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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육백만 달러 1. "내가 니 아빠다." 다스 베이더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대사를 하는 사람은 대체로 굉장히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괜히 어설픈 파스텔 톤으로 페인트칠한 이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를 보면서, 내가 한 사람의 아버지임을 아득할 만큼 강하게 느꼈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자. 눈부시게 밝은 햇살이 강렬한 한 여름날이 있다 .도시 빌딩의 알루미늄 외벽들이 달아 오르고,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녹는 듯한 더운 날씨. 길가에 가득한 차들에서 피어 오르는 열기와, 더위에 찌든 거리의 사람들이 땀 흘리며 걷고 있다. 그런 여름날이, 갑자기 세상에 거대한 장막을 치는듯, 삽시간에 깜깜하게 어두워진다. 저 멀리 서편에서부터 갑자기 뭉게뭉게 검은 먹구름이 확 몰려오더니, 시내 전체를 저쪽 끝부터 이쪽 하늘 끝까지 구름들이 다 뒤덮어버리는 것이다. 길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놀라서 저마다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을 주욱 가로지르며 번개가 확 친다. 그리고 세상을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정신나간듯이 엄청난 소나기가 퍼부어 대는 것이다. 내가 종로구청 복지과의 류은정씨에게 "전화받으시는 분이, 이원 어린이 생부 되시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낀 그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느낌은, 적어도 그 정도의 배경효과가 필요한 강도였다. 이제 겨우 새 직장에서 자리잡고, 지난 일년 반 동안 사귄 아가씨와 내년 봄에 결혼하기로 했는데. 아니, 왜, 애가, 어떤, 대관절, 무슨 소리냔 말이다. "아니, 아니, 똑바로 다시 한 번 말씀해 보세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 친자식이 있다구요? 저, 저, 잠깐만. 제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하고 한 번 확인 해봐주시겠습니까?" 몇 번이고 확인을 하고 난리를 쳐 봤지만, 정해진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여기가 텔레비전 주말드라마 속도 아닌데,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숨겨둔 딸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진 나는, 반쯤 넋이 나가서 터벅터벅 구청을 향해 길을 나섰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곰곰히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나름대로 큰 사고를 안내고 살려고 주의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궁색한 구석에 몰린 채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동안 모든 술먹고 필름 끊긴 나날들을 하나 둘 다 집대성하여 헤아려 보기도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종로구청 복지과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서류에서 그녀의 이름 석자를,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순간. 이야기의 내막은 단숨에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대학시절 동료였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지구물리학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산학연 합동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기상청에서 일을 하면서 박사학위 과정에 있게 되었다. 그때가 아마, 여름 태풍내습기 대비 총점검이 막 끝나는 때쯤이었을지 싶은데, 마침 굉장히 큰 환경학회가 수원에서 열려서, 이 바닥의 온갖 인사들이 다 모이게 되었다. 물론 많은 옛 친구들과 은사님들, 은사라고 부르기 싫은 교수들이 줄줄이 나타났고, 기상청에서 한동안 일하고 있던 나는 아주 오랜만에 학교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들이 나이가 확 들어 보이는 순간만큼 서글픈 것도 없다. 물론, 내가 나이를 먹는 느낌이 드는 생일이 돌아오는 때나 새해가 밝아올 때 쯤도, 괜히 이 날 이 때까지 내가 뭘 해오고 살았나 하는 생각에 사무치긴 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옛날의 그 모습대신 세상의 바람과 물결에 닳고 닳은 모습일 때의 비감은 그런 사무침을 능가한다. 저 깊은 밤마다 같이 호젓한 도로에서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던 친구가, 몇 번씩이나 의과대학 편입학 시험에 낙방하고 사방으로 웅크라든 모습을 볼 때. 혹은 언젠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실험실 안에서 바깥으로 창 밖을 보며 창을 세차게 두드리던 빗방울들을 같이 바라보던 친구가, 어렵사리 얻은 직장에서 답답한 인생을 느끼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볼 때는,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시원하고 유쾌했던 그들이, 어느새 삶에 꼬이고 이런저런 일에 마음속 억울함이 차서 기가 죽은 낯빛이 된 것을 보면, 참, 세상이 이러한가 싶다. 언제나 내 마음속에는 어린 날들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그런 친구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그 날개가 꺾이고 다급한 인생에 쭈그러든 모습으로 발견되는 일은 그처럼 꽤나 감흥이 크다. 그것은 그 친구들이 그만큼 괴로운 만큼, 동시에 내 주변과 내 삶의 부분들이 날개가 꺾이는 모습이 되는 것이며, 또한, 그들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내 자신이 그만큼 무너져 내린 게 되는 것임을, 눈 앞에 들이미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그녀만은 아직도 옛날의 그 밝은 얼굴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많은 옛 친구들 가운데 단연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나름, 나도 논문 낸다고 요며칠 계~속 밤 샜어." 하는 말을 하는 만큼, 그녀의 오른쪽 눈에 좀 충혈기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경쾌하게 흘러가는 말소리와, 괜히 눈을 흘기며 표정을 만들어 대답하는 그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더군다나, "내가 머릿결은 작살이지." 라며, 한 번도 염색 안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그 머리칼을 손으로 훑고는, 웃을 때, 그 웃는 소리가 굉장히 듣기 좋았다. 자신감 넘치는 청량한 웃음소리이기도 했지만, 또 좀 바보 같고 어린애 같은 흐흐흐. 이기도 했다. 그녀의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서 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복잡하고 골치 아픈 세상에서, 여기는 여전히 밝고 신나게 걸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그처럼 들었던 것이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며 마지막으로 손을 흔드는 그녀와 눈이 딱 마주치고 자리에서 돌아서고 나서는, 그야말로 나는 한동안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한 삼일밤을 그녀가 나오는 꿈만 달아서 꾼 나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나서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소위 말하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서 현실적 영향권의 폭을 넓히는 발빠른 행보로 진전되었으며, 그 결과, 그로부터 2개월 후인 "태풍내습기"가 되자, 그녀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같이 만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 만남은 육개월 정도 이어졌다. 그녀의 손을 잡고 햇빛이 사이사이로 바람을 따라 들어오는 여름 가로수길을 걸을 때,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좀 눈이 부셔서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그 옆모습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잠깐 동안, 사람을 쉬게 하는 느낌이 드는 여름바람이, 아주 편안한 기나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내 삶에 이런 좋은 시간이, 그리고 이렇게 좋은 그녀가 내 곁에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나는 그 때, 내가 기상청에서 일하고 박사학위를 딴다고 설치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나앉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자주했다. 그럼 갑자기 나이만 가득 먹은 실업자가 되겠지. 그럼 이제 다시 처음부터 어디 연구비 남는 대학의 연구보조원자리나 뒤지고 다녀야 하지는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과연 그 때도 그녀가 내 곁에 있어 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걸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과학인재육성사업의 핵심역량인재후보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학생이었다. 어영부영하다가 운이 좋아 덥석 그 돈자루를 움켜잡은 학생들은 그녀말고도 꽤 있었지만, 그녀는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실력도 엄청난 학생이었다. 내가 기상청의 국지기상도 분석에 끙끙대고 있을 무렵에, 그녀는 벌써 성층권 난기류에 관한 논문을 몇 편씩 완성한 후였고, 내가 덜덜 떨면서 겨우겨우 교수님들 앞에서 과제발표를 할 때, 그녀는 캘리포니아의 어느 리조트에서, 유창한 영어로 지구 자기장 격변에 대해 미국 공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자부심과 자존심은 굉장했다. 그런 그녀가 삐끗 잘못해서 내가 퇴물이 되면 나를 거들떠 보기나 할까? 나는 그게 굉장히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한 번 만날 때 마다, 두 배씩 더 일하는데 노력을 퍼붓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지수함수의 기하급수적 확장은 당연히 말도 못하게 무서운 것이어서, 그녀와 만난지 한두달쯤이 지나자 나는 일주일 내내 깨어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동안 항상 대기순환과 태양복사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삶의 함정에 빠져서 징징거리게 될 때, 그녀는. "바로 그럴 때 내가 출동하는 거야." 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정이 든 두 사람의 관계란 것은, 한 사람의 성공전선이 나자빠져서 툴툴거린다고, 한심하게 여기고 부끄러워하며 짜증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다시 힘을 얻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업에 발목이 접질려져 두려움에 질려 울고 싶을 때, 옆에서 그래도 항상 내편에서 든든하게, 내가 아직 저력이 있다고 말해 주는게 그녀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왼손으로 앤초비 피자 한조각을 뜯어 먹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이상하게 나는 그녀의 그런 말을 듣고 나자, 더 미친듯이 공부와 일에 매달렸다. 아마도 처음 내 넋을 잃게 한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그녀와 나 사이에는 꽤 먼 마음의 거리가 있었는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일에 미친 시절, 지하철 2호선의 막나가는 아침시간에 태양광 스펙트럼에 따른 성층권 흡수율 따위를 계산하고 있는 사람은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뿐이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나는 조그마한 메모지 한 장과 펜을 들고 계산을 했으며,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 마다 그 때 그 때 말로 중얼중얼해서 녹음했다. 처음에는 옛날 텔레비전 시리즈의 명탐정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러고 돌아다니다가 가만 내 꼴을 보니 그냥 맛간 놈 같았다. 어이없게도 그러다가 나는 한 두어번 그녀와 대판 싸웠고, 메모지 계산과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을 권리 사이에서 정신 제대로 못 차리고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는 어느 날 그녀에게 잠시 헤어져 있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 그게 아마 그녀의 자존심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졌을 것이다. - 그 "잠시"가 지나자, 그녀는 나 대신 세상에서 두 번째로 한심해 보이라면 서러울 만큼 한심하게 생긴, 무슨 턱수염을 기른 비리비리한 놈과 같이 다니고 있었다. (참고사항: 따라서 오랜만에 내 앞에서 일 관계로 누군가를 소개하려 한다면 무조건 턱수염 없는 사람을 소개하라. 아직까지도 나는 그 녀석의 그 비열한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 없어진 충격은 실로 막대했다. 나는 괴로운 마음에 사로잡혀 괜히 그녀와 자주 걷던 길, 반경 5백미터 이내에 접근하지 못했고, 한동안은 연구과제에서 그녀가 연구하던 분야의 이야기 용어만 몇 마디씩 나와도 괜히 그녀 생각에 논문 읽기를 멈추곤 했다. 나는 최대한 그녀와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빛나는 경력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 자리를 노리고 있던 꿈은 참으로 허망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대충 기상청 쪽 일이 끝나는 대로, 한 외국 항공사의 기술직으로 취직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보란 듯이 온갖 아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괜히 고별 파티를 하고는 싱가폴 지점으로 날아와 버렸던 것이다. 일년 내내 여름이었던 그 나라에서 몇 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보니, 역시 시간이 가장 좋은 약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무렵이 되자 나름대로 그녀에 대한 번뇌 없이 다시 적응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싱가폴에서 했던 일들은 성과가 나쁘지 않게 풀려 나갔고, 또 무엇보다, 그녀와 만나던 반년 동안 온몸에 베었던 일중독자 습관이 그 때까지도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에, 내 일은 진행 경과가 좋았다. 곧 나는 아는 선배 하나, 총애하는 상사 한 명 없는 이 업계 종사자치고는, 꽤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개미처럼 일하다 보니, 나름대로 통장에는 잔고가 쌓여갔고, 대학 선배에게 소개 받은 한 아가씨와 만나다가 여유로운 마음으로 청혼했던 것이 작년 연말이었다. 그런 상태의 나에게, 이제 바람처럼 등장한 또 하나의 여인이 있었으니, 이 여인의 바람은 태풍내습기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던 나에게 사라, 셀마와 매미를 다 합친 만큼의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이 여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키 차이가 일백 센티미터가 넘게 나고, 나이 차이는 20년이 넘어가는, 아직 한국어 구사가 자유스럽지 못한, 학위라고는 내수유치원의 종이접기반 경력이 전부인 사람이다. 옛 그녀가 낳은, 그녀와 나의 딸, 이원이었다. 복지과 직원과 보호시설 담당자인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아이 심리상태와 나의 법적 의무에 대해서 굉장히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예", "아니오", "그래요", "그렇군요" 로 꼬박꼬박 대답하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그녀가 언제 어떻게 아이를 낳았고, 왜 그걸 나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는지, 그 생각만 했다. 이원. 그녀와 내가 언제 농담으로 아이가 생기면 이런 이름은 어떻겠는가 했던 이야기에서 나왔던 이름이었다. 복지과에서는 아이는 보호시설에 법원심리가 끝날 때까지 있어도 되고, 구청의 관리감찰하에, 일단 집에 데려가도 된다고 했다. 이상하게 내 눈에 그곳의 파스텔톤 페인트칠이 굉장히 우울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즉시 이원이는 내가 데려가겠다고 했다. 나는 이원이의 손을 잡았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의 손 중에서 가장 작은 손이 내 손에 잡혔다. 갑자기 내가 손을 잡자 이원이는 좀 놀라는 것 같았지만, 내 손이며 팔이 너무 커서 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원이의 손이 따뜻한 것을 느끼는 순간, - 나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보편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손은 굉장히 따뜻하다 - 갑자기 이상하게 뭉클하고, 울컥하고, 싸아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려고 했다. "나랑 집에 가자." "어, 그럼 우리집에 다시 가는 거예요?" 이원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했다. 다섯 살짜리 치고는 말이 똑똑했다. 그렇지만 역시 다섯 살짜리 같은 방방뛰는 말투도 아니었다. 너무 얌전했고, 조금 겁먹은 거 같기도 했다. "아니, 옛날 집 말고, 내 집. 새 집에. 여기보다는 더 살기 좋을 거 같거덩." 이원이는 별 말도 없이 내 말을 잘 들었다. 옷가지를 넣은 짐가방 하나와 분홍색 곰인형 하나를 챙겼다. 나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일단 하늘이 트인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쐬고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바삐 이원이와 함께 구청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세종로의 넓다란 길에 서 있는데, 밖에 나왔지만 막막한 느낌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나는 이원이를 보고 말했다. "내가 어디 잠깐 앉아서 홍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혼란한 정신을 좀 다잡아야겠다. 좀 같이 가주라...... 어...... 넌 아이스크림 사줄까?" "나 아이스크림 별로 안좋아 하는데." "우유는 먹냐?" "우유." 우유는 먹는다는 말인지 아니라는 말인지. 우유가 어쨌다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데로 보다 보니 일단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아예, 저...... 뭐 홍차 종류는 없나요?" "예?" 항상 스타벅스에서 홍차 이야기를 하면, 종업원들은 저런 목소리로 "예?" 하지. 또 깜빡했다. 뭐 자기들 메뉴를 자기가 한 번 유심히 읽어 보고는 뭐라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냥, 아이스티 한 잔 주시고요. 우유도 한잔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아이스티 한 잔하고, 우유 하나 주문하셨구요~" "하셨"다음에 "구"에서 기묘하게 억양을 높일 때 나는 이원이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 말을 덧붙였다. "아 참, 우유는 너무 뜨겁게 하지 말아주세요." 어릴 때 따뜻한 우유 마시다가 입술이나 혀나 입천장 데면 굉장히 싫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머릿속을 웅웅하게 하는 소란스러운 스타벅스 중앙자리를 피해서, 그나마 가장 조용할 것 같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이원이와 마주 앉았다. 이원이에게 우유를 손에 쥐어 주었지만,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그냥 가만 들고 만 있었다. 내 아이스티는 한모금 마셔보니 굉장히 무성의하게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찬찬히 이원이를 들여다보았다. 누가 뭐래도 옛날 그녀의 모습을 많이 닮아서 정말 굉장히 예뻤다. 창가쪽 자리에서 햇볕이 갑자기 들어와서 눈부셔 얼굴을 잠깐 찡그릴 때는, 그 때 그 여름 가로수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이 그대로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저 아이가. 내 딸. 내가 저 아이 아버지. 이름은 이원. 머릿속에, 빵집에서 새 빵이 나왔습니다~ 하는 종소리처럼 선명하게 계속 딸랑딸랑 그런 말들이 울렸다. 이원이는 그녀를 많이 닮았지만, 속눈썹이나 조그마한 손의 모양 같은 것은 또 나를 닮기도 한 것 같았다. 한쪽 눈을 조금 더 크게 뜨는 모습은 정말 나랑 비슷했다. 이원이의 그런 모습은 이 아이의 얼굴을 아주 순하고 착해 보이게 했다. 너무 조용한 모습이 굉장히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또 그 조그마한 것이 당당하면서도 똑똑한, 그녀와 똑 같은 눈동자로 세상을 쳐다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고 좀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원이는 태어난지 19일째 되던 날, 서울시 국회의원인 심 선생 부부의 양녀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다소 대외선전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심의원은 모범적으로 세 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잘 키우고 있었고, 그것으로 명망도 높은 사람이었다. 아마 좋은 곳에 이원이를 보내려고 그녀가 백방으로 노력한 모양이었다. 심의원은 막내딸로 이원이를 받아들였고, 생부와 생모를 가르쳐 주고는 아이의 이름에 내 성을 그대로 쓰게 하면서 이원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이원이의 삶이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은, 대통령과 쓸데없이 힘을 겨루던 한 정파가 비틀거리게 되면서부터였다. 거기에 이리저리 잘못 줄을 서다보니 심의원은 입지가 굉장히 이상해져 버렸고, 얼마전 재보궐선거에서 이겨보려고 무리를 한 결과,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너무 위험하게 드나들게 되었다. 결국 심의원과 그 일파는 재보궐선거에서 참패, 대패, 완패했고, 심의원의 불법사안은 한방에 그를 몰락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낱낱이 파헤쳐지게 되었다. 심의원은 마침 그 비밀 수사에 대한 정보를 옛 친구를 통해 긴히 입수했고, 그는 서둘러 모든 걸 접어버리고 온두라스인지 에콰도르인지로 도피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심의원에게 명의를 빌려 주어 기업체, 동산,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심의원의 가족과 친지들은 줄줄이 구속당했고, 애매해진 이원이는 몇몇 사람들의 집을 거치다가 결국은 구청 복지과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자 구청 복지과에서는 아이의 생모와 생부에게 연락을 시도하게 되었고, 그녀와는 연락이 도무지 닿지 않았던 반면, 나와는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곰, 이름도 있냐? 이름이 뭐야." 나는 이원이가 들고 다니는 곰인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라도 말을 좀 시켜보고 싶어서 물었던 것이다. 이원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나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두어번 다시 물어보자. 이원이는 그냥 툭 곰인형 이름만 말했다. 아. 이원이 곰인형의 이름은, 나의 이름 이었다. 내가 아이스티를 다 마시고, 이원이는 우유를 두 모금 정도 마시고 평소 좋아하던 서울우유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감을 느끼고 나서, 우리 부녀는 스타벅스를 나섰다. 그 커피가게를 나서자 그 밖에는 갖가지 후폭풍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우선 나는 부모님께 이원이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는 아주 비겁한 수법을 사용했는데, 부모님이 계신 충청도 옥천까지 이원이를 일부러 데려갔던 것이다.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지만, 어여쁜 손녀딸이 어색해 하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뭔가 많은 감동을 받으신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의외로 부모님은 "저 놈이 저런 비슷한 형식의 대형사고를 왜 하나 안치나 했다"는 식으로, “니놈이 이럴 거 같았어.” 하며 몇 번 한숨을 쉬고는 "그래 뭘 어떻게 도와주랴"로 나오셨다. 어머니께서는 이원이를 옥천에 남겨놓고 서울로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짐을 챙기던 그 조그만 이원이 생각이 나기에, 이 아이의 "보호자"를 또 바꾸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일단 직장일을 좀 어떻게 해 놓고는 애엄마랑 연락을 해 볼 때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이원이를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애 보는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냐." 어머니는 한사코 만류하셨다. 하지만, 이원이를 보는 일이 아니라도 쉽게 흘러가는 일이 이제부터 뭐가 있을지. 서울에 올라가서 나는 회사 VP와 이야기를 했다. 직업이 기술연구직인지라, 사실 꼭 자주회사에 나올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일단 임시계약을 해서, 일단 1년간은 연봉을 4할만 받으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가끔 회의 때만 나오기로 했다. VP가 연봉 절반으로 해주기만 했어도 기분상으로 좀 잘 풀린 듯 할 텐데, 사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재택근무를 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인지라, 연봉협상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나는 내 약혼녀에게 이원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뭔가 설명을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선배에 대한 소문이 많아서...... 나는 그래도 선배를 믿었거든요...... 그런데......" 아니, 도대체, "나에 대한 소문" 이라니? 싱가폴에서부터 줄기차게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내가 무슨 소문에 휘말려 있단 말이냐. 나의 약혼녀에게 나는 그렇게 짧게 파혼을 당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썩은 놈." 한 마디 하더니 나를 두 대 두들겨 팼다. 아주 아팠다. "씨." 그녀는 짜증을 확 내며 마무리로 나에게 물컵의 물을 확 끼얹어 버렸다. 참 고맙기도 하지. 한편 나는 우선 이원이를 다시 내수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 최근 얼마간 온갖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굉장히 정신이 없었을 텐데, 그나마 옛날부터 다니던 유치원이라도 다시 다니는게 적응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의 증언에 따르면 이원이는 유치원에서 굉장히 활발한 아이였다고 한다. 친구들하고도 잘 놀고, 싸우는 아이들이 있으면 자기가 말려주기도 하고 화해시키기도 한단다. (기특하기도 하지. 이원이는 외교관이 될지도 모른다.) 종이접기반에서도 잘했고, 또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노래 같은 것들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했다. 의원이었던 양아버지의 저택에서 쫓겨나고 여러 곳을 전전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충격을 먹거나 성격이 이상해져서 말수가 너무 적어지지 않을까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렇지만 며칠 계속 유치원 선생님과 접선/조사한 결과. 유치원 안에서 이원이는 여전하다고 했다. 그 조그마한 녀석이 강철 같은 영혼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에 득의양양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안심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너무 조용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식탁보다 키가 작았을 무렵에, 나는 지구의 절반쯤을 파괴해버릴 기세로 온갖 난리를 치며 사방을 헤집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 이원이는 곰인형하고 조용조용히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너무 불안해서, 일부러 이원이에게 자꾸 말을 시키고 뭔가 이원이가 좋아할만한 음식을 구해오려고 설문조사를 하고 그랬는데, 이원이는 나를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원래 나는 난동부리는 아이들을 참 싫어하는 편이었으나, 이원이가 또래 답잖게 너무 조용하자 나는 초조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랬다. 결국 이원이와 나는 싸우면서 친해졌다. 이원이가 곰인형 이름과 내 이름이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싸움의 시작이었다. 아마도 이원이의 엄마인 그녀가, 곰인형에 괜히 내 이름을 붙여서는 이원이와 같이 전했던 것 같다. 이원이는 자기가 태어날 무렵부터 항상 동고동락해오던 그 곰인형의 이름이 나와 같다는 사실이 뭔가 탐탁치 않았나 보다. "아빠, 이름을 바꿔요" 이원이는 내가 개명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록 지금은 임시직으로 주저 앉았지만, 그래도 나는 다국적 항공사에서 수 명의 A급 팀원들을 이끌고 과제를 진행해나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보다야 주민등록되어 있지도 않고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도 않은 곰인형이 이름을 바꾸는게 훨씬 합리적이다. "그냥 무난하게 곰식이. 이런거 어떻겠냐. 아니면 경쾌하게 '탕' 이런 이름. 그러니까, 곰탕 이라고 부르는 거야. 어감이 좀 그런가? 아니면 좀 현대적인 느낌이 나게, SK텔렉곰. 이런 것도 좋을 것 같고." 이원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이원이에게 온갖 방식으로 내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수를 써보았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본지 4년여가 지난 이 아이는 타협하려 들지 않았다. 이원이의 입장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그 이름이던 곰인형이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얼마전 자기 앞에 나타나 “내가 니 애비다”했던 내가 이름을 바꾸는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하여, 이원이는 가끔 곰인형을 붙들고 내 이름을 - 그러니까 곰인형을 - 부르면서 "배는 안고프니?" "책 읽어 줄까?" 같은 말을 한다. 나는 계속 당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나를 보고 하는 이야기인줄 착각하고 자꾸자꾸 놀라서 "응?" "뭐?" 하면서 대답을 하곤 했다. 애초에 나는 내가 책장을 넣어두던 방을 비우고 거기를 이원이 방으로 만들어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장을 다 들어내고 나니, 그 방은 책 냄새가 가득했고, 왠지 먼지구덩이 같이 느껴졌다. 거기다가 좀 습기가 찬 거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햇빛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방을 이원이에게 주고, 내가 책장 대신 그 방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자던 침대는 자리가 좀 높아서 이원이가 올라가기가 약간 힘들었다. 일단 임시로 이원이가 디디고 올라갈 수 있는 쿠션을 하나 가져다 놓았다. 내 방 한쪽 벽면에는 비틀즈의 LP가 주욱 붙어 있었는데, 이원이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이게 Yellow Submarine 앨범인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대량 유통된 비틀즈 앨범이야. 내가 갖고 있는 것도 그 한국발매 판본이지. 여기 보면 폴매카트니 콧수염이 까만색이지? 이게 한국발매 판본 특징이거덩.” 하고 설명을 하는데, 이원이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의 얼굴들과 Beatles For Sale 앨범의 눈빛이 내 어린 딸을 쳐다 보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아이가 밤에 잘 때마다 A Day In The Life 의 울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모습이 상상되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별로다 그치?” 내가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데, 이원이는 아주 마음에 있게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 LP들을 다 떼어내서 어둡고 컴컴한 깊은 상자 한 구석에 넣었다. 매카트니 형님 미안합니다. 제가 그래도 종종 꺼내서 들을께요. 이원이 취향은 잘 모르겠으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로 그 벽이 채워지거나, 어쩌면 포케몽이나 디지몽의 강아지떼 같은 것들이, 60년대 록큰롤 정신의 보금자리를 장악하게 될 듯 싶었다. 이튿날 이원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왔는데, 온몸에 이상한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나 있었다. 나는 질겁을 했다. 세탁기에 확 잡아 돌린 빨래에 쓰인 세제가 문제였다. 평소 미량만 넣어도 강력한 파괴력으로 옷의 때를 말끔히 제거해 주는 명약이어서 잘 쓰는 세제였는데, 이게 어린애 피부에는 아주 안 좋았나 보다. 미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이래서는 당장 내일 이원이가 입을 옷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대강 집히는데로 옷을 사는 내가 5세 여아 아동복에 대해 일말의 감각을 갖고 있을 리 만무했다. 고민 끝에 나는 근처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했다. 내 딸에 대해 언급했을 때 선배는 “뭐?”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하면서 몇 번 다시 물었고, 그리고 나서는 두 말도 하지 않고, 일이 끝나자마자 교보빌딩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 유진 선배 진짜. 진짜 고마워요.” “야씨, 넌 이게 또 뭔 짓이냐. 하여간 만날 때 마다 황당한 충격을 줘요.” 유진 선배는 대뜸 보자마자 나를 쥐어 박았다. 고등학교 때 같은 동아리였던 유진 선배는 그 때 후배였던 나를 좋아했고, 나도 항상 방긋방긋 웃는 이 선배가 싫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고등학생다운 어설픔으로 그냥그냥 아무 이야기 없이 시간을 보냈고, 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선배는 내가 인생의 혼란에 휩싸였을 때마다, 항상 냉철한 한 마디 조언을 남겨주는 멘토가 되어 있었다. “어, 니가 이원이구나. 야. 너 진짜 이쁘게 생겼다.” 유진 선배는 이원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잡으며 말했다. 최근 만났던 사람 순으로 11명이, 11명 모두, 나를 보자 마자 욕을 한 마디하고, 바로 그 다음에 내 옆에 있는 이원이에게 칭찬을 했던 것 같다. “애 빨래를 그렇게 아무렇게나 하면 어떡하냐.” “나도 진짜 놀랬어. 어디로 갈까. 애 옷인데 그래도 좀 좋은 거 사 입혀야 되지 않으까?” “못난 애비가 괜히 좋은 옷 사주고 양심을 달래려는게지.” “선배, 쫌.” 유진 선배는 백화점에서 이원이에게 이런 저런 옷들을 골라 주었다. 나는 어릴 때 옷가게에서 어른들이 이거 입어봐라 저거 입어봐라 하는 게 무진장 귀찮았던 것 같은데, 이원이는 별 불평불만이 없었다. 되려, 이원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은근히 패션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하기야, 나는 저 나이에 상의는 항상 핫도그 캐첩 같은 것을 묻히고 있었고, 바지는 항상 고기 잡으러 다닌다고 시냇가를 돌아다니다가 어디 진흙구덩이에 빠진 상태였으니. 유진 선배는 전남편이 키우고 있는 아들이 생각나는지, - 생각 안날리가 없을 것이다. – 아주 꼼꼼히 유진이 옷을 챙겼다. 선배는 나는 잘 모르는, 옷감에 뭐가 몇 퍼센트가 들었냐, 땀이 차면 뭐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도 매장 직원에게 세세하게 캐 물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가을에 일본 학회에 가서 발표할 때 입을 양복 정장을 살 돈을 전부 풀어서 이원이 옷들을 샀다. “저녁 먹어요. 내가 그 때 선배랑 맛있게 먹었던 양고기 또 사주께.” “애가 그걸 먹냐?” “예?” “이원아. 이원이는 뭐 좋아해?” 이원이는 그냥 선배를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얘, 뭐 좋아하니?” “글쎄… 그게…” “넌 무슨 애아빠가 돼가지고 애가 뭐 잘먹는지도 모르냐?” 아무래도 오늘은 면박의 연속이었다. 뭘 먹을지 고민도 할 겸, 그리고 좀 더 배가 고플 때까지 기다릴 겸 해서, 우리는 일단 덕수궁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해질녘의 덕수궁은 조용하면서도 또 활기에 차 있었다. 우리는 석조전 앞 분수대 앞에 앉았다. 이원이는 분수대 앞으로 가서 분수 물에 손을 씻고 있었다. “어쩌냐… 일단은 걔랑 어떻게 연락이 닿아야 될텐데.” “그게… 좀 알아보니까 이원이 낳고 얼마 안 돼서 유학 나갔다나 봐요.” “이메일도 있고 인터넷도 있는데 그래도 찾아보면 연락이 되지 않을까.” “몰라요. 아마 일부러 연락을 다 끊은 것 같아요.” “에휴… 걔도 좀 마음 고생이 심했겠냐.” “……” 저절로 한 숨이 나왔다. 애써 항상 상상을 피하고 있는 장면이, 이원이를 낳을 무렵에 고민하고 괴로워 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내 마음속에서 항상 옛날 경쾌한 자신감의 상징이던 그녀가 혼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남에게 맡기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세한 상황은 전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굉장한 죄책감 무더기로 다가왔다. 이원이는 손을 다 씻고 나자, 손수건을 꺼내서 손을 정성스레 닦더니, 이제는 다시 얼굴을 씻고 있었다. 조그마한 손으로 “푸, 푸” 소리를 내면서 얼굴에 물을 묻히는데, 허리를 많이 굽혀서 새로 산 옷에 물이 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 중에 단연 제일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 “넌…… 무슨…… 이원이 태어날 때 그때 넌 뭐하고 있었냐?” “싱가폴 있을 때지 싶은데…… 솔직히 나도 잘 이해가 안가요. 나한테 연락하기 어렵지 않았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핸드폰 전화번호니, 메일주소니 다 유지하고 있었고……” “너 씨, 또 개랑 헤어질 때 또 막 할말 못할 말 막한 거 아냐?” “아녜요. 절대 아녜요.” “니가 니가 가끔 막말 하는 걸 알긴 아냐?” “그때는 아니었어요. 내가 걔를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결국 우리는 굉장히 달콤한 푸딩을 주는 프랑스 식당에 가서 무슨 이름 복잡한 감자 요리를 먹었다. 이원이도, 유진 선배도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나는 “무슨 감자 으깬 것의 값이 이모양이냐” 하는 생각에 안 만족스러워 했다. 유진 선배와 이원이 옷을 산 다음날, 나는 그녀에 대한 추적을 좀 새로운 각도로 일신하여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우선 오랫동안 항공사 근무를 하느라 잊고 있었지만, 모든 과학 검색의 첫발은 NDSL이요, 두번째 발은 SciFinder 아니던가. 나는 지난 몇 년간 그녀가 출판했을 논문을 학술지에서 주욱 검색해보기로 했다. 이니셜이 흔한 이름이었기에, 검색 된 논문은 굉장히 많았다.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비슷한 발음의 중국 사람 논문들이 대거 검색되어서 너무 양이 많았다. 나는 주로 저녁마다 이원이에게 줄 사과를 깎는 등의 일을 하면서, 그 논문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사과는 그냥 물에 씻어서 껍질째 먹곤 했는데, 애한테 그 농약 덩어리를 먹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요즘에는 꼬박꼬박 깎아서 먹곤 했다. 사과 깎는데 별로 익숙하지도 않은데 괜히 눈으로 논문을 읽으면서 손을 움직이다가 손을 다친 일도 몇 번 겪었다. 한 스무편쯤의 논문을 논문 주제의 분류와 연구 성과의 수준별로 정리해나가자, 대강 내가 찾고 있는 그녀가, 그 많은 동명 이인 중에 누구인지 가닥이 잡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 번에는 주제를 좁혀서 검색을 다시 했고, 그 결과를 찬찬히 살펴 보면서, 메모지에 저자들의 소속기관과 연구가 진행된 연구소의 위치를 하나 둘 체크해 나갔다. 그렇게 찾아보니, 대체로 그녀의 논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논문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걸 보니, 한국을 떠난 뒤로 그녀의 연구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리며 일취월장하였고, 지금은, 나 따위 어줍잖은 과학자에 비하여, 저 하늘의 별처럼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한편 이원이와 나와의 관계도 차츰 좋아졌다. 나는 어린애들이 집안이나 도시 구석에만 박혀 있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뭔가 자연이 좀 넘쳐나는 그런 곳이 아이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종로 이 동네에는 변변한 어린이 놀이터 하나 없었고, 그나마 나는 이원이를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있는 곳에 데려가고 싶어서, 고궁이나 삼청각 쪽을 같이 산책하곤 했다. 이원이는 그렇게 산책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내가 나무 이름이나 꽃 이름 같은 것을 가르쳐 주면, 나름대로 신기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번은 새벽 2시쯤에 이런 일도 있었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으으음?” 눈을 뜨고 보니, 문앞에 이상한 허연 약 1M 내외의 물체가 유령처럼 거기에 서 있었다. 무슨 외계인 같아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히이익-” 나는 움찔하여 몸을 돌려 누웠다. 더듬거려서 안경을 쓰고 다시 보니, 그건 곰인형을 들고 흰 잠옷을 입고 있는 이원이었다. 아직 나는 다섯살짜리 아이가 나와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잠잘때는 깜빡 잊는 것이다. 이원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에 눈물을 글썽글썽하고 있었다. “왜? 무서운 꿈 꿨냐?” 이원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번 훌쩍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결국 책장을 놓을 곳이 없어서 책장과 같이 이 방에 기거하고 었었다. 그리하여 덩치가 좀 큰 탓에 자리가 부족해서 방에서 대각선으로 누워 자는 형편이었다. “니 방으로 가자. 내가 재워 주께.” 이원이는 엄청나게 무서운 꿈을 꾼 모양으로 내 다리에 찰싹 달라 붙었다.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졸린 눈으로 이원이를 붙인채로 비실비실 걸어서, 이원이 방이자, 옛 내방으로 갔다. 이원이는 쿠션을 밟고 폴짝폴짝 뛰어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나도 오랜만에 옛날 내 침대에 누웠다. 아…. 악마 편했다. 대각선으로 잘 필요도 없고. 왠지 방의 기온도 적절한 것 같고. 상쾌하고. 자리도 폭신폭신하고. 잠이 절로 오는 거의 겨울잠 자는 곰의 동굴 같은 안락함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잠들기 전에 그냥 드르렁드르렁 코골며 잘 수는 또 없었다. 내 어릴 때 기억에 따르면, 무서운 꿈꾸다 깨어나서 부모형제를 찾았을 때, 그들이 먼저 잠들어서 그 숨쉬는 소리만 적막한 가운데 들려오면, 왠지 더 무섭기 때문이었다. “야, 무서워 할 필요없어. 니네 아부지한테 그런 것들은 꼼짝도 못하거덩.” “갑자기 걔네들이 막 나와서……”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내가 직접 안 나서고 니 곰인형이 나서도 가볍게 해치울 수 있을 걸. 진짜야. 유진이 아줌마한테 내일 아침에 전화해서 물어봐.” 아무래도 케이블 만화채널에서 독수리오형제를 심야시간에 본 것이 화근이었던 듯 하다. 어젯밤 편에 굉장히 게렉터 유니폼이 무시무시하게 묘사된 장면이 있었다. 애한테 그런 걸 보여줄 이유가 없었는데, 애비가 돼 가지고 내가 재미있다고 빠져서 그걸 끝까지 보고 있었으니. 나는 어릴 때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머리 긴 아줌마 배우들이라면 무조건 사시나무떨 듯 두려워 했건만, 이원이에게는 게렉터의 초록색 스판덱스 옷들이 무섭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나는 이원이가 뭘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원이는 학용품을 아주 좋아했다. 학용품에 그려진 갖가지 캐릭터들도 재미나 보인다고 생각했고, 이원이는 알록달록한 색연필들이 말끔하게 손질되어서 자기가 써 주기를 기다리며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그 모습 자체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형 할인 매장을 찾으면 항상 맥주 판매대를 지나치지 못하던 나는, 이원이 덕분에 대신 꼭 공책이나 스케치북 같은 것을 하나씩 사게 되었다. 이원이는 그 때만큼은 나이에 맞지 않게 꽤 심각한 표정으로 곰돌이푸우가 그려진 제품과 피터 더 래빗이 그려진 제품 사이에서 꼼꼼히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며 고민하곤 했다. 그리하여 이원이가 24색 크레파스를 샀을 때, 나는 갑자기 다시 공포감을 느꼈다. 이원이는 이번에는 피터 더 래빗을 골랐는데, 그 크레파스로 진지하게 몇몇 작품들을 제작해 나갔다. 물론 내 딸이 그림을 그리는게 무슨 공포감의 원인이랴. 문제는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여섯살이 되면, 유치원에서 엄마 얼굴 그리기를 한다는 게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건 안된다. 그건 60년대 영화에서부터 줄기차게 울궈먹던, 애 마음에 상처주기 장면 아닌가. 나는 옛날 그녀의 그 밝고 환한 웃는 얼굴 속에 아직까지 영혼의 한 부분이 잠식당해 있는 상태지만, 이원이는 자기랑 꼭 닮은 그녀의 그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찾아보면 대학교 졸업 앨범에 사진이 하나 있긴 하겠지만, 그건 사진도 좀 이상하게 나왔거니와 그런식으로 엄마 얼굴을 가르쳐 준다고 해서, “자~ 오늘은 엄마 얼굴 그리는 시간이예요. 어머, 이원이는 왜 아무것도 안 그리고 있니?” 하는 그 장면의 강도가 좀 더 완화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논문 추적 작업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아니, 나는 아예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예전에는 구글로 검색을 하거나 E-mail로 답을 구하던 것들을 왠만하면 그냥 시계보고 여기저기에 국제전화를 해대면서 해결했다. 나는 하루에도 열두번씩, “아, 데이빗, 플리즈 콜 오아 이메일 미-“ 하면서 밤을 지새우곤 했다. 결국 결론은 그녀가 최근 호주 다윈에 있는 한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한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왜인지 이 연구소에서는 그녀의 신상을 공개하기를 꺼려했고, 구체적인 증빙서류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사항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는 점이다. 그녀 정도 되는 연구원이면, 오히려 떠들썩하게 이름을 광고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 최근 근황을 공개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구청 복지과를 찾아 이원이에 대한 서류를 잔뜩 뽑고, 번역사무소에 가서 영어로 번역한 뒤에 공증까지 받아서 서류를 잔뜩 만들었다. 항공사 직원이었던 나는 그동안 회사에서 적립해두었던 포인트를 털어 과감한 행보를 내딛기로 결심했고, 이원이와 나. 우리 부녀는 호주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엄마를 만나러 지구 반대편 남반구로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원이는 오랜만에 처음 보여주었던 그 지나치게 얌전하고 조용하고 좀 겁먹은 것 같은 표정을 다시 지었다. 그리고 그 때 들고 나왔던 그 가방에 나와 같이 다시 짐을 쌌다. “잘 해. 또 이상하게 오바하지 말고.” “알았어요.” “제발 좀 걔 입장에서 생각하고.” “알았다니까요.” 호주로 떠나기 전날 밤에, 유진 선배는 내게 전화를 해서 몇 번이고 주의사항을 강조해 주었다. 이원이는 다음날 새벽 아주 일찍 일어나서, 또 내 방으로 왔다. 그 모습을 보자, 이번에는 나도 금새 잠이 달아났다. “그래, 엄마 보러 가야지.” 그리하여 우리는 일어난 김에 그냥 길을 나섰다. 이원이와 나와 이원이의 곰은, 이른 새벽, 아직 공기가 차가운 가운데, 공항 버스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