고 전도하고 교육하고 봉사하는 본질적인 기능을 통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자체의 안녕과 복지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개교회주의라는 온건한 표현과 교회제국주의라는 과격한 표현 아래서 신앙은 이기적 기복으로 흐르고, 사회에서의 일상적인 죄에 대한 죄책은 경감되어지고 있다. 교회는 결국 신앙생활은 교회 내에서의 생활이요, 사회생활은 신앙생활과 별개의 것이다 라는 이원론적 사상체계를 교인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Ibid)

오늘날 우리 나라의 이같은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기독교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 그리고 어떤 역할을 하고있는가에 대해 깊이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소개될 당시 기독교교육은 우리 나라 상황의 모든 분야에 기독교적이고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영향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끼쳤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의 모든 상황이 기독교교육의 기독교적이고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영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오늘날, 기독교교육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로 현실상황의 영향을 수용만 하고 있는 것같다. 이와 같은 심각한 문제는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인가? 기독교교육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좀 더 발전적인 미래를 맞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오늘날 우리 나라 기독교교육의 문제)
첫째, 오늘날 우리 나라 기독교교육은 성경공부나 훈련과정을 통해 실천적인 삶의 연습보다 성서의 인명과 지명, 성구와 숫자 등을 외우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있다 (도한호, "2천년대를 향한 교회교육," 교사의 벗 6, 1992, 46).
보수적인 교회, 보수적인 교단일수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고도로 진화된 동물 내지는 극히 복잡한 기계로 전락시킨다는 이유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을 배척하는 정도가 심한데, 교회나 교단이나 더 보수적이면 보수적일수록 행동주의자들의 교육원리인 반복과 훈련을 통한 암기를 강조한다. 그리고 피교육자가 더 많은 사실을 암송하면 할수록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 이와 같은 교육은 기능공양성을 위한 교육으로는 적합하나 칼빈(John Calvin)이 제창한 실현적 성화의 삶과 웨슬리(John Wesley)가 내세운 신앙생활의 방법론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심어주는 교육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둘째, 오늘날 우리 나라 기독교교육(각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으로 매우 좁은 의미에서의 기독교교육을 말함)은 수명이 짧고 일관성이 없다 (Ibid., 45).
교육활동이란 그것이 어떤 내용의 것이든 하루아침에 완성되어질 수 없고 일생동안 지속된다. 그래서 일반교육은 유치원,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이어 계속되는 후속교육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그것들을 통해 피교육자를 교육하기 위해 인적, 물적으로 엄청난 투자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의 교회들이 실시하는 기독교교육은 흔히 유치부, 유년부까지로 체계적인 교육은 마무리하고있다. 따라서 주일학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고가 대부분의 성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팽배한 것이다.
세째,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독교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피교육자들을 대하고 있다 (오인탁, 기독교 교육, 서울: 종로서적, 1991, 15).
기독교교육은 마땅히 가르쳐야할 성서의 내용과 교리적 기초와 교회의 전승을 정선하고 조직하여 피교육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독교교육의 고유한 특징은, 일반교육의 고유한 특징과 마찬가지로, 학습과정이 교수활동을 통하여 발생되고 조절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독교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성경, 교리, 전통 등에 있어 최소한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육심리와 교육원리 분야에서도 최소한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개교회의 인력자원과 재정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시간 있는 사람에게 교사의 직분을 맡기게 된다. 결국 기독교교육이 전문성을 띄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기독교교육의 장이 교회에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오늘날의 기독교교육은 교회의 기성세대가 교회의 성장세대에게 가하는 행위로서의 교육이다. 즉, 기성세대의 신앙내용과 가치체계 및 행동규범 등을 보존하여 교회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것에 기독교교육이 촛점맞추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의 기독교교육은 피교육자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피교육자를 향한 교육에 머물게 된다. 또한 이런 식의 기독교교육은 피교육자를 위한 교육의 장이 인간활동의 모든 장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망각한 교육이다. 따라서 기독교교육이 교육학적 작용력과 효율성을 신앙지식과 신앙실천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얻지 못한다 (Ibid., 15-16).
즉, 교회를 벗어나서 가정, 학교, 직장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는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지지도, 적용되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향한 기독교교육의 과제)
먼저, 기독교교육의 장을 확대하여 피교육자들로 하여금 일원론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곧, 기독교교육에 실천접근방법이 더 많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독교교육이란 성령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형성하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이다. 이와 같은 교육은 가정과 사회를 향하여 열려 있는 교회에서, 사회와 교회를 향하여 열려져 있는 가정에서,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 열려져 있는 관계가 계획적, 의도적으로 축소되고 조작되어 주일학교 교실에 한정될 때, 기독교교육은 변질되어 단순히 성서의 인명과 지명, 성구와 숫자 등을 암송하는 것에 그치게 되고, 나아가서 피교육자들은 기독교교육은 교실 또는 교회당 내에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기독교교육은 성경말씀과 히브리적 전통에 기초하여 삶의 현장에서의 기독교적 종교교육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이해의 전통 위에서 슐라이에르마커(F. Schleiermacher)는 교육을 기성세대가 성장하는 세대에게 꾀하는 모든 사회적 활동으로 정의하였으며, 허바트(Herbart)는 교사가 학생에게 문화적 지식들을 조직적으로 전달하는 모든 활동으로 보았고,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는 교육자의 주도 아래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인간도야로 보았던 것이다. 그들에 의해서 기독교교육은 사회화로서의 교육으로 지식의 전달로서의 수업뿐만 아니라 자아실현으로서의 도야로 이해되었다. 기독교교육에 대해 이러한 고전적인 이해에 의해 오늘날의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교육은, 그 정의상, 피교육자가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그 근본 취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교육의 본질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고 우리 나라의 사회상황을 고려하여 교육의 장의 확대를 시도해야 하겠다 (오인탁, "한국 사회상황과 기독교교육," 90-91, 94).

두 번째로, 기독교교육에 대한 종합 학문적인 연구와 반영이 있어야 한다. 교육의 장을 확대하고, 피교육자가 자신의 신앙고백과 일치하는 삶의 형태와 행동양식을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의 행동양식과 사회구조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려는 인접학문들을 연구하여 기독교교육과정에 반영해야만 한다 (강희천, 기독교교육 사상,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1, 24).
트레이시(David Tracy)의 표현처럼 기독교교육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경험 사이에 초월적인 연결가능성을 지향해야만 하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The New Pluralism in Theology, New York: The Winston Seabury Press, 1975, 52-63).
학문들의 이론과 실천을 기독교교육과정에 그대로 도입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이 이론과 실제 간의 연결을 그 주요과제로 삼고 있는 한, 사회교육학 등의 이론과 실천에 관해 끊임없이 연구하여 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하겠다.
세 번째로, 교회와 교단은 좀더 효과적인 기독교교육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도한호, 46).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육되고 훈련된 교사와 체계적이고 건전한 교과과정 그리고 적당한 시설이 필요하다. 모든 교인들이 기독교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기 위해 투자해야 할뿐만 아니라, 피교육자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적용방법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줄 수 있는 교과과정, 또한 그들에게 본이 되며 그들을 올바로 가르치고 도울 수 있는 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하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독교교육이 처음으로 소개될 당시의 우리 나라의 상황과 오늘날의 사회상 가운데의 기독교교육, 기독교교육의 문제점, 그리고 기독교교육이 앞으로 해야할 일 등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 보았다. 한 때 학자들은 현재 약 1천2백만의 기독교 인구가 서기 2000년에는 2천1백만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한영재 편, 한국기독교 성장 100년, 서울: 기독교문사, 1986, 198).
그 숫자는 우리 나라 국민전체인구의 41%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이다. 그렇게 되면 직장이나 시장 또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들의 2명중 거의 1명은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였다. 우리 나라 기독교의 확대속도는 참으로 놀라운 것임과 동시에 가슴 벅찬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숫자적인 성장은 정체를 이루고 있다. 우리 나라 기독교가 안고 있는 교육의 문제점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더 이상 숫자적 성장은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록 숫자적으로는 늘어난다 할지라도 사회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기독교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교육의 과거를 회고해보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되어져야 하겠다. 그리하여 앎과 삶을 연결시키는 실천행위로서의 기독교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여 양적으로 커 가는 2천년대의 교회를 질적으로 성장시키며, 문화건설을 선도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World Baptist Press, 1998



May 20, 1998

The Importance of the Christian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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