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다녀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음악회의 단골 메뉴를 꼽으라면 '그리운 금강산'이
으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아서 못 본다면 죽어서 넋이라도 가고 싶다'는 금강산을 아이들의 정성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아내와 떠난 사랑의 유람선은 승객 894명에 승무원 381명이 정원인데
이 날 승객은 106명에 불과했다.
몇명의 어린이와 세 쌍의 신혼 커풀을 제외하면 대부분 50-60대 장년으로서
효도관광 온 사람과 여성이 많았다.
또한 실향민 보다 영,호남 사람이 많았던 게 특징이다.특수지역으로의 여행이기에 떠나기 앞서 세심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고성항 입,출과 현지인 접촉시 유의사항, 지참금지물이며
선상 생활에 관한 교육을 필한후 배에 올랐다.
출렁이는 파도를 헤치고 북방한계선을 넘으면 그리던 금강산이
곧장 달려올 것 같아 가슴은 마냥 뜀박질을 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이 갑판을 에워싸자 기대는 알 수 없는 공포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일정을 접고 자리에 누었으나 익일 아침 고성항에 닿기까지 뜬 눈으로
밤을 밝혀야 했다.
금강산을 찾는다는 기쁨보다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일까?오전 8시30분 주의사항을 숙지하고 승무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하선했다
비록 회색 콘크리트 부두였지만 처음 밟아보는 우리의 북녘 땅은
한없는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고개들어 바라보니 녹수(綠樹)는 청청하고 금강(金剛)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입국수속은 의외로 간단했다.
캐나다에서 온 사람이 왜 남측 여권을 사용하느냐는 질문 외엔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일행도 순조롭게 입국장을 빠져 나갔다.
첫날 관광은 금강산문화회관이 있는 온정각 휴게소에서 시작되었다.
버스에 분승한 일행은 미끈한 여인의 다리처럼 쭉쭉 뻗은 송림과
산수유 곱게 핀 신계천 외길을 따라 목란관 주차장에 당도했다.
목란관 주차장은 계곡미를 감상할 수 있는 구룡폭포와 상팔담 등정의
시발점이다.
금강문을 지나 구룡폭포에 이르는 길은 폭이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나 같은 초보자도 등정하기가 쉬웠다.
십여리 계곡에는 구룡연,옥류담,연주담,봉황담, 등 이름만 들어도 신비한
아름다운 연못과 봉황의 나는 모습을 닮았다는 비봉폭포를 비롯,
누워서 흐르는 옥류담 와포며 주렴폭포,구룡폭포 등 비경이 줄을 잇고 있었다.
선녀와 나뭇꾼의 이야기로 유명한 상팔담은 다리 공사로 갈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고, 관폭정에 올라 바라보는 구룡폭포는 갈수기여서인지
유랑이 적어 이름만큼 볼거리를 주지못했다.
그러나 세존봉과 옥류봉이 병풍같이 둘러싼 옥류동 계곡은
자연이 만든 환상적인 '오페라 무대'같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옥류동 절승경계를 어찌 다 말로 전하며 붓을 들어 옯기겠는가.
선현이 남긴 시 한수 옥빛처럼 빛나니 이를 대신한다.
높이 솟은 세존봉은 동남으로 안아 막고
부르기 좋은 옥녀봉은 서북으로 반겨 섰는데
앞에 솟은 천화대야 뒤에 있는 소옥녀야
뾰족하거든 곱지나 말거나
험준하거든 기특하지나 말았으면
숫돌같은 한장 바위는 옥소반 같고
그 위로 흐르는 물은 구슬을 굴리는 듯
그 앞에 담긴 물은 넓거든 깊지나 말거나
깊거든 맑지나 말았으면
어쩌면 이다지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풀어 헤쳐 주는가
둘째 날은 온정령 백여 굽이를 돌아 만상정 주차장에 도착한 후
산악미의 극치인 만물상을 보기 위해 천선대로 향했다.
두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길은
나에겐 고통으로 다가왔다.
오르다 돌아보면 천길 낭떠러지,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평탄한 해금강 코스를 택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앞만 보고 나아가는 아내에게 민망하고 선두의 우리 조를 따르는
또 다른 조원들을 헤치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죽는다 해도 오르는 길 밖에 없었다.
삼선암,귀면암,절부암을 거쳐 천선대에 이르는 마지막 쉬어가는 지점에
작은 샘이 보였다.
옛날 어느 나뭇꾼 노인이 이곳에 왔다가 갈증이 나고 지친 나마지
이 샘물을 마시고 청년으로 변해 짚고 왔던 지팡이마져 잊고
천선대에 올랐다 하여 망장천(忘杖泉)이란 이름이 붙여진 샘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옥수는 말라 나그네의 갈증도 잃어버린 청춘도
보상해 줄 수 없었고, 다만 고 김일성 주석의 전각만이 오롯이 남아
지난 날의 성가를 말해 주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하늘문을 뚫고 천선대에 오르니 그 곳은
네개의 칼날같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한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만물상을 배경으로 사진은 고사하고
내려갈 일이 막막했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머무를 수도 지체할 수도 없는 절박한 순간에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죽으나 사나 오직 한 길, 하산을 결심하고 눈을 뜨니
어느 덧 현기증은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밝은 길이 열려 있었다.
이를 두고 '궁직통이요',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 했던가?예정보다 빨리 하산한 우리는 환경감시원과 어울려
가정과 교육,연애와 결혼이며 직업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으며
단절의 시간속에서도 끈끈하게 이어온 겨레의 핏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중에는 여성 환경감시원도 많았는데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설마 아름다운 여성들만 일부러 뽑았을리 만무하지만
어쨌거나 남남북녀란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금강산문화회관에서 감상한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북한에서의 관광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후 7시 고성항을 떠나
동해항으로 돌아왔다.
3박4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봉래호 승무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잊을 수가 없다.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저들을 보면서
여행기간 내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아무쪼록 현대가족 여러분들의 행운을 빌며 끝으로 금강산 관광길이
보다 활성화 되어 평화의 길,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2001.5.2 캐나다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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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귀면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