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레이싱



1.

그녀는 키재기하듯 늘어서 있는 가지각색의 우유며 요구르트를 보고 있었다. 한편, 지나양은 카트 위에 올라서서 위풍당당한 기세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또 한편, 카트를 붙잡고 있는 나는, 항상 비좁기 마련인 유제품 진열대 앞까지 굳이 카트를 밀고 들어온 것은, 좀 민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부모들은 꼭 도심의 교통체증처럼 이리저리 카트를 드밀고 들어와 통로를 가득 메우며 어지럽게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카트에는 지나 같은 조그만 아이들이 서 있었다.

게중에 몇은 알수 없는 높은 소리를 내며 팔을 휘젖는 행동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딸기맛 우유를 가리키고 부모를 보며 뭐라고 알수 없는 "마- 짱라 다부아-" 같은 이상한 발음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양태들은 도저히 의미 해석불능.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 반응에 주목하는 듯하면서도 무시하는 듯 그러나 또한 굉장히 익숙한 태도로 그런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카트에 물건을 골라 담았다.

'원래 애를 데리고 장보러 나오면 이 정도의 혼란은 허용 되는것인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그녀는 우유에 적힌 날짜를 확인하고는 카트에 담았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먼저 앞서 나갔고, 나는 카트의 꺾인 바퀴를 발로 차서 바로잡고는 약간 방향을 조절했다.

"지나, 이 우유 먹어?"

그녀는 카트에 서 있는 지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지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지나가 묵비권을 행사한 것을, 그녀는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혼란스러운 통로를 빠져나갔다. 변덕과 투정으로 범벅이된 것이 아이의 취향이다. 그럴진대 그녀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자신있게 결정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굉장히 능숙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조카라도 있는 것인지?

"자전거!"

지나가 보고 있던 것은 "초특가 전단 세일 오늘, 내일 단 이틀간!!" 이라고 느낌표를 두 개씩이나 써 붙인 작은 자전거였다. 아무리 초특가 세일이언정, 생선 파는 곳과 우유 파는 곳 사이에 왜 자전거를 세워 놓는지. 그것은 분명히, 지나처럼, 카트를 유모차 삼아 통로사이를 질주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었을 게다.

그녀는 이런 경우에 아이의 시선을 오래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는 조를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자전거를 보다가, 조그마했던 감정의 도화선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끓어오른다. 그러고나면 울며불며 자전거를 사달라고 매달릴지도 몰랐다. 그녀는 지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약간 빠른 속도로 자전거 앞을 지나쳤고, 나도 재빠르게 카트를 밀며 그 뒤를 따라갔다.

"아, 맞다. 나 자전거 고쳐야 되는데."

그녀는 앞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지나가 가리킨 자전거를 보고, 잊었던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자전거는 왜?"
"방학 시작하고 집에 갔다 온동안 며칠 학교에 남겨뒀더니, 비 맞고 녹슬고 이상하게 된거 같어. 넌 자전거 괜찮어?"

나는 약간 난처해져서 못들은척 바쁜척, 괜히 종이 쪽지를 들여다 보았다.

"인제, 생선만 사면 다 산거지?"

말돌리기 성공?

"어. 딴건 다 샀어."

그녀는 자전거 주제는 가볍게 흘러 보내고 생선매장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말돌리기 성공.

내가 왜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안하려고 하냐 하면, 나는 자전거가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없는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문제가 약간은 된다. 말이 대학이지 행정구역상 1개 동 전체를 몽땅 차지하고 있는 작은 동네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대체로 누구나 자전거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자전거가 없다고 하면, 분명히 좀 궁금해하며 "왜?"라고 물어 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안 샀으니까" 라고 쓸 데없이 대답을 하며 마지막으로 답을 피해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호기심 많은 상대방은 "왜 안샀는데?"라고 물어볼 것이고,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 비굴하게 "그냥" 하던지, 아니면 과감하고도 솔직하게 "탈 줄 모르니까". 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지난번에 병역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거기에 줄줄이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1급도 있고, 2급도 있고, 3급도 있고, 장군의 아들도, 신의 아들도 있을 것이다. 게중에 나는 당당한 현역 1급이었지만, 아마 그 많은 사람 중에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균형감각이 심하게 안좋다거나, 다리에 무슨 문제가 있다거나, 그게 아니면 허리가 안 좋아서 자전거를 못타는 게 아니다. 나는 운동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키가 좀 크고 달리기를 잘하는 편이어서 체육 점수는 항상 좋았다.

그렇다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무슨 사고를 당해서 정신적 충격이 심해져서? 그렇기 때문에 자전거에 올라 앉기만 하면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무섭지? 무우서업지이이이?" 하는 환청이 들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요즘 약간 정신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빈부격차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가질 줄 하는 정상적인 정서와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자전거를 왜 못 타는가? 그건 반대로 질문하면 답이 명확해 진다.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은 왜 자전거를 탈 줄 알까? 만화에 나오는 뉴타입 초능력자도 아닐텐데, 태어날 때 부터 자전거 타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전거라는 기구와 뇌 싱크로나이즈 율 10%를 넘는 사람만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자전거를 탈줄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5세에서 9세 사이에 형성되는 "자기 자전거 처음 갖기" 기간에 자전거 타는 법을 스스로 연마해 깨우쳤기 때문이다.

카트 위의 지나처럼, 그 또래의 조그마한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기 자건거를 사달라고 조르거나, 혹은 아이의 생일 선물로 고르고 고른 부모의 정성 때문에, 자기 자전거를 갖게 된다. 그러고 나면 작은 보조 바퀴를 달고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를 타고다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두개의 바퀴로 외줄 타기를 하듯 균형을 잡으며 질주하는 절묘한 감각을 익히게 된다.

그렇게 한 번 연마의 기간을 지나기만하면, 평생동안 자전거 조종술을 까먹지 않게 된다. 그 사람은 자전거 조종술을 항상 체득하고 있는 채로, 험한 성장기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다. 그리고, 막상 자전거를 타지는 않더라도 그 타는 법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면서, 외로운 청년기와 골치아픈 중장년기, 별볼일없는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나는 5세, 6세, 7세의 3년간의 기간 중에 언제 한 번쯤 울며불며 떼를 써서 자전거 습득에 성공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날 텔레비전 외화시리즈에서 한 아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날렵하게 미끌어져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스파이 6명을 때려잡는 장면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충격과 감동을 받고 롤러스케이트를 사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단식투쟁 - 밥을 안먹으며 불쌍한 눈빛으로 호소했다는 말이다. -을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조건을 걸고 귀찮게 매달리며 협상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바보 같은 텔레비전 쇼 때문에 나는 롤러스케이트가 내 인생에서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졌다. 나는 그 신념을 쉽게 굽히지 않아서 꾸준하고도 강도 높게 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결국 그 때 타협은 "이번에 롤러스케이트만 사주면 다시는 아무것도 사달라고 안한다"라는 무지막지하고 극단적인 조건으로 타결되었고, 그 타협의 결과로 나는 간절히 염원하던 롤러스케이트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롤러스케이트를 타라면 잘 탈 수 있다. 빙판에서 타는 스케이트도 비슷하게 익혀서 잘 타고.

물론 그 후에도 나는, "꼭 진짜처럼 생긴 고무 개구리 인형" 이라든가, "풀빛 수영장에 놀러갈 권리" 등등을 달라고 조르는 등 계약 위반을 많이 했다. 하지만, 롤러스케이트 구입 이후 어영부영하는 동안 나는 내 자전거를 사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전거에 별 신경 안쓰며 살다보니 어느새 태어난지 11년이 흘러, 초등학교 고학년의 연배가 되고야 말았다. 그 정도 연배가 되면 자전거 따위에 연연하는 것도 궁상 맞은 일. 자연스럽게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기회와 멀어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딱 한 번, 12세 때, 나는 동생의 자전거를 빌려타고 자전거 타기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 자전거 강사이던 부친께서는 전통적인 교수법을 적용하셨다.

"뒤에서 잡고 있을 테니까 넘어지는 거 걱정하지 말고 그냥 타."
"꼭 잡고 있어야 돼. 놓으면 안돼."
"안 놓는다니까. 페달 밟아봐."

뒤에 눈이 없는 관계로 나는 오직 인간과 인간의 믿음에만 모든 것을 건 채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한 마음. 왠지 아버지의 느끼한 웃음하며, 꼭 잡고 있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놓을 듯한 느낌. 의심. 아니나 다를가, 아버지는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았는데, 나는 그 느낌에 분노의 표정으로 놀라서 뒤를 되돌아보며 우당탕 자빠지고 말았다.

아프기도 아팠거니와, 의심과 믿음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처절하게 배반 당했다는 생각에 사무쳐, 나는 공원의 잔디위에 눈물을 흩뿌렸다. 그 때 나는 아버지께 격렬히 항의했다. 아버지는 웃음으로 얼버무려 넘기시면서 다시 자전거 타기를 시도해 보라고 하셨건만, 나는 너무나 실망감이 커서 그 이후로 자전거를 타겠다는 생각을 한 동안 하지 않았다.

중학교는 초등학교 옆에 붙어 있었고, 버스를 타고 다녔던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자전거 타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학 입학 할 때 쯤 해서는, C버튼을 누르면 26초만에 지붕이 접혀 뒤에 들어가는 독일 자동차 신형 모델에 관심이 있었지, 자전거 따위는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해서 면허를 딴 한 친구가 자기 스쿠터를 샀다며 자랑을 했다. 구한말쯤에 제조되었을 법한 낡은 택트를 사서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전화기를 스쿠터 엔진에다 들이대고 "엔진소리 들리냐, 나의 택트, 이름하여 택트리안!" 할때는, 세 글자로 깔끔하게 "바보냐?"라고 답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연소공학이라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학문을 배운다고, 머나먼 도시의 대학에 와 보니, 이 학교는 건물 모서리마다 수십대씩의 자전거가 가득가득 메여 있는 곳이었다.

하필이면 넓은 학교에서도 학부생 기숙사는 학교 제일 안쪽 깊숙한 산등성이에 있었고, 강의는 학교 정문쪽의 그럴듯한 고층빌딩에서 개설되기 일쑤였다. 술이라도 한잔 하려고 하면, 가로수가 늘어선 도로를 따라 쭉 뻗은 끝없어 보이는 길을 한참을 나가야 했고, 들어 올 때는 늦은 밤 도로를 역시나 기나길게 지나와야 했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학부에 입학해 하는 첫번째 일이 학교 안에 있는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사는 일이었다.

나는 거의 십년만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데 대한 좌절감을 느꼈다.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나는 당연히 자전거를 사지 않았고, 타지 않았다. 나는 남들보다 20분정도 먼저 건물에 나서서 항상 그냥 걸어다녀야 했고, 비오는 날을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비오는 날이면 누구나 다 자전거 안타고 걸어다니게 되니까.

하지만 그런 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도 불과 1개월여. 필수과목 수업이 끝나고 교양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옮기는 동안 550미터를 걸어 간다든가, 분식집에서 순대를 사오기 위해 왕복 4.4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한 50, 60번쯤 하다보면 그것이 당연한 듯 별로 이상한 것도 모르게 된다. 오랫만에 방학이 되어 서울에 온다. 그러면 나는 그 감각에 익숙해져서, "왜? 서울역에서 대학로면 걸어서 가도 금방이지."하는, 1920년 무렵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인력거꾼 같은 대사를 하게 되고 했으니.

하염없이 걸으면서 캠퍼스 다니기의 또다른 이점은 자전거를 타고 휙휙 지나치는 것보다 훨씬 더 주변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많다는 것이었다. 높이 솟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나, 파란 하늘에 피어오른 뭉게 구름의 모습 같은 것들은 보기 좋았다. 또 비 온 뒤 바닥에 괸 물에 비치는 풍경이든가 붉은 저녁노을 빛을 반사하는 건물의 유리창 같은 것을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 무엇보다 마음에 남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역시, 그녀였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이었다. 나는 내 키가 큰 편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서서 보면 나보다 눈 높이가 아래에 있다. 그런데 그녀는 별로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처음 그녀를 봤을 때는, 그래서 그녀가 나보다도 키가 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유행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보이는, 항상 단순한 단색의 옷을 입고 다녔는데, 그게 목욕탕 가는 뒷집 누나 옷차림 같다기 보다는 북유럽에서 내년 봄에 유행할 분위기 같았다. (원래, 할일 없는 남자 기숙사에는 여자 모델들이 수십명씩 나오는 패션쇼 같은 거 가끔 모여서 보면서 야식 먹으며 밤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곰곰히 따져보면, 그녀가 어제 아홉시 수업에 가면서 입고 갔던 옷 자체는 분명히 뒷집 누나 목욕탕 분위기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혼자 다닐 때도 있었고, 친구들과 다닐 때도 있었지만,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다니는 모습은 거의 못 본거 같다. 그녀가 말을 하는 모습은 많이 보지 못했고, 말 할 때는 말소리도 작았다. 늦잠 자다 시간이 늦어 허둥지둥 거리며 뛰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비가 오면 신문지를 머리에 쓰고 가거나, 내리는 빗줄기에 팔을 내밀어 확인하면서 발을 동동구르는 대신, 언제나 작은 노랑색 우산을 준비해 들고 갔다.

내가 그녀와 같이 듣는 수업은 250명이 한 강의실에서 듣는 미적분학 응용 수업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공부도 꽤 잘하는 것이 분명했다. 강의실 맨 뒤에 앉아서 멀리서 보면, 항상 수업시작 전에 그녀 주변에 몇몇이 모여들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때마다 그녀의 숙제를 모범 답안 삼아 비교대조 분석이 벌어졌던 것이다. 게 중에는 괜히 그녀에게 친한척 하고 싶어하는 남학생들도 있었고, 숙제 점수 감점의 하한선인 50점을 사수하기 위해 결사적인 그녀의 고등학교 동문들도 있었다.

언젠가 기이하게 수염을 기른 미응 교수님이 - 미응은 미적분학 응용의 통용 약어 - "이 숙제 문제를 제대로 푼 학생은 수강생 250명 중에 딱 두 명 밖에 없었어요." 했을 때, 문제를 푼 두 명 중에 그녀가 있었다.

교수님이 지적하셔서 그녀는 앞에 나가서 칠판에다 그 문제를 풀고 들어왔다. 그 문제는 초절정 치사한, 비열한 얍삽이를 써서 풀어야하는 적분이 핵심이었기에 사실 거의 못풀만도 한 문제였다. 문제를 푼 나머지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였는데, 칠판에 둘이 서서 문제를 풀어보니, 그녀의 풀이보다 내 풀이가 약간 더 나아 보이는 듯도 했다.

하지만 개판 300초전인 나의 삐뚤삐뚤한 글씨에 비해서, 그녀의 글씨는 칠판에 인쇄한 듯 깨끗했다. 교수님 역시 나의 풀이는 무시하고 그녀의 풀이를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물론, 그 날의 일이 아니더라도, 세 번에 한 번 꼴로 숙제를 2,3일씩 미루곤 하는 나에 비해, 그녀는 항상 강의가 끝나자 마자 시계처럼 꼬박꼬박 숙제를 교수님 앞에 올려다 놓았다.

남녀의 성비가 지극히 기울어져 있는 공대에서, 그녀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온 학교로 퍼져나갔다. 소문에 따르면 한 4학년 학생하나가 장미 백송이짜리 꽃다발에 하얀색 쉬폰 케이크를 들고, 인터넷 어느 구석에서 아이디어를 배워온 대로 편지까지 써서, 그녀 앞에서 한바탕 쇼를 펼쳤다고 한다. 나의 비아냥거리는 어투에서 짐작되듯이, 그 4학년 학생에게 돌아온 것은 따끔하고 칼같으면서도 예의바른 거절이었다.

전산과 학생 하나는 그녀에게 숙제를 빌려달라고 하고, 돌려주면서 밥을 사주니 어쩌니 하면서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깊이 빠진나머지 현실감각을 잃고, 또한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 학생이 한 대사는 대체로 "버버벅버벅버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가하면 같이 술을 사니 마니 하면서 문자그대로 수작을 부려 보려하던 그녀의 고등학교 선배도 있었다. 그 선배가 초기에 조성한, 괜히 선배 티내면서 멋있어 보이려 하던 어깨 힘들어간 모습은, 결국 혈중농도 0.4%의 알콜에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는 불쌍하게 눈물을 뚝뚝흘리며 엉뚱한 캠퍼스 구석에서 혼자 그녀의 이름을 뇌까렸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에게 한탄의 시를 읊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던가.

그녀의 얼음장 같은 태도와 스스로 충돌 끝에 자빠져 나갔던 수 명의 경쟁자들은 더욱 그녀의 명성을 드높게 하였다. 이른 아침길에 끝없는 캠퍼스를 걷다가 흘깃흘깃 스쳐가던 그녀를 보면서 처음 그런 사람이 있음을 알아보던 나는, 그러한 그녀의 유명함이 왠지 이상하게 아쉽기도 했다.

사건이 급반전 된 것은, 그 모든 얼음 눈보라를 뚫고 지극히 노련하게 그녀와 친밀함을 쌓아가던 생명공학과 학생의 등장 즈음이었다.

이 학생은 듣자하니 자연 경쟁률이 극도의 인플레이션을 달리고 있는 공대의 연애 세계에서 작은 전설로 자리잡은 사람이었다. 어느 한심한 중생이 작성하는 목록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위 생명공학과 삼대 미녀 셋을 꼽아보면, 셋이 모두 그 학생의 옛 여자친구였다. 그 놈은 이상하게 아니꼬와 보이는 면이 없잖았으나 교묘하게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고, 과연 그녀와 어울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잠깐. 그렇다면 그녀와 그 작은 전설이 어떻게든 맺어졌다는 말인가? 그럴리가.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여기에 등장한 지나라는 인물은 연소공학과의 한참 윗기 선배인 정애 선배의 딸이었다. 학교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정애 선배는, 연구소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밤늦게 퇴근하게 되거나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게 되면 종종 지나를 나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러다 가끔은 거스름돈으로 맥주나 사먹으라고 하고는 나에게 장보기 심부름도 같이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서, 지나와 나 말고 나머지 한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바로 그녀 였음이 기억 날 것이다. 그렇다. 지난주 월요일. 그 절묘한 하루 덕분에 나는 그녀와 갑자기 굉장히 가까워 졌다. 그 월요일 아침에는 가끔 그녀가 꽤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던 그냥 남남이었지만, 월요일 밤에는 어느새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내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그때 그녀가 과연 나만큼 나를 좋아하고 있는가 하는데는 의심이 생긴다.

나는 삑삑소리를 내며 전화기에 들어오는 문자메세지를 왠종일 닳도록 들여다 보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에게 나를 남자친구라고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나를 그냥저냥 애매한 사이로 여겼다. 다만 경쾌한 것은 어쨌거나 그녀는 저녁마다 내게 전화를 해서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길게 했고, 좀 닭살 돋게 잘자라고 인사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명확히, 생명공학과의 느끼해빠진 작은 전설 놈은 이미 저 멀리 무관심의 행성, 사막 저편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 후로 오늘 토요일까지 10일여 동안, 그녀와 나의 역학 관계는 평생 어느 때보다도 박진감 넘치는 시간으로 점철 되었다.

나는 그녀와 같이 걸어서 기숙사까지 올라오는 길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후다다닥 그녀의 강의가 있는 강의실 앞으로 달려가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랑 같이 걸어 가고 싶어서 여기서 계속 기다렸다고 하면 너무 내 태도를 내려깔게 되는 것은 아닐지. 혹은 이 얼음장은 거기서 뭔가 답답한 속박감을 느끼거나, 나에게 스토커 기질이 있다고 넘겨 짚을지도 몰랐다. 그건 위험하다. 그녀와 나의 이 관계를 답답하고 지루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짐짓 우연히 그녀를 마주친채 위장하며 그녀를 따라잡기로 했다. 내 생각대로 이야기는 전개되었다. 심지어 절묘한 각도 설정으로, 나는 그녀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내 이름을 불러 "어디가?" 하며 걸어오게 만들기까지 했다. 어쨌든지 내 이름을 부르면서 머리 위로 손을 들어 흔드는 그녀는, 또다시 내가 본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4학년, 전산과, 동문선배등등의 도전자들이 마주한 것은 차가운 냉기였건만. 어떤면에서 좀 더 친해진 뒤에 알게 된 그녀의 모습은 그 반대라서 또한 꽤 의외였다.

예를 들면, 처음 내가 언급했던 그녀의 그 단순하면서도 잘 어울리고, 유행을 무시하면서도 괜히 격식 있어보이는 그녀의 옷차림에는 비밀이라면 비밀이 있었다.

비밀의 핵심은 뭐냐면 그녀는 여간해서는 자기가 옷을 골라 사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옷은 거의 전부가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백화점에 나선 길에, 부모님께서 사주신 것들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옷을 사는 일을 귀찮아 하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두려워하기도 하고 아까워 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옷을 골라 사 입으면 가끔 실패할 때도 있을 것이다. 좋아 보이는 옷과 그럴듯해 보이는 옷 사이에서 왔다갔다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결국 좋아 보이는 옷을 샀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럴듯해 보이는 옷이 훨씬 더 괜찮았다고 뒤늦게 깨달아 통탄하는 것 말이다.

성격이 꼼꼼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그녀는 그런류의 "옷 사기 실패"에서 패배감과 억울함, 심지어 세상의 야박한 상술에 대한 반감마저 느끼는 것이라 짐작되었다. 더군다나 묘하게 아직도 어린애 같은데가 있는 그녀는, 그녀가 모아 놓은 돈으로 사면 "자기돈"이 날아가는 것이요, 부모님이 옷을 사주시면 "돈이 절약된다"는 의식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런즉, 그녀는 여간해서는 자기가 옷을 직접 골라 사 입지 않았다. 문제의 유행을 초월하는 단순한 멋은, 바로 그녀의 부모님이 골라준 옷들 사이에서 최대한 좋은 효과를 내려는 그녀의 그 꼼꼼한 안목이 교집합을 이룬 결과였던 것이다.

항상 또박또박 작은 목소리로 필요한 말 몇마디만 하는 것 같았던 말없는 그녀는, 사실은 재잘재잘 거리며 별 의미도 없는 말을 끝없이 늘어 놓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문법을 따지며 또박또박 단어를 짚는 말투였지만, 가만가만 듣다 보면 그 사이사이에서 숨겨진 충청도 사투리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집에서 전화가 오면 굳이 사람들이 없는 한데에 나가서 전화를 받곤 한다. 왜냐하면, 오랫만에 이야기하는 가족들과, 고래의 구성진 사투리로 대화 할 때의 어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눌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코 그걸 들키지 않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실 요즘에 충청도 사투리라는 것은 대전이나 청주만 해도 그렇게 튈 정도로 원형이 보존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토색이 강한 시골사람들이었던 그녀의 부모님은 드물게 정통 원어민들이었다.

그녀는 "대근하다"라는 어휘를 무심결에 자연스럽게 섞어서 대화를 했다. "대근하다"는 충청도식 표현으로 "대강 그정도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추정의 표현이다. 어리둥절하여 그 뜻을 내가 캐묻자, 그 뜻을 설명할 때 그녀는, 보기 드물게 얼굴이 붉어지며 부끄러워 했다. 그녀는 그러다가 말꼬리를 흐리며 괜히 내 등짝을 한 대 가격했다.

매정하게 우리가 카트를 돌려 자전거 앞을 벗어날 때, 지나는 카트 진행 방향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뒤로 멀어져가는 자전거를 보고 있었다. 나는 왠지 그 모습에서, 2차대전 당시 티거 전차가 전진하면서 포탑을 반대로 뒤로 돌려 사격하는 것을 떠올렸다. 늠늠하게 카트위에 서 있는 지나의 얼굴 표정을 보라지.

나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려 했다. 그러나 잠깐, 카트위의 어린이를 보고, 2차대전이며 요하임 파이퍼의 티거 전차 이야기를 들먹이면 좀 꼬인 괴짜로 보이지 않을까? 방안 가득 플라스틱 모델 수백개를 쌓아 놓고 밤마다 전쟁 무용담 사이트를 순례하며 퀭한 눈빛으로 이상한 감상주의에 불타는 괴청년. 그런 고정 관념을 그녀에게 심어 줄 우려가 있었다. 나는 아쉽게 참신한 나의 문학적 감상을 아꼈다.

그녀는 삼치와 고등어 중에서 상태가 좋은 것을 골라 보려고 얼음조각 위에 벌여 있는 생선들을 살폈다. 나는 카트를 킹크랩이 살고 있는 수조 앞에다 세웠다. 우리의 전차장께서는 이내 시선을 자전거에서 거두고 수조 속의 킹크랩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어 이거 뭐야? 킹킹 킹 르랍."

지나가 수조에 붙은 글자를 읽었다.

"킹 르랍이 아니고 킹 크랩. 아 옆에 이가 있으면 애라고 읽어야지."
"킹 르랩."

왜 르와 크를 헷갈리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지나는 고개를 숙이고 보골보골 방울이 올라오는 수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내려다 보기 시작했다. 옆에 나란히 서서 보니, 킹 크랩은 긴 팔을 휘저으며 수조 안을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투박하게 각진 껍질에 우둘투둘한 질감. 강아지 만한 덩치가, 아귀가 들어맞는 갑옷을 걸치고 물 속에서 걸어다니는 모습은 사실 내가 봐도 신기해 보였다.

차가운 오호츠크해의 바다를 주유하다가, 보드카에 취해 배 위에서 자던 러시아 어부가 졸린 눈으로 걷어 올린 그물에 걸려 올라왔겠지. 그리고, 답답하고 깜깜한 배의 창고에서 동해를 가로지르기를 수삼일. 눈을 뜬 곳은 알록달록한 옷들을 입은 수백명의 사람들과 눈부신 조명이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어지러운 곳. 해산물 코너의 수조 속인 것이다.

"킹- 르랩."

지나는 다시 한 번 이 갑각류의 이름을 읊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 속에 손을 넣어 킹 크랩을 건드려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야, 너 손가락 넣으면, 얘가 자기 손으로 콕 찝어 버릴걸."
"어?"
"저기 봐. 얘가 손이 이렇게 집게 처럼 생겼잖어."

나는 내 손가락을 2 대 3으로 모아서 한 번 오므렸다 폈다. 집게 흉내.

"이게 그래서 이렇게 팔을 휘젖고 있다가. 지나가 손 넣으면. 이렇게 콕."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나의 손을 확 잡았다. 나는 나름대로 뭔가 겁을 줘 보려고 한 것이었는데, 지나는 재미있는지 까르르 하면서 잡힌 손을 내려다 보며 웃었다. 지나는 더 호기심이 생겼는지, 말그대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꼭 수조 속에 다이빙이라도 하려는 양 수조벽을 짚고 킹크랩을 들여다 보았다.

나란히 서서 킹크랩을 보며 헛소리를 하고 있는 지나와 나를,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삼치 샀어?"
"고등어."

나는 좀 부끄러워져서 급히 뒤돌아서며 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카트를 잡았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에 언뜻 웃는 기색이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다시 한 번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신기록을 다시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언제 그녀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또 세월이 흘러 지나 같은 자식이 생겨서 이렇게 같이 나서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행복은 순수한 행복이기도 하고, 그런 사실만으로 세상 누구에게라도 당당히 자랑할 수 있는 어떤 경지이기도 했다.

한글 독해력도 보완의 여지가 있는 7세 어린이와 함께 킹크랩의 생태를 관찰한 것이 무슨 감동의 원천일까만은, 분명히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별 것 없어도 이렇게 좋구나, 하는 그런 생각만은 확실했다.

나는 감개무량한 듯한 어조로 그 말을 하려다가 다시 멈칫했다. 이제 정식으로 안 지 일주일 조금 더된 그녀에게, 결혼? 2세? 이건 헛다리를 짚어도 금문교 수준으로 짚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와 나의 관계가 정확히 뭔가? 친구? 친구끼리는 아무 일 없이 아침부터 "첫수업 부터 졸면 엄단함" 같은 문자메세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지금 그녀에게 같이 보내는 시간이 어쩌고 인생의 작은 행복이니 하는 일일드라마스러운 말을 하다간, 이상한 부담감과 속박감을 안겨줄 것이다. 그건 안된다. 그녀는 경계하며 물러설 것이고, 이 스리걸친 관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나는 그냥 혼자서 빙그레 웃었다.

"왜 웃어?"
"아니, 그냥 웃긴게 생각나서, 왜 그럴 때 있잖어. 버스타고 가다가 갑자기 옛날에 웃긴 거 생각나서 혼자 비실비실 웃다가, 옆 사람이 째려보게 되고 그런 상황."

나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같이 선배 애 봐주며 장보기. "데이트 장소 총집합!" 책에는 결코 안나오는 것이었지만, 나는 토요일 오전을 같이 보내기에 충분히 좋은 데이트였다고 생각했다. 연구소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 온 정애 선배의 집에 가서 지나와 함께 장봐온 것들을 인계했다. 정애 선배는 고맙다고 고맙다고 했고, 우리는 정애 선배에게 좀 이른 점심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정애 선배가 만들어준 냉면을 그녀와 같이 먹고 있는데, 지나는,

"엄마, 나 자전거 사줘."

하며 한 4,5회정도 보채었다. 관심있게 바라 보던 자전거를 지나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음, 그 어물쩡 넘어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니. 과연 90학번의 신화, 정애 선배의 후손 답군.

더위가 한 풀 꺾인 좀 시원한 정오 무렵의 토요일은 아주 좋았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걷고 있으면 훨씬 더 좋아진다.

주말 동안 집에 다녀 온다는 그녀는 이제 기숙사에 돌아가서 짐을 정리하고 오후 무렵에 예매해둔 기차를 타러 역에 갈 것이다. 나는 간만에 룸메이트 재찬이와 피자에 맥주나 불태우며 저녁을 보낼까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햇볕이 좀 강했기에 우리는 가로수가 그늘을 만드는 길 한편으로 섰다. 지난주 수요일날 읽었던 책에서 길을 걸을 때는 내가 길 바깥쪽으로 걷는게 정석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오른편에 섰다.

언젠가 무진장 자연스럽고 좋은 분위기가 오면, 정식으로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다고, 그녀의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겠다고 또 다시 결심했다. 그녀의 눈을 보며, "어 저 있잖아" 하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하는 그 계획은, 심장에 너무 무리가 가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때 우리의 옆에 뭔가가 휙 지나갔다. 좀 아슬아슬하게 스쳐서, 바깥쪽에서 걷던 나는 팔언저리가 긁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자전거였다. 운전자는 바로 그 생명공학과의 느끼한 단눈치오 녀석이었다. 그 뒷자리에는 아직 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신입생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 여학생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스치는 동안 약간 고개를 들어 멀리 가로수 위와 하늘을 잠깐 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우리 학교의 남녀가 만들어내는 모습중에 하나 였다. 나는 슬쩍 그녀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자전거를 타고 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은, 순수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면서 그 모습은 친밀해 보이기도 하고,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기도 한다. 아직 복잡한 세상의 이전투구와는 거리가 있는 젊은 사람들만의 분위기인 거 같기도 하다. 이런 전형적인 고리타분한 수식어들이 따분해보이기도 하지만, 넓은 학교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고 나무와 잔디밭이 많은 이 캠퍼스에서는 약간 전원적인 느낌마저도 든다.

사실 그래서 무슨 호수 공원이나 연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에서는 꼭 자전거를 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빌려타는 자전거는 좀 궁상맞고 억지스럽다.

옛날에 왜 조성모랑 "잘자 내꿈꿔"하는 인형 마스코트 나오는 광고가 있었다. 광고 자체는 유치해 보일 수도 있고 재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따라한답시고 어설프게 흉내를 내면 그건 정말로 얄팍해서 매실음료 광고만도 못해 보인다. 억지로 "낭만적인척 해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괜히 왔다갔다하는 것은 자칫 바보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눈 앞에 펼쳐진 이 학교의 자전거는 진짜였다. 이 학생들은 운전면허가 없거나 아직 돈을 모으지 못해서 자동차를 살 수 없었다. 그런데, 학교는 넓다.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 학교에서 두 사람이 같이 다닌다. 자전거를 같이 타고 다닌다. 지극히 자연스럽다. 뭐 하나 우스꽝스런 200원짜리 핸드폰 전송용 일러스트를 닮은 가짜 허영이라고 비웃을 구석이 없다.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 맑은 여름 토요일 정오. 우리 앞을 스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렇게 꽤 고전적으로 보였다. 심지어 우리 학교라는 지역적 특수성이 갖고 있는 약간의 개성마저 느껴진, 참신한 진짜 "낭만"이었다.

이상의 생각은 나 혼자 펼친 망상의 나래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날개의 크기를 가늠해 보려고 다시 생각을 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자전거는 앞에 바구니 달린게 좋은가? 그거 보기에는 이뻐 보여도 사실 그런거 없이 날렵하게 생긴게 탈 때 허리에는 더 편한데. 그치?"

나는 다시금 당황했다. 내가 자전거를 뭘 안다고. 나는 다시 대강 둘러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

"뭐 그런거 같기도 하다."

그녀는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에는 나도 너 자전거에 태워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그 표정은 차가운 완벽주의자의 그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말 그대로 "태워죠."하는 표현이었다. 장난끼도 좀 있어보이고, 어떻게 보면 수줍어 보이기도 하면서 또 약간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다운 그 강한 모습은 또 강한 모습대로 엿보이는 표정. 간단히 요약하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의 신기록을 새로운 세대로 전환시키는 모습이었다.

부정불가. 나는 어떠한 조금의 의심도, 일말의 다른 우려도 없이.

"그래."

하고 헤벌레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금 말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기숙사까지 같이 걸어들어가는 그 기나긴 길은 그날따라 이상하게 계속 자전거 쪽으로 화제가 흘러갔다. 이래서 아버지께서 정직하게 살라고 했구나하는 것을 그 날만큼 여러번 되뇌인 적도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조금씩 조금씩 말을 꾸며대야 했다.

그리하여 나의 가공된 상상속에서 나의 자전거는 산지 얼마 안되는 새 것. 이라고 일단 무미건조하게 등장했다. 그러다 그녀와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은색 색깔에 약간 낮은 안장을 얹게 되었다. 과연 허리가 약간 아프다는 설명과 함께 자전거 핸들 앞에 바구니가 생겼고, 비교적 크게 붙은 뒷자리도 생겼다.

기숙사 앞에 도착해서도 왠지 좀 더 같이 하고 싶어서 나무 그늘 아래 벤취에 앉은 우리는, 거기서도 해괴하게 자전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최대한 의심사지 않을 만한 노력하에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다른 화제로 옮겨가서 몇 번 이야기를 하다보면 돌아 돌아서 다시 자전거 이야기를 하게 되어 버렸다.

다음 주에는 영화나 한 편 보러가자는 약속을 하고,

"어.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야 겠다."

하면서 벤취에 한 한 시간 가까이 보냈다. 그리고 결국에 손을 흔들어 그녀가 기숙사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 쯤이 되자, 내 자전거는 뒷바퀴 브레이크가 약간 뻑뻑한 대신, 체인은 지난주에 정리를 해서 이제 아주 상태가 좋다는 경지로까지 구체화 되어 있었다.

이게 뭔가. 나는 혼자 내 기숙사로 걸어가는 길에 들어서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벌어진 가공과 환영의 대향연. 그런 소리를 지어내서 떠들어 댄 것은 나의 인격에 대해 심각한 오점을 남길 것이다.

아니, 그녀에게 나는 최악의 협잡꾼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헛된 사기와 협잡으로 얕게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기회주의자. 실망감과 함께 그녀 특유의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고, 나 역시 무관심의 행성, 혐오의 늪 속으로 날려 버리겠지. 아니다. 사실 그 정도도 잘 봐준거다.

정오의 햇살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내 스스로 돌이켜 보니, 상상속의 친구와 매일 저녁 대화를 하며, 허상의 세계와 현실을 잘 구분 못하는 광인. 혹은 성격파탄자 비슷한 모습마저 연상되었다. 망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