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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지금으로 부터 약 800년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어느 자그마한 동네에 결혼연령이 휠씬 넘은
플레이 보이 한 명이 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여자를 밝히거나 색을 좋아하는 타입의 남성은 아니었고 단순히 호기심으로 그런 관계를 가질
뿐이었다. 그런 그가 결혼을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이유는 자기 눈에 맞는 여성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사랑>을 느낄 대상이
그에겐 없었던 것이 그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 였다. 하여튼 이 동네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플레이 보이 였다.
이 동네이 이 플레이보이 만큼 유명한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절색의 미인이면서 숫처녀 였다.
아직 아무 남자와도 데이트 해 보지 않은 여성으로 지와 덕을 겸한 참한 여성이었다.
어느날, 플레이 보이는 이 여성을 보는 순간
부터 다른 여성에게서는 느껴 보지 못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위 인류역사상 가장 고질 사랑병으로 유명한
<짝사랑>을 플레이보이는 하게 되었다. 그 동네 사람들이 하나 같이 플레이 보이로 알고 있는 자신을 그녀가 받아 줄리가 없다는 것을
이 플레이 보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플레이보이는 자기의 뜨거운 <사랑>을 전할 목적으로 교회로 가 성인(Saint)
가면(Mask)을 하나 구입했다. 플레이 보이 얼굴위에 덮어진 성인가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플레이 보이는 생각하였다. 플레이
보이는 성인가면을 써고 그 동정녀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어떻게? 성인 같이 말하고 행동하였다. 처음에 두 사람의 관계는 지와
덕을 나누는 사이 였다가 한 참 지난 후 그 동정녀가 성인가면을 쓴 이 플레이보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사랑했다. 그
<사랑>의 결과는 두 사람을 결혼식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하였다.
결혼식 날이 되었다. 그 동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역에
유지들이 다 모인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다. 주례자는 물론 교회 신부이고 당시 카톨릭의 성인들이 대거 참석하여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
주고 있었다.
결혼주례신부는 두 사람에게서 <사랑>의 확신을 받고는 모인 축하객들에게 물었다. <여기 축하객으로
오신 여러분들 중에 이 두사람의 결혼에 의의가 있는 분은 손을 들어 표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들 하였지만, 꼭
한 사람이 손을 높이 들었다. 모든 축하객 뿐만 아니라 플레이보이는 심장이 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 손을 높이 치켜 든 사람은 다름
아닌 플레이보이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결혼주례자는 그 손든 분에 물었다. <말씀하시지요, 무슨 의의가 있으신지> 그러자 플레이보이
친구는 축하객을 향햐여 미소를 띄우며<여러분은 지금 저 신랑에게 속고 있습니다. 저 신랑은 성인이 아니라 플레이 보이 입니다 지금 그는
성인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앞에 그의 가면을 벗기고 말 것입니다!> 소리쳤다. 당연히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가 된 것 같이 씨끌벅쩍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조용해 졌다. 그 손든 친구가 성인가면을 써고 있는 플레이보이의 가면을 벗기고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보이 당사자도 생각하기를 <이제 끝이구나> 하는 절망감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이게 뭐야?>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가면을 벗기던 친구의 멱살을 잡고는 <이런 망할놈, 신부가 탐이 나서 이런
거짓말로 신랑을 놀리고 있어? 에라...> 성인가면을 벗은 플레이보이는 과거의 플레이 보이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 있었다. 플레이 보이는
철저하게 자신을 속이면서 자신의 <사랑>을 동정녀에게 바치려고 한 것이 결국 그로 플레이보이가 성인이 되게 한 것이라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이 무엇일까? 다름 아닌 행동발달이다. 사람의 행동이 이렇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철저하게 행세를 계속했을 때 그 전혀 다른사람 처럼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혼가정카운슬러들이 하는
떼라피(Therapy) 는 어글러진 관계를 바로 잡는 일을 주로 한다. 행동이 어글러진 사람의 행동을 교정해 주는 일을 함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을 못하는 사람을 카운슬러는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교정해 주는 일을 하기에 Play boy 도 성인으로
교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기적이란 엄청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사건을 어떤 과정을 통하여 결과를 얻는 것을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기적은 매직과 다르다. 기적에는 항상 과정이 있다. 예수님이 눈먼장님을 고쳐
주었을 때 진흙에 침을 이겨 그것도 2회에 걸쳐 문질러 줌으로 고침을 받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이신 그 분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렇게 고쳤는데 성경은 기적이라 한다. 즉 믿음을 강건하게 하기 위한 과정들을 하나 하나 밟은 뒤에 얻어
지는 것이 기적이란 것이다. 그 과정 중에 각 단계별에 해당되는 믿음이 설정됙 때문이다. 과정이 끝날 무렵에 그것이 기적이란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 그기 숨어 있는 것이다.
카운슬러로 성령님이 계시다. 성령님이 우리의
카운슬러가 되신다. 그분에게 카운슬링을 받은 사람은 기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상담은 기적이다. 상담에는 단계가 있다, 그 단계의 목적은
일그러진 마음의 상태가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 와 각자에게 맡겨진 인생의 시간을 재미있게 풍요롭게, 부요하게 일구며 주님께서 부르신 목적에 합당한
생활을 해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담은 기적이다. 마치 고칠수 없는 여성편력으로 가득한 플레이보이가 성인으로 변하게 된 것 마냥.....
모두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상담은 분명 기적의 현장이고, 기적의 순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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