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Niemand

이 글은 고대 음악감상실의 COSMUSICA 96년 겨울호에서 전제한 것임.



왜 NIEMAND인가?
- 개념없이 사는 사람들

정 석 환


   "저 선배들을 왜 저렇게 산대?"
   "Niemand니까."
   "근데, Niemand가 뭔데?"
   "뭐긴 뭐야,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사랑스런 96막내들조차 우리 'Niemand'의 존재 방식을 위와 같은 동어(同語)반복만으로 설명을 해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왜 Niemand인지, 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실체에 대해 자의적 해석만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 실장 출신 순기(96년 감상실 내 사이비 조직 '방사'-방황하는 사람들-의 교주로 활동하며, 수석 조직원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김동주로 하여금 '권순기 찬가'를 작곡하게 한 후 신입생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배우게 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려 했으나 무위로 끝이 남)의 'Niemand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엉뚱한 글마저 그 내용이 신성해야 할 코스뮤지카에 실린다는 얘기를 듣고,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하던 끝에 Niemand의 멤버를 대표하여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다. 물론 나 또한 코스뮤지카 지면을 더럽히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Niemand. 독일어다. 고로 '니만드'가 아니다. '니만두'는 더욱이 아니다. 조직의 특성 상 '속없는 만두' 쯤은 괜찮은 비유일 듯 싶다. '니만트'다. Nobody다. 독일영화 중에 마리아 슈라더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Keiner liebt mich라는 영화가 있었다 (국내에선 '파니 핑크 Fanny Fink'라는 제목을 가지고 개봉됨). keiner = niemand = nobody의 뜻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기 자신도 자신을 사랑하는 건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서른 넘은 니만트가 짝을 만나기는 원자폭탄 맞는 것보다 어렵다는 대사가 나온다. 다행히 금년 3월 조직의 고문으로 활동한 지을형이 30의 나이로 장가는 든다고 한다. 니만트 세력이 좀 약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잘 된 일이다. 어찌되었건 Niemand liebt mich.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하지만 Niemand 조직원만은 나를 사랑한다. 나의 생활과 감정을 나눌 수 잇는 마음의 여유와 나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차있다. Eric Clapton의 노래 중엔 'Nobody Knows You When You're Down and Out'이라는 곡이 있다. 그렇다. 아무리 세상을 어지럽히는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의 빛을 가로막는다 해도, 零落한 나의 곁에는 Niemand가 있기에, 나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Niemand가 있음이 내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미친 ×들!!

   여기까지만 읽어도 이런 듣기 거북한 욕설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무리가 없는 얘기다. 니만트들은 미쳐 버리고 싶지만, 미쳐지지는 않는, 미쳐버린 것 같지만, 가끔씩 제정신으로 살아 가기도 하는, 소외와 적응의 반복된 생활의 구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래서 완전히 미쳐버린 적은 없는, 한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라 표현하자면, '미친 남자'란 '말이나 하는 것이 실없는 남자들'인데, "Niemand (Nobody) in their senses would do such a thing."이라는 문장에서 보듯이 아무도 제정신으로 하지 않을 일들을 니만트들 만은 제정신으로 행동할 때가 있으니, 니만트의 한 속성이 미친 남자로 표현되어지는 것에 대해 반대는 하지 않겠다.

   영화 '초록 물고기'의 감독이기도 한 소설가 이창동씨는 자신의 창작집 중 '용천뱅이'라는 작품에서 니만트(=용천뱅이)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미친 사람이란 뜻도 되고, [...] 여하튼 성한 사람이나 보통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라고나 할까..."
소설 속 주인공은 허공에 시선을 던진 채 마치 독백이라도 하듯 천천히 말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죽을 때까지 용천뱅이(니만트) 신세로 살지는 않겠다고.

   니만트의 반사회성을 신랄하게 지적한 이창동 선생의 표현은 좀 지나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니만트들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가슴마저 뭉클해지는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다 하겠다.

   그리스의 영웅인 오딧세우스가 트로이에서 그리스로 귀향할 때 자신의 진짜이름을 감추고 Niemand로 자칭하여 결국 거인 폴리펨을 물리칠 수 잇엇던 행운의 이름 Niemand!! Niemand의 원조격인 Niemand Odysseus!!! 샘터사에서 출간된 셰익스피어의 소넷집에 수놓아진 꽃잎 문양을 보고 즐거워하는 Niemand Hoon! (그의 닉네임이 '기계'였던 점을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면과 Niemand로서의 본 정서 사이에 얼마만큼의 괴리가 있는 지는 짐작이 가능하지 않는가?)

   자신의 호출기 멘트에 "... Women seem wicked / When you're unwanted..."하고 흐르는 도어즈의 'People Are Strange' 노래를 배경에 깔고, "니만트여 영원하라" 고 외치는 Niemand Han!! 그는 최근 인터넷 상에 Niemand Homepage를 작성하는 등 조직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분주한 직장 생활 중에도 시간만 되면 후배들과 음악회 가랴 농구하랴 술마시랴 산에 가랴 언제나 애쓰는 따뜻한 남자! 어젯밤 꿈 속에서도 토함산에 올랐을 것같은, 니만트 제일의 포인트가드, Niemand 碩 (←감상실 운영시 사용하던 싸인)!!

   니만트는 죽어도 닭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언제나 웃음이 있는, 그래서 늘 기대고 싶은, 그리움의 원형 Niemand Yang!!!

   이들 니만트들은 언제까지 바그너가 노래한 "방랑하는 화란인 Der fliegende Hollaender"이어야 하는가? 저주받은 이 화란인은 정숙한 여인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영원토록 바다 위에서 헤메여야 한다는 선고를 받는다. 니만트의 구원의 날은 언제 찾아올 것인가? "Eli, Eli, lama sabachthani?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니만트를 버리셨나이까?)" 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사람에게 운수 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나 다른 니만트들에게 있어서 지난 한 해는 뭔가 잘 풀리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막바지에 형들에게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나도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으니, 아마 올해에는, 그동안 "다음에..." 라고 말하며 우리 니만트들을 외면했던 행운의 여신이 다시 우리 앞에 찾아와 "오빠, 안녕하세요" 라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또 온갖 교태를 부릴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 조상님들이 가르쳐 준신 대로, 그녀의 굿이나 보면서 그녀가 만들어 준 떡이나 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상이 니만트가 그려 본 새해의 무궁화빛 시나리오이다.

   횡설수설 떠들다보니, 쓸데없는 헛소리를 해대다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다 되어간다. 전기를 끄고 여느때처럼 슈만의 가곡 'Niemand'를 들으며, Viva Niemand를 세 번 외친 후, 가까운 곳에 있을 지도 모를 님의 이름을 Niemand라 불러 보며 (Niemand! Komm zu mir!) 칙칙폭폭(?) 시내버스 333을 타고 Dreamland를 향해 떠나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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