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일기(2)
막내가 입학한 D중학교는 사내들만 다니는 학교이어서인지
오래된 건물은 낡고 추했다.
가랑비가 내리는 중에 치러진 입학식의 늙은 교장선생님
축사를 들으며 어느 날 이국땅에서 당당하게 꿈을 펼쳐갈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 보았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나 좀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가꾸고 학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짐짓 아비의 속내를 눈치라도 채는 날이면 마음에 바람만 들어
근본을 그르칠까 걱정이다.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학년이 바뀔때마다 '환경조사서'라는 것을
써 오라고 한다.
저마다 처해진 환경여건을 알아내어 그에 알맞는 교육지도를 하려는 게
목적이나 나에게 있어서는 심술궂은 '심문조서'에 불과하다.
부친의 직업을 상세하게 적으라는 주문 때문이다.
몇년간 무직상태인 아비에겐 이 보다 더 큰 형벌은 없다.
무슨 중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쥐 구멍을 찾게 된다.
무직, 직업이 없다는 것. 직업없이 살아간다는 것.
이는 한마디로 부끄러운 일이다.선생님이 어떻게 반응할 까를 걱정하다가 아이와 담합하여 직업란을
거짓으로 꾸며놓고 말았다.
'상업', 다분히 포괄적인 어휘로 채워놓고 생각하니 거짓말을
가르친 꼴이 되고 말았다.
없으면 없다고 할 것이지 아이앞에서 거짓을 연출했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녀석은 타는 아비의 속은 몰라보고 '됐어됐어'하며 종결을 선언한다.
그러나 담을 넘다 들킨 도둑처럼 이 황당함을 어떻게 추스리리!'죽어도 거짓말은 하지말라'하였거늘 아비 먼저 부덕하였으니 천추에
씻지 못할 죄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