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단상
아내와 나는 북경 관광이 포함된 서울행 티켓으로 나의 태생지인
중국을 향해 날아갔다.
푸른물결인가 싶더니 이내 황막한 모습으로 대륙은 다가들었다.
김포공항을 이륙하여 불과 1시간15분만에 서해를 건너 중국의
베이징수도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트랩을 내린 나는 북망산을 향해 합장을 하고 머리숙여 삼배를 올렸다.
이순의 나이에 내가 태어나고 아비가 묻힌 땅을 찾아서
먼 발치에서나마 제를 올릴 수 있었음은 크나큰 다행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계류장을 벗어나 공항 내부로 들어서니
출처를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낡은 청사가 뿜어내는 악취로 하여 국제공항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벤쿠버에서 온 가이드는,호텔이나 근년에 지어진 빌딩을 제외하곤
문이 없거나 상체가 들여다 보이는 재래식 화장실이 대부분으로
오래된 공항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동포 3세인 엄성호씨의 안내를 따라 북경 시내로 들어온 나는,
대로를 가득메운 자전거 행렬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죽을 물고 삼륜자전거에 실려가는 촌로, 미니스커트에
자전거를 탄 여인, 더벅머리 사내가 싣고 달리는 개복당한 돼지,
길가에 나뒹구는 가축용 사료며 차와 자전거가 뒤엉켜서
연출하는 물결은, 온통 질서가 무너져내린 수라장이다.
한세기를 되돌아간 듯한 착각속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북경의 한낮은 뜨거운 가마솥을 방불케 했다.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에 생명의 원천인 강줄기 하나 흐르지 않고,
산과 수풀이며 인민들이 찾아야 할 근린시설은 시내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가 어려웠다.
오직 천안문에 걸린 모택동의 대형 초상화와 왕조의 천년 영화를
위해 지어진 웅장한 궁궐만이 지나는 나그네를 슬프게 한다.
1999년10월1일은 중국인민공화국 건국 50주년이 되는 날이란다.
이 날을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모택동기념물과 영웅기념관 등이
밀집해 있는 천안문광장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한 때는 '파괴가 곧 건설'이라며 70퍼센트가 넘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한 홍위병의 후예들이 오늘은 현대사를 치장하기 위해
또 다른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과연 무엇을 위한 파괴였으며 누구를 위해 건설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무지렁이 같은 천민들은 노동과 이념의 노예가 되어 빵 한조각에
코가 꿰여 삶의 현장에 내몰릴 때, 다스리는 자는 사후를 위해서
무덤 파기에 급급했다니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명 13능에 있는 지하궁전인 정능이다.
10세의 어린 나이에 등극한 명신종 만력황제는 즉위후 자기의 무덤파는
일로부터 국사를 펴나갔다고 한다.
북경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천수산 남단 기슭에 성을 쌓고 3만명을
동원하여 12년에 걸쳐 지하무덤인 화려한 지하궁전을 만들었다.
공사비는 은 800만냥으로 지금의 화폐 가치로 천만의 인구가 1년간
먹고 살 수 있는 막대한 재정이다.
공사가 끝난후에는 잡부를 제외한 설계와 공사를 맡았던 기술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한다.
후세에 무덤의 소재지나 내부구조 등,일체의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봉합을 위한 악랄한 조처였다.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외침이 하늘에 다았음인가?
지난 1956년부터 3년간에 걸친 발굴 끝에 500년간 숨겨진 비밀이
한순간에 드러나고야 말았다.
능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위장을 하기 위한 지상의 가묘를 제외하고 지하 27미터에 전후,좌우,
중앙으로 연결된 다섯개의 석실 전당으로 꾸며져 있으며
석문의 무게만도 무려 4톤에 이른다.
부장품으로 관과 26개의 보물상자에서 금은옥기와 매병,수많은
금은보화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화려한 보물창고요, 거대한 지하 왕궁이었다.
만력황제와 효단,효청 두 왕후의 관과 죽어서도 지키고 싶었던 황금으로
장식된 그들의 텅빈 보좌를 보면서 나는 한없는 연민의 정에 빠져들었다.
어리석고 다함 없는 인간의 욕망, 그 한계가 어딘지 무덤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재위 48년동안 치적도 있으련만, 출구에 높이 세운
대리석 묘비에는 한 줄의 글도 없는 무문비로 남아 있었다.
오호통재라 !
제왕이 남긴 자리엔 지상은 궁궐이요,지하는 궁전이라
혼령들의 탄식인가 한줄기 비되어 대지를 적신다.
1999.9.2 캐나다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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